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워쇼스키는 왜 <마하 고고>를 선택했나?-가수 비가 출연하는 <스피드레이서> 소식을 보며 2007/05/16

딸기21 2018. 6. 11. 10:53

“도대체 <마하 고고>가 무슨 애니메이션이냐?”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가 새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 가수 `비'를 캐스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스피드 레이서>의 원작인 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워쇼스키 형제의 신작에 비가 출연하는 것도 놀랍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원작인 <마하 고고>의 놀라운 생명력이 놀랍습니다. 



<마하 고고>는 국내에서도 무척 인기 높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1960년대 후반~70년대 일본 만화산업이 본격적으로 산업화, 고도화되면서 낳은 최고의 히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동양방송(TBC)에서 <달려라 번개호>란 이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970년대 국내 방송국들이 수입해 틀었던 일본 애니메이션들 가운데 <마징가Z>와 함께 남자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만화였습니다. 지난 97년 30년 만에 다시 만든 버전 <마하 고고고>도 국내에서 방영되었습니다. 


1970년대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기업들이 애니메이션과 완구를 본격적으로 결합시킨 시대였습니다. 이 <마하 고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번개호’ 방송과 함께 프라모델도 바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가장 발빠르게 일본의 최신 프라모델을 들여온 ‘아카데미과학’에서 선보였습니다. 



<마하 고고>가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번개호’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번개호는 제트 추진장치로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미사일을 발사하고, 회전 기계톱날이 나와 숲속에 들어가도 나무들을 마구 잘라대며 질주할 수 있는 등 정말 만화니까 가능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호를 모는 주인공 역시 돌기둥을 주먹으로 치면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수준의 괴력을 지녔는데, 당시 초등학생인 제가 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지요. 


이 오래된 애니메이션이 지금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예전을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호기심도 생깁니다. 왜 할리우드의 거물 워쇼스키 형제는 이 30년 넘은 옛날 애니메이션을, 그것도 미국것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금 다시 만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마하 고고>란 애니메이션이 갖는 의미를 들여다보면 알게 됩니다. <마하 고고>는 장르로 볼 때 일본만화사에서 자동차 경주 애니메이션의 효시격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으로 보면 또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마하 고고>는 미국인을 사로잡은 첫번째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만화왕국으로 떠오르는 신호탄이 된 애니메이션이 바로 <마하 고고>였던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70년대 중반 미국 어린이들도 이 <마하 고고>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지금 30대 중반~40대 초중반이신 분들은 <달려라 번개호>의 주제가가 기억나실 겁니다. “정의의 깃발 들고 세계의 끝까지, 바람을 헤치고 씽씽 달린다, 내일의 희망 안고 번개호는 간다~”라는 노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주제가가 미국에서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노래의 절정부가 “마하 레이서, 마하 레이서, 마하 레이서 고 고~”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치 <마징가Z>를 일본에서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 일본 주제가에 가사만 자국어로 바꿔 세계 각국 <마징가Z> 주제가가 멜로디는 모두 같았던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70년대 미국 어린이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이 만화에 빠져있었는데, 그 안에 물론 워쇼스키 형제도 있었던 겁니다. 각각 65년생, 67년생으로 40대 초반인 워쇼스키 형제는 초등학생 때 이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에 속합니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일본에서 수입한 것인줄은 모르고 모두 국산으로 알았던 것처럼, 미국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로 이 애니메이션이 일본 것이란건 몰랐다고 합니다. 그 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미국 어린이들 가운데 일부가 80년대들어 일본 애니메이션, 곧 ‘아니메’의 마니아가 됩니다. 어린 시절 즐겨봤던 애니메이션들이 일본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디즈니나 루니 튠 말고도 다른 애니메이션이 있구나', `일본이란 나라의 애니메이션이 대단하구나' 느끼면서 점점 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미국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일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첫번째 작품인 <마하 고고>는 그래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 미국 아니메 팬 사회에서는 미국과는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해다가 호텔방을 빌려서 모여서 보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 대본을 번역해서 공유하는 식이었습니다. 국내에서 90년대 피시통신 중심으로 일본어를 아는 이들이 일본 아니메를 번역해 피시통신에 대본을 올려놓으면 그 대본을 출력해 손에 들고 비디오로 일본 아니메를 보던 것과 아주 똑같은 양상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미국의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 1세대가 낳은 영웅이 바로 워쇼스키 형제입니다. 워쇼스키 형제는 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키우고 구상한 상상력을 영화로 구현해왔습니다. 그들 상상력의 원천 속 깊숙한 곳에는 어린 시절 이 형제를 사로잡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자리잡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표작인 <매트릭스>가 <공각기동대>에서 나왔던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워쇼스키 형제가 이번에 <마하 고고>를 들고 나왔습니다. 외신을 보니 3억달러짜리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역대 최고였던 이번 <스파이더맨 3> 수준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의문은 떠오릅니다. 왜 <매트릭스>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지 않은 것일까? 그들 형제의 상상력이 이제 바닥난 것인가? 과연 <마하 고고>가 3억달러짜리가 될만한 스토리인가? 그렇다면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이게 된다고 이미 판단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워쇼스키가 만드는 <마하 고고>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나 문화부 기자인 제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앞서 말씀드렸듯 역시 ‘비’를 캐스팅한 것보다는 ‘마하 고고’를 고른 점입니다. 지난 세기 한 일본 만화가가 만들어낸 작품이 끊임없는 생명력을 부여받아 세계 최강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점, 그래서 다시 세계 영화팬들에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게 될 것을 보면서 문화와 산업에 대해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훌륭한 상상력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리고 그 상상력이 마치 유전되듯 세대를 넘어 전달되며 사람들을 흥분하고 즐겁게 만드는가를 말이지요. 


동시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영상산업에 미치는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것도 40년전부터 뿌려놓은 씨앗이 지금 다시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면 부러운 노릇입니다. 


사실 <마하 고고>는, 모든 성공한 문화상품이 그렇듯, 참 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뻔한 것을 잘 버무려 내는 힘은 위대합니다. 늘 비슷비슷한 할리우드 영화가 왜 독창적이고 예술적이라고 평론가들이 떠들어대는 그런 작품들보다 더 사랑받으며, 세계적으로 똑같은 성공을 거둬내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뻔하지만 좋게 보면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런 좋은 상상력을 보여주는 문화상품은 국경도 뛰어넘고 세대도 뛰어넘으며 장르까지 가로지르며 늘 부활한다는 것을 <마하 고고>는 보여줍니다. 


이제 그런 성공사례가 이제 일본이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나길 기대해봅니다. <마하 고고>도 40년 걸렸으니, 천천히 조급함을 버리고 희망을 가져볼 일입니다. 


한국 만화가들, 힘내세요. 한국 애니메이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