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기둥이 춤을 춘다-한국 전통 기둥의 은밀한 매력 2008/05/28 18:16.24

딸기21 2018. 9. 5. 14:32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꼭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바로 기둥입니다.


건물에서 기둥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기둥 덕분에 건물이 서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미적인 측면에서도 기둥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원래 건물의 생김새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지붕입니다.


지붕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건물의 인상은 지붕에 달렸습니다. 기와지붕, 슬라브지붕, 뾰족지붕... 지붕처럼 집을 결정짓는 것도 없습니다. 


기둥이 춤을 추는 절, 개심사


기둥은 지붕만큼은 아니어도 은근히 건물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 생각해보시죠. 도리아식 기둥, 이오니아식 기둥, 코린트식 기둥... 이런거 기억나시죠? 서양 건축은 기둥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또한 기둥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열주’라고 하는데, 이런 열주는 특히 폼잡기 좋아하는 건축에는 아주 필수적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성 베드로 성당 이런 것들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이는 동양 건축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종묘를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경회루가 왜 폼이 납니까? 지붕 웅장하고, 기둥 줄지어 서있는 그 포스가 센 거죠. 


전통 건축을 보게 될 때 이 기둥을 눈여겨 보는 것도 솔찮은 재미가 있습니다. 실제 우리 건축에서도 기둥은 미적으로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 건축미의 고갱이’라며 교과서에서 그토록 흥분해 가르치는 배흘림 기둥, 그러니까 엔타시스 기법이 바로 기둥에 대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둥이 인상적인 전통 건축물을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충남 서산에 있는 마음 여는 절, 개심사입니다. 개심사란 이름은 다른 절들에 견줘 아주 유명한 편은 아닙니다만, 건축 전공자들에겐 기둥 하나만으로도 답사가야 할 절로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야 그럴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기둥을 떠나 개심사는 한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이름만 유명할뿐 새로 지은 겉만 번드르르한 건물들만 가득한 월정사같은 절들보다는 작아도 운치와 세월의 향기가 그만인 개심사가 훨씬 더 좋은 나들이 코스가 될 것으로 자신합니다. 아기자기하면서 예쁘고 귀여운 절, 분위기가 좋은 절이 개심사입니다.




대부분 절에는 입구에 연못이 있지요. 개심사도 연못이 먼저 방문객을 맞습니다. 산길따라 가다보면 자동차 다니는 새 길로 가기 쉬운데 절이 보이면 오른쪽 연못으로 가서 외나무 다리로 건너서 들어가야 제맛입니다. 자신을 비추는 연못을 가로지르며 마음을 씼으라는 의미입니다. 외나무 다리 건너 이제 개심사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개심사 건물은 범종각입니다.




자, 어떠십니까? 제가 하도 기둥이야기를 해서 기둥을 먼저 보신 분들은 기둥이 제맘대로 휘어있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기둥이 휜 것이 아니고 휜 나무를 기둥으로 썼겠죠?


그렇습니다. 개심사는 이렇게 기둥을 나무 원래 휜 모양 그대로 쓴 것들이 특징입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휜 나무를 그냥 대범하게 팍팍 기둥으로 썼습니다. 한국 건축에서만 가능한 멋이요 맛으로 꼽힙니다.


저 범종각 다음에는 안양루가 있습니다. 사찰의 필수 아이템 사물에서 범종을 뺀 나머지 목어와 운판 등을 걸어놓은 다용도 누각입니다. 


이 안양루는 그 현판이 일품입니다. 일단 보시지요.

 


‘상왕산개심사’란 정갈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저 멋드러진 전서 편액은 바로 서예의 대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입니다. 저로선 저 글씨 하나만으로도 개심사에 온 보람을 얻었습니다.


안양루 지나 이제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워낙 작은 절이라 해탈문이 협문 같군요.




저렇게 귀여운 해탈문도 별로 없습니다. 있으면 웅장하게 따로 있거나, 아예 없거나 할텐데 개심사는 귀엽고 작게 따로 내었습니다. 저 해탈문 기둥 역시 자세히 보시면 울룩불룩 나무 모양을 하나도 손 안보고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들어섭니다.


개심사는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된 중요한 건축문화재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봐도 다른 대웅전들과 차이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물로 눈을 돌리면 ‘이 건물은 뭐야, 왜 이렇게 지었어’ 싶은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대웅전 옆,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건물, 개심사의 진짜 간판스타 건축물입니다. 


이번 글의 주연배우랄 수 있는 ‘심검당’입니다. 심검당은 요사채에 붙이는 이름입니다.




이건 뭐 기둥과 들보들이 아주 자기 맘대로들입니다. 일부러 저런 것만 골라지은 듯합니다. 나무를 너무 깔끔하게 다듬지 않고 조금 휜 것을 그냥 쓰는 것은 우리 전통 건축에서 아주 흔하지만, 이렇게 개심사처럼 아예 휜 기둥을 집중적으로 쓴 경우는 드뭅니다.


심검당 뿐만 아니라 다른 건물들도 역시 기둥이 인상적입니다.

 



이 개심사 기둥처럼 나무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는 기둥은 우리 건축에서 아주 널리 쓰는 기법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만큼 이름도 아예 따로 있습니다. 이런 기둥들을 ‘도랑주’라고 부릅니다. 도랑주. 이름도 왠지 귀엽지 않습니까?


도랑주는 원목을 껍질만 벗겨 거의 손을 안보고 기둥으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자연스런 멋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서 이 도랑주가 유행이었습니다.


이 도랑주의 간판스타가 바로 저 개심사 심검당의 제멋대로 기둥들입니다만, 더 유명한 스타 기둥이 있습니다. 화엄사 구층암의 기둥입니다. 울룩불룩 모과나무를 모양 그대로 써서 너무나 인상적인 기둥입니다.


제 사진이 없어 네이버 ‘송도전’님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바로 이 기둥이 도랑주의 최고봉, 화엄사 모과나무 기둥입니다. 모과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밑동이 기괴한 모양으로 주름이 생겨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그런 모과나무의 매력을 그대로 살린 이 기둥은 우리 전통건축 최고 인기 기둥이 되었습니다. 나무 표면의 요철은 물론 옹이 모양까지 그대로 살렸습니다. 저 기둥보시고 모과나무 기둥 집 하나 지었으면 하고 마음 먹으신 분이 수두룩하시죠.


저 기둥에 견주면 개심사 심검당 도랑주는 오히려 투박한 맛 뿐이어서 단순해 보일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개심사에서 꼭 보고 나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해우소, 곧 화장실입니다. 역시 개심사답게 화장실 기둥도 자유롭군요.




그리고 화장실입니다. 卍 자 모양으로 거의 얕은 파티션 정도로만 구획을 지어놓았습니다. 처음 이 화장실에 들른 분들은 무척이나 당황하시곤 합니다. 




사찰 화장실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선암사 해우소입니다만, 이 개심사 해우소도 가보실만 합니다.


잠깐 옆길로 빠지면, 선암사 해우소는 하도 유명해서 정호승 시인이 시까지 지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늦봄 개심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반가운 녀석 하나를 만났습니다. 중국 쓰촨성 지진이 나기 전에 미리 알고 도망갔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로 그 종족입니다.


두꺼비 한 마리가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데, 그 잘생긴 모습이 보기 좋아 한 장 찍었습니다.



묘하게도 저는 건축 답사를 다닐 때마다 두꺼비를 자주 보게 되더군요. 이번에 개심사에서 본 녀석은 그 중에서도 아주 실한 두꺼비였습니다.


저렇게 떡벌어진 두꺼비를 보면 왜 우리 조상들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란 말을 했는지 절로 알게 되지요. 통통하면서도 의젓한 것이 장군감 같거든요.


참, 두꺼비는 먹지는 못한답니다. 개구리만 드세요.


기둥, 알고 보면 더 재밌어요


말이 나온 김에 기둥이야기를 좀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배흘림 기둥이라고 하면 부석사 무량수전을 떠올리실텐데, 실은 중요한 정전 건물들에선 어렵잖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흘림 정도가 가장 센 것은 무량수전이 아니라 강릉객사문 기둥입니다.

(이 강릉객사는 객사 건물이 아니라 객사문이 국보입니다. 도갑사 해탈문과 함께 국보에 들어간 명품문 3개 중 하나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너무나 당연히 국보 1호 남대문입니다. 국보에서 건축물은 20여가지 뿐이며, 그 중에서도 문으로 국보로 지정된 것은 이 세 문뿐입니다.)


다시 기둥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 전통 건축 기둥은 단면이 동그라면 원주, 네모나면 방주라고 합니다. 6각형이면? 육모주입니다. 8각형이면 당연히 팔모주 되겠습니다. 육각정에는 육모기둥을 씁니다. 그러면 팔각정에는 당연히 팔모기둥을 쓰겠네, 싶지만 실제 그런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것이 원주인데 중간이 도톰하게 볼록한 것이 배흘림이고, 아래 부분이 위보다 넓은 기둥이 민흘림 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위치에 따라 이름도 다릅니다. 가장 가운데 있는 기둥은 뭐라고 할까요? 심주(心柱)라고 합니다. 간단하지요? 네 귀퉁이에 서있는 기둥은? 사천왕처럼 사방을 책임지니 사천주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집 지을 때 기둥에 관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기둥을 처음 세우는 날 ‘입주식’이란 행사를 꼭 벌였습니다. 이사가서 하는 입주식이 아닙니다. 종도리를 세우는 날은 상량식, 그리고 기둥 세우는 날은 입주식을 하는 것인데 한옥이 사라지면서 입주식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기둥을 세우는 것에도 여러가지 지켜야할 법칙이 있습니다. 우선 기둥 나무가 베어내기 전에 자라던 방향대로 세워야 합니다. 원래 나무의 방향대로 세워야 변형이 적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원래 방향을 맞추냐구요? 나이테를 보면 됩니다. 나이테는 남쪽이 간격이 넓고 북쪽은 좁거든요.


또한 나무 기둥은 거꾸로 세우면 안됩니다. 뿌리쪽이 위로 가게 세우면 안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위 아래는 어떻게 알까요? 나무 옹이 방향을 보면 압니다. 옹이는 위로 향해있습니다. 알고보면 뭐든지 간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