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한국에서 가장 근사한 주차장? 2008/06/13

딸기21 2018. 9. 10. 15:48

주차장이 근사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타워팰리스처럼 입주자 자동차번호별로 지정석을 마련한 주차장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차장들은 그 모양면에서는 타워팰리스부터 동네주차장까지 큰 차이가 없다. 재벌 회장집 주차장은 본 적이 없어 모르나 주차장까지 아주 근사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본 주차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주차장이라면 단연 이 주차장을 꼽고 싶다. 특이하게도 우리 전통건축 양식으로 주차장을 꾸몄다.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서울 북촌, 그러니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한옥 밀집촌에 있는 주차장이다.




근사한 전통담 사이로 주차장 입구가 나 있다. 

주차장 담과 한 몸으로 길가에서 보이는 한옥 건물은 뭔가 궁금해진다. 그럼 반대쪽에서 본 모습 한장 더.




이 주차장은 길쪽 담장만 아니라 주차장 안쪽 벽도 같은 전통담장으로 꾸며 무척 근사하다. 




안쪽에서 입구를 본 모습이다.




궁금했던 기와집 건물은 안에서 보면 실제 한옥이 아니라 자동차를 대는 주차용 가건물이다. 왼쪽에 주차장 건물이 진짜 한옥이다. 주차장용 건물들이 기와집이라니.


그런데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저 주차장 뒤로 보이는 집은 무슨 집일까? 얼핏 보기에도 그 모양새가 만만찮다. 좋은 집 많기로 유명한 이곳 북촌에서도 저 정도 한옥은 드물다.




알아보니 정말 유명한 인사의 집이었다. 저 높이라면 바로 앞 창덕궁이 내려다 보일 듯했다. 쉽게 구하려도 잘 구해지지 않을 법한 위치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자. 여기는 도대체 어디 주차장일까?


가구업체인 한샘의 디자인연구소 주차장이다. 연구소는 주차장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온다. 

연구소도 건물이 무척이나 독특해 다른 연구소들과 비교가 된다. 




연구소는 입구인 솟을대문이 특히 근사하다. 


창덕궁 바로 옆에 자리잡은 저 건물은 원래 어떤 건물이었을까. 사진 속 표지판에 그 내력이 써있다. 


백홍범이란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1910년대 서울 서민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는 집이라고 한다. 북촌의 대부분 한옥들이 1930년대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 이른바 집장사 한옥이다.  그 이전 한옥은 이제 거의 없다.


삼청동길과 가회동 일대가 서울의 새로운 데이트 코스, 그리고 요즘 부쩍 늘어난 DSLR 카메라족들의 출사지로 각광 받으면서 북촌은 나날이 상업화, 현대화되고 있다. 가회동 동사무소쪽 한옥촌과 삼청동쪽 카페, 식당촌과 달리 이 원서동, 그러니까 창덕궁 옆 골목길은 같은 일대이면서도 방문객들이 없는 조용한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창덕궁길 골목은 같은 한옥집 골목이어도 덜 화려하다. 가회동처럼 명소가 아니라 사람들 사는 진짜 생활공간인 골목이다. 길이 좁고 약간 외진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쪽에도 다른 동네에는 없는 여러가지 것들이 많다. 저 한샘연구소가 그렇고, 이 길에 있는 궁중음식연구원, 인간문화재의 공방이며 불교박물관같은 곳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길은 서민들의 길이다. 재벌 회장의 집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집앞에 화분을 놓아 골목을 꾸며주는 평범한 서민들의 집도 있다.  




창덕궁길이 가장 재미있는 점은 무엇보다도 한국전쟁과 급격한 개발로 시간의 층위가 사라진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건축적으로는 오히려 인사동이나 가회동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20세기 초반 한옥의 흔적, 30년대 이후 집장사 한옥, 일제시대 주택, 그리고 최근 다세대주책들까지 정말 다양한 집들이 다양한 형태로 한 동네 안에 함께 있다. 다른 골목과 다른 그런 분위기는 이 원서동 일대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창덕궁이란 전통 공간의 존재일 것이다. 궁궐 담벼락을 따라 형성된 이곳에선 창덕궁이 있어서 가능한 장면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놀이터 같은 모습들. 




궁궐 담장이 놀이터 벽이되는 놀이터가 또 있을까?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가 난도질해놓은 서울 궁궐 일대의 모습은 저렇게 아물지 못하고 그대로 흉터인채로 남아서 변형되고 이어져간다. 


그래서 원서동 길을 거니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산책이 되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