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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최고의 찻집-호수속 섬에서 즐기는 전통차 2007/09/07

딸기21 2018. 6. 14. 16:15

왼쪽으로는 어시장과 항만 장비들이 보이는 부두, 다른쪽은 거대한 초현대식 빌딩들의 숲. 그리고 그 사이 바다위에 초록빛 섬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도쿄에서 가장 큰 일본 전통 정원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마리큐온시테이엔'은 도쿄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1654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즈나는 스미다강 하류가 바다와 만나는 이곳을 매립해 섬을 만들었다. 작은 바닷물길이 둘러싸는 인공섬에 별장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정원 안에는 너른 꽃밭과 잔디밭을 깔고, 야트막한 동산도 세웠다. 그리고 섬 가운데 커다란 연못을 만들어 그 안에 다시 작은 섬을 들였다. 다른 정원에선 볼 수 없는, 물때에 따라 바닷물이 들어오는 연못이 섬 안에 탄생했다. 

어느새 300년 넘게 세월이 지났고, 권력자들이 사냥하며 자연의 운치를 즐기던 이 아름다운 정원은 이제 도쿄 시민들의 쉼터이자 관광객들의 순례지로 사랑받고 있다.

도쿄의 명물인 쓰키지(축지) 수산시장과 아사히신문 옆, 긴자의 끝자락이 만나는 곳에 이 하마리큐 공원의 입구 돌다리가 있다. 오른쪽 빌딩숲은 도쿄 도심속 신도시라는 시오도메 지역. 광고회사 덴츠 등의 사옥이 몰려있는 곳이다. 우뚝 솟은 고층 빌딩들 사이에 저 푸르른 숲이 있기에 하마리큐 공원의 매력은 배가가 된다. 그리고 다리를 지나 공원에 들어서면 갑자기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 공간이 펼쳐진다. 300년 넘게 가꿔온 공간의 연륜과 무게가 자연스럽게 풍겨나온다.

녹조현상일까, 연못 위에는 연두빛 이끼같은 물풀들이 떠있다. 가까이 보면 지저분하지만 사진으로 보면 잔디밭처럼 보인다.

숲길을 따라 난 길을 조금 걸으면 드디어 이 공원 최고의 포인트인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나온다. 섬 전체가 찻집이기도 한데, 연못 한가운데 섬에 있어 이름도 `나카지마(中島)오차야", 말 그대로 `섬찻집'이다.

연못 가운데 섬까지는 나무 다리로 건너가야 한다.

나무 다리는 건너다보면 금방이지만 실은 길이가 제법 길어 100미터가 넘는다. 다리 끝은 찻집. 오리를 사냥하던 쇼군들이 쉬어가던 정자는 이제는 매력 만 점의 찻집이 됐다.

찻집은 깔끔한 일본 단독주택처럼 꾸몄다. 검은 나무에 흰 글씨로 이름을 쓴 것이 간판의 전부다. 그 앞에 있는 표지판은 메뉴판이다.

찻집 안으로 들어서면 잔돌을 바닥에 깐 일본식 마당이 나온다.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정원조경법인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물이 없는 연못,  그 안에 돌을 섬처럼 세워 만들어내는 정밀한 공간. 가레산스이 돌 섬 위 올려놓은 하얀 돌개구리가 눈을 끈다.

찻집 안은 그저 깨끗하고 그래서 깔끔한 맛이다. 구석에는 붉은 우산이며 작은 화분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문득 화투짝 11월에 나오는 우산이 떠올랐다.

찻집의 메뉴는 단 한가지다. 500엔짜리 차. 녹차를 갈아만든 말차, 그리고 일본 주전부리 과자 한 점이 나온다. 말차에는 에스프레소 위에 뜨는 크레마처럼 잔 거품이 초록빛으로 떠있다.

연못 한가운데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는 운치는 단연 일품이다.  창 밖을 보면 앞에는 연못이 펼쳐지고, 그 뒤로는 고층 빌딩과 푸른 하늘이 이어진다.

잠시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연못과 푸른 숲을 바라보며 숨을 돌릴 수 있다니. 스타벅스 프라프치노 한잔 보다도 싼 500엔(4천원)이란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물론 입장료 300엔을 내야 이 찻집에 갈 수 있지만 말이다)  마침 찾아간 날은 아무 손님도 없어 이 호젓한 찻집을 혼자 전세 낸 듯 즐길 수 있었다.

30분 동안 작은 섬의 주인처럼 숨을 돌린 뒤 공원을 둘러보았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면 그래도 1시간 볼거리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하마리큐 공원은 바닷가에 만든 작은 섬이다보니 해상 버스로도 교통이 이어진다. 정류장 쪽 길을 걸으며 문득 긴자 바로 앞이 바다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수상버스로 이 섬을 찾는 것은 도쿄 야경을 즐기기 좋은 코스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정원 곳곳에는 재미난 돌들이 눈길을 끈다. 물가에 놓인 돌들의 모양이 자세히 보니 만물상처럼 꼴들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물을 마시려는 짐승처럼 물을 바라보는 이 돌짐승은 소일까, 곰일까? 설마 원래 이런 돌일까, 아니면 조잡하게 깎아만든 모양새일까?

쓸 데 없는 질문을 하며 돌아다니길 30여분. 도심속에서 1시간 동안 이정도로 일상속 탈출을 할 곳이 얼마나 되랴 싶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여름이 가기 전 창덕궁 후원에 가리라 생각하며 공원을 떴다.

그리고 돌아온 지 어느새 석달. 벌써 가을이다. 여름은 노루처럼 빨리 가버리고, 기억은 노루꼬랑지처럼 가는 여름 끝에 매달려 사라져 간다. 그래서 잊기 전에 이렇게 끄적거려 본다. 



섬 안 찻집과 압구정동의 관계는?

이 찻집 `나카지마오차야'(中島御茶屋)는 뜻밖에도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이 있어 더욱 흥미로운 찻집이기도 하다.

도쿠가와 가문이 찻집을 세운 것은 1711년. 그러나 당시 찻집 현판 글을 쓴 사람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이 현판을 쓴 인물이 당시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란 주장이 제기됐다. 이 공원의 관리소장을 지낸 사람의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현판은 2차대전 당시 원래 건물이 불타는 바람에 사라져버렸다.

당시 관리소장은 이 `나카지마오차야'가 `고오테이(狎鷗亭)'로 불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오테이(狎鷗亭)'는 한자 발음을 우리식으로 읽으면 바로 `압구정'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그 압구정이다. 조선통신사가 여기 들렀을 때 휘호를 남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도쿄에도 압구정이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