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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운상가 이슈에 끼어든 개그맨, 서울 중구청 2008/03/25
    도시 속 탐험하기 2018.08.24 16:24

    70년대 풍경 그대로 남은 대림아파트 

     

    대림아파트는 70년대 아파트만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아파트를 나서기 전에 마주친 몇몇 풍경들은 이제는 홀로 남아버려 귀중해진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줬다. 바로 이런 장면들이다. 먼저 대림아파트 경비실의 모습. 

     


    건물 내부에 합판으로 지은 저런 경비실은 요즘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 뒤로 복도에는 오락기들이 늘어서 있다. 대림상가 입주 업체들이 내어 놓은 것들이다. 줄지어선 오락기 사이로 식당 아주머니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이 복도에서 정말 예전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는 다방을 만났다. 

    이름은 ‘세운나 다방’. 왜 세운나 다방일까? 세운가 다방도 있었던 것일까? 쓸데 없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쉽게도 들어가서 물어보지 못하고 답사 일행을 따라가야 했다. 언제 다시 여기에 와서 그걸 물어볼 수 있을까. 역시 취재는 할 때 한 번에 모두 마쳐야 한다. 늘 후회하게 되는 실수의 반복. 기자의 고질병이다. 

     


    나무 외장과 간판까지 70~80년대 다방의 ‘간지’를 잘 간직하고 있다. 

    요즘에는 커피숍들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고전적인 다방들이 중년층들에게 다시 인기를 얻는 것 같다. 시청앞 서소문에 있는 <대한다방> 같은 곳들은 중장년 고객들로 늘 붐빈다. 옛날 다방 정취를 만나는 느낌에 나 역시 이런 다방들이 이제는 싫지가 않다. 

    벌써 나이가 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스타벅스보다는 이런 곳들이 더 편할 때가 있다. 뭐 어쩌겠는가. 가끔은 촌스럽고 낡은 곳이 좋아지는데.

     


    대림상가를 뒤로 하고 나와 다시 만나는 세번째 세운상가는, 그 모습이 앞서 두 상가와는 비슷한 듯 한데 자세히 보면 확 다르다. 건물 뼈대는 옛날식인데 겉 피부는 완전히 요즘풍이다. 세운상가 상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리노베이션해 면모를 일신한 을지로 ‘삼풍상가’다. 삼풍? 맞다. 무너진 그 삼풍백화점의 삼풍이다. 이 삼풍상가 한쪽 끝부분이 풍전호텔이다.

     

    이 삼풍상가는 한국 상업사에 이름이 오를 만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슈퍼마켓’이 이 상가에 처음 생겼다. 1968년 세운상가가 처음 생겼을 때 이 삼풍상가에 ‘삼풍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삼풍상가는, ‘대한민국 슈퍼마켓 발상지’인 것이다.

     

    좌우지간 이 삼풍상가는 앞서 걸어온 다른 세운상가들과 달리 ‘깨끗’하기 때문에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2층 고가보도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건물 상태가 정상적이어서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지는 구간은 이 삼풍상가로 끝이다. 마지막 진양상가 구간으로 접어들면 다시 칙칙하고 비좁고 전기설비며 각종 시설물들이 좁은 공간에 얽히고 설킨 세운상가 골목 특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세운상가의 끝-꽃과 개의 상가, 진양상가

     

    진양상가는 건물 외벽에 색색깔 차양막을 달아 그나마 독특한 편이다.

     

     

    진양상가가 그나마 좀 다른 세운상가보다는 겉모습이 나아 보이는 것은 이 상가가 다루는 품목과도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양상가는 ‘꽃과 개의 상가’다. 충무로 애견시장 입구에 있어 이곳에서도 애견을 많이 다루지만 역시 진양상가라고하면 꽃상가로 유명하다. 건물 곳곳에는 화환 뼈대며 꽃나르는 차들이 진을 치고 있다. 칙칙한 세운상가지만 진양상가만큼은 꽃향기가 배어있다.

     

    어느새 1킬로미터에 이르는 세운상가 코스도 끝에 이른다. 진양상가 고가보도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다.

     


    저 꽃이란 글자가 써있는 탑 같은 구조물은 자동차 엘리베이터다. 

    이 곳이 바로 진양상가의 끝, 그러니까 공룡 세운상가의 끄트머리다. 이 곳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이 출입구가 세운상가를 나서는 마지막 출입구다.

     


    출입구로 내려가 진양상가를 나서기 전, 뒤로 돌아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칙칙하고 어두운 골목속으로 이어지는 길 끝이 암흑같은 소실점 속으로 사라진다. 이 1킬로미터에 이르는 건물이 들어섬으로 해서 이 주변 일대가 밝아지기는커녕 어두워졌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한극장 맞은편, 진양상가 입구는 세운상가의 끝이자 또다른 입구다. 이 입면을 마지막으로 세운상가는 끝이 난다. 

     

    종묘 앞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1킬로미터를 걸어오는데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 이것저것 최소한으로 돌아보면서 허겁지겁 걸어왔지만 길긴 길다. 

    이 길이 녹지대로 바뀐다면 3시간이 아니라 13시간이 걸려도 즐겁지 않을까?

     

    그러나, 답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국대로 올라갈 차례다.

    세운상가를 답사하는데 왠 동국대냐고? 세운상가 출발을 종묘에서 했듯이 마지막도 세운상가 맞은편 고지대인 동국대에서 세운상가를 내려보면서 세운상가의 진짜 모습을 가늠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10여분 걸어 동국대 학생회관에 올랐다. 학생회관 옥상에 올라서 바라본 세운상가는  석양빛에 색깔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볼 때 본질은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최고의 문화유산 종묘를 가로막고 선 이 상가건물이 얼마나 거대한지는 이곳 동국대 쯤에서 볼 때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치 기차처럼 길게 이어지는 상가건물의 끝이 잘 안보일 지경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에 표시를 해봤다.

     


    저 거대한 덩어리가 사라지고 숲의 길이 종묘와 남산을 이어주자는 것이 세운상가 재개발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서울시도 실제 세운상가를 철거한 자리를 녹지대로 해서 녹지축을 잇겠다고 하는 방침이다. 문제는 바로 옆 건물들의 높이다. 도심 4대문안 고층 제한 규정 상한인 90미터 높이까지 올라간다면, 가운데 녹지대를 놔둔다고 해도 그 양쪽을 고층 건물로 도배하는 셈이 되어 녹지대의 의미는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중구청, 개그는 이제 그만

     

    그런데, 이 심각하고 심오한 세운상가 재개발 이슈에 ‘영구’ 캐릭터처럼 등장해 이 사안을 희화화하는 배역이 있다. 바로 서울 중구청이다. 

    문제는 웃기는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데 결코 웃기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구청은 세운상가 재개발 지역에 22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20층이라면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웃어넘길 높이다.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될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보다도 수십층이 높다. 그걸 도심 한복판에 짓자는 것이다. 당연히 찬성할 사람은 극소수다. 높이도 정도껏 높아야 하는 탓이다. 

    서울시도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당연히 도심 안에 초고층 불허 방침을 확인시켜 ‘말도 안됨’이라고 통보해줬다. 

    그걸 대한민국 최고 중심부에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200층짜리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개그도 이런 블랙개그가 없다. 왜 자꾸 떠드는걸까?

     

    누구나 추측하는 속내는 서울시 압박용 카드라는 것이다. 처음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이 나왔을 때 중구 세운상가 지역 땅주인들은 60층 정도 빌딩을 짓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걸 중구청은 오히려 220층으로 울트라 뻥튀기를 해서 들고나왔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중구청이 220층 빌딩이 성사가능성이 없는데도 주장하는 것은 이후 서울시와 각종 협의에서 카드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할 지차체가 앞장서서 도박꾼처럼 블러핑을 해대는 셈이다. 220층 빌딩을 지으면 정말 국력이 과시되고 도심이 살아난다고 믿고 있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고, 안될 것을 알면서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추진한다면 그건 협잡 수준이다. 중구청이 어떤 경우이든 웃을 수 없는 암담한 차원이다. 

     

    중구에 대해 좀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중구청은 앞서도 그 속에 담은 지당하신 의미를 찾기 자칫 어려워 개그로 착각할 수 있는 기획들을 선보여왔다. 

     

    (1) 소나무 가로수 사업

    충분히 실험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가로 전문가들이 소나무가 가로수로 적합한지 알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넘어가자.

     

    (2) 꽁초 휴지통 설치

    구청장이 애연가인 구청답게 처음으로 관할지역내 꽁초휴지통을 설치한 것도 넘어가주자. 

     

    (3) 영어교육특구, 효도 특구

    중구가 스스로 영어교육특구, 효도특구로 선포한 것도 이해하자. 어차피 홍보용으로 보이니까. 효도특구 기념탑을 세우고 구청장 등의 이름을 동판으로 만들어 달았지만 홍보의 연장선일테니 넘어가자.

     

    (3) 구청장 효도가요 음반 데뷔

    구청장이 ‘효 테마송’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다고 홍보하는 것도 계속 넘어가는 김에 그냥 넘어가자. 구청장이라고 노래부르지 말란 법 없으니까.

     

    (4) 충무로 영화제

    충무로 영화제도 참아주자. 상영작 가운데 10분의 1이 영어 자막도 없이 틀었다니 참 대단한 영화제지만, 그리고 운영비를 세금으로 해결했다고 하지만 문화경영시대라고 하니 꾸욱 참고 넘어가자.

     

    (5) 남산-청계천 인공수로 프로젝트

    그러나, 세운상가 녹지축에 인공 물길을 내서 남산과 청계천을 잇겠다는 것부터는 웃고 넘어가주기 곤란해진다. 그러나 ‘뭐 대운하도 아닌데, 정말로 대운하를 짓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뭐 이정도는 애교 수준 아닌가’, 라고 하실 수도 있으니 정말 이번까지는 참아보자. 생각해보니 본질적으로 웃자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 여기까지는 눈 딱감고, 참고, 넘어가보자. 

     

    (6) 220층짜리 초고층 건물빌딩 프로젝트

    그런데 220층 건물을 짓자는 이야기는 그냥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이 이야기부터는 정말 개그처럼 생각된다. 성사될 수도 없는, 스스로 지을 수도 없는, 서울시도 허가도 해줄 수 없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공직자로서, 지자체로서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을 자초하는 짓이다. 지금껏 많은 지자체들이 코미디를 하곤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이쯤 되면 마치 짜증을 내달라고 졸라대는 듯하다.

     

    부디 중구청께 부탁드린다. 200층짜리 농담으로 시민들 헷갈리게 하지 말고, 200층 짜리 빌딩을 짓고 싶은 마음이 떠오를 때마다 중구청이 하도 관리를 잘해 홀딱 태워먹은 숭례문을 다시 바라보시라고. 

    세운상가는, 중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니 나서기를 참아주시길 바란다. 서울시도 그걸 바라고 있다. 답사를 해보니 더욱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다. 


    건축은, 거리는, 도시는 개그에 적합한 소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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