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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의 골목에서 만난 일본스러움 2008/02/28
    도시 속 탐험하기 2018.08.16 16:16


     ‘저건 뭐지?’

    무척이나 날빛이 강했던 지난 여름 어떤 날, 도쿄 에도구 기요스미시라카와 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이었다. 평범한 주택가의 흔하디 흔한 골목길 구석에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늘 속에 조그만 물체 하나가 숨어있었다.

     


    처음에는 까만 비석인줄 알았다. 아끼던 개가 죽어 묻기라도 했나, 혼자 궁금해서 들여다봤다. 뜻밖에도 기념비였다. 30센티미터나 될까한 아주 작은. 적혀있는 글은 ‘사도 포장완성기념’. 자기 집 앞 길을 시멘트로 포장한 기념비였던 것이다. 

     

    재미있었다. 도시 전체로 보면 공사 같지도 않은 공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공사였겠는가. 그걸 저런 작은 기념물로라도 기념하려는 서민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소중한 일들을 자기 스스로 기념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겨우 1~2분이면 걸어 지나가는 이 짧은 골목길에서 나는 이 귀여운 기념비를, 그리고 또다른 일본스러운 재미를 하나 더 만났다. 두가지 모두 일본의 명승지나 유명 관광지에서 본 전통적 이미지보다도 내가 일본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던 ‘작지만 큰’ 것들이었다. 

     


     

    저 기념비를 지나치자마자 나오는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한 다세대 주택이었다. 노란 색칠이 예쁘다 싶어 힐끗 쳐다보는데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길과 건물이 만나는 작은 단 위에 앙증맞게 얹어놓은 것들이 보였다. 

     


     

    제법 멋을 낸 집이었다. 전등이기도 한 문패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수도꼭지 양쪽으로 콕콕 박아놓은 돌들이 눈길을 붙잡았다.

     




    저 돌들은 집주인에겐 작은 가레산스이였던 것이다. 마당 없는 각박한 콘크리트 덩어리 집이지만, 그 조그만 틈 속에라도 소우주를 담아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료안지의 그 유명한 가레산스이보다도 저 작은 돌멩이가 더 기억에 남는다. 물이 없어도 바다가 되고, 작은 돌이라도 섬이 된다. 


    가레산스이(枯山水)는 물을 쓰지 않고 돌과 모래로 정원을 만드는 일본의 정원양식이다. 돌을 써서 최대한 추상적이고 암시적으로 정원을 만든다. 이 가레산스이의 국가대표가 위의 저 료안지 북쪽 마당의 가레산스이다. 토담 건물 마당에 흰 모래를 깔고 돌 15개를 몇개씩 묶어 5개 세트로 곳곳에 배치했다. 영원성, 그리고 절제와 고요 같은 미학관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가장 일본스러운 이미지로 유명하다.



     

    가레산스이가 놀라운 것은 그 시각적 충격만이 아니다. 패러다임을 바꿨기에 놀라운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이 가레산스이는 물 없이도 정원을 꾸밀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그저 돌 몇덩이라도 내 맘에서 잡아낸 심상대로 배열해주기만 하면 그것이 나만의 작은 소우주요, 정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만 있다면 전통은 얼마든지 생활에서 이어갈 수 있다. 기요스미시라카와 부근의 저 평범한 빌라가 그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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