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만만건축 7회] 한국 법원 수준, 건물만 봐도 보인다 2009/03/11

딸기21 2018. 10. 14. 14:41

안트베르펜. 영어로 앤트워프로 불리는 이 도시는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프란다스의 개> 때문이다. 


주인공 소년 네로가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던 그 동네가 작은 나라 벨기에의 도시 안트베르펜이었다. 화가를 꿈꿨던 네로는 바로 이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바라보며 늙은 개 파트라슈를 껴안고 함께 얼어죽는다.


파트라슈의 도시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다 

 

파트라슈와 네로의 이야기로 유명한 이 도시에 2005년 새로운 명물이 들어섰다. 안트베르펜의 남쪽, 고속도로 부근 녹지대와 연결되는 곳에 독특한 건물이 완공된 것이다.



 

무슨 건물일까? 전시장일까? 극장? 

요즘 건물들답게 겉모습만으로는 어떤 건물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다른 방향에서 본 건물 전체 모습이다.

 



건물 자체는 높지 않다.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듯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저 인상적인 지붕 하나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의 이미지는 지붕이 좌우한다는 걸 실감케 하는 건물이다. 




이제 건물의 입구로 가보자.  

 



철과 유리로 지은 전형적인 현대건물인데, 다른 건물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날렵하고 가벼워보인다. 투명성을 강조한 마감처리의 힘이다. 훤히 속이 들여다보여 경쾌하다.

 



넓은 건물 특유의 둔중함을 피하기 위해 계단도 재료를 최소한으로 써서 가볍게 연출했다. 노란 박스 기둥색도 산뜻함을 강조하는 선택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방문객을 맞이하는 건물이다. 넓고 개방적인 입구, 투명한 유리와 선과 선을 이은 디자인으로 실내를 밝고 가볍게 실내를 감싸며 자기 모습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건물이다. 

 

찾는 이를 부담없이 안으로 불러 이끄는 듯한 이 건물은, 제목에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뜻밖에도 법원이다. 안트베르펜에 들어선 새 법원청사, 신법원이다.

 



진면목은 내부에 있다. 밝게 트인 개방공간, 높고 투명한 천장으로 안에 있어도 외부 공간과 아무런 차단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안트베르펜 신법원 청사를 설계한 건축가는 현대 건축계에서 슈퍼스타로 대접받는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다. 건축가로서 경 칭호까지 받은 영국 문화계의 간판스타다. 

 

리처드 로저스는 미술관 건축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건축 스타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이다.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돔, 그리고 로이드 빌딩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던 설비들이 건물 바깥으로 노출되는 독특한 스타일 덕에 항상 ‘하이테크 건축’의 대표자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자기 건축 철학이 하이테크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을 찾아온 그를 인터뷰할 때 하이테크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이테크는 언어가 아니라 솔루션이다.”

하이테크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건축공학적인 방법으로 하이테크를 적용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이 신법원 건물도 첨단 소재와 기술공학적 디자인이 두드러진다. 하이테크 건축만이 할 수 있는 무기, 가벼움과 투명함으로 그는 새로운 법원건축을 시도했다. 

 

법정 내부를 보자.

 



로저스는 이 신법원에서 법원 건물의 고정관념을 모두 거부한다. 


공공건물, 특히나 사법부 건물들은 대부분 위압적이고 근엄하다. 로저스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민주주의와 공정함의 공간인 법원은 밝고 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물 중앙에는 대형 개방공간을 배치하고, 법정에선 바깥의 좋은 전망이 보이도록 했다. 재판정 위로 솟아있는 뾰족 지붕들은 밝은 자연광을 받아들여 법정을 비춘다. 그리고 친환경 공법을 고집하는 그의 스타일은 이 건물에서도 여전하다. 자연 채광에 자연 환기 시스템으로 에너지 절약형 건물을 추구했다. 

 

로저스는 한 건만 설계해도 수억원을 받는 스타지만, 늘 지속가능성과 균등 분배를 건축의 지향점으로 삼아왔다. 그의 설계사무소는 운영방식은 실로 독특하다. 대표 건축가들은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고 지분은 자선단체가 소유하도록 했다. 자기 연봉도 가장 말단 건축가의 9배 이상을 못받도록 규정했다. 건축주도 가린다. 군대처럼 평화에 반하는 건축주는 거부한다. 정말 독특한 건축가이자 경영자다.




로저스는 1933년생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스타일은 늘 새로워진다. 개인적으로 로저스 건물 최고의 관심사는 그의 지붕 디자인이다. 아일랜드 의회의사당과 스페인 터미널 건축 등에서 로저스는 인상적이고 개성적인 지붕선을 보여줬다. 서른여섯개의 뾰족뿔이 돋아있는 이 안트베르펜 신법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붕의 달인이다.

 

법원이란 공간을 좋아할 시민들은 없을 것이다. 법원은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이다. 마지못해 가게 되는 법원 건물마저 칙칙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모습이라면 어떻겠는가. 

로저스의 저 아름다운 건물은 법원건축, 아니 공공건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저 신법원은 규모가 적지 않지만 결코 도시를 압도하지 않는다. 도시의 맥락에 순응하면서도  강한 개성을 잃지 않는다. 공공건축 하나가 도시와, 거리와, 시민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할지 건축가의 고민과 노력이 잘 드러나는 현대건축의 새 주요작이다.

 

권위와 이념을 추구했던 현대건축의 스타 법원, 찬디가르 고등법원


법원 건물로 세계 건축사에 주요작으로 남은 건물로는 단연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인도 찬디가르 고등법원을 꼽을 수 있다.

 



현대 건축에서 죽도록 이름이 등장하는 르 코르뷔지에는 콘크리트를 무척이나 사랑한 건축가였다. 자유롭게 모양을 빚어낼 수 있는 콘크리트의 성질을 활용해 조형물처럼 디자인한 건물을 많이 남겼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롱샹교회가 대표적이다.

 


 

일찌감치 건축계 최고의 이론가이자 스타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르 코르뷔지에는 자기의 거대한 이상을 보여줄 수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많이 따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말 자기 맘대로 벼라별 짓을 다해도 되는 기회를 잡는다. 인도 찬디가르주가 그에게 초대형 공공건물 디자인 작업을 맡긴 것이다. 시멘트를 주물러대기 좋아했던 코르뷔지에는 시멘트 건물의 극한에 도전하듯 자기 디자인세계를 펼쳤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물 중 하나가 1955년작인 저 찬디가르 고등법원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한다고 꼭 걸작이 나오는 것일까?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 작품들은 비록 현대건축사의 주요작이 되었지만 너무 이상과 규모에 집착한 건물이 지니는 한계도 그대로 보여주는 문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콘크리트 건물 특유의 약점,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물흐른 자국이 생기는 등 표면이 지저분해져 세월의 무게가 그윽함이 아니라 더러움으로 드러난다. 모양 역시 모더니즘의 이상을 추구해 비인간적인 느낌도 강하다. 멋지고 폼은 날지 모르나 정다운 건물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적인 건물, 살고 싶은 건물보다는 이론과 이념을 표현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 아름다운 롱샹교회같은 걸작도 있지만 말이다.

 

코르뷔지에의 저 찬디가르 고등법원은 20세기 법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거대한 규모와 강한 이미지로 법의 힘을 강조한다. 법치의 이념이 사회를 지배하듯 건물도 방문객을 지배하듯 압도적이다. 안트베르펜의 저 만만해보이는 신법원과의 시간적 간극은 정확히 50년. 바뀐 세기처럼 법원 건축의 패러다임도 극명하게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만큼 여러 약점도 지닌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실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찬디가르 법원 건물과 한 건물을 비교해보자. 위가 찬디가르 법원, 아래가 다른 건물이다. 




콘크리트 소재며 벽의 조형적 처리가 아주 흡사한 건물이다. 코르뷔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저 아래 건물은 바로 우리나라 서울 한가운데에 있는 남산 자유센터다. 르 코르뷔제는 실로 여러나라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양김씨 김수근과 김중업 모두 그의 건축 영향을 받아 그의 건축 이념을 따른 건물들을 많이 설계했다. 특히 김수근의 경우 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 코르뷔제의 건물과 비슷한 저 남산 자유센터를 비롯해 서울 종로의 세운상가 등이 대표적이다. 


찬디가르 법원 건물로 자기 이상을 표현했던 코르뷔지에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김수근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법원 건물을 자기 작품으로 남겼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바로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진=한겨레 이종근 기자


개인적으로 김수근의 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의아했던 건물이 이 서초동 법원 청사였다. 왜 이렇게 권위적으로 했을까? 


다른 김수근 작품들과 디자인 측면의 연관성도 찾기 어려웠다. 작정하고 방문객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건물이다. 그런 모양에 늘 반감이 들어 사회부 기자 시절 저 건물을 드나들때마다 혼자 마음속으로 비판하곤 했다. 지금도 지나치게 거대해보이는 저 건물만보면 군사독재 권위주의 시대, 국민을 압도하며 군림하려는 사법부의 속성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저 건물의 상징성 탓에 이후 다른 하위 법원들도 대부분 저 건물을 닮은 멋대가리없는 위압적 판박이 모양으로 지어지게 됐다. 

 

그래서 김수근 같은 대가의 작품인데 왜 저런 디자인이 나왔는지 늘 궁금했다. 훗날 과정을 알게됐다. 저 법원청사는 김수근의 이름으로 낸 작품이었지만 정확히는 김수근의 팀 작품이라고 해야할 디자인이었다. 당시 사무실 운영이 넉넉찮았던 김수근의 공간팀은 사정상 저 법원 설계공모에서 김수근의 공간팀은 철저하게 당선 위주의 작품으로 밀고 나갔다. 지금 유명한 건축가로 성장한 승효상씨가 당시 당선이 중요하니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디자인으로 나가자고 추진했고, 의도대로 김수근팀은 셜계 경기에서 승리한다. 건축주인 법원의 취향을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그러나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영적 측면에선 당연한 선택이고 비난할 수 없는 일일지 몰라도, 그리고 저 디자인을 고른 당시 법원의 책임일지 몰라도, 저 권위적인 법원 건물을 수십년 바라봐야 하는 시민으로선 정말 거부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옆의 검찰청과 함께 80년대의 오만한 법조계의 자화상을 보는 것같아 늘 고개를 돌린다.


그 사이 우리 건축의 수준도 높아졌다. 우리 건축가들이 저 안트베르펜 법원 이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우리의 맥락과 문화에 맞게 충분히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건축주다. 한국의 법원, 검찰 건물은 그야말로 최하점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공공건축 분야다. 우리 법원과 검찰은 특색도 없고 매력도 없는 딱딱한 관공서 건물을 전국에 똑같이 양산해왔다.

 

그러면 우리 사법부는 이제 새로운 건축을 수용할 자세를 갖춰가고 있을까? 아니 건축에 대해 관심갖는 미적 소양을 조금이라도 넓혀가고 있을까?


최근 한 대법관의 처신을 보면 정치적 이익에 집착하는 정권과 정당들에게 법의 엄정함을 가르쳐줘야할 법관의 자세를 저버리는 듯하다. 정치적 법관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한 군림하려는 위압적인 법원 건축이 바뀌기를 바라는 기대는 한참 뒤로 미뤄야할 것 같다. 건축은 건축주의 본성을 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