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극장의 세계2-극장에 숨어있는 문화코드 읽기1 2007/03/14

딸기21 2018. 6. 6. 20:03

우리나라든, 아니면 외국이든 우리가 여행을 떠났을 때 보러가는 곳들은 거의 예외없이 건축물들입니다. 동서양 막론하고 그나라 궁전들, 그리고 절이나 성당같은 종교 건축물, 또는 각종 기념건축물들을 보게 됩니다. 결국 여행이란 건축물과 만나는 일일 수도 있지요. 이는 건축이란 것이 나라별 정체성, 그리고 그 시대적 특성, 그리고 당대 문화의 흐름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라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여러가지 건축물들 가운데에서도 각 시대별 특징, 또는 정치적 지향성, 그리고 문화적 특징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건물은 어떤 것일까요? 시대별 정치와 문화를 가장 즉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건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극장입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처음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됐고, 의도대로 오스트레일리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현대건축물로는 드물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됐다.



동양권에서는 조금 다릅니다만 특히나 서양 건축에서 이 극장이란 것은 언제나 그 시대의 정치적 특성과 문화적 흐름이 담기는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양식 건축관이 지배하는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극장을 보면 그 나라의 특성, 그리고 정치적 경향, 문화적 지향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극장이 지어진 시대 그 지역의 사회를 압축해 놓은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입니다.

정말이냐구요? 그러면 각 나라별로 가장 중심지에 뭐가 있는지 보시면 알게 됩니다. 극장은 항상 중심지에 지어집니다. 그리고 항상 정권자가 국가 사업으로 짓습니다. 이는 곧 극장이 문화의 장이지만 동시에 시대적 정치적 오브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고,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했을 때 지은 곳이 서울시민회관이었습니다. 이 시민회관이 불이 나 다 타버린 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가장 공을 들여 가장 화려하게 지은 게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입니다. 


이는 전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혁명후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가 파리 정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목해 중심부에 세운 것이 파리오페라극장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어떤가요. 각 지자체에서 가장 중심부에 시청, 도청 말고 또 뭐가 있나요? 문화회관, 시민회관이란 이름의 극장들이 그 옆에 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공 당시 국책사업이었다.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비의 갓모양으로 꾸몄는데 미학적 평가는 엇갈린다. 바로 옆 콘서트 홀은 부채 모먕이다.



때로는 해당 국가나 지자체가 자국 이미지를 드높이고 자기 국가의 상징물로 세우고자 극장을 짓기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정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물로 세운 것이 바로 시드니오페라하우스입니다.

때로는 시민들이 직접 극장을 도시 정체성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2차대전으로 완벽하게 폐허가 된 베를린 시민들이 가장 먼저 새로 지으려고 했던 건물은? 바로 베를린의 자랑이었던 베를린필하모니의 콘서트홀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건물은 베를린의 상징입니다.

서양건축사에서 극장은 중요한 갈래입니다. 그 시대별 특징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조나 취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왕궁이나 관공서 등의 건물이 디자인 측면에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반면, 극장은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혁신적이거나 추상적인 디자인을 ‘뻥 때릴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극장이란 어차피 ‘즐거움의 신전’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언제나 그 시대의 군중들에게 무언가 볼거리를 제시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폼나는 극장, 공연장을 짓자고 나서니 극장의 생김새는 절로 시대의 거울이 되게 됩니다. 건축 양식 사조로 보면 더욱 이런 경향성은 강해집니다.

그런데 극장이 정말 ‘정치’까지 담아내냐구요? 시대적 정치 시스템은 물론 지향점도 담아냅니다. 자, 여기 두개의 극장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위의 두 사진은 각각 서양 문화의 원류라는 그리스와 로마를 상징하는 극장입니다. 앞의 것은 그리스의 에피다우로스 극장, 뒤는 로마의 콜로세움이지요.

그리스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양 문화의 원조라고 합니다만 이 극장이런 것에서도 원조입니다. 서양 극장의 오리지날이 이 그리스에서 기원전 5세기께 생긴 원형극장, 곧 ‘앰피시어터’란 겁니다. 이런 극장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그 모습이 보존되어 전해지는 극장이 위에 보신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이 되겠습니다. 기원전 350년 쯤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콜로세움이 경기장이지 무슨 극장이냐구요? 콜로세움은 사실 일반명사입니다. 원형경기장이란 뜻이죠. 그런데 지금 보신 로마의 저 콜로세움이 워낙 유명해 고유명사처럼 된 겁니다. 저 로마의 콜로세움의 공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입니다. 로마에서 극장은 동시에 경기장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두 극장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 극장은 그리스가 자국인들에겐 정치적으로 민주정이었음을 제한적으로나마 보여줍니다. 객석에는 그 구별이 없습니다.

반면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로마는 경기장 좌석도 철저하게 나눴습니다. 
콜로세움은 객석을 모두 다섯단계로 분리해 만들었습니다. 콜로새움 객석에서 당시 명판이 발견되었는데, 그 명판을 보면 로마 사회의 엄격한 계급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경기장 벽과 가장 가까운 몇 줄은 원로원 의원과 수행원들의 자리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사와 나머지 계층들의 자리가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가장 나쁜 다섯 번째 좌석은? 안타깝게도 여자들 자리였다고 합니다.

저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위에서 보시면 그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위에서본 에피다우로스 극장. 전체 정원 1만4000명으로 추정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극장이 고대에 지었음에도 음향효과가 완벽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무대 앞 합창대석에서 속삭이듯 작게 소리를 내도 가장 높은 관중석에서도 잘들린다고 합니다. 낮은 쪽 좌석보다 높은 쪽 좌석을 더 가파르게 배치해 전체적으로 사발 모양이 되게 했기 때문이고, 좌석 밑에 도기 항아리 모양의 공명기를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이 그리스식 극장은 이후 서양 극장의 모델이 되었고, 또한 독일을 대표하는 극장인 작곡가 바그너의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독일 극장은 그리스극장처럼 특히 민주적 평등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뒷부분 베를린필하모니콘서트홀을 다룰 때 다시 한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19세기 이후 생긴 수많은 원형극장들과 20세기 이후 오늘날 세계 각국의 야외노천극장들이 모두 이 그리스 극장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대학들 노천극장들 보시면 됩니다. 

콜로세움에서 실제 경기를 한 것은 무려 50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사라지고 맙니다. 서양이 ‘중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세는 극장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암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모여 합일하는 축제의 장, 연극의 무대로서의 극장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극장이란 요소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오랫동안 서양 건축에서 사라졌던 극장이 부활한 것은?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부활시키자던 시대, 그러니까 ‘르네상스’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지는 물론 이탈리아죠. 극장이 처음 부활한 곳도 바로 이탈리아였습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팔라디오가 비첸차에 만든(정확하게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완성은 뒷 건축가가 했지만)
 테아트로 올림피코입니다. ‘올림픽 극장’이란 뜻입니다. 


이 올림픽 극장은 ‘중세 이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며, 고대 극장을 재현한 극장입니다. 서양 중심 사고로 보면 ‘세계 최초의 실내 극장’입니다. 건축학자들에겐 ‘팔라디오 최후의 작품’이란 점도 중요할겁니다.

팔라디오란 사람은 일반인들에겐 그닥 유명하지 않지만 건축에서는 억수로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수많은 건축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딴 건축사조(팔라디아니즘)을 가지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지요. 전공자도 아닌 우리야 고전건축을 완성한 사람, 뭐 그정도로 알아둡시다. 좌우지간 이렇게 생겼습니다. 자 보시죠. 건축학자들은 ‘유토피아적 이상’을 담은 건축이다, 라고들 합니다. 




르네상스와 함께 부활한 서양 극장 건축은 바로크 시대를 맞아 활짝 피어납니다. 세속권력을 상징하는 왕들이 교황과 경쟁하면서 극장을 지었고, 이 극장에서 대관식이나 왕가의 결혼식 같은 화려한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이후 19세기에 접어들어 극장은 음악적으로도 비약적 발전을 합니다. 볼거리로서의 극장을 넘어서 음향학적 측면을 중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그리스극장을 본받았다는 바이로이트축제극장입니다. 이 극장은 작곡가 바그너가 직접 설계한 극장입니다. 잔향 개념을 도입한 점에서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이 19세기 시기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는 바로 부르주아들의 등장, 시민계급의 형성 같은 것이라고 배우셨을 겁니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이 바로 정치적 격변인 ‘혁명’으로 지고샜던 나라 프랑스의 상징 파리오페라극장입니다.

>파리를 여행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파리는 가운데 큰 대로가 중심이고, 지역 중심부에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길이 납니다. 마치 자전거 바퀴살 가운데 축에서 퍼져나가듯 하지요. 그 가운데에 개선문 같은 화끈한 기념 건축물들이 놓였습니다. 이 파리오페라극장도 이런 방사상 중심에 있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짓기로 한 사람은 나폴레옹3세가 임명한 도시장관 오스망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파리 시내를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만든 양반입니다. 파리 전체 큰 그림을 그린 뒤 핵심 건물로 오페라극장을 지었습니다. 극장이 정권의 퍼포먼스가 되는 점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극장을 지을 때 건축가들 공개 경쟁을 했습니다. 우승자는 뜻밖에도 서른세살 완전 무명 초짜 신인 가르니에란 사람이었습니다. 가르니에는 이 극장을 당시 고전주의를 따르면서도 새로운 바로크, 곧 신바로크주의로 짓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을 ‘가르니에궁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자, 이 건물입니다.




이 극장 보시니 어떻습니까? 아름답기는 한데 좀 유난스럽지 않으신가요? 너무 꾸며대서 촌스러운 측면도 있어 보이죠.

그렇습니다. 당시 19세기 시민계층을 대표하는 장소가 바로 오페라극장이었기 때문에 당시 부르주아들의 취향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졸부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합니다. 불과 100여년전 건물인데 하도 치장해서 절대왕정 시대 건물처럼 보일 지경이지요. 뭐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고 그 시대 취향이 저랬구나 하면 됩니다.

반면 이 건물보다 불과 1년 뒤에 지은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은 훨씬 단순합니다. 장식도 없고, 객석도 그리스 극장처럼 단일하게 열을 지었을 뿐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그런 극장이 더 민주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 같은데, 이후 대부분의 유럽 극장들은 오히려 이 파리오페라극장을 모델로 삼아 지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극장이 새로운 문학작품을 낳기도 했습니다. 가스통 르루란 프랑스 작가가 이 극장을 소재로 쓴 소설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이 소설을 영국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만들었지요.

이처럼 극장이 그 시대 건축은 물론 사회, 정치까지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 경향은 20세기 들어 계속 이어지면서 더욱 정교해집니다. 20세기 극장들과 우리나라 극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