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오우삼 평생의 꿈 <적벽> 현지 발표회를 가다 2007/05/13

딸기21 2018. 6. 11. 10:49

'꿈의 영화'. 

영화감독들에겐 언젠가는 꼭 찍고 싶은 영화, 그런 ‘꿈의 영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쉽게 ‘꿈의 영화’를 찍지는 못합니다. 능력을 검증받은, 영화를 ‘망해 먹지 않는 능력’을 계속해서 보여준 탁월한 감독들에게만 그 기회가 돌아갑니다. 영화란 ‘남의 돈으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피터 잭슨에게 꿈의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었고, 세르지오 레오네에게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습니다. 피터 잭슨처럼 감독 생활을 그리 오래 하지 않고도 그런 영화를 찍게 되면 행복한 일이겠지만 왠만한 거장들도 꿈의 영화를 찍을 기회는 좀처럼 잡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조차 늘그막에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 그리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액션영화 감독으로 군림해온
 오우삼(이하 우위썬, 吳宇森, 61)의 ‘꿈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요? 



5월10일, 중국 베이징 웨스틴 호텔에서 발표회를 연 우위썬의 새 영화
 <적벽대전>이 바로 우위썬이 ‘언젠가 찍고 싶어 했던’ 영화입니다. 원래 제목은 <적벽(赤壁)>(영어명 <Red Cliff)>인데, 국내 배급업체쪽은 한국용 제목을 <적벽대전>으로 바꿔 정했습니다. 

우위썬이 이 영화를 구상했던 것은 18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고전 가운데 가장 인기높은 <삼국지>, 그 중에서도 전투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벽대전’을 영화로 찍어보고 싶은 것은 아마 그가 아니더라도 아시아 감독이라면 한번쯤 꿈꿔볼 만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액션영화의 달인인 우위썬에게는 더욱 그러했을테지요.
 

그러나 꿈은 좀처럼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웅대한 전투장면을 담아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미약했고, 무엇보다도 막대한 제작비 때문에 감독 혼자의 아이디어로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위썬은 18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평생 갈망하던 영화 <적벽대전>을 찍게 됩니다. 이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어질 정도로 그래픽 기술이 발달했고, 그를 믿는 영화업체들이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준 덕분이었습니댜. 한국의 2위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를 비롯해 일본의 에이벡스, 대만의 시엠시 등 동아시아 3개국 영화자본이 대는 제작비는 무려 7000만 달러. 700억원짜리 영화인 겁니다. 역대 아시아 영화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입니다. 본고장 중국은? 굳이 투자를 하진 않았지만 영화 <적벽대전>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개봉하므로 촬영에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적벽대전>을 ‘베이징 올림픽 공식 영화’처럼 밀어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10일 <적벽대전> 발표회에는 우위썬을 비롯 중국 영화계의 거물인 테렌스창 등이 참석했고, 출연진들과 투자사 간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중국에서만 무려 80여개 언론사 기자들이 왔고, 저를 비롯해 각구에서 온 기자수만 2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감독이 중화권 최고 인기감독인 우위썬이고, 출연진도 글로벌 시장을 노려 중화권 최고 배우들로 모은 영화이니 이정도 관심은 당연할 정도입니다. 

뜨거운 박수속에서 입장하는 우위썬을 육안으로 보는 순간, 저는 감회에 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에 미쳐살던 학생 시절, 그 시절 오우삼은 단단하고 야무진 인상의 날카로운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처음 본 지 20여년만에 직접 눈으로 만난 그의 모습은 세월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날씬하던 그의 몸은 거의 ‘통통한’ 몸매로 바뀌었고, 머리숱도 더 적어졌습니다. 그가 출세작 <영웅본색>을 찍었던 것이 1986년, 그리고 20년이 지나 그도 어느새 환갑을 넘겼군요.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눈매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거의 20년을 기다렸다는 감회 때문인지 이날 우위썬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지만,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번 영화를 설명했습니다. 
 


먼저 그는 출연진에 감사한다는 말로 운을 뗐습니다. “영화를 30년 찍었지만, 이번처럼 완벽한 출연진으로 꿈을 이룬 것은 처음입니다. 한마디로 ‘꿈의 조합’(夢幻組合=드림팀)입니다.” 이어 그는 주요 출연진을 한 명 한 명 무대위로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스타들이 줄지어 무대에 올랐어도 이날 발표회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위썬 감독이었습니다. 모든 질문이며 스포트라이트가 우위썬 한 사람에게 집중됐습니다. 심지어 량차오웨이(양조위)나 진청우(금성무)도 이날은 조연 중의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적벽>이란 영화가 오위썬 필생의 숙원이고, 그래서 완성되면 단순히 `directed by John Woo'가 아니라 `film by John Woo'가 되어야 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날 등장한 배우들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멀리서 앉은채로 찍어 화질 떨어지는 점 양해해주시길. 

먼저 주유 역할을 맡은
 량차오웨이(양조위)입니다. 량차오웨이는 발표회 내내 무척이나 조용하고 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뒤에 다시 언급합니다만 체력이 약해 굉장히 신경쓴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영화기자들 사이에선 항상 이렇게 힘없는 모습으로 인터뷰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량차오웨이의 왼쪽 배우는 조조 역할을 맡은 중국 배우 장펑의(장풍의·43)입니다. 어느새 중년이 된(사실 그 전에도 중후하긴 했지요) 연기파 배우입니다. 영화팬들이 아닌 분들께는 낯이 많이 익지는 않은 배우입니다만 <패왕별희>에서 시투역을 했던 그 사람입니다. 


다음은 중국 역사 최고 인기 캐릭터 제갈량, 곧 제갈공명 역의 진청우(금성무·34)입니다. 



진청우에겐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영화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의아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화계에서는 ‘진청우가 한국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그가 일본계인 것도 그런 의혹을 부추기고 있지요. 진청우는 여전히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외모를 한껏 뽐내는 듯했습니다. 


참, 진청우의 옆에 앉은 저 배우, 생각나십니까? <적벽대전>에서는 오나라의 지도자 손권 역할을 맡는 `장천'(張震, 31)입니다.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숨>에도 출연했습니다. <와호장룡>에서 호 역으로 나와 장쯔이 상대역을 했던 배웁니다. 연기파로 성장하는 중이고, 국제적 지명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소교역을 맡은 대만의 인기모델 린즈링(임지령, 33)도 관심을 많이 모았습니다. 중국권에서 최고 인기인데, 이 영화로 배우로 데뷔합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캐스팅은 홍콩과 대만 톱스타들로 짜여 있습니다. 처음부터 동아시아권은 물론 세계 시장을 향한 블록버스터기 때문에 글로벌 지명도가 있는 량차오웨이와 진청우를 동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배우들은 조연급에서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노래 <눈이 큰 아이>가 떠오르는 자오웨이. 손권의 여동생으로 유비에게 시집가는 손상향 역을 맡았다.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역은 미녀 배우 자오웨이(조미, 31)가 맡았습니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들을 거느린 드라마 <황제의 딸>의 그 조미입니다. 영화팬들에게는 이런 설명보다는 역시 주성치 영화 “<소림축구>에서 만두집 아가씨”라고 말하는게 빠르겠지요. 일명 ‘중국의 김희선’으로 불립니다. 


자오웨이가 이 역을 맡는 다는 것을 현장에서 들으면서 저는 혼자서 괜히 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손권의 여동생이라면, 유비에게 시집가서 유비 부인이 된 손부인입니다. 그런데 이 손부인은 여성임에도 당차고 무술에 능해 시녀들을 무술 수업을 시켜 군대처럼 이끌고 다니던 개성 강한 여장부였습니다. 제가 웃음 지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지 가운데 하나인 고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에서 이 손부인을 바로 저 자오웨이처럼 `유달리 눈이 큰 캐릭터'로 설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고우영 화백의 만화를 보았을리도 없는데 우연의 일치라는 점에서 참 신기했습니다. 고 화백은 극중에서 손부인을 '생고무 체질의 탱탱녀'로 다소 마초적인 관점에서 글래머로 묘사했는데,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비록 `꿈의 영화'를 찍게 되었지만 이 <적벽대전>을 우위썬이 준비하는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삼국지>라면 떠올리는 주인공 3형제인 유비-관우-장비의 비중이 낮고, 중국 최고의 영웅 캐릭터인 제갈공명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위썬이 꼽은 주인공은 바로 오나라의 장수 주유입니다. 그리고 이 주유 역에  처음 그가 캐스팅하려고 했던 배우는 우위썬과는 <영웅본색> 등 여러 영화서 각별한 인연을 맺은 그의 페르소나 저우룬파(주윤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저우룬파는 이 영화에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소문들이 돌았으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우룬파 대신 그가 찾은 주유 역 배우가 량차오웨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량차오웨이가 이 역할을 맡은 것에도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애초 량차오웨이는 우위썬이 제갈공명 역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 역할을 고사했고, 그래서 출연하지 않을 영화였는데 저우룬파가 빠지면서 다시 그가 주유 역할을 맡아 출연하게 된 겁니다.그리고 주유 역할을 맡고서는 중간에 한차례 포기하려고 하는 고비를 넘겼습니다. 체력적 한계에 홍콩 사람이다보니 중국 표준어인 베이징 지역의 `보통화' 발음이 안좋아 그만두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위썬과 일한다는 것이 주는 배우로서의 흥분,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란 점에서 결국 배역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고 이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한국 배우인 정우성과 일본의 와타나베 겐 등이 기용된다는 이야기가 무성했으나 결국 모두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좌우지간 캐스팅 과정에서 이런 고생을 겪어서인지 우위썬은 이날 발표회 내내 출연진을 추켜세웠습니다. 


<적벽>은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만큼 스케일도 큽니다. 나무로 100미터가 넘은 전투선을 실제로 만들어 띄우며, 더 크게는 영화 1편과 2편을 동시에 찍습니다. 그래서 내년 여름과 겨울에 나눠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영화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막대한 돈을 들이는 영화들이 모험에 가깝게 후속편까지 미리 찍은 경우는 3편을 한꺼번에 찍은 <반지의 제왕> 말고도 <슈퍼맨>이 있습니다. <슈퍼맨>은 1편과 2편을 미리 한꺼번에 찍었지요. 


우위썬이 그리는 <삼국지>는 어떤 것일까요? 


이날 우위썬은 “역사가 아니라 느낌을 그릴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이다, 영화의 주제는 용기와 단결이 될 것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삼국지에서 그리듯 주유와 제갈량을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경쟁하는 필생의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걸출한 영웅끼리 이해하고 돕는 영화가 될 것을 암시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왼쪽부터 장펑의, 량차오웨이, 우위썬, 진청우, 장천

왼쪽부터 진청우, 장천, 자오웨이

"기자야, 팬이야?"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디카로 스타들을 담는 중국 기자들


마지막으로 출연진과 감독이 모두 일어서 인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적벽대전>은 내년 관객들을 찾아갑니다. 

과연 쏟아지는 관심처럼 좋은 흥행 성적을 낼까요?

<삼국지>라면 사죽을 못쓰는 한국과 일본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한번 점쳐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