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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지기 전에 세운상가에 가다 2008/03/22
    도시 속 탐험하기 2018.08.24 16:24

    날씨가 그야말로 화창했던 20일 오후, 드디어 세운상가 답사를 다녀왔다. 


    오랫 동안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던 답사였다. 게으름과 바쁨 탓에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내 이날 숙제를 마치듯 답사를 마쳤다. 


    세운상가는 계획대로라면 멀지 않은 미래 철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 상인들과 충돌이 끝나지 않아 정확한 공사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40년 동안 버티고 있었던 이 거대한 회색 괴물이 이제는 사라진다는 점이다. 


    30년 가까이 이 건물을 지나다니며 보아왔음에도 그 내부를, 그 전체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마침 도시의 풍경을 기록해온 단체 문화우리에서 곧 떠나게 될 세운상가를 기록한다고 해서 함께 따라나섰다. 이렇게라도 돌아봐두지 않으면 앞으로 이 문제적 건축물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생활사진가들, 단체 회원들과 함께 세운상가를 돌아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건물과 도시, 건물과 건물, 건물과 인간의 당연하면서도 순환되는 관계였다. 세운상가는, 거대한 건물 하나가 잘못될 때 이 세가지 층위의 관계가 모두 망가진다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는 잔인한 사례였다. 서울 도심에 왜 이런 건물이 들어섰는지, 그 건물을 어떻게 우리는 고쳐야하는지 요구하는 좀처럼 풀수 없을 것같은 난해한 시험문제지 같았다.


    마음 속에 의문과 불안을 오히려 가득 더해준 이날 답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한다. 


    세운상가 탐험의 출발-세운상가는 입구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세운상가를 보려면, 세운상가 앞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이날 답사를 주최쪽이 가장 잘 구성한 점은 출발은 종로3가 세운상가 입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종묘 정문에서 세운상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종묘 정문에서 바라본 세운상가. 


    세운상가는 서울 전체 차원에서 볼 때 종묘와 남산이라는 큰 축 가운데에 있다. 종묘는 북한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서울의 내사산인 낙산을 거쳐 점점 낮아지면서 이루는 길죽한 녹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녹지대의 흐름이 남산으로 이어지면서 ‘산경축(山景軸)’을 이룬다. 남북으로 뻗은 이 산경축과 교차하는 동서 방향 수경축(水景軸)은 바로 한강이 된다.

      

    이 산경축을 확실하게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에 세운상가다. 종묘 정문에서 바라본 세운상가는 정확하게 남산쪽 전망을 가리고 있다. 콘크리트 도시 시대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가로막은 건물의 모양이나마 예쁘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김수근이란 건축가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었겠지만, 세운상가는 그런 평가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세운상가는 1968년 김수근의 설계로 지어졌다. 설계는 그가 했지만 구상을 한 사람은 모든 것을 밀어붙여 땅을 파고 건물을 짓는 것으로 해결했던 ‘불도저 시장’ 김현옥 시장이었다. 지은지 얼마 안되 무너져 지금도 ‘부실공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와우아파트, 청계고가도로 등이 모두 이 김현옥 시장이 벌인 일이었다. 김현옥 시장이 서울 도심 종로3가에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세운상가도 빼놓을 수 없는 당시 시대의 상징이다. 이 건물 디자이너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김수근이다. 


    일단 구상은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건물 아래는 차가 다니도록 찻길로 터 놓고 사람은 2층에 낸 길로 다니도록 한다. 저층부는 상가, 고층부는 아파트인 건물을 서울 도심의 가로 축을 이루는 큰 길인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를 세로로 가로지르게 짓는다.  



    그 구상대로 세운상가는 탄생했다. 흔히 세운상가라고 하면 종로쪽 세운상가 건물 하나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크게 볼 때는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상가 건물 전체를 가리킨다. 곧 종로 세운상가-청계천 대림상가-을지로 삼풍상가-충무로 진양상가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세운상가다. 이 네 상가 건물들의 길이는 다 합치면 1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렇게 세운상가가 들어선지 어느새 40년, 지금 현실은 어떤지 이제 확인해볼 차례다. 


    종묘 정문에서 춥발해 이제 세운상가 종로쪽 입구에서 건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건물은 높지 않지만 매스가 압도하는 느낌이 강했다. 둔중한 디자인 때문일텐데, 매력포인트로 읽어주고 싶은 요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디자인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못잖게 이 건물이 들어서면 생겨난 이 지역의 분위기, 그리고 건물에 입혀진 세월의 칙칙한 흔적이 건물 자체를 흉측한 공룡처럼 보이게 만든다. 



    건물 입구에는 이 건물의 지금 상황을 보여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철거를 앞두고 어디서나 벌어지는 장면이지만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인 세운상가란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이 보상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철거가 시작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답사는, 세운상가만의 특징인 3층 높이의 2층 보행도로, 그러니까 고가보도로 퇴계로까지 걸어가는 코스로 진행됐다. 일직선으로 아주 단순하지만 중간 중간 내려가 다시 길을 건너고 다시 상가 건물로 올라가기를 반복해야 한다. 2층 데크로 올라가는 출발점은 종로세운상가 옆 계단, 유명한 설렁탕집 감미옥 바로 옆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고가보도다.


    각종 전자 장비와 설비, 부품 가계들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 곳은 전국 최대의 포르노 유통 현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은 몰래카메라와 도청장치, 각종 불법 탈법 장비들을 거래하는 곳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철거를 앞두고 상인들이 많이 빠져나간 것이 저절로 느껴질 정도로 쇠락한 느낌이 강했다. 



    상가 건물 양쪽으로 낸 이 길이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걸어다니라고 만든 길이다. 그러나 이 고가보도를 걸어 서울을 산책하는 사람은 없었다. 볼 일이 있다해도 이 길을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기능을 못하는 길은 뒷골목일 뿐이다. 뒷골목은 소통은 없고 모든 것이 종말처리 되는 곳이다. 포르노에 대한 욕망, 각종 사제 장비에 대한 욕망들이 이 곳에 모여 악취를 풍겼다. 그런 곳을 일부러 걸어다닌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답사 일행을 본 상인들은 “망했는데 니나노하러 왔느냐”며 웃으며 농반진반 말을 거넸다. 


    이런 점포들이 5층까지 차지하고 있고, 그 위로는 아파트다. 


    세운상가에 대해 늘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것은 이 건물이 상가만이 아니라 아파트도 있다는 점이다. 그걸 확인하러 아파트로 올라갈 차례다. 상가 내부를 거쳐 일단 5층 아파트 입구로 올라간다.


    상가동은 5층까지 이고 이 기다란 상가 끝 종로쪽 방향으로 아파트 건물이 13층까지 올라서 있다. 상가 옥상은 아파트 앞 마당으로 꾸몄다. 나무를 심어놓는 정원이자 휴식장소로 마련한 것이다. 



    겨울이고, 또 철거 전이라 정리도 잘 안해 정원은 그 틀만 남아있다. 아파트라고 해도 실제로는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로 대부분 쓴다. 그래서 이곳 옥상정원은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의 쉼터로 쓰인다. 옥상에는 각종 쓰레기 더미까지 있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이렇게 아래 상가 건물을 넓쩍하고 길게 짓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 70년대식 주상복합건물들은 상가 옥상을 아파트 앞마당으로 넓게 놔두는 것이 공간 배치의 특징이었다. 서대문구에 지금도 남아있는 유진상가 등도 주거동 사이에 이런 너른 콘크리트 공간을 뒀다. 


    정원공터에서 바라본 아파트동. 종로쪽 파사드나 이쪽이나 똑같다. 심심하고 무뚝뚝한 모더니즘 건물 그 자체다.

    도시를 제대로 보려면 눈높이를 바꿔야 한다. 남산타워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몇개 층만 올라가면 우리 주변의 진면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겐 그 눈높이에 맞춰 꾸며놓은 것들만 보인다. 정말 보이고 싶지않은 것들은 그 눈높이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아무렇게나 가려져 있다.  


    이제 세운상가 5층에서 내려다본 세운상가 옆 모습들을 볼 차례다. 세운상가의 진실은 세운상가 건물 자체에 있지 않다. 바로 그 옆 동네들의 모습이다.


    우선 세운상가 왼쪽부터. 



    위에서 내려다보면 예상 이상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서울의 한복판 종로 3가의 21세기 현재 모습이다. 사회학자 홍성태 교수는 자기 책에서 이곳의 모습을 “한국전쟁 직후라고 해도 착각할 모습”이라고 표현했는데, 적확한 비유다. 


    그러면 오른쪽 풍경은 어떨까? 반대쪽을 내려다보자. 



    오른쪽도 다를 바 없다.


    사진이어서 실제보다 느낌이 덜한데 직접 눈으로 내려다보면 가슴이 턱하고 막혀버린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양쪽이 철저하게 슬럼으로 변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도시의 슬럼화란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거대한 건물이 들어설 때 주변에 미치게 될 영향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조건 도심에 폼나는 건물 하나를 만들자고 밀어붙인 전시 행정의 결과다.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혈관인 종로라는 거리에 세운상가란 건물이 폭탄처럼 떨어져 주변이 초토화된 셈이다. 


    낙후된 건물, 그리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주변 풍경을 본 한 참가자는 “무슨 동남아 여행을 온 기분”이라고 혀를 찼다. 


    실제로 전국의 주요 건축대학 교수들이 도시계획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주는 주제가 바로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를 지은지 40년이 지난 탓에 저렇게 방치된 것도 아니다. 건물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세운상가와 주변은 단숨에 망가졌고, 그 상태로 40년이나 이어져온 것이다. 


    세운상가는 구조 진단 결과 100년은 버틴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한다. 튼튼함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재개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 벌써 20년전부터였다. 지은 지 20년도 채 안되어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하도 많이 일으켜 방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튼튼한 건물을 왜 없애야하는지 옥상에서 본 양쪽 풍경은 답을 내려주고 있다. 


    씁쓸한 풍경을 뒤로 하고 이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13층 옥상에서 서울 종로통을 내려다볼 차례다. 



    아파트 내부는 60년대말 실내 디자인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당시만해도 넓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좁게 배치한 엘리베이터 공간과, 타일로 치장한 벽이 인상적이다. 맨 윗층인 13층에 내렸다. 


    당시 아파트 건물들의 특징은 좁디좁은 복도다. 



    김수근이 디자인한 다른 아파트 건물인 한남동 한남클럽에 가보면 이 세운상가 아파트 복도보다도 훨씬 더 긴 복도가 있다. 마치 학교 복도처럼 일직선으로 길게 처리한 복도다. 좁고 길어서 끝에서 반대편을 보면 소실점이 보일 정도였다. 


    이제 세운상가의 가장 꼭대기로 간다.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롯데 광고판이 서있다. 종로쪽은 칠성사이다, 옆으로는 레쓰비를 선전하는 광고탑이다. 건물 옥상에 서있는 이런 광고판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좀처럼 볼 일이 없을 듯한 그 뒷쪽은 이렇게 생겼다. 선들이 모이고 만나는 기능에 따라 만들어진 모습이 나름 구조적 매력을 지녔다. 



    13층 높이 맨꼭대기에서는 5층에서 봤던 도심 슬럼화 문제와는 다른 또다른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세운상가 문제의 또다른 본질적 측면인 그 문제는 세운상가 건물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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