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극장의 세계1-진짜 소리를 들려주는 공연장을 만나고 싶다 2007/02/12

딸기21 2018. 6. 6. 10:47

지휘자는 돌연 지휘를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객석에 앉아있던 건축가에게 말했습니다.

“프랭크, 잘 관리하겠습니다.”

그 순간, 건축가의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2003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를 울린 지휘자는 로스앤젤레스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이었습니다. 로스 앤젤레스의 명물이 된 새 랜드마크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개관을 앞두고 처음으로 연습을 해본 살로넨은 너무나 좋은 소리를 내는 공연장을 얻게 된 데 감격해 게리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던 것이었습니다. 겉모습 이상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새 공연장을 잘 관리하겠다는 말 이상으로 건축가를 기쁘게 해줄 말이 또 있을까요.


지휘자, 건축가를 울리다


아름다운 월트 디즈니홀은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 명소로 자리잡았습니다. 프랭크 게리라는 현대 건축의 슈퍼스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평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 홀은 단순히 건축적 측면만 우수한 공연장은 아닙니다. 화려한 겉모습 때문에 그 음악적 우수함이 오히려 가려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의 건축명소가 된 엘에이 월트디즈니콘서트홀. ‘구겐하임 빌바오’를 지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 최고의 역작으로 꼽힌다.



디즈니홀은 음향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공연장입니다.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공연장, 그 좋은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정평을 얻고 있습니다. 이 홀이 개관하던 날 기념 콘서트에서 지휘자 살로넨은 다시 한번 말합니다. “이제 로스앤젤레스의 음악팬들은 교향악단이 내는 진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월트디즈니홀의 내부. 홀의 공간과 표면, 재료를 기계장치로 증폭하지 않고서도 각 악기들의 소리가 잘 반향되도록 최적의 목재들을 썼다. 건물 바깥과 지붕은 홀 위에서 헬리콥터가 비행해도 공연이나 녹화에 지장없을 정도로 방음 처리를 했다. 지붕은 두께가 305밀리미터에 이르며 음향상의 이유로 중앙에서 양쪽 위로 경사가 진 모양으로 고안됐다.


훌륭한 음향을 연출할 수 있는 이 새 공연장을 얻은 뒤로 로스앤젤레스교향악단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티켓 판매율이 높아졌고, 동부에 비해 음악적 무게감이 떨어졌던 서부의 간판 교향악단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연주하기 전에는 음악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 줄 몰랐다”


공연장에서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은 그 단순한 진리가 음악에 있어서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공연장 최고의 덕목은 당연히 ‘소리가 좋은 것’입니다. 지금은 첨단 기술로 이 공연장의 음향문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십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음향문제는 공연장을 짓는 사람들을 속썩이는 골칫거리였습니다. 공연장은 당연히 소리가 가장 예쁘고 잘 나도록 지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노릇인 탓입니다. 지어놓고 나면 이상하게 소리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 이유를 콕 집어내기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공학이 발달해서 건물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컴뮤터 시뮬레이션으로 음향 상태를 점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잔향이 몇점몇초나 가게 될지, 소리가 어떻게 반사되거나 흡수되는지 등등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미리 추론해낸 뒤 시공에 들어갑니다.


참고 삼아 살펴보면 이런 컴퓨터 이전 시대에 지었는데도 소리가 예쁘게 나는 공연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무직페어라인이란 곳입니다. 무직페어라인은 클래식 팬들에겐 귀에 익은 이름일 겁니다. 해마다 여기서 빈 필하모닉이 신년 음악회를 열거든요. 


무직페어라인 내부 모습


이 무직페어라인 건물은 140년 가까이 이전인 1870년 지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은 건물들 못잖은, 아니 그 이상으로 완벽한 음향으로 유명합니다. 잔향 시간이 2.0초에 이르며 어느 자리에서든지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명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이 공연장에 서기 전까지는 음악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직페어라인은 흔히 소리를 좋게 해주는 나무를 적게 쓰고 회반죽 벽돌로 실내를 꾸몄는데 음향적으로 우수하기로 유명합니다.


현대 이전 공연장들 가운데는 나무로 지어 소리가 좋은 곳들이 많습니다. 베르사이유궁 안에 있는 오페라극장이 대표적입니다. 이 극장은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결혼한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런데 이 극장을 지을 당시 프랑스 재정이 별로 안좋았답니다. 그래서 극장 전체를 대리석이나 호화 마감재를 안쓰고 나무로 전체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공연 음향에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공연해본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교수도 “나무로 만들어서 공연장 전체가 악기 같더라”며 최고의 공연장으로 이곳을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음향학과 공학, 소리를 죽이고 살리는 마법


요즘에는 전자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음향쪽도 날이 갈수록 진일보하고 있습니다.

이 음향학, 그리고 음향 엔지니어링에 강한 나라가 바로 옆나라 일본입니다. 세계적인 악기회사를 거느린 나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장비를 만들어내는 나라이니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서 일본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대접을 받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홀의 음향 설계를 맡았던 것도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야스히사 도요타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했습니다. 야스히사 도요타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음향학자입니다. 음향효과 좋기로 유명한 도쿄 산토리홀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야스히사 도요타입니다.


이런 설계 못잖게 실제 공연 현장에서 소리를 다루는 음향 엔지니어링도 공연에서 중요합니다. 실제 악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음향 엔지니어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소리가 약한 악기들은 공연장에서 불가피하게 마이크를 통해 음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이 과정을 음향 엔지니어들이 맡는데, 이 때 부득불 소리의 왜곡과 변조가 따릅니다. 이를 얼마나 줄이고 그 악기의 특색을 어떻게 공학적으로 잘 잡아서 변환시킬 것이냐가 곧 음향 전문가의 수준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소리를 증폭시키는 기술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자기 악기의 소리를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소리에 가깝게 들려주고 싶은 연주자들에게는 특히나 민감한 문제입니다. 소리가 작은 악기들은 공연을 할 때 이런 숙명을 지니게 됩니다.


자체 소리가 작은 우리 국악기들에게도 이런 고민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가령 가장 최근 ‘재발견’된 악기인 해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금은 그 자체 소리로는 커다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연 현장에서는 증폭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금 고유의 소리는 어느 정도 달라지게 됩니다. 증폭음이 얼마나 해금 고유의 음색을 살려주는지는 그 엔지니어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해금이란 악기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음향 담당자가 잘 알아야 제대로 공연장에서 소리를 살려 줄 수 있지요.


이 음향 엔지니어의 수준은 곧 그나라 음악 전반의 수준을 대변합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아직은 약합니다. 우리 공연장들의 고질적인 약점이 바로 이 소리를 제대로 살려주는 기능이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최근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단숨에 개선될 성질의 문제는 아닙니다.


요즘 우리 국악계에서 해금을 대중화시키고 있는 주역인 정수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정 교수가 일본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공연장에서 연습을 할 때 음향 담당자가 왔는데, 얼핏 봐도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답니다. 아마 평생 음향 기술자로 일했겠지요. 그리고 당연히 해금이란 악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을텐데, 이 머리 허연 기술자가 정 교수가 해금을 연주하는 소리를 그 옆에서 조용히 들어보더랍니다.


해금. 서양 악기에서는 흔히 바이올린 때로는 비올라와 비교되기도 한다. 비교적 최근 대중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재발견된 악기다.


그렇게 혼자서 골똘히 해금 소리가 어떤지 생각하더니 그 다음에 마이크를 연결하고 음향 장비로 소리를 공연장에 울려퍼지게 시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해금이란 악기의 매력을 기막히게 살려내는 소리로 연출하더라는 겁니다. 음향의 ‘달인’이었던 것이죠.


자기 소리를 잘 살려주니 연주가 더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그 때 일본 공연을, 그리고 그 노익장 음향전문가를 정교수는 지금도 떠올리곤 한다고 합니다.


허비 핸콕, “여기서는 연주가 아니라 연설을 해야 합니다


연주자들은 그만큼 소리에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공연장 음향담당이 어떻게 음향을 내느냐에도 무척 민감합니다. 하지만 물론 그 이전에 공연장 자체의 소리가 좋아야 하는 것, 그게 최우선이겠지요?


우리 공연업계에 전해지는 공연장 음향 관련 일화 가운데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 허비 핸콕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내한 공연을 했을 때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연 직전 일이 터졌습니다. 공연 앞서 입국한 허비 핸콕은 당연히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으로 가서 소리를 살펴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공연을 못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해버렸답니다.


너무나 놀란 관계자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핸콕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연주를 하기 보다는 커다란 행사에서 연설 등을 하기에 적합한 소리가 난다.” 결국 달래고 또 달래서 공연은 했다고 합니다만 그만큼 공연장 소리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세종문화회관은 소리에 관한한 연주자들에게 좋은 평을 못들었던 곳입니다. 1978년 만들어졌는데 외관은 아름답지만 연주를 감상하기에는 별로라는 것이 중론이었지요. 이제는 다시 보수해서 소리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지은 지 제법 오래돼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그 이후 공연장들도 대부분 좋은 점수는 못받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입니다. 한 성악가는 “오페라 전용홀인데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제발 공연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군요.

당시에만 해도 건물의 하드웨어는 크게 신경쓰는 단계로 올라갔지만 그 소프트웨어까지는 못미쳤던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국악 전용홀은 아직도 없어


특히나 국악인들에게는 이 소리 좋은 공연장이 숙원 가운데 숙원입니다. 서양 악기들 소리 잘내게 고안된 클래식 공연장에서 국악기 소리를 제대로 내기가 쉽지 않은 탓입니다. 그나마 몇 안되는 국악계 공연장은 어떨까요? 


국악을 자주 공연하는 곳으로는 국립국악원 예악당과 우면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들도 국악을 제대로 연주하기에는 영 연주자들의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그래서 우면당은 결국 고치고 말았고, 예악당도 음향판을 고친 뒤에야 그런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처음부터 소리가 잘 나는 연주장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악계에서 주장하는 제안이 ‘국악 전용 연주장’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국악이 우리 음악인데 전용홀이 아직도 없냐구요?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국악 전문 공연장이 없습니다. 국악 특유의 소리맛을 살려줄 공간이 전무하다는 이야깁니다.


양악기와는 다른 국악 소리를 그나마 제대로 낼 수 있는 공간은 그나마 단 두 곳 정도만이 꼽힙니다. 한 곳은 세종문화회관이 리모델링하면서 새로 탄생한 체임버홀이고, 또 다른 한 곳은 광화문에 있는 금호아트홀입니다. 이 두곳이 그나마 국악기 소리를 전기로 증폭하지 않아도 연주를 할만한 곳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도 약점은 있습니다. 음향은 좋은데 무대가 높아서 앞줄에 앉으면 또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불평을 사고 있습니다.)


결국 최선은 증폭하지 않은 생음악 그 자체입니다. 말씀드렸듯 증폭은 음을 어느 정도 바꿉니다. 그래서 진정한 악기의 소리 자체를 감상할 수 없지요. 소리가 작은 악기들도 증폭없이 감상할 수 있는 크지 않은 전용 공연장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우리 국악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국악은 한마디로 ‘사랑방 음악’입니다. 마을 정자에서, 양반댁 사랑방에서 도란도란 모여 앉아 생으로 듣고 즐기는 음악이었습니다. 당연히 악기 소리가 사람 놀래키게 클 필요도 없었지요. 그러니 우리 국악기는 소리를 증폭시키면 바로 옆에서 듣는 살가운 소리맛을 잃어버립니다. 오로지 생으로 들을 때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국악을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제대로 국악을 즐길 공간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아닐까요?

사랑방처럼 아늑한 분위기에서, 전자증폭을 거치지 않은 생생한 국악을 즐길 수 있는 전용공연장이 있다면 아마도 국악은 훨씬 대중화될 수 있을 겁니다.


엘에이에 있다는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처럼 거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주 작은 홀이라도 좋습니다. 제대로 소리가 나는 공연장, 그리고 국악의 맛을 살려주는 전용 공연장이 우리 곁에 많아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