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강의실도 작품이다-국내 최초 온돌 강의실 2008/06/12

딸기21 2018. 9. 10. 15:45

강의실, 왜 다 똑같아야 하는가?-새로운 강의실의 탄생


북한산 빼어난 산자락에 자리잡은 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의 자랑인 디자인 분야 전문대학원인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그 2층에 5월20일 새로운 곳이 등장했다.




바로 이 강의실. 불투명 플라스틱 위벽 사이로 뽀얗게 비치는 불빛이 은은하다.

왼쪽 모서리는 유리로 처리해 안이 들여다보인다. 유리 위에는 강의실 이름도 따로 붙였다.




강의실 이름은 담담원.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정원이란 뜻이다. 강의실인데도 정원으로 이름붙인 것이 독특하고 새롭다.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갈 차례.



안으로 보이는 강의실 모습이 이미 온돌 좌식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얀 플라스틱 판은 문은 물론 강의실 안에서도 여닫을 수 있는 칸막이로 달려있다.




저 하얀 플라스틱벽은 양쪽으로 움직여 조별로 수업을 할 때는 막아 주고 한꺼번에 수업할 때는 옆으로 밀어만 주면 된다. 왼쪽 하얀 벽 뒤는 방석을 놔두는 공간이다.




저 맨 앞쪽 벽 역시 미닫이로 움직인다. 벽 뒤로 보이는 하얀 벽은 유성펜으로 쓰고 지우는 화이트 보드다.




이 강의실 ‘담담원’은 국내 대학 최초의 온돌 좌식 강의실이다. 이 강의실은 국민대 테크노전문대학원 교수들의 합작 디자인 작품이다.


원래 있던 강의실을 새로 꾸미는 과정에서 원장인 전승규 교수가 아주 새로운 강의실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김인철 교수가 우리 전통식 좌식 강의실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내놨고, 다른 교수들이 그것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담담원이란 이름 글꼴은 시각디자이너 변추석 교수가 디자인했고, 저 하얀 하이그로시 책상은 최경란 교수가 디자인했다. 최교수는 가구 디자인 계통에선 알아주는 유명 디자이너로 해외 유명 가구사가 그의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강의실 인테리어, 그러니까 실내 건축 디자인은 김개천 교수가 했다. 바로 이 분.



김개천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건축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김교수의 디자인 영역은 실내공간만이 아니다. 건물 건축에서도 국내 1급 건축가로 유명하다. 김 교수처럼 실외와 실내 건축 모두 잘하기로 인정받는 건축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동안인데 사진에선 동안이 잘 부각이 안됐다. 나이는 58년 개띠. 5학년에 접어들었다.


그럼, 저 강의실에서 하는 수업은 어떨까?


최경란 교수는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밀하고 가깝게 수업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예상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 것 같다는 것이다. 수업 밀도가 높아진다니 좋은 일이다. 조는 학생들에겐 큰 일 이겠지만, 분명 재미있는 수업 분위기일 듯하다.


구내식당, 휴게실도 중요한 건축이다


김 교수는 최근 주목할만한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디자이너 중에서도 디자인 감각이 좋아 최고급 주택부터 건물 로비, 주택전시관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특히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들을 탈바꿈 시키는 작업들이 눈길을 끈다.


이 온돌 강의실 직전 작품으로 상반기 발표한 ‘동화홀딩스’ 빌딩 구내 식당 겸 라운지 ‘해피 라운지’를 보자.




동화홀딩스는 목재회사인 대성목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고 각종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 직원용 식당이자 휴게실이 그의 신작이다. 이 공간 디자인에 들어간 재료는 거의 대부분 이 회사가 생산한 제품들이다. 그러니까 국산품으로 지은 것이다. 흔히 인테리어를 돈의 문제, 그러니까 돈을 들일수록 비례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데 김개천 교수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가 1급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유다.




김 교수의 디자인 특징은 극도로 절제한 아름다움이다. 재료와 색, 각종 장식을 최소화하면서도 심심하지 않게 꾸미는 것이 그의 장기다. 디자인 고수들의 게임은 사실 누가 과하지 않으면서 세련되느냐다. 곧 누가 디자인을 잘했느냐가 아니라 더 적게 했느냐, 덜하면서 잘했느냐의 승부다.


김 교수는 표현을 최소화하면서도 철학적 느낌이 강한 디자인을 지향해왔다. 그런데, 요즘 작품을 보니 그는 새롭게 진화하고 있었다. 그간 잘 쓰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와 색을 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선적인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의 이 식당은 이전 작품인 ‘나무공간’과 맥이 이어지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공간은 역시 동화홀딩스의 자회사인 대성목재 인천공장의 직원 휴게실이다. 디자이너의 손길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 과연 여기가 공장 휴게실 맞나 싶을 정도다.  


사진=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가운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휴게실에는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다. 원래 휴게실에는 저 창이 없었다고 한다. 저리 멋진 바다가 있는데 왜 그 전에는 창을 내지 않았을까? 오히려 궁금할 정도다. 그러나 그게 우리 주거환경, 근무환경의 현실이다. 조금의 건축적 배려만 더해져도 공간이 바뀌는데 그 필요성을 느낄 틈도 여유도 없다. 


건축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이다. 건축에 있어서 건축가는 권력자가 된다. 건축가가 창을 하나 신경 써 뚫으면 지겨웠던 공간도 있고 싶은 공간이 되고, 건축가가 계단 하나를 바보같이 신경 안쓰고 만들면 그 건물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쓸 데 없이 고생하게 된다. 그 차이는 사소하지만 근본적인 것이다. 


결국 건축이란 멋지고 폼나는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조용히 배려해주는 것에 가깝다. 화려한 공간 미학이 아니라 유쾌하고 품위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건축가의 임무가 아닐까. 단, 그 임무에는 조건이 붙는다. ‘적은 돈으로’라는. 돈만 많으면 해결되는 것이 건축이라면 왜 건축가가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