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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를 느끼고 싶을 때 부암동으로 가라 2008/03/31
    도시 속 탐험하기 2018.08.24 18:18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문득 부암동으로 갔다. 역사의 흔적, 망가진 곳이 주는 묘한 분위기, 허물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부암동에 있다. 부암동 동사무소 옆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바로 이 집터다.




    저 커다란 나무와 가꾼 정원이 어우러졌던 시절에는 무척이나 괜찮은 집이었을텐데 휑하게 방치된 마당은 이미 마당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집터는 온통 잡초들이 우거졌고, 동네 사람들의 간이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저 썰렁한 빈 마당이 바로 국어 시간에 들어봤을 문인 현진건이 살았던 집터다.


    현진건(1900~1943)이 누구인가. 호는 ‘빙허’. 허공에 기댄다는 멋진 호다. <빈처>와 <운수 좋은 날> 그리고 <B사감과 러브레터>를 우리에게 남겨준 작가. 그의 소설들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쓴 사람을 세상에 재미없기 짝이없는 국문학사적 평가로 ‘한국 사실주의의 개척자’, ‘한국 단편소설의 선구자’라고 가르치는 바람에 오히려 고루한 교과서속 암기대상이 되어버린 이다. 그는 실은 언론인으로도 역사에 남았다. 1935년 일장기 말소사건 때 <동아일보> 사회부장이었고, 이 사건으로 1년 옥살이를 했다.


    좌우지간 이 유명한 소설가의 집터는 현재 허무한 황무지일 뿐이다. 원래는 1930년대 한옥이 있었던 곳. 그러나 1999년 문화재지정에 떨어지고, 그 뒤 2003년엔가 철거됐다. 어차피 한국에서 문화재는 문화재가 아니다. 지정되면 집주인이 망하는 시스템이라는 항변에 문화재가 맞기는 맞느냐는 논란까지 겹치면 그 틈새에서 문화재는 절로 망가져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이렇게 빈터만 남아서 폐허의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다.


    그런데, 270평 집터 뒷쪽으로 절로 눈길이 가게 되어 있다. 저 집은 어떤 집일까?




    역시 분위기가 제대로 된 분위기는 아니다. 가까이 가보려면 사진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입구에서 볼 때까지는 그래도 아주 이상하진 않은 집이다.




    운치 있는 저 돌계단으로 몇 단만 올라가면 바로 오른쪽에 범상치 않은 바위가 등장한다.




    ‘무계동’ 석 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원래 이곳은 ‘무계정사’가 있던 곳, 무계정사터다. 대단치 않아보여도 서울시 유형문화재다.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의 별장이었다. 안평대군은 누군가. 꿈에 이상향을 보고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던 인물, 그 자신 명필로 소문났던 왕족이다. 안평대군의 아버지는? 세종대왕이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세째 아들이다. 그러니까 수양대군이 그의 친형이다.


    안평대군은 정치적으로는 불행했다. 그는 조선 초기 격변하는 정세 속에 휘말려 죽임을 당해야 했던 불운한 왕족이었다. 조카 단종을 지키려다 형 수양에게 사약을 받고 만다.


    무계정사의 흔적은 자취 없이 사라졌고, 무계동 글자를 담은 바위 위로는 유래를 알 수 없는 한옥이 남아있다. 역시 사는 이는 없고, 폐가가 되기 직전이다.




    현재 이 곳은 사실상 버려진 터처럼 되어 있다. 마당에는 죽은 새가 떨어져 있었고, 뜬금없는 벤치프레스가 주인처럼 놓여있었다. 기단 위 주춧돌을 거북모양으로 하는 등 제법 공들이고 멋을 낸 한옥인데, 망가진 채 버티고 서있다.


    이 땅의 정확한 소유주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무계정사터가 시 유형문화재인데 이런 식으로 관리가 되어도 좋은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씁쓸했다. 날씨처럼 바라보는 마음도 우중충해졌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면 더욱 씁쓸한 현진건 집터가 펼쳐진다.




    아직 봄이 오기 직전 가장 칙칙할 즈음에 꿀꿀한 날씨와 쓸쓸한 풍경을 보고 나니 기분이 착 가라앉을 수밖에. 돌아오는 길 기분이나 풀자고 부암동에서 가까운 유명 건축 명소에 들렀다. 잘 지은 한옥, 잘 꾸민 정원으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조선 말기 한옥이다. 부암동 부근 상명대 삼거리 산기슭에 있는 대원군의 옛 별장,  지금은 음식점인 ‘석파랑’이다. ‘석파’는 대원군의 호다.




    가장 건축적으로 눈길을 끄는 건물은 저 언덕 의 크지 않은 집이다. 원형 창문이며 벽돌로 쌓은 구성이 조선 상류층 건축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난초를 잘 치기로 유명했던 대원군은 난초 칠 때만 대청방을 썼다고 한다.




    녹음이 우거질 때 보면 정말 예쁜 공간인데, 지금 가장 황량할 시점이어서 매력이 10분의 1도 나타나지 않는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꼭 구경해볼만한 집이다. 이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석파랑 전체 풍경도 좋다.




    이 석파랑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에서 나중 유명한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소유가 된다. 소전은 또 누구인가. 추사 이래 최고 명필이라고도 불렸던 소전은 일본으로 넘어간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를 일본에 건너가 소장자를 설득해 한국으로 다시 가져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이기도 했다. 당대의 명필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겠지만.


    그는 여기저기 헐려나가는 좋은 한옥들에서 나온 부재들로 이 곳을 꾸몄다. 이 아름다운 집은 그가 꾸미고 다듬은 또다른 ‘작품’이다. 지금은 비록 음식점이긴 하지만.(이곳 분위기를 보고 짐작은 하시겠지만 가격은 상당하다. 점심도 5만원 이상, 저녁은 10만원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물론 1인분에)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지만)와 중학교 시절 내내 이 집을 쳐다보며 등하교를 했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들어가보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봄이 되고 꽃이 피면 꼭 가서 구경들해보시길. 밥 안사먹고 들어가서 얼마든지 구경해도 된다. 왜? 서울시 문화재니까. 문화재란 즐기라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예쁜 창문과 벽돌 벽면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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