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만만건축 10회] 변신로봇이야 기차역이야? 2009/07/06

딸기21 2020. 2. 23. 17:07

기차역. 


철도여행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단순한 승합건물이지만 사람들은 다른 건물에선 느낄 수 없는 어떤 묘한 느낌을 기차역에서 느낍니다. 아무리 잘 지은 공항이라도 기차역처럼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진 못합니다. 기차역은 고단한 세상살이의 온갖 감정들이 극대화되는 공간이자, 떠남과 만남이 가져다주는 낭만이 뒤섞이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자신이 마법사란 것을 자각한 해리 포터가 어디에서 마법학교로 떠나겠습니까?
고속버스터미널? 국제공항? 어디론가 떠나는 소년 영웅의 출발점은 기차역이어야 합니다. 기차역처럼 낭만적인 공간도 없으니까요. 남들은 보지 못하는 또다른 출발점인 9와 4분의3 승강장에서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납니다.
 


기차라는 근대의 상징이 탄생하면서 함께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인 기차역은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건축적으로도 근대 도시를 대표하는 중요한 장르로 각광받아왔습니다. 다른 건물에선 볼 수 없는 확트인 승강장과 대합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들, 기차역은 늘 한 도시의 증명사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세계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차역이 드물었습니다. 기차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기차역은 건축의 최신 흐름을 선보이는 분야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변신로봇이야, 기차역이야

그러다가 기차역 건축을 다시 건축계의 토픽으로 올려놓은 스타 건축가가 등장합니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세계 각국 도시들로부터 랜드마크를 만들어달라는 러브콜을 받고 있는 스타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1951~)입니다. 가우디 이후 가장 성공한 스페인 건축가인 칼라트라바는 가우디 못잖게 시각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는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디자인계의 모차르트’란 영광스럽기 짝이 없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프랑스 리용의 사톨라역입니다. 한동안 스타가 없었던 기차역 건축계에 모처럼 등장한 현대 기차역 건축의 초대형 스타 건물입니다.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강력한 디자인이 한방 후려치는 듯한 이 건물은 모르고 보면 기차역인지 공상과학영화의 기지인지, 갑자기 건물이 일어나 새모양 로보트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저 역은 리용시 공항을 오가는 프랑스의 고속열차 TGV가 서는 중간 기착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무척 썰렁한 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건물 하나만은 일품입니다. 마치 현대조각작품 같군요.

 
이 건물에 얽힌 가장 재미있고 의아한 이야기는 누구나 저 건물을 보면 새를 연상하는데, 정작 건축가는 절대 새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럼 새가 아니고 도대체 뭐냐, 칼라트라바는 ‘눈’(eye)을 상징하는 거였다고 강조해습니다. 도대체 믿기 어려운데, 건축가의 주장이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네요.


옆에서 보면 좀 눈처럼 보이시나요?


눈을 상징한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니생각이고’ 하고 싶기도 하고... 판단은 각자가 하시길.
 
이 인상적인 역을 설계한 칼라트라바 이야기를 좀 더하면,
그가 스타로 떠오른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그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죠.


건축가가 무슨 운동선수로 참가했을리 없고, 그가 스타가 된 것은 올림픽을 맞아 바르셀로나시가 지은 새로운 건물을 그가 설계했는데 이게 아주 떴습니다. 올림픽 스타디움이 있는 몬주익에 들어선 텔레커뮤니케이션 타워입니다.


세계인의 꿈의 축제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만든 저 탑은 독특한 디자인 하나로 스페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성화를 들고 가는 선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재미있게도 저 자체가 거대한 해시계 역할도 합니다. 높이는 136미터입니다.
 
저 건물로 칼라트라바, 완전히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2년 뒤 선보인 놀라운 후속작품이 저 리용 역입니다. 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환상적인 디자인에 건축계가 다시 한번 놀랍니다. 기차역 건물 하나로 리용시는 세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오랫동안 건축계의 간판 장르에서 잊혀졌던 기차역이 다시 한번 건축뉴스의 토픽으로 떠올랐습니다.
 
건축에서 기차역은 근대의 놀라운 성과와 거대 도시의 로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르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을 풍미했습니다. 칼라트라바의 저 놀라운 리용역 이상으로 많은 역들이 건축사의 주요작으로 등장해 사랑받아왔습니다.
 
그러면 건축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기차역들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세계 각국 주요 역들 중에서 유명한 것들을 한번 주마간산으로라도 살펴보시죠. 
 
호그와트로 떠나는 바로 그 역, 기차역 건물의 원조
 
사실 기차역 승강장들은 그 생김새가 다 비슷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플랫폼들을 덮어주는 거대한 지붕이 확 트인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 모양과 구조가 대동소이한 편입니다.

 


저 역은 런던에 들어선 초기 역들의 하나로 런던의 상징인 ‘킹스 크로스 역’입니다. 영국은 역 이름에 크로스가 들어간 역들이 있네요. 킹스 크로스, 채링 크로스...


저 킹스크로스 역은 1852년, 그러니까 거의 150년전에 등장한 초기 역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고풍스럽지요. 기차역 1세대를 대표하는 역입니다. 우리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떠난 역도 바로 저 역이지요.
 
다목적댐 말고 다목적역도 있었다

 

킹스크로스 역은 보시듯 디자인면에서는 정말 단순명료합니다. 기차역의 기능에 오로지 충실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이후 기차역들도 생김새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독특한 기차역들도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식장 건물로 착각할 수 있을 법한 저 건물은 물론 기차역입니다. 어딘가 낡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 기차역인지도 추측하기 쉽지 않아보입니다. 저 역은 바로 ‘라호르역’입니다. 라호르가 어느 나라냐구요? 파키스탄입니다. 우리에겐 그 이름이 낯설지만 파키스탄 펀잡주의 주도인 중요한 도시입니다.
 
저 라호르역은 사진으로 보고 느끼셨을 인상보다도 오래 된 역입니다. 1865년 지었으니 세계 주요 역중에서도 아주 고참에 속하는 연조높은 역입니다. 철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영국은 식민지, 특히 인도에 열심히 철도를 깔고 역을 지었습니다. 식민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모은 물자와 재물을 열심히 빼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은 영국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조선에 해댔지요. 지금은 인도에서 갈라진 파키스탄에 남아 있는 저 라호르 역은 그런 영국의 침략이 낳은 아름다운 기차역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 역은 그냥 기차역만으로 지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도역이긴 하지만 유사시, 그러니까 전투시 요새로 쓸 수 있게 지은 기차역 겸 성채였습니다. 그래서 건물 중간 중간에 총안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차 격납고 역시 커다란 철제 셔터로 가릴 수 있게 설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못가봤습니다만, 직접 보면 무척 낭만적인 건물이라고 합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기차역
 
영국은 저 라호르역을 지은 지 20년쯤 뒤에 지은 또다른 역을 인도의 주요 도시 뭄바이에 지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역으로, 1996년 17세기 인도의 왕 이름을 따서 ‘차트라파티 시바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인도사람들은 참 식민지배 시절의 이름에 대해 관용적이었나 봅니다. 만약 우리나라 부산역이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이름을 따서 히로히토역이었다면 해방 이후 당장 바꿨겠지요. 식민지배가 끝난 지 50년 넘게 지나서야 이름을 바꿨다고 하니 좀 뜻밖이긴 합니다. 
 


저 역은 1888년 지었습니다. 얼핏 봐서는 역이 아니라 왕궁으로 착각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앞서 본 라호르역이 기차역 겸 요새인 다목적 역이었던 것처럼, 이 역 역시 실은 역사인 동시에 행정용 건물 용도로도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정성껏 꾸몄던 것이죠. 특히 저 가운데 부분은 거의 조각작품처럼 화려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기차역 중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이 역은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습니다. 업무용 건물로는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냥 봐도 저 건물은 서양식 건물임에도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고딕에 인도 전통 건축양식을 섞어 만들어낸 건축사의 주요작입니다. 인도를 잔인하게 짓밟은 식민지배가 낳은 산물이었지만 역은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저 아름다운 역은 하루 2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오가는 뭄바이의 교통 중심이자 간판스타로 자기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에 들어선 인도건축풍 기차역
 
다음 소개할 역은 이 역입니다. 역시 건물 사진만 봐서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 기차역인지 추측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 역은 생긴 것이 인도 건물 비슷해 인도에 있는 역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소재지는 콸라룸푸르, 그러니까 말레이시아의 대표역 되겠습니다. 1910년생 콸라룸푸르역입니다. 


자꾸 영국과 관련된 역들을 거론하게 되는데, 당시 영국이 철도의 나라였고 영국식 역사 건축이 곳곳에 남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 역은 말레이시아에 지으면서도 독특하게도 인도 무굴제국 건축양식을 접목했습니다. 저 건물 모서리 투구처럼 생긴 정자 부분이 바로 무굴제국 건축의 특징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면 저 콸라룸푸르역을 설계한 건축가 아서 베니슨 허복이란 양반이 인도의 영국 총독부와 작업을 오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도 당시 건축계를 지배했던 화려한 식민주의 양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저 역이 대표적입니다. 아름답고 화려해 영국 식민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손꼽힙니다. 
 
핀란드의 상징이 된 디자인 걸작 헬싱키역

영국이 자기네 건축양식에 식민지 나라들의 건축양식을 짬뽕해 기차역을 열심히 짓고 있을 당시 유럽의 나라들은 어떤 기차역을 지었을까요? 1914년 들어선 기차역 건축계의 손꼽히는 스타 기차역, 헬싱키 기차역을 소개합니다. 헬싱키의 얼굴이자 핀란드 현대건축의 유산으로 평가받는 멋진 기차역입니다.
 


보기만해도 포스가 느껴지는 이 기차역은 헬싱키 대성당과 함께 헬싱키 양대 랜드마크로 꼽힙니다. 건축가는 엘리엘 사리넨. 지금봐도 그 디자인의 힘이 세련되게 느껴지는 명 건축물입니다.


이 기차역은 특히 건물 벽에 만든 거대한 사람 조각상이 유명합니다. 에밀 윅스트롬이란 사람의 작품입니다. 20세기초 민족국가 탄생기에 성행한 민족적 낭만주의를 잘 보여주는 조각들입니다.


저 근사한 두 인물상은 고집세면서도 강인한 핀란드 사람들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후 핀란드 철도청의 광고에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로도 쓰였습니다. 
 
핀란드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이 인상적인 건물과 저 근엄한 조각상을 만나면서 헬싱키를 만나고, 핀란드를 떠난 뒤에는 저 역을 떠올리며 핀란드를 생각하게 됩니다. 잘 지은 역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핀란드 헬싱키역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슈투트가르트역도 살짝~
 
헬싱키역이나 뭄바이의 차트라파티 시바지역처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함 그 자체인데도 높은 평가를 받는 역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역입니다. 독일 남부의 산업도시 슈투트가르트의 얼굴, 슈투트가르트역입니다.


얼핏보면 탑 위에 올려놓은 메르세데스 벤츠 마크 때문에 벤츠 공장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차역 맞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벤츠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벤츠 공장과 벤츠 박물관이 있는 도시임을 저 역에서부터 느낄 수 있네요.
 
슈투트가르트 역은 무뚝뚝하면서도 근면 검소한 독일사람들 같은 기차역입니다. 1928년 지은 이 역은 당시 유럽 역들이 민족주의 열풍으로 과장되고 낭만적인 장식성 강한 건물을 지을 당시 거꾸로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늠름하게 지었습니다. 훗날 나치를 피해 망명해야 했던 건축가 파울 보나츠의 대표작입니다.

저 역은 사진으로 보면 그냥 공장건물처럼 단순해 보이는데 직접 가보면 벽돌건물 특유의 정감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아주 포근한 건물입니다. 기차역들이 다 매력적인 독일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기차역이었습니다. 지나치게 규모가 크지도 않아 아늑하고, 내부 공간이 아기자기해 기다리는 시간이 지겹지 않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밀라노에는 대성당말고 밀라노역도 있다

실로 웅장한 밀라노역입니다. 그 규모가 세계 최대 수준인 밀라노 대성당과 잘 어울려 보이는 역이지요. 건물 높이가 72미터, 길이가 200미터짜리 거대 건물입니다. 대합실은 더욱 길어 340미터나 됩니다.

 


건물 디자인만봐서는 무척이나 고전적입니다만 1933년에 지었습니다. 종착역인 중앙역의 위엄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90년대 기차역 건축의 또다른 걸작 리스본 오리엔테 스테이션

저 뒤로도 많은 유명한 역들이 세계 곳곳에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주 유명한 역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세계 각국의 중요한 수도의 중앙역들은 거의 대부분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거의 지어졌기 때문이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대에 들어서는 주요작이 드물었던 탓입니다. 그러다가 등장한 저 리용역이 모처럼 기차역 건축의 주요작이 되었습니다.
 
저 리용역 이후 칼라트라바는 다시 한번 또다른 주요한 기차역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1998년 지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오리엔테역’입니다.

 


리스본 시는 1993년 칼라트라바에에게 역 설계를 맡깁니다. 5년 뒤인 1998년 열릴 리스본 엑스포를 앞두고 랜드마크가 될 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엑스포장의 입구가 될 오리엔테 스테이션을 스타 건축가의 야심작으로 만들어 포르투갈과 리스본의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전형적인 국가 건축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 엑스포장과 이 역이 새로운 지역 중심으로 도시 발전에 기여한 바는 아주 크지 않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짓자마자 주요한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칼라트라바는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야자수 같기도 하고 생선뼈 같기도 한 천장과 기둥구조가 매력적인 이 역은 마치 서양 고딕 성당 내부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건물 입구쪽도 보시죠.


리용역과 저 리스본 오리엔테역으로 칼라트라바는 현대 기차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역이란 건축물은 여전히 국가와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 장르로서 중요하다는 것도 입증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역은 어떻습니까? 제가 오늘 주저리 주저리 유명한 역 건물들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의 역들의 꼴이 너무나 가슴 아플 정도록 한심하기 때문입니다.
 
보기조차 끔찍한 우리의 역들

앞서 말씀드렸듯 기차역은, 그것도 수도에 있는 중앙역과 주요 역들은 단순한 역이 아니라 국가적 상징, 요즘 인기 높은 랜드마크입니다. 한 도시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건물이자 건축계의 흐름을 담아내는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건축적 의미 이전에 평범한 대중들이 자주 이용하는 중요한 공공공간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역은 그런 점에서 그나라 건축문화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본 최악의 1위로 용산역을, 그리고 두번째로 최악인 역으로 서울역을 꼽겠습니다.

이 두 역은 엄밀히 말하면 역이 아닙니다. 진짜 기능은 쇼핑센터입니다. 쇼핑센터를 짓기 위해 역이 양념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가장 공공적이고 문화적이어야할 기차역이 일개 기업의 쇼핑센터 분점을 얹기 위한 부속품 정도로 깔아뭉개져있는 공간이 서울역과 용산역입니다. 이런 중요한 공간이 ‘민자역사’란 이름으로 쇼핑센터가 되어버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서울역을 보시죠. 건축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체가 상가 분양하듯 건물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만이 지니는 그 어떤 특성도 없이 전국 어디에나 있는 뻔한 쇼핑센터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게 문화도시,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얼굴이란 서울역입니다.

뒷편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역이란 간판을 떼어내면 바로 그냥 쇼핑몰이 되는 건물입니다. 그나마 있는 서울역 글씨도 다른 간판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다른 역들과 달리 수도인 서울의 간판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미학적 의지, 공공적 공간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려고 해도 없고 그저 물건 팔 욕심만 가득한 그런 건물입니다. 민자역사란 허울뿐인 개념으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공공공간인 역들을 이모양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역보다 용산역을 더 한심하다고 보는 것은, 서울역을 저모양으로 해놓은 것을 보고도 오히려 좋아보인다며 더 한심하게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용산역이란 이름만 떼어버리면 전국에 수두룩한 특색없는 전형적인 쇼핑몰 건축입니다.


서울과는 비교도 안되는 리용이나 훨씬 작은 리스본에 저런 새로운 역들이 들어서는 시대, 그걸 보고 더 나은 역을 짓기는커녕 훨씬 더 퇴행한 서울역과 용산역이 들어섭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문화와 행정의 수준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심한 노릇이 되어버립니다.
 
주말에 서울에 남아있는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을 다녀왔습니다.

작지만 군더더기 없어 아름다운, 상업의 논리가 들어오기전 순수한 역의 모습을 간직한 화랑대역을 보며 서울역과 용산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화랑대역보다 수백배 큰 역들이 기차역 건물 자체의 의미와 아름다움에선 화랑대역의 수백분의 1도 안되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뀌는 것은 기차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라트라바 건축 맛보기
 
리용역과 오리엔테역의 작가 칼라트라바의 작품세계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그리고 가장 정확한 비유가 있습니다. 그의 건물은 ‘표백한 공룡뼈’라는 비유입니다. 그는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외부로 드러내는 디자인을 선호하는데, 그래서 해저동물의 뼈 모양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작품들을 한번 보시죠.
 

  
그의 최고 인기작이 된 밀워키 아트뮤지엄입니다.
 


미술관이 과연 맞나 의심까지 할 정도로 파격적인 모양입니다. 거대한 범선 같기도 하고, 앞에서 보면 고래 꼬리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한,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아닌 건물입니다.
 
그리고 칼라트라바 건축의 박물관이 된 도시, 그의 고향 발렌시아입니다. 그의 오페라하우스, 과학예술도시가 칼라트라바타운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의 건물이 ‘표백한 공룡 뼈’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그리고 역시 화제가 된 이건물.


투구를 연상시키는 또는 거북이 같은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 음악당입니다.

이런 독특한 건물들에 견줄 때 이 범상치 않은 다리마저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군요.
 


마지막, 그의 또다른 작품, 언제 봐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나 칼라트라바만이 가능할 듯도 한 건물. ‘터닝 토르소’입니다. 스웨덴 말뫼에 들어선 정말 희한한 고층빌딩입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