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그윽한 한옥 추사고택 2008/05/15

딸기21 2018. 9. 3. 11:57

추사 김정희.

불세출의 대천재. 또는 모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수재. 어찌됐든 미스터리한 인물. 

그가 태어난 집인 예산 추사고택은 전통건축 답사 코스로도 손꼽힌다. 조선시대 상류층 집안의 단아한 건축을 잘 보여주는 집이다.


하지만 추사고택은 건축미가 뛰어나서 감탄하게 되는 집이 아니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런 집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집이다. 그게 추사고택의 매력이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은 그런 집이다.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나온다.


추사고택은 3단구성이다. 완만한 언덕에 집이 자리잡아 입구부터 사랑채, 안채, 사당 순으로 위로 올라간다.


사랑채 앞에는 돌이 하나 서있다. 비석일리는 없는데 ‘석년’(石年)이란 글씨가 새겨져있다. 추사가 직접 새긴 글씨라는데, 저 돌의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고 하니 해시계다. 지금은 모란을 심어 그림자가 안보일 듯하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편안하게 마당을 돌아본 뒤 사랑채 바로 위 안채로 향한다. 




사랑채와는 달리 아담하게 ㅁ자를 이루는 안채를 나와 이제 추사고택의 마지막 건물, 맨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추사 집안의 사당으로 갈 차례다.


야트막하지만 정성껏 만든 돌 굴뚝이 근사하게 서있고, 그 뒤로 사당 입구인 협문 계단이 놓여 있다. 저 협문은 작아서 더 귀엽다. 한옥에서만 보여주는 작은 문, 일부러 고개 굽혀 들어가지만 들어가 수그린 고개를 펴면 공간이 더욱 환하게 맞아주는 재미를 주는 문이다.




사당을 돌아보고 나올 때에는 출구인 다른 협문으로 나오면 된다. 올라간 길과 반대쪽에는 잘 가꾼 정원이 있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추사고택의 볼거리는 고택 안말고 바깥에도 있다. 고택 바로 옆에는 추사 집안이 대대로 물을 떠먹은 근사한 우물이 있고, 추사의 묘와 추사 조상의 묘, 그리고 희귀한 백송 등이 주변에 있다. 우물에서 조금 더 가면 추사의 묘가 나온다.




추사는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의 후손이다. 그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였다. 추사고택을 세운 이도 바로 이 증조부였다. 그러나 왕실의 외척으로 태어난 운명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의 족쇄였다. 추사는 청년 시절 일찌감치 조선 최고의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왕실 외척이란 이유로 정쟁에 휘말렸고, 그 능력과 뜻을 제대로 펴기는커녕 귀양으로 인생을 보내야했다. 


나이 쉰 네살에 제주도로 귀양가 8년만에 풀려났지만, 3년 뒤 다시 귀양을 가야했다. 이번에는 저 머나먼 북쪽 북청이었다. 그의 말년은 불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갈고 닦은 학예실력으로 조선의 심미안을 완성했다. 그가 남긴 미감은 지금도 우리를 지배한다. 지금에 사는 우리 모두는 그의 이름을 안다. 그는 당대 자신의 입신양명에는 실패했지만 역사에선 승리해 이름을 남겼다.


이같은 그의 굴곡진 인생은 과연 인생에서 재능과 운명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조용히 저 묘 밑에 잠들어 있는 거인은 그 답을 깨달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