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탐나는 휴게실, 더 탐나는 책장 2009/06/24

딸기21 2019. 12. 3. 21:48

가끔 건축가들의 작업실을 엿보곤 합니다.
물론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건축가의 작업 공간, 그리고 책상입니다.
그러나 그 못잖게 흥미로운 곳들이 회의실과 휴게실입니다. 건축쟁이들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오히려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가본 설계사무소는 정림건축이었습니다.
정림건축은 일반인들에겐 그 이름이 낯설겠지만, 건축계에선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 정림입니다. 한국 건축계 최대의 설계법인으로, 온갖 굵직한 공사들을 도맡았던 큰 회사입니다.
청와대를 누가 설계했을까요? 바로 정림입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국립 중앙박물관, 을지로 SK텔레콤 등에 세브란스 병원 등이 정림이 한 건물들입니다. 지금은 건설사와 파트너십으로 작업하는 더 큰 회사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정림건축은 건축설계법인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정림건축 사무실은 서울 대학로 입구 이화동 네거리에 있습니다. 저도 처음 가봤는데, 역시 가장 재미있는 곳은 바로 직원 휴게실이었습니다.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꽃병 모양의 기둥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정형 모양도 설계가 쉬워졌는데, 저 휘어돌아가는 기둥은 그런 프로그램으로 정림건축에서 만들어본 작품이라고 합니다.

 


공간 가운데에 저런 묘한 물건 하나 있으니 그 분위기가 독특해집니다. 깔끔한 하얀색 기둥이 주변의 알록달록한 의자들과 잘 어울리면서 스스로도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도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회의실 탁자 위에 매달아놓은 독특한 물건입니다.

 


저 쇠줄로 만든 조형물은 얼핏 전등처럼 보이지만 전등은 아니고 그냥 작품입니다. 역시 정림 내부에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깔끔하고 생감이 생생한 휴게실에서 가장 눈길이 갔고 가장 탐났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커다란 말발굽 모양으로 3면을 빙 둘러싸는 책꽂이입니다. 구조체 설계가 전공인 설계법인답게 독특한 책장을 만들었습니다.
 
저 하얗고 포근한 모양의 저 책꽂이 안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책꽂이를 뒤로 병풍처럼 두른 저 탁자에선 바깥 풍경이 내려다보입니다. 정림건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책꽂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책을 일부러 가득 꽂지 않았습니다.  이 독특한 책꽂이 때문에 이 휴게실의 이름도 `북 카페'였습니다. 
 
이 책꽂이 말고 제가 직접 본 책꽂이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책꽂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씨가 디자인한 해냄출판사 책꽂이입니다.

 


2개 층 높이의 실로 거대한 저 책장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기념비 역할을 하는 컨셉으로 만들었습니다. 출판사가 만든 책을 하나 하나 꽂아나가는 책의 기념비라는 것입니다.
정림건축 북카페의 저 동그란 책꽂이는 황두진씨의 책꽂이와는 또다른 모양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건축 설계사무소들은 멋진 건물을 만들어내는 꿈의 공장같은 곳이지만, 실제 근무 환경은 평범한 다른 사무실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더 어지럽고 복잡, 지저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정림건축의 휴게실처럼 독특한 공간들이 숨어있곤 합니다.
저 책꽂이, 한번 만들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