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기념비로 만든 책장, 미술관이 소장한 의자 2009/05/19

딸기21 2019. 6. 26. 14:46

정말 이런 책장이 있구나...!
 

해냄이란 출판사가 있다. 대부분 이름을 아실만한 유명 출판사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내는 출판사로 유명하고, 이외수 등 많은 베스트셀러작가의 책을 낸다.
 
서울 홍대앞에 있는 이 출판사에 우연히 들렀다가 가장 놀란 것이 바로 편집부에 놓여있는 거대한 책장이었다. 해냄 사무실은 1층과 2층이 건물 안에 한공간으로 뚫려 있는데, 그 2층 천장까지 닿는 높이로 책장이 거대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내가 찍었던 사진을 찾지 못해 블로그 ‘맛있는 토스트BOOK’에서 책장 사진을 퍼왔다. 책과 출판사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가 많은 흥미만점의 블로그다. 저 사진에 잘려 안나온 위쪽으로도 책장은 더 올라간다. 직접 보면 대단히 높다.
 
저 책장을 처음 보았을 때 누구나 마음 속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저런 책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 고 꿈꾸는 책장을 현실에서 만난 느낌이었다. 바로 이런 책장을 누구나 한번쯤 꿈꾸지 않는가?
 



마치 저 책 표지속 책장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장에 달린 밀 수 있는 철제 사다리도 멋졌다. 저 높은 곳에 책을 올려놓으면 나중에 사다리타고 올라가서 찾을 때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재미있을 법한 멋진 책장 아닌가.
 

사진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이후로도 해냄출판사의 저 책장만한 책장은 아직 보지 못했다. 혹시 앞으로 해냄출판사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꼭 저 책장을 구경하고 오시길 바란다. 책장 자체가 포스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책장이다.
 
그런데, 저 책장 못잖게 해냄출판사 건물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위의 박영채 선생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해냄 사무실은 천장이 높게 트인 창문쪽이 회의실겸 휴게실이며, 외부 테라스와 이어지면서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분위기와 꾸밈새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 설계 때문에 다른 사무실들과는 그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사진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손님이 오면, 요즘처럼 날씨 좋은 계절이면 바깥 테라스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 저렇게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사진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테라스에 나가 바깥을 보며 이야기하니 느낌이 정말 달랐다. 이런 공간이 있는 건물이 부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해냄출판사를 방문한 뒤 건물은 역시 외관보다는 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는 건물의 외관에 쉽게 끌린다. 외관이 화려하고 독특한 건물이 좋은 건물, 예술적인 건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건물이란 분명 화려한 조형물이 아니라 사람이 생활하는 기계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부분 건물들의 내부는 대동소이하다. 해냄 건물은 그 내부를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저 책장도.
 
(황두진씨는? 흔히 전통건축으로만 여기는 한옥을 현대건축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 활용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최근 국내 건축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바로 한옥인데, 이런 한옥에 관한 작품으로 건축계에서 주목받은 <무무헌> <취죽당> <쌍희재> 그리고 한옥과 현대건축이 퓨전된 <가회헌>(가회동 나무와벽돌) 등이 황두진씨의 작품들이다. 한옥이 현대인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 현대적 건축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한옥이 돌아왔다>는 책을 쓰기도 했다.) 
 


건축가 황두진의 재미있는 가구 디자인들
 

그리고 한 3년쯤 지났을까, 최근 해냄 사옥을 설계한 황두진씨를 만날 일이 있었다. 해냄 사옥은 물론 그 안에 들어간 저 책장 역시 황두진씨가 디자인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바로 옆 통의동에 있는 황두진씨의 사무실에 들른 김에 저 책장에 대해서 물었다. 높게 만들어서 인상적인 것은 좋은데, 그래도 너무 높은 것 아니냐, 책 꽂는 사람 불편하진 않겠냐, 뭐 그런 이야기였다. 책장이란 것이 디자인적 요소가 좀 적은 가구이긴 하지만 황두진씨가 디자인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저 책장의 포인트는 ‘높이’ 그 자체일 뿐 다른 디자인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의아했었기 때문이었다.
 
황두진씨는 당시 책장을 디자인한 의도를 설명해줬다. 출판사의 업적과 산물은 책이고, 그 책이 기념비처럼 쌓인 모습의 책장으로 책의 기념비, 출판사의 기념비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일부러 높게 만들어 출판사가 펴낸 책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념비가 되는 책장이라. 그 설명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됐다. 
 
그러고 보면 황두진씨는 집만이 아니라 가구로도 주목을 받았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저 책장말고도 재미있는 의자를 하나 디자인했다. 바로 이 의자다.



저 의자의 공식 명칭은 ‘까오흔들의자’다. 2006년 대학로 쇳대박물관에서 열렸던 ‘건축가의 의자’ 전시회에 선보였던 작품의자다. 전시회 뒤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해 소장하는 디자인작품이 되었다. 
보기만해도 재미있는 저 의자는 원래 황두진씨가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할 때 과제로 냈던 의자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나무로 만들었고, 이후 전시회에는 저 티타늄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 출품했다고 한다. 

황씨가 디자인한 다른 가구로는 ‘핀란디아 테이블’이란 것도 있다. 핀란드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탁자다.



그래픽으로만 보면 느낌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황씨의 사무소 회의실에 바로 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실제 작품을 보니 저렇게 위의 개념도로 볼 때는 몰랐던 것이 있었다. 바로 저 가운데 하얀 동그라미가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 탁자에 맞게 올려놓은 빨간 보온병도 귀엽다.
 

그런데, 건축가가 왜 가구를 디자인하지?

  
원래 가구를 가장 많이 설계하는 이들이 건축가다. 건축가는 건축가인 동시에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구 중에서도 의자는 건축사에 이름을 남긴 대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것들이 많다. 가구는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 중의 하나인데, 그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변형의 여지가 많고 아이디어를 접목할 부분이 다채로워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중요한 아이템으로 애용되어 왔다. 그래서 의자의 역사가 곧 디자인의 역사라고 할 정도다. 그런 걸작 의자들 중 상당수가 건축가들의 작품이란 이야기다. 

앞서 황두진씨가 유학 시절 과제로 의자를 만들어 냈다고 했듯이 건축과 가구 디자인은 불가분의 과제다. 인테리어가 실내 건축이며, 건물에 어울리게 가구도 함께 만들어야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건축가의 의자로 가장 유명한 것 두가지만 소개한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르 코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들이다. 보면, 아 저 의자가 그런 거야? 라고 할 친숙한 것들이다. 그만큼 널리 사랑받고 널리 카피되는 디자인이라 하겠다.
 
먼저 르 코르뷔제의 의자다.


그리고 저 의자 못잖게 유명하고 카피 짝퉁 제품도 많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현대 건축물의 전형을 만들어낸 건축가다. 건축 역사상 그처럼 많은 영향력을 행시한 건축가도 드물다. 지금 우리가 보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비슷비슷한 고층 빌딩들이 저 사람의 이론과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극도의 단순함과 깔끔함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다.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란 유명한 말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구 디자인사의 걸작이 바로 저 바르셀로나 의자다.
 
왜 미스 반데어 로에가 스페인 사람도 아닌데 의자 이름에 스페인 도시 바르셀로나가 붙었는지 궁금해하실 듯해 잠깐 설명하자면, 저 의자를 그가 만든 것은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의 독일관(저먼 파빌리온)을 설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건물에 들어갈 의자로 설계한 것이 저 의자였고, 그래서 바르셀로나 의자란 이름이 붙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들어간 미스 반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

  
당시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독일관으로 기존 건물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놀라운 건물을 선보여 세계 건축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가 늘 주장하는 ‘적을수록 좋다’는 단순한 미학을 극도로 추구한 건물인데, 거의 모든 장식과 장식을 없애고 재료와 구조 그 자체만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시도한 순수주의 그 자체인 건물이었다. 그리고 앞에는 물이 깔리는 조경을 해서 조경과 건물이 하나가 되어 무척이나 정적이면서 은은한 건물을 만들어냈다.


이 건물이 던진 충격과 영향은 실로 대단했고, 이 건물은 이후 건축사의 걸작으로 남았다. 원래 박람회용 건물들은 행사용 1회용 건물이지만, 이 건물의 의미가 워낙 컸기에 그 자리에 1986년 복원됐다.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건축물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가우디의 건축물만을 떠올리지만 바르셀로나에는 저 미스 반데어 로에의 걸작 파빌리온도 있다. 지금도 전세계의 건축학도는 물론 관광객들이 찾는 바르셀로나의 건축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