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세운상가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2008/03/24 

딸기21 2018. 8. 24. 16:24

옥상에서 만나는 놀라운 풍경 


세운상가의 가장 꼭대기 13층 옥상에 올라가보면 일단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옥상에서 먼저 만나는 이상한 풍경을 지난 뒤 바로 극적인 전망과 마주치면서 절로 나오게 되는 기분 좋은 탄성이다. 


먼저 옥상문을 열면 거대한 옥외 광고판 내부로 나오게 된다. 광고판 속에는 거의 폐허 수준의 옥탑방이 철제 광고판 뒷면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현실에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광고판 속을 지나 이제 진짜 옥상을 만날 차례다. 


좁은 계단을 열고 나오자마자 만나는 이 독특한 풍경을 거쳐 훤하게 뚫린 옥상으로 나가면 일순간 시야 전체가 확장되는 것처럼 속까지 시원한 놀라운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운데 긴 전통건축물이 들어있는 거대한 숲, 조선최고의 성지 종묘다. 



사진이 작아 영 아니올시다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저 종묘 숲을 만나는 감동은 실로 대단하다. 저 멀리 북한산에서 뻗어온 산줄기와 숲이 서울 내사산인 낙산을 거쳐 남산으로 뻗어가는 그 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숲의 길이 바로 종로와 만나면서 끊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저 풍경은 서울이란 도시에서 종묘와 그 주변 숲이 얼마나 소중한 보석인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지금 갈색인 저 숲이 봄이 되어 푸르게 우거지면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봐야 보이는 문제는 바로 저 북한산과 남산이 이어지는 산경축을 잘라버린 현실이다. 산의 맥이 숲으로 이어지는 그 축이 망가지면서 서울도 일그러진 것이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종묘의 전망은 그런 점에서 새로 재개발할 세운상가 일대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세운상가 재개발의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세운상가가 사라진 자리에 녹지대를 조성해 종묘에서 이어지는 숲과 자연의 푸른 띠를 남산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바로 그게 최상의 재개발임을 저 숲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한번 상상해보라. 저 숲이 원래대로 남산까지 이어진다면 어떨지 말이다. 종로, 청계천, 을지로의 칙칙한 회색 빌딩숲을 지나던 시민들이 종로3가, 청계천3가, 을지로3가에서 갑자기 푸른 숲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서울 도심을 푸른 숲길이 가로지르는 모습, 상상만해도 우리가 바라는 진짜 서울의 모습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재개발하려 하지 않는데 있다.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숲이 들어서는 것을 ‘비효율’로 여기는 막무가내식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시는 녹지대축을 이어주겠다고 하지만 고층 빌딩으로 세운상가 자리를 채우는데 따른 비난을 피해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색내기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에서 가장 소중한 문화재 앞 공간, 가장 공적이어야 할 공간을 시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동산 차익을 위해서 재개발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개발 논리는 사람들을 한가지만 생각하게 세뇌한다. 세뇌 당한 사람들은 건물을 헐고, 그곳에 무조건 더 높이 빌딩을 세우자는 말만 붕어처럼 뻐끔거리며 반복한다.


왜 더 높아야 하는가? 그 더 높은 빌딩을 지은 주체가 그렇게 생긴 이익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한단말인가? 아무런 논리조차 없이 무조건 높은 빌딩이 늘어나는 것이 마치 국력의 상징이 되는 것으로 여긴다. 전형적인 후진국 현상이다. 


저 좋은 전망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잠시, 얼마뒤 재개발과 관련해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남산과 종묘 사이는 재개발로 더욱 확실하게 절단될 것이다. 그걸 절단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한가하고 속편한 이야기로 몰아가는 속물주의의 시대다. 


그런 속상함을 달래고 앞으로 다시 올라올 기회가 없을 듯한 세운상가 아파트 옥상을 둘러본다. 예상 못한 골프 연습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골프를 치지는 않지만 이렇게 높고 탁트인 곳에서 저 멋진 남산을 바라보며 골프채를 휘두른다면 그 기분은 정말 좋을 것 같다. 만든 사람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곳에 이 골프연습대를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 골프 연습시설은 사용한 지 무척이나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골프연습대를 만들어놨건만 골프를 연습할만큼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던 것일까? 



골프 연습장 뒤로 바깥을 내려다보자 저 멀리 남산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 건물의 거대한 모양새가 눈을 압도한다. 무려 1킬로미터 길이의 초대형 건물의 덩치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노랑선으로 둘러싼 저 뱀처럼 이어지는 건물 전체가 우리가 세운상가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다시 이 저 거대한 빌딩을 따라 걸어가야 할 차례다. 종묘의 시원한 장관을 뒤로 하고 2층 고가보도로 내려와 청계천 쪽으로 향한다. 



퇴계로 방향으로 이제 오른쪽 고가보도로 걷는다. 철거를 앞두고 많이 상권이 죽어서 어디를 가나 한산한 편이다. 세운상가에서만 볼 수 있을 간판들이 중간 중간 놓여 있다. ‘몰카’를 상담환영한다니, 읽으면서도 낯설었다. 



긴 고가보도를 계속 걸어다가보면 세운상가에만 있을 법한 곳들도 나온다. 이름하여 ‘휴게실’. 배달 위주로 커피를 끓이는 최소한의 공간만 마련된 1인 점포다. 



긴 고가보도 중간중간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한결같이 낡고 초라해 마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도시 인더스트리아의 변두리 풍경을 연상시킨다. 



세운상가의 첫번째 건물인 종로 세운상가를 나와 이제 청계천 세운상가, 그러니까 대림상가로 들어갈 차례다. 두 상가는 청계천 다리 세운교를 사이에 두고 남시 나뉘었다가 이어진다. 종로 세운상가의 청계천쪽 모습이다.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것은 최근 세운교에 설치한 공공조형물 ‘솟대’다. 자체 조명기능이 있어 밤이 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이제 그 맞은편 청계천 대림상가로 들어간다. 대림상가는 디자인 분위기가 세운상가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대림상가 역시 아래는 상가, 위쪽은 아파트 구조다. 내부 공간은 가운데를 빛우물로 비워 채광을 한다. 세운상가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시 대림상가 옥상으로 올라간다. 세운상가처럼 옥상을 정원으로 꾸미는 등의 조경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건물 겉에 모양을 내는 등 제법 신경을 쓴 티가 난다. 



우선 옥상 건물 외벽을 치장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김수근 디자인이 아닐까. 시내에 남아있는 70년대 이전 건물들에서 간혹 만날 수 있는 외벽 꾸미기 방식이다.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옥상 구조물의 디자인이었다. 잠시 앉아서 담배라도 피기 좋도록 옥상 설비에 의자를 달아놓는 배려를 해놓았다. 건물 구석에서 만나는 이런 작지만 생활을 배려하는 디자인들은 사람을 미소짓게 만든다. 


이 커다란 세운상가 전체가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한 디자인으로 이뤄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잘못 태어난 거대한 상가는 돌연변이 괴물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죽어가고 있다. 서울이란 메트로폴리스 한 가운데에서 세운상가는 한시적이긴 하지만 네크로폴리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건축과 도시가 빚어낸 시대적 오류다. 세운상가가 일그러진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은 그걸 처음 구상한 몇 명의 실수 때문이었겠지만 그 폐해와 영향은 서울 시민 모두의 것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