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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한류 슈퍼스타 윤이상, 그가 제목 짓는 법 2009/03/28

윤이상이란 이름은 제겐 그저 뉴스에서 듣는 시사용어일뿐이었습니다.그랬던 제가 윤이상이란 거대한 인간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곡에 붙인 이름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겁니다. 제가 처음 독일에 갔을 때였습니다. 최근 시사주간지 의 부탁으로 새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소속이 문화부 기자도 아니고, 기사도 쓰지않는 처지여서 좀 뭐했지만 2주에 한번이란 후배 기자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칼럼을 쓰는 것을 극구 사양해왔습니다. 어줍잖은 제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정보를 정리 전달하는게 독자들께 덜 잘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도와줘야 할 일도 생기는 법이어서 결국 칼럼을 맡았습니다. 왜 승락했나 후회하며 첫 회를 뭘 쓸까 고민..

雜家의 매력 2018.11.25

[만만건축 9회] 5공화국의 초대형 개선문 프로젝트 사연은? 2009/03/24

개선문 짓다가 나라가 망한 황제를 아시나요? 카레라이스빛 개선문이랄까? 거대한 문이 눈 앞에 버티고 서있다. 정말 큼직한 덩치다. 인도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인디아게이트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가장 넓은 길인 대통령궁 앞길 끝에 이 거대한 문이 서 있다. 절로 떠오르는 파리의 개선문과 비교해보자. 개선문계의 간판스타, 통칭 파리 개선문, 정확히 에투알 개선문이다. 1836년생이니 지은 지 170년 넘은 근대의 산물이다. 나폴레옹의 똥고집과 과시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문이다.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문이다. 과연 높이는 얼마나 될까? 한번 가늠해보시라. 정답은, 49미터. 그러니까 한 50미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저 개선문을 직접 봤을 때 개인적인 느낌은 ‘뭐 그냥 그렇군’이었다. 예상 이상으로 감동..

건축과 사귀기 2018.11.25

미국 국제학교 엿보기 2009/03/21

최근 인도 뉴델리에 있는 미국 대사관 부설 국제학교에 다녀왔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모아 놓은 학교다. 미국이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자국민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인도에서 살고 있는 조카들이 하교 하기 전에 찾아가 함께 국제학교를 돌아봤다. 우리나라나 일본 등 아시아의 학교들은 긴 건물 한 두개에 모든 시설을 들여넣는 학교 건물이어서 보기만해도 학교인 줄 알 수 있다. 반면 서구 학교들은 단지 안에 아기자기한 여러가지 건물로 잘게 나누는 곳이 많다. 뉴델리의 저 국제학교도 2~3층짜리 얕은 여러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이어진다. 교문에서 올라가는 길. 인도 분위기 물씬 나는 장식들로 곳곳을 꾸민 것이 눈길을 끈다. 마침 학교에선 각종 인도..

빨간 타지마할도 있다 2009/03/19

멀리 문이 보인다. 양쪽으로 망루 같은 것이 달려있고, 가운데로는 하얀 돔이 야트막하게 올라와 있는 문이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문쪽으로 향한다. 가까이 갈수록 문이 커진다. 그런데, 문 앞에 다다르니 문 위로 솟아있던 하얀 돔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걸까? 지붕 위로 보이던 하얀 돔은 저 문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실은 문 안쪽에 있는 건물의 지붕이었던 것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그 돔의 주인 건물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이 건물, 후마윤 묘다. 후마윤묘는 인도 델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인도 무굴제국의 2대 황제 후마윤의 무덤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도의 중요 명소다. 건물은 빨간 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무굴왕조 건축물로, 그 모양이 인도의 자랑인 타지 마할..

[만만건축 8회] 김일성과 간디의 차이-진정한 영웅의 무덤은? 2009/03/14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었던 1991년, 약간은 충동적으로 연수에 가까운 유학을 떠났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적성국가였던 이 나라와 수교는 되었지만, 러시아로 가는 한국인은 실로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홍역을 앓기 시작하고 있었다. 격변기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오랜 애증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기존 이념을 혐오하면서도 새로운 이념과 변화에 대한 기대 못잖게 공포와 당혹감을 느끼던 그 때 러시아 사람들이 떠오른다. 기이한 체험이었던 레닌의 묘 공산주의 나라란 뿔달린 도깨비들 나라처럼 생각하던 시절 공산주의의 맹주 소련에 살게 된 나는 공산주의의 실체에 대해 많은 것이 궁금했다. 정말 듣던대로일까, ..

건축과 사귀기 2018.10.14

[만만건축 7회] 한국 법원 수준, 건물만 봐도 보인다 2009/03/11

안트베르펜. 영어로 앤트워프로 불리는 이 도시는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때문이다. 주인공 소년 네로가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던 그 동네가 작은 나라 벨기에의 도시 안트베르펜이었다. 화가를 꿈꿨던 네로는 바로 이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바라보며 늙은 개 파트라슈를 껴안고 함께 얼어죽는다. 파트라슈의 도시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다 파트라슈와 네로의 이야기로 유명한 이 도시에 2005년 새로운 명물이 들어섰다. 안트베르펜의 남쪽, 고속도로 부근 녹지대와 연결되는 곳에 독특한 건물이 완공된 것이다. 무슨 건물일까? 전시장일까? 극장? 요즘 건물들답게 겉모습만으로는 어떤 건물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다른 방향..

건축과 사귀기 2018.10.14

저항할 힘을 빼앗아버리는 천하무적 건물 2009/03/10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건물이 몇이나 될까? 한 나라의 상징이자, 건축의 상징이 된 건물이 될 확률은 그야말로 수십억분의 일일 것. 그 건물 타지마할을 언제쯤 볼 지 늘 아쉬웠다. 그런 갈망속에 직접 본 그 순간을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타지마할의 입구는 붉은 사암 전통건물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매표소도 참 타지마할스럽지 않은가. 제법 엄격한 검문검색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인도에선 검문검색이 일상적이다. 폭탄 테러 등 뒤숭숭한 일들이 많은 탓이다. 타지마할의 검문검색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 칼이나 뾰족한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데, 흉기로 쓰일까봐가 아니다. 건물 벽에 장식한 보석들을 떼어간 일들이 많아서다.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병사처럼 도열한 건물이 나오고 그 가운데를 지난다. ..

건축과 사귀기 2018.10.10

핑크 시티, 바람의 궁전에 가다 2009/03/06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인도의 붉은 사암색깔로 통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서울 델리, 그리고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와 함께 자이푸르는 인도 관광의 기본 3대 코스로 꼽힌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란 세 도시다. 자이푸르를 굽어보는 자이가르성 핑크 도시 자이푸르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성 암베르, 그리고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서 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옛성 자이가르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돌아본 암베르성을 뒤로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또다른 성 자이가르로 향한다. 암베르가 화려하고 살아있는 성이라면, 자이가르는 낡고 죽은 성, 그러나 그래서 볼만한 폐허 유적이다. 황무지 민둥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찻길로 자이가르성을 향해 올라..

만화계의 구준표 클로버문고가 떴답니다 2009/03/05

2001년 가을쯤이었다. 지금은 청강문화산업대 만화과 교수로 있는 만화평론가 박인하씨한테 전화가 왔다. “무지하게 재밌는 일이 진행중”이란 거였다. 도대체 뭔냐고 물었다.“클로버문고 복간운동이 시작됐어요. 출판사 어문각도 해보겠답니다.” 한 만화팬이 출판사 어문각 홈페이지에 ‘클로버 문고를 다시 보고 싶다’고 글을 올린 것이 빌단이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른 팬들도 너도나도 복간하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한국의 만화팬들 사이에선 유례가 없는 한 만화문고의 복간 운동이 시작됐다. 도대체 뭐길래? 클로버문고, 한 세대를 규정 지은 만화 시대는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였다. 한국 만화는 실로 엄청나게 정부의 검열과 규제에 시달리면서도 자생적으로 힘을 키우며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작가..

경비실의 반란?-인상적인 경비실 건축 2009/03/03

대학로의 이면도로, 동숭동에서 이화동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은 묘한 것들이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길이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낙후된, 그래서 정겨운 옛 건물들과 틈틈이 들어선 상업공간들이 어떻게 서로를 품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공존하는 듯한 곳이다. 여러 층위의 시간들과 디자인, 건축양식들이 짬뽕이 된 그 느낌이 다른 골목들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다른 곳에서였다면 큰 길가에 있을 법한 굵직한 건물들도 이 안쪽길로 들어오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사무실 이로재나, 국민대 디자인센터 같은 것들이 이 뒷편에 숨어있다. 경비실, 전통건축을 입어보다 모처럼 혜화역 1번 출구 앞 가장 큰 골목길로 이 이면도로를 걸어봤다. 혜화역 1번출구 쪽 큰 골목으로 모처럼 걸어가봤다. 전에 없었던 것을 뒤늦게 ..

건축과 사귀기 2018.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