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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한류 슈퍼스타 윤이상, 그가 제목 짓는 법 2009/03/28
    雜家의 매력 2018.11.25 14:31

    윤이상이란 이름은 제겐 그저 뉴스에서 듣는 시사용어일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윤이상이란 거대한 인간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곡에 붙인 이름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겁니다. 제가 처음 독일에 갔을 때였습니다.

     

    최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부탁으로 새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소속이 문화부 기자도 아니고, 기사도 쓰지않는 처지여서 좀 뭐했지만 2주에 한번이란 후배 기자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칼럼을 쓰는 것을 극구 사양해왔습니다. 어줍잖은 제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정보를 정리 전달하는게 독자들께 덜 잘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도와줘야 할 일도 생기는 법이어서 결국 칼럼을 맡았습니다. 


    왜 승락했나 후회하며 첫 회를 뭘 쓸까 고민하다가 윤이상 음악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름 속에서 1996년 독일에서 겪었던 그 때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시험에 안 나오는 문화-1회] 

    독일 음대생의 조잘거리는 말 속에 섞인 ‘피리’, 이보다 더한 ‘한류’가 있을까

     

    슈투트가르트의 현대미술관은 웅장하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대신 아늑하고 정다웠다. 현대건축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미술관 옆에는 똑같은 콘셉트로 지은 자매 건물이 있었다. 독일의 명문 음대인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였다. 건물 안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내 귀에 별안간 “피리”라는 한국어가 들렸다. 내 옆으로 지나가던 독일 음대생들이 조잘거리는 이야기 속에 분명 우리말 ‘피리’가 나오고 있었다.


    독일 학생들이 말했던 피리는 <피리>(Piri), 바로 윤이상이 작곡한 오보에 연주곡 <오보에 연주를 위한 피리>였다. 어렵기로 소문난 윤이상의 곡들은 음대의 시험곡으로 많이 쓰인다. 아마 이 곡으로 실기시험을 보는 모양이었다. 씩씩한 독일 아가씨들이 독일식 발음으로 말하는 우리말 ‘피리’를 듣는 것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


    윤이상은 조국에서 배척당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널리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독일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생전의 윤이상. 사진 한겨레 자료


    오보에는 우리 국악기 피리와 가장 닮은 서양 악기다. 피리는 대금이나 퉁소와 달리 악기 끝에 ‘서’(혀)가 달린 관악기를 말한다. 서에 입을 대고 불면 그 미세한 떨림이 소리를 만든다. 서양 피리 오보에도 꼭 그렇다. 오보에는 끝에 서양 갈대를 얇게 깎은 리드를 달고 분다. 숨을 불어넣는 리드는 좁고 작지만 피리와 오보에의 소리는 강하고 높고 널리 뻗어나간다. 사람 목소리와 가장 닮은 소리를 내는 악기이자, 오케스트라에서 기준음을 내는 악기다. 피리 역시 다른 관악기보다 크기는 작지만 귀를 파고드는 소리힘은 정말 세다.


    윤이상이 <피리>를 작곡한 것은 1971년이었다. 1967년 독일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돼 한국으로 끌려가 ‘동베를린 간첩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그는 1969년 독일 정부와 세계 예술가들의 항의로 석방되어 서베를린으로 돌아갔다. 대신 평생 고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는 우리 악기 소리를 그리워하며 가장 음색이 비슷한 서양 악기의 연주곡을 쓰곤 했다. 피리는 오보에, 가야금은 하프, 해금은 바이올린으로 짝을 지웠고, 노래의 형식에도 국악의 틀을 시험하곤 했다. 우리말을 곡 이름으로 쓴 것도 많다. 바라, 무악, 예악 같은 우리 음악용어가 <바라>(Bara), <무악>(Muak), <예악>(Reak)으로 탄생했다.


    살아가며 음악가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 음악가란 어떤 사람이며 음악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진 순간이 독일 음대에서 ‘피리’란 말을 들었을 때다. 그저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란 건조하고 추상적인 수식어로만 알고 있던 윤이상이란 인물에 대해 처음으로 알고 싶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그의 음악을 들어보고, 그에 대한 글을 읽은 뒤에야 나는 그가 우리 국악의 형식을 서양음악에 활용하려 했으며 우리 단어로 곡이름을 붙였다는 것을 알았다. 부끄러웠고, 감동스러웠다. 어린 시절 경남 통영의 밤바다를 거닐며 들었던 피리 소리를 떠올리며 오보에 곡을 쓰는 그를 상상해봤다. 이 거대한 용은 현대사에 휘말리는 바람에 입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음악으로 홀로 핥고 또 핥았으리라.


    윤이상은 조국에서 배척당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널리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우리 악기 이름이 클래식 명곡이 되어 전세계 음악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문화 천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윤이상처럼 잘 보여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한 그토록 잘난 척하는 독일의 레코드점에 브람스와 베토벤, 말러와 모차르트 사이에 ‘이상 윤’ 코너가 따로 있다. 이보다 더 진정한 한류가 또 있을까.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그는 수십 년 전에 홀로 유배당한 채 이뤄냈다.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3월27일부터 시작한다. 올해 주제는 ‘동과 서’. 그가 1994년 작곡한 오보에와 첼로를 위한 이중주 <동서의 단편>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윤이상을 정치적 인물로만 생각해왔다. 이제는 음악인 윤이상,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를 즐겁게 만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봄과 음악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통영국제음악제가 그 좋은 기회다. 윤이상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통영의 푸른 바다를 그 대신 흠뻑 보고 즐겨보자. 윤이상도 그걸 바랄 것이다.


    윤이상 이야기기도 하지만 글에는 피리도 나옵니다. 


    윤이상의 곡 <피리>는 실은 어렵습니다. 이런 곡도 있구나 한번 듣고 넘어가실 분들도 많을 듯합니다. 하인츠 홀리거라는 훌륭한 오보이트와 궁합이 잘 맞았던 윤이상은 오보에 곡을 여럿 썼습니다. 하인츠 홀리거의 음반은 나중에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오보에의 달인입니다.


    기회가 되면 올 봄에 우리 악기 피리도 한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지난 가을 한옥에서 국악 듣기 연주회에서 피리 독주를 들은 뒤 올해는 제대로 피리 소리를 못 들어봤습니다. 


    악기들이란 서양 것이고 동양 것이고 나라가 달라도 볼수록 비슷합니다. 오보에와 피리를 보면 정말 구조도 비슷하고 소리도 비슷합니다. 물론 대금처럼 그 구조가 정말 다르고 재미있는 악기도 있습니다만.


    윤이상은 서양에 유배된 동양 사람으로서 악기들을 관통하는 그런 동질성을 보면서 끝없이 동서양 음악의 융합과 가로지르기를 실험했습니다.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구조와 작법을 서양음악에 넣어보기도 했지요. 그의 이런 음악적 투혼은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봄과 함께 윤이상음악제의 계절이 되면 궁금반 걱정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통영은 과연 한국의 바이로이트가 될까요? 윤이상의 도시로서 통영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통영이 윤이상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통영이 윤이상을 제대로 받아들여 통영속에 문화 유전자로 녹이기를 바랄뿐입니다.


    통영의 가장 큰 추진사업이 윤이상 음악당을 짓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도식적인 방안을 밀어붙이려한다는 이야기가 몇년째 들려오고 있습니다.


    통영에 거대한 랜드마크를 세우거나 해외 유명 음악당의 아류작을 들여오는 것은 윤이상에 대한 불경의 차원을 넘어 통영에 두고두고 짐이 될 겁니다. 통영시의 재정 형편을 넘는 거대한 음악당, 정부에 돈달라고 졸라서 짓는 세종문화회관같은 음악당은 필요 없습니다. 통영과 윤이상을 위한 음악당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통영이 명품 쇼핑하듯 음악당을 짓는 것입니다. 윤이상 음악당은 통영에만 있을 수 있는, 윤이상 자신이 살아있었다면 기뻐할, 크지 않아도 소중한 음악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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