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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페미니즘 미술가에 반하다 2008/05/22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났지만 경상도 집안에서 경상도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자란 나는 꼴 마초에 가깝다. 그러니, 페미니즘 미술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는 지지해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전혀 친하고 싶지 않았다.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모를 바가 아니나 그런 미술을 즐기고 싶진 않은 탓이다. 윤석남 화백 작품만은 예외였지만. 주디 시카고? 신디 셔먼? 유명하고 중요하다고 하니 작품을 보기는 봤는데, 속으로는 ‘너무 윽박지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그런 센 미술보다는 보기 편한 미술이 더 좋았다. 프리다 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출산현장을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싶은가? 마돈나는 그런 모양이다. 칼로의 그림을 사갔다니.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계 최고의 스타이자 대모격..

한국에서 가장 슬픈 나무, 가장 웃기는 나무가 함께 있는 곳 2008/05/20

“남쪽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달렸네.”재즈의 명곡 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운의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대표곡이자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늘 슬프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다. 가사는 계속 이어진다. “이파리에도 뿌리에도 피가 묻었네. 검은 시체들이 남풍속에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서 흔들리는 이상한 열매.” 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끔찍한 노래라 할만하다. 인종 차별이 여전히 극심했던 1930년대말, 한 흑인 청년이 미국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을 나무에 매달아 죽인 모습을 보았다. 루이스 알렌이란 그 흑인 청년은 이란 시를 썼고, 이 시가 노래가 되어 빌리 할리데이가 불렀다. 노래는 그 자체로 처절한 고발이 되어 역사를 증..

雜家의 매력 2018.09.03

그윽한 한옥 추사고택 2008/05/15

추사 김정희.불세출의 대천재. 또는 모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수재. 어찌됐든 미스터리한 인물. 그가 태어난 집인 예산 추사고택은 전통건축 답사 코스로도 손꼽힌다. 조선시대 상류층 집안의 단아한 건축을 잘 보여주는 집이다. 하지만 추사고택은 건축미가 뛰어나서 감탄하게 되는 집이 아니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런 집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집이다. 그게 추사고택의 매력이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은 그런 집이다.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나온다. 추사고택은 3단구성이다. 완만한 언덕에 집이 자리잡아 입구부터 사랑채, 안채, 사당 순으로 위로 올라간다. 사랑채 앞에는 돌이 하나 서있다. 비석일리는 없는데 ‘석년’(石年)이란 글씨가 새겨져있다. 추사가..

건축과 사귀기 2018.09.03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사진가 2008/05/12

개를 찍는 사진가가 있었다. 그가 찍은 개 사진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다시 보면 그의 사진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바로 ‘눈높이’였다. 그는 개의 눈 높이에서 개를 바라봤다.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개처럼 낮은 곳에서 개를 바라보며 찍었다. 우리는 자기 눈높이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나 십몇센티미터만 눈높이가 달라져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계단 한 칸 위에서 본 세상은 한 칸 아래와는 전혀 다르다.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키 작은 사람의 시야와 괴로움을 키 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작은 눈 높이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안다. 조금 몸을 낮춰 아이..

한국 건축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건물은? 2008/05/07

건국 이래 가장 큰 논쟁에 휩싸인 건물 한국 건축을 말할 때 정말 지겨울 정도로 거론 되는 이름이 1세대 양대 스타 건축가인 김수근과 김중업이다. 그 두 명 중에서도 더욱 유명한, 그러니까 한국 건축역사상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단연 김수근이다. 김수근(1931~1986)이 누군지 모를 수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김수근의 작품을 접하지 않기가 불가능하다. 건축 전문가들은 미학적 기준을 중시해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서울 원서동의 공간사옥이나 경동교회 등을 꼽지만 김수근을 더 쉽게,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건물들은 굵직굵직한 대형 국가적 건물들이다. 위의 사진에서 김수근의 뒤에 있는 올림픽주경기장이라든지 종로의 세운상가, 대학로 문예회관, 서대문에 있는 경찰청, 서초동 법원청사, 그리고 남산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

건축과 사귀기 2018.09.03

강남역 ‘땡땡이 빌딩’의 숨은 비밀 2008/05/05

강남 논현동, 흔히 말하는 제일생명 네거리에 짓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아직 짓고있는 중인데도 인터넷에선 이 건물이 화제로 떠올랐다. 완공도 되기 전에 ‘빵빵이 빌딩’(구멍이 빵빵 뚫렸다고 해서) 또는 ‘땡땡이 빌딩’이란 애칭까지 붙었다. 예상을 깬 것은 독특한 생김새가 아니었다 땡땡이 빌딩은 무척이나 ‘화끈한’ 디자인이어서 오히려 강하고 과잉된 디자인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모습이다. 비슷비슷한 건물들만 있는 한국 현실에선 조금 디자인이 강해보이긴 해도 보는 재미를 주는 점은 분명해보였다. 저 건물이 완공되면 이렇게 생길 것이라고 한다. 미리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조감도다.이름하여 ‘어번 하이브 빌딩’. 하이브는 벌집이란 뜻이다. 도시의 벌집, 그럴듯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 건물을 디자..

건축과 사귀기 2018.09.03

내 생애 가장 웅장한 개집 2008/05/03

4월 마지막주, 대관령 양떼목장을 가다. 강원도는 강원도다. 아직도 나무에 새싹이 나지 않은 것을 보면. 초원에 양떼를 방목하는 것은 5월 중순이나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것. 얼핏 보면 마치 맞배지붕 근사한 건물처럼 보와 도리까지 제대로인 나무 집. 그러나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개가 사는 집. 그리고 귀여운 새집? 우체통?

雜家의 매력 2018.09.03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에 가다 2008/04/30

어느새 10년전 영화가 되어버린 에서 깡패 박신양과 여의사 전도연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대였지만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성당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명장면으로 꼽힌다. 결혼식 장면을 찍은 그 아름다운 성당이 바로 전주 전동성당이다. 슬픔어린 장소에 들어선 아름다운 성당 전주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건물이 있다면 전동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한옥마을 입구, 전주를 대표하는 전통 건축물인 경기전 앞에 있는 전동성당은 영화 으로 더욱 유명해진 전주의 랜드마크다. 서울대 건축과 전봉희 교수는 이 성당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전동성당은 보기만해도 다른 성당들과 다르다. 고딕식 첨탑에 대한 집착이 심한 우리나라 대부분 기독교 ..

건축과 사귀기 2018.09.02

눈썹 달린 건물 보셨어요? 2008/04/27

전국 대부분 도시에는 ‘교동’이란 동네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가 있는 동네란 뜻이다. 어떤 학교가 있었던 곳일까? ‘향교’다. 향교는 지금으로 따지면 중고등학교쯤 된다. 전국에 얼마나 많았겠는가. 2백몇십곳이나 됐다. 전국 각지의 ‘교동’들이 그 증거다. 조선시대 향교를 설치할 때 원칙이 ‘1읍1교’였다. 향교 모양은 서울 성균관을 본땄다. 영화 의 그곳 대부분 이들에게 향교는 국사 시간에 ‘조선시대 공립학교’라는 정말 딱딱하기 짝이 없는 개념으로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어야 했던 단어일 것이다. 향교를 가본 이도 적을 듯하다. 물론 향교가 많이 사라진 탓도 있다. 전주향교는 지금 남아있는 향교들 중에서 가장 가볼만한 곳 중 하나다. 역사적 의미 때문이 아니다. 하염없이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건축과 사귀기 2018.09.02

사라진 서대문을 찾아서-보이지 않는 문은 어디에? 2008/04/18

서울 4대문 가운데 안타깝게 사라져버린 서대문, 그러니까 돈의문은 원래 어디 있었을까? 일제가 돈의문을 헐어버린 것이 1915년이니, 벌써 93년이 흘렀다. 500년 넘게 서울 서쪽을 지키던 문은 지금 완벽하게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원래 서대문이 있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서울 토박이들도 알기 어렵다. 대충 지하철 서대문역 서대문 네거리 어디쯤으로만 여길 뿐이다. 사라지기 전 돈의문의 모습. 아래는 1896년 사진. 문 주변 남루한 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돈의문은 서울 4대문 중 하나였지만 사실 규모면에선 숭례문(아래 사진)에 비길바는 못되었다. 숭례문이 불타버린게 더욱 아쉽기만 한 이유다. 숭례문 예전 모습. 위 돈의문과 비교해보면 훨씬 규모가 크고 웅장함을 알 수 있다. 돈의문이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