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악기 중의 악기, 그러나 처절한 구도자 같은 악기 2007/07/10

딸기21 2018. 6. 11. 15:06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바순입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악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전 ‘오보에’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악기의 왕’이라고까지 주장할 순 없지만 분명 오보에는 ‘악기 중의 악기’, 그리고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오보에가 연주자에게 ‘가장 고통스런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통해 소리를 내야 하는 악기, 연주하기 너무 수고로운 악기, 그런 번거로움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뽑아내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입니다.


관악기, 특히 목관악기라고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악기는 플루트일겁니다. 광고 등에서 워낙 분위기있는 악기로 자주 등장하다보니 많은 분들이 환상을 품고 있는 악기입니다. 그러나, 목관악기 중의 목관악기, 앞서 말했듯 악기 중의 악기는 오보에랍니다.


무슨 독단이냐구요? 여기서 ‘악기 중의 악기’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중간 지점’을 말한다고 핑계를 대야겠습니다. 악기들의 한 가운데에 오보에가 있습니다.


연주회장에 가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 되실겁니다. 공연 직전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릅니다. 사람들의 가벼운 박수가 터지고, 음을 맞추는 ‘튜닝’이 시작됩니다. 이 때 기준음을 내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입니다. 오보에가 먼저 ‘삐이~’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악기들이 그 음에 맞춰 ‘깨갱깽’ ‘뿡뿡‘ ’징징‘ 소리를 냅니다. 잠시 그런 혼란 속의 정돈이 지나고, 드디어 지휘자가 나오면 연주가 시작됩니다.


오보에가 기준음을 맡게 된 것은 오보에 소리가 주변 악기 소리들에 섞이지 않고 도드라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보에는 부채처럼 펼쳐지는 오케스트라의 정 가운데에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오보에는 ‘악기 中의 악기‘인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음을 내기 때문이 아니라 오보에는 그 고통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물론 오보에는 그 소리 자체가 워낙 아름다운 악기입니다. 가장 유명한 오보에 곡으로는 단연 영화 <미션>의 주제 음악인 <가브리엘스 오보에>가 꼽힙니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세대들인 지금의 30대~40대 오보에 전공자 중에는 이 노래에 반해 오보에를 전공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곡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오보에 소리는 하지만 연주자들에게는 실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낼 수 있는 고난의 결과물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악기에는 없는 오보에만의 특성이자 숙명 때문입니다. 오보에의 핵심인 ‘리드’가 그 주범입니다.


오보에는 리드 악기입니다. 입으로 부는 관악기 가운데에는  얇은 갈대 부속인 ‘리드’를 부착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있습니다. 오보에, 바순, 클라리넷 등입니다. 이 리드를 불 때 생기는 미세한 떨림으로 소리를 냅니다. 클라리넷은 리드가 1장인 싱글리드 악기이고, 바순과 오보에는 리드가 2장인 더블리드 악기입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서도 오보에가 가장 리드가 작습니다. 작아서 더 세심하게 손질해야 하고, 리드의 수명도 짧습니다.


이 리드는 무척이나 귀찮고 세밀한 손작업 공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오보에 연주자들은 연주 연습하는 시간 못잖게 이 리드를 깎는 데 시간을 들입니다. 물론, 남이 손질한 리드를 사서 쓸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나 학부생 수준의 전공자들 가운데에는 이 리드깎는 기술이 좋지 못할 경우 선생님들이 깎은 리드를 사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리드를 깎는 기술도 몇 년은 연습해야 되는 아주 어려운 기술입니다. 간혹 기계로도 깎는데 손으로 깎는 것에는 못미칩니다. 


게다가 연주를 한번 하려면 리드를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를 준비해 그 중 가장 소리가 잘 나는 것을 골라 씁니다. 길이와 두께가 조금만 차이가 나도 음의 밸런스와 색깔이 바뀌기 때문에 무척이나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오보에 연주자들은 이 리드를 깎고, 실패하면 또 새로 깎기를 평생 반복합니다. 그렇게 귀찮고 까다로운 악기가 오보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깎을까요? 실제 오보이스트가 리드를 손질하는 과정을 이번 기회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이게 기본적으로 리드를 깎을 때 책상 모습입니다. 여러가지 ‘연장’들이 보이지요? 다 꼭 필요한 것들이랍니다.



이것이 바로 리드라는 녀석입니다. 말 그대로 ‘갈대’입니다. 이 리드는 전량 수입합니다. 서양 악기이다 보니 서양에서만 나는 갈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리드로 모양을 잡기 전 상태로, 흔히 ‘케인’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두꺼운 이 갈대 속을 파내는 것이 리드 작업의 시작입니다. 연주자가 직접 파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기계로 속을 파낸 상태의 것을 사다가 다듬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간 것인데, 아주 얇아졌습니다.



이 얇게 다듬은 리드를 이제 모양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자른 뒤, 절반으로 접어야 합니다.



그리고 접은 리드를 이제 튜브라는 곳에 붙입니다.



그리고 아래쪽을 실로 꽁꽁 묶은 뒤 다시 철사로 감아서 확실하게 고정시킵니다.



그 다음에는 길이가 맞는지 재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리드를 한꺼번에 수십개씩 준비합니다. 묶은 뒤 잘 말리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잘못 말리면 탄력에 차이가 생겨 못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렇게 묶은 다음에도 10개 중 몇 개만 건지게 됩니다.  



이렇게 튜브에 리드를 달면 접힌 부분이 끝이 됩니다. 이 부분을 잘라 둘로 나눈 뒤 끝부분을 종잇장보다 얇게 칼로 다듬는 것이 리드 깎기의 핵심입니다. 리드 깎는 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칼이 바로 이것입니다. 실제로 보면 무척 날카롭습니다.



이 칼로 끝부분이 얇아지게 손질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해서 두 개의 얇은 막이 거의 투명할 정도가 된 리드가 됩니다.



그 다음, 이 끝을 기계에 올려서 두께를 다시 잽니다.



두께가 맞으면 마지막, 도마에 올려놓고 끝부분을 일직선으로 자릅니다. 아주 작은 미니도마가 귀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깎는 중간중간 습기를 공급해주어야 갈라지지 않기 때문에 물통이 필요합니다. 물통에 리드를 적셔가며 깎지요.



이 도마작업을 마치면 드디어 리드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생겼죠. 이렇게 최종적으로 다듬은 것이 진짜 ‘리드’랍니다. 사진에서는 한번에 다 이뤄지는 것처럼 소개했는데, 사실은 중간중간 몇차례 반복하며 다듬고, 말렸다가 깎고 또 말리는 것을 여러차례 반복합니다. 마르면서 변하는데 이 변화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깎지 않은 것과 비교해보시라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래쪽이 깎은 것입니다. 



자, 이 리드를 이제 드디어 오보에에 꽂아야 합니다. 오보에가 드디어 등장합니다.



오보에는 보관할 때에는 3개 부분으로 나뉘어서 보관하고, 연주할 때는 하나로 연결합니다. 제법 큽니다. 이건 뭐냐구요?



오보에는 안전을 위해 카메라 삼각대 비슷한 거치대에 꽂아 놓습니다.



이 오보에의 끝에 꽂으면 바로 이런 모양이 됩니다. 이제 정말 완성!


이렇게 힘들게 만든 리드는 그 수명이 일회용입니다. 아주 작은 흠집이 나도 소리가 바뀌기 때문에 오보에 연주자들은 애지중지합니다. 이런 리드 하나로는 보통 연주 한 번 정도를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신 적이 있나요? 드라마도 소개되어 국내에서도 팬들이 아주 많은데, 이 만화는 거의 몇 안되는 ‘클래식 음악만화’입니다. 재미도 있고 읽고나면 클래식에 대한 교양도 생기는 아주 효과적인 만화입니다. 아주 내용이 충실해서 연주자들의 세계와 음악 전공자들의 애환을 잘 보여줍니다.



제가 이 만화에서 무릎을 친 부분이 바로 오보에란 악기에 대한 대사였습니다. 주인공의 동료인 오보이스트가 오보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보에는 이 리드가 있어야 부는 악기이기 때문에 언제나 미완성인 악기야. 완벽한 리드란 없고, 또 언제나 좋은 리드가 나오지도 않아. 그런 미완성 속에서 언제나 완성을 향해 고독하게 도전하는 악기, 그게 바로 오보에야.”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구도자처럼 ‘완벽한 리드’로 완성되길 꿈꾸며 리드를 깎아야 하기에 오보에는 고통스러운 악기입니다. 다른 악기라면 그런 과정조차 필요가 없지요. 그런 수고로움을 즐기지 못하면 오보에란 악기는 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소리를 내기도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보이스트들은 오보에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다음에 오보에 소리를 듣게 되시면 그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오보이스트들은 얼마나 많이 리드를 깎으며 골머리를 썪었을까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런 고통을 거쳤을 것이 떠오르기에 제 귀에는 오보에 소리가 왠지 더욱 아름답게 들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