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경복궁에 중국 건물이 있다고? 2009/06/04

딸기21 2019. 11. 13. 00:03

경복궁의 북쪽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경복궁의 가장 은밀한 곳, 잘꾸민 정원이 있던 이 북쪽 후원 일대는 복원과 보수 작업 끝에 최근에야 개방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독특한 건물들이 조용히 우리 곁에 돌아와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원정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이 건물, 한번 보시겠습니다.
 


자세히 보면 하나로 이어진 세 건물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저마다 확연히 다릅니다.
온쪽부터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입니다. 이 튀는 세 건물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가운데 집옥재입니다.
 


한옥 건물이 다 비슷비슷해 그 차이를 알아보기가 무척 어렵지만, 이 집옥재는 누가 봐도 어딘가 다른 궁궐 건물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우리 조선식이 아니라 중국식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양 옆쪽 벽면과 지붕 처리가 중국식입니다. 우리는 지붕이 벽면보다 더 튀어나오죠.
그리고 지붕 위에 올린 장식도 우리나라 건물에 쓰는 방식과 다릅니다.
 


우리나라 건물 용마루 끝에는 보통 용머리나 용 모양 장식을 올립니다. 이를 용두나 취두라고 합니다. 불기운을 막으려는 의미가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 집옥재에는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것이 올라 있습니다. 영화 <괴물>에 나온 괴물 비슷해보이기도 하네요.
 
가장 중국적인 부분은 창문입니다. 건물 뒷쪽을 보시지요.
 


동그란 달창과 아치 모양 반달창들입니다. 담황색 벽돌도 이국풍이죠.
다른 부분도 좀 돌아볼까요? 창살 모양도 좀 달라보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이 범상치 않은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월대’라는 건데요, 건물 앞에 폼나게 돌로 단을 내서 멋지게 꾸미는 부분입니다.
 


저 월대는 경복궁 다른 월대들과 만든 방식이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궁궐 건물로는 작은 편인 이 부속 건물에 월대까지 설치한 점이 특이합니다. 월대는 보통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에만 만들거든요. 그러니 아주 신경써서 지은 집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대 위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도 북모양이어서 아주 독특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단도 다른 궁궐 계단과 아주 다른 편입니다.
 


계단의 난간 부분인 소맷돌이 용 모양 조각입니다. 다른 궁궐 소맷돌은 무지개 모양 등인데 이렇게 정성껏 꾸민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임금님 영정을 모시는 건물이었는데 고종이 서재로 쓰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건물은 왜 유일하게 중국식으로 지은 걸까요?
 
정확하고 명쾌한 설은 자료를 찾아봤으나 쉽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건립 당시 흥선대원군이 중국인 인부를 데려와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외국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고종이 중국풍 건물을 선호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궐에는 이국풍 독특한 건물들이 하나쯤 들어있는 곳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 경복궁에도 그런 공통점이 있는 것이지요. 우아하고 정통적인 조선 건물들 사이에서 별미로 저런 이색 건물 하나 있는 것도 궁궐을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 집옥재 옆에 있는 팔우정 역시 우리 전통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른 편입니다.


팔우정은 경복궁 건물 가운데 특이하게 유리창이 달린 건물입니다. 조선 말기에 지어져 원래부터 유리창을 끼웠다고 합니다. 이 건물도 책을 보관하는 장서고입니다.
 
이 건물은 이름처럼 8각 건물인데, 사실 우리나라 건물들은 8각이나 6각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의 다른 8각 건물로는 아름다운 경치가 일품인 향원정이 있는데, 향원정도 그래서 고종의 중국 취향이 반영된 건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둥에마다 낙양각이란 장식을 달아 멋을 낸 것도 특징입니다.
 
이 두 건물만 있으면 다소 심심했을텐데, 여기에 전형적인 우리 한옥인 협길당이 함께 이어져 이 세 건물은 서로 다른 개성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이 재미난 건물이 45년 넘게 사람들과 떨어져 있다가 돌아온 것은 불과 2년여 전, 2006년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함께 개방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 비공개 지역 개방의 의미가 커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까지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소개하는 저 여자분은 일본인으로 경복궁 지킴이가 되어 당시 6년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고니시 다카코란 분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후손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그의 후손인지 방계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고 말했더군요.


아직 많은 분들이 이 곳을 미처 보지 못하고 경복궁 나들이를 마치곤 합니다. 널리 알려지지 못한 탓이겠지요.

올 여름, 마땅한 나들이 코스 떠오르지 않으실 때 경복궁 어떨까요?
경복궁을 자주 가셨더라도 더 북쪽 후원지대를 찾아가 보시면 새로우실 겁니다.
중국풍 물씬나는 개성적인 집옥재도 있고, 그 옆에 명성황후가 살해 당한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