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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계의 구준표 클로버문고가 떴답니다 2009/03/05
    책 가지고 놀기 2018.10.10 14:21

    2001년 가을쯤이었다. 지금은 청강문화산업대 만화과 교수로 있는 만화평론가 박인하씨한테 전화가 왔다. “무지하게 재밌는 일이 진행중”이란 거였다. 도대체 뭔냐고 물었다.

    “클로버문고 복간운동이 시작됐어요. 출판사 어문각도 해보겠답니다.”

     

    한 만화팬이 출판사 어문각 홈페이지에 ‘클로버 문고를 다시 보고 싶다’고 글을 올린 것이 빌단이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른 팬들도 너도나도 복간하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한국의 만화팬들 사이에선 유례가 없는 한 만화문고의 복간 운동이 시작됐다. 도대체 뭐길래?

     

    클로버문고, 한 세대를 규정 지은 만화

     

    시대는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였다. 한국 만화는 실로 엄청나게 정부의 검열과 규제에 시달리면서도 자생적으로 힘을 키우며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작가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려도 되는 것보다 그리면 안되는 것이 많던 시절이었다. 


    당시를 비꼬는 유명한 만화 한 컷 먼저 보시라. 

    그야말로 반공이 가장 중요해, 아이들에겐 교훈만 줘야해, 애들은 어른 시키는 것만 해야해,라고 주문을 달달 외던 시기, 만화는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희한한 만화다.




    한때 인터넷에서 인기 높았던 풍자 만화다. 한 만화잡지의 맨 뒤 편집 후기에 그려넣은 개그만화로 보이는데, 모든 것을 정해진대로 그려야만 하는 현실을 너무 유쾌하게 비꼬아 오히려 슬픈 그런 만화였다.

     

    좌우지간 만화들이 모두 저래야 해던 시절, 그래도 만화가들은 규제와 검열 속에서 그래도 유익(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는)하고 즐거운 만화들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줬다. 그리고 그런 만화들이 몽땅 한 세트로 들어있는 문고판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어문각이란 출판사의 클로버문고다. 



     

    당시 클로버문고의 선전 전단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클로버문고는 1972년 <유리의 성>을 시작으로 해서 1984년 지성훈의 <풍운아 초립동이>까지 어문각에서 12년 동안 펴낸 429권짜리 어린이 문고다. 만화책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어린이 소설이나 정보서적도 있었다. 

     

    70년대의 특징은 특정 분야별로 소수 특정 상품이 그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현상이 전 분야에서 공히 벌어졌던 것이었다. 만화에선 무조건 클로버문고였다. 

    대본소의 조악한 만화들과 달리 그럴듯한 포장에 서점과 문방구에서 파는 좀 나은 만화는 몽땅 클로버문고여서 전국 모든 집에 한두권씩 있었을 정도다. 요즘 초등학생들 있는 집은 다 한 두권씩 가지고 있는 <와이> 시리즈나 <마법천자문>도 클로버문고만큼은 못됐다. 클로버문고는 줄잡아 1000만부는 팔렸던 것으로 추산되는데, 당시 1000만부는 지금 1000만부와는 비교가 안된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 권인데 우리 부모님은 너무 인색하셔서 친구들에게 빌려보느라 아니꼽고 치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난 지금도 우리 아들이 만화를 사달라고 조르면 마음이 약해져서 사실은 사달라는대로 거의 다 사준다. 그 바람에 우리집엔 약 500권의 만화책이 쌓여 있다...)

     

    당시 클로버문고의 만화들은 그 질이 상당히 높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다 저 문고안에 들어 있었다. 당시 가장 인기높았던 야구만화라면 역시 이 만화였다. 허영만의 <태양을 향해 달려라>다.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저항하는 의적 캐릭터 <각시탈>로 무지하게 교훈적이며 리얼리즘적인 만화를 그렸던 허영만이 처음으로 성공한 스포츠 코믹만화다. 주인공은 역시 이강토. 소년 야구의 에이스 투수다. 그리고 강토의 파트너 강타자 강산도 뺄 수 없다. 아빠들도 야구선수 친구사이인 강토와 강산이 북치고 장구쳐 세계 리틀야구 선수권대회서 우승한다는 그런 이야기.


    개인적으로 강토가 홈으로 슬라이딩해 들어와 포수의 블로킹을 뚫고 결승점을 뽑는 장면의 큼직한 컷 연출은 허영만의 연출력을 잘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포수가 블로킹에 성공한 듯했지만 공은 글러브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홈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이강토의 턱 밑에 공이 끼어 있었다. 한국 우승!




    최배달이란 이름을 대한민국 국민학생들(초등학생 아니죠) 모두에게 각인시킨 고우영의 다큐멘터리만화 대야망. 고우영의 구라 솜씨와 사실적 그림 솜씨가 대단한 만화였다. 이후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가 다시 한번 최배달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래도 고우영 <대야망>을 먼저 봐서 그런지 내겐 늘 최배달이라고 하면 <대야망>뿐이다.




    개인적으로 길창덕 최고의 아동 만화로 꼽는 <신판 보물섬>. 독특한 스토리, 명랑하면서도 순간순간 한없이 슬퍼지는 감정들, 종횡무진 누비는 재미... 길창덕이 왜 위대한 한국 만화의 아버지 작가인지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꼭 다시 보고 싶고, 다시 소장하고 싶은 만화를 꼽자면 저 <신판 보물섬>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 지금 우리 아들도 너무나 좋아하는 만화 <두심이 표류기>. 길창덕의 뒤를 있는 탁월한 작가 윤승운의 최고 개그만화다. 바다출판사에서 다시 펴낸 덕분에 소장하고 있고, 내가 보고 자란 만화를 아들이 보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우리 가족의 만화다. 개인적으로 윤승운 화백이 지금까지 <맹꽁이 서당> 등의 역사위인만화로 아이들의 벗으로 지내는 것을 보면서 존경스럽다. 그는 세대를 초월하는 힘을 지닌 대단한 만화가다.




    70년대와 80년대 최고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김삼의 대표적 시리즈 소년 007.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만화다. 무지하게 학구적으로 생겼지만 거의 슈퍼맨급의 능력을 지닌 소년 첩보원 007이 우주부터 외국까지 누비고 다니는 줄거리다. 이후 김삼씨는 옛날이야기 만화로 또 한번 풍미하는데, 그의 책들이 절판된 점이 아쉬울 뿐이다. 강가딘과 007이란 두 만화만으로 김삼은 어린이들의 최고 스타였다.




    부드러운 펜터치의 선들이 풍미하던 시절, 유일하게 직선적이고 깔끔한 펜선으로 에스에프에서 강세를 보였던 김형배 작가의 작품도 빼놓을 수없겠다. 만화영화로 당대 최고 인기였던 <로봇태권V>의 파생 시리즈 만화를 그리던 그는 인기는 좋았지만 오리지날 캐릭터는 없었던 작가였다. 이후 80년대 <21세기 기사단> <헬로 팝> 같은 다양한 세계로 작품이 뻗어나가 확실한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작가다. 만화가스러운 용모도 도드라졌던 작가이기도 하고.

     

    이런 쟁쟁한 선수들의 작품들과 함께 클로버문고는 또다른 만화들로 인기를 누렸다. 실제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만화들은 이 만화들이다.

    소녀들에게 영원한 로망이 된 만화. 




    70년대의 상징, 클로버문고에서도 시리즈 1권이어서 클로버문고의 상징이기도 했던 전설적인 만화 <유리의 성>이다. 스트래드포드 백작가문에 얽힌 출생의 비밀 이야기로,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이 이 <유리의 성>을 베낀 거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다. 법적으로는 이야기 구조의 표절이 법적으론 표절이 아니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표절이라고 본다. 

     

    생각해보라. 가문의 후계자 여자 아이가 뒤바뀌었다. 일부러 신분상승을 위해 속이고 들어간 여자애가 진짜 후계자인 여자애를 견제하고 괴롭히는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도 똑같이 만들겠는가. 특히 70년대에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조차 이 <유리의 성>을 모를 수가 없었다. 왜? 온 국민이 읽을 만화가, 특히 순정만화는 이 만화뿐이었을 정도니까. 김수현 작가의 자녀가 바로 이 만화를 보고 자랐을 세대라는 점에서 김수현 작가가 이 만화를 몰랐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좌우지간 이 만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금 드라마 <유리의 성>이 제목을 그대로 갖다가 썼는데 이런 한심한 제목 짓기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순정에서 소녀들 최고 로망 <유리의 성> 못지 않았던 소년들의 로망이 된 만화, 바로 그 만화 <바벨2세>를 빼놓아선 안된다. 당대 최고 인기만화이자 클로버문고의 간판 만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벨2세>와 <유리의 성>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두 만화가 모두 실은 일본 것이란 점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위의 두 만화 표지를 보자. <유리의 성>은 정영숙, <바벨2세>는 김동명이라고 버젓하게 작가 이름이 나와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한마디로 뻥이다. 거짓말이다. 일본작가 만화를 그대로 내면서 당시 한일 문화교류가 막혀있고 반일감정이 심해 한국 작가 작품처럼 속이고 냈다. <유리의 성>은 한국 작가가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껴 다시 그렸고, <바벨2세>는 가공 한국 이름을 달아 펴냈다. 물론 알면서도 속아준 사람들 많았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그런 배경을 알았겠는가. 다들 나중에 일본 만화란 것을 알고 크게 충격받았던 책들이다.

     

    실제 이 때문에 <바벨2세>의 작가 요코야마 미스테루는 한국 만화출판계에 아주 불쾌해하며 불신했다. 그래서 <바벨2세>를 정식 계약맺으려는 한국 출판사들에게 불신감을 나타내며 거절했다고 한다. 다행히 2007년 AK미디어란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바벨2세>를 펴냈다.

     

    좌우지간 이런 만화들이 바로 클로버문고의 간판 스타들이었고, 지금 30대 이상 어른들은 모조리 이 만화를 보면서 자랐으며, 특히 만화가들은 이 만화들의 영향으로 만화가가 되길 결심했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당시에는 왜 저렇게 일본 만화를 함부로 내고 그랬느냐? 궁금할텐데, 사실 저 당시만해도 저작권이란 개념이 잘 통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소년중앙>처럼 종합일간지에서 내던 잡지에서도 만화가에게 일본만화 던져주며 똑같이 그리게 해서 연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을 정도다.

     

    저 한 시대를 석권한 클로버문고도 그러나 시대의 흐름속에서 사라졌다. 만화 유통구조가 대본소쪽으로 바뀌면서 10년 넘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클로버문고의 시대도 끝이 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아련한 추억속의 이름으로 지금의 40대들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 클로버문고를 다시 팬들이 앞장서서 복간하려 한다는 것을 박인하 교수가 알려왔던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반갑고 또 흥미로웠다. 어문각쪽도 하기로 마음 먹었다니 그러면 뭐 정해진 것 아닌가 그랬다.


    그려면 복간 프로젝트의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완전한 실패였다. 바람은 그저 바람이었을뿐. 전설의 클로버문고 복간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역시 저작권이었다. 저작권 개념이 모호하고 규정도 거의 미비했던 시절 계약조건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들이 많았고, 그래서 이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 만화팬들의 클로버문고 복간 프로젝트는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만화팬들은 늘 클로버문고를 잊지 않았다. 헌책방에서도 인기 아이템으로 꾸준히 거래되고, 누가 많이 가지고 있나 팬들끼리 자랑 경쟁도 이어졌다. 

     

    그러면 나는 왜 갑자기 이 추억의 아이템을 곱씹으며 글을 쓰느냐, 그건 이 클로버문고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달, 그러니까 3월10일부터 7월31일까지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70년대 만화왕국으로의 여행, 클로버문고전>이란 이름으로 열린다. 전시 안내포스터도 당시 클로버문고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전시회는 박물관이 소장하는 클로버문고 400여권을 전시하는 한편 인기좋았던 100권을 열람용으로 만들어 관객들이 직접 읽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보내온 보도자료를 보니, 이 클로버문고 동호회인 ‘클로버문고의 향수’에서 가장 보고 싶은 클로버문고가 뭔지 설문조사도 했다고 한다. 1위는 역시나 <바벨2세>. 그래서 이 만화의 한국판과 일본판 비교, 피규어 전시 등도 기획했다고 한다. 이 클로버문고 동호회는 회원수만 8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역시 대단하다.

     

    저 전시회를 기획한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보내온 보도자료의 카피가 재미있다.

    “출판만화계의 구준표 클로버문고가 떴다.”


     전시를 준비한 심현필 학예연구사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클로버문고 이야기를 마친다. “만화는 독자들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게 하는 씨앗이고, 만화책은그 씨앗이 자라는 최적의 토양이다. 70년대의 이러한 토양으로서 작가와 독자의 소통로 역할을 한 <클로버문고> 시리즈가 폐간된 이후 이러한 인기 문고 시리즈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걱정하며, 이번 전시가 새로운 인기 문고 시리즈를 이끌 수 있는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크게 평가해준 듯하다. 지금도 인기만화는 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자기 초등학생 시절을 추억하게 해줄 그런 만화들 말이다. 

    좌우지간 클로버문고는 클로버문고다. 이런 전시회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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