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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마음의 보석이 된 그 곳 2007/11/17
    도시 속 탐험하기 2018.06.26 17:20

    눈 앞에 정말 갈색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갈색 도시 한 가운데에서 옥빛 모스크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코발트빛의 진정한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문명길에 꽃처럼 피어난 오아시스 도시는 그림 같은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난 역사와 자연, 철학과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철없는 스물네살이었던 나는 사막 도시에서 잠깐이나마 어떤 본질적인 것과 조우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몇 번 안되는 순간이었다.


    사마르칸드의 상징 레기스탄 광장.


    1992년 2월, 러시아에서 연수중이던 나는 충동적으로 중앙아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턱대고 러시아로 날아갔지만 연수 1년이 되도록 미래의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기도 괴로운데 처음 맞은 러시아의 긴 겨울까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날씨가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실감했다.


    9월부터 시작하는 러시아의 겨울은 정말 길고, 어둡다. 오후 4~5시면 이미 어둑해져 다음날 오전 9시나 되어서야 밤이 사라진다. 그런 겨울이 5달째, 끝나려면 두달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이 짜증을 부채질했다.

     

    북구의 베니스로 불리는 운하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아름답지만 춥고 우울한 도시여서,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바닷바람이 겨울과 만나 더욱 을씨년스러운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날씨에 질려있던 나는 대학 구내여행사에서 모집하는 중앙아시아여행 안내 게시물을 보고 그 자리에서 참가 신청을 했다. 하늘도, 석조 건물도, 사람들의 외투도 모두 잿빛인 북방 도시를 탈출해 실크로드의 도시로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란 이름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러시아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낡고 탈탈거리는 비행기 안에는 놀랍게도 입석승객들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 공항은 게이트에서 표를 내고 통로를 거쳐 비행기에 탐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 앞에 가서야 표를 내고 타는 식이었다. 그래서 표를 미처 못 산 승객은 비행기 입구에서 곧바로 승무원들과 흥정해서 비행기에 타곤 했다. 자리가 남았으면 다행이지만 자리가 없으면 화장실 앞이나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다. 지금은 러시와 우즈베키스탄이 완전히 다른 나라지만 당시만해도 구 소련 국내선 노선이었다.


    비행기 가운데 통로와 화장실 앞 좁은 공간에는 그렇게 입석으로 탄 승객들이 줄줄이 앉아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처음 보는 그 황당한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잠시 뒤 만날 중앙아시아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흥이 절로 났다. 몇 시간을 날아간 비행기는 마침내 우즈베키스탄의 서울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드는 타슈켄트에서 다시 기차로 옮겨 타고 가야했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드로 가는 열차 안. 침대차다. 사진=구정은


    사마르칸드는, 예상 이상으로 쇠락한 느낌이 드는 도시였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내가 가보았던 어떤 도시보다도 아름다웠다. “만약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된다면 그 수도는 사마르칸드가 될 것”이라고 말한 역사가가 있었던가. 직접 사마르칸드와 만나 보니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사마르칸드를 알게 해 준 그 말에 감사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썰렁한 겨울 날씨를 잊게 해주는 사막 도시의 매력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마르칸드 구르 아미르의 돔 뒷편 모습. 사진=구정은


    그 때 중앙아시아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난생 처음으로 중앙아시아를, 우즈베키스탄을, 사마르칸드를, 사막땅을, 유목민의 나라를 밟았다. 실크로드의 보석이라 불리는 도시, 티무르의 도시 사마르칸드는 꿈꾸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갈색조 도시 속에 우뚝 솟은 레기스탄 광장의 모스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라베스크 무늬와 독특한 기하학 디자인이 시각을 파고 들었다. 


    사마르칸드에서 만날 수 있는 타일 무늬. 사진=구정은


    사마르칸드에서 부하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중앙아시아의 풍경은 모래가 바다를 이루는 사막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막이라 부르는 곳들은 실은 모래밭이 수평선 아득히 이어지는게 아니다. 가장 큰 사막인 사하라만해도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모래가 아니라 돌이 가득한 황무지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중앙아시아도 그런 모습이었다. 그 거친 땅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상인들이 마침내 이 오아시스 도시에 들어설 때 얼마나 반갑고 황홀했을까.


    우즈벡의 산악지대 풍경. 우즈벡의 서쪽은 사막이지만 동쪽은 산악지대로 향한다. 타슈켄트 교외에 있는 침간 산지. 높이 3000미터 넘는 산들이 이어져 있다. 사진=구정은.


    사마르칸드에서 느꼈던 중앙아시아 도시의 아름다움은 다음 방문지인 부하라에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마르칸드보다도 더 낡고 오래된 느낌의 부하라는 또 사마르칸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 그 매력은 사마르칸드도 부러워할만한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빛이 하늘에서 내리 비치지만, 부하라만큼은 빛이 땅에서 하늘로 올려 비친다”는 속담이야말로 부하라를 찬미한 최상의 표현일 것이다.


    부하라의 미르 아랍 마드라사. 사진=구정은


    고즈넉한 역사도시 부하라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심지어 칭기스칸의 공격에도 버티고 남은 부하라의 카란 미나렛은 온갖 감정을 무뚝뚝하게 떨쳐내고 홀로 우뚝 선 큰 바위 얼굴 같았다. 어두운 사막을 헤치고 가는 그 옛날 상인들은 저 멀리 빛나는 카란 미나렛을 보면서 부하라로 가는 길을 헤아렸을 것이다. 미나렛이 왜 사막의 등대인지 나는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부하라를 대표하는 카란(또는 칼론) 미나렛. 미나렛은 사막의 등대다.


    책에서만 만날 때 이슬람은, 사막은, 중앙아시아는, 그리고 오아시스는 모두 막연하고 판에 박힌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 이름만 알 뿐, 그 곳의 느낌은 짐작조차 못했다. 그저 복제된 이미지로 접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사람 사는 것과 사람 사는 곳의 같음과 다름을 진정으로 일깨우는 교육 이벤트다. 여행은 기계적으로 뇌에 입력됐던 지식들이 진정 내가 보고 느낀 것으로 다시 포맷되어 입력되는 쾌감을 준다. 우즈베키스탄 나들이는 그런 기쁨을 처음으로 안겨준 여행이었다.


    부하라의 옛 성곽. 사진=구정은


    그 전까지 나는 중앙아시아를 이국적이고 동떨어진 이상한 오지 정도로 여겼다. 왜 이 척박하고 거친 땅길에서 수많은 종교와 문화와 예술이 넘쳐 흐를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극동의 한반도와 저 먼 중동의 문화가 이어졌던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직접 가보면 그런 고차원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 역사적 의미는 생각해볼수록 경이로운 것이다.


    탑에서 내려다 본 부하라 시가지. 사진=구정은


    눈앞에 펼쳐진 갈색의 세상에서 난 내가 그 전에 읽었던 모든 지식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던가, 정주하는 이들과 이동하는 이들은 여기서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살아갔는가. 그들은 왜 수많은 종교를 만들어내고 그걸 전파했는가. 생각해볼 일 없었던 거창한 주제들을 실존적으로 처음 만나는 경험을 안겨준 것 만으로도 나는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4박5일짜리 짧은 여행이었지만, 내겐 그 어떤 여행보다도 1992년 중앙아시아 여행이 강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뒤로 언젠가 꼭 제대로 실크로드를 찾아가리라,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 그 꿈은 지금껏 실현되지 못했고, 그래서 난 늘 실크로드를 꿈꾸며 목말라하고 있다.


    부하라의 풍경.



    중앙아시아 나들이를 끝내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나는 두번째 러시아의 겨울을 맞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허무맹랑하게 무턱대고 저질러보자고 떠났던 러시아 생활은 그렇게 1년만에 끝났다. 암울한 시절이었지만 중앙아시아로 떠났던 기억이 암울했던 시절 사이에 보석같은 추억으로 뱍혀있다. 


    15년이 흐른 탓에 종종 그 기억을 잊고 살아가지만,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이란 이름과 실크로드란 말을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마음속에선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로 날아간다. 그리고 오만 생각을 떠올린다. 


    내가 들어가 점심을 먹었던 그 우즈베키스탄 가족들의 집은 아직 그대로 있을까? 시장의 고려인 김밥 장사 아줌마는? 그 값쌌던 개고기집은? 집에서 들고 나온 듯한 놋그릇을 팔던 그 소년은? 그리고 항상 ‘언젠가는 실크로드’란 꿈을 되새김질하는 것으로 추억을 마무리한다.



    최근 동생의 홈페이지에서 우즈벡을 다녀온 동생의 글을 읽었다. 사마르칸드와 부하라, 그리고 난 가보지 못한 또다른 역사도시 히바까지 다녀온 여행기였다. 동생의 기행문을 읽으며 사람들은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15년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 역시 그곳에서 묘한 문화적 충격과 감흥에 빠졌다고 적어놓았다.


    “그 시간은 감동이었고, 내가 이렇게 이 곳에 와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신비스러웠고, 어쩌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곳에 있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면.” 


    동생의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어느새 우즈벡의 두 도시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때 사진을 올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필름이 없어 이번에 다녀온 동생 사진을 허락을 받고 퍼왔다. 사진에 이름 크레딧이 달린 사진들이 동생 것이다.


    사마르칸드와 부하라, 그 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잠시 나마 난 행복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심한다. ‘언젠가는 실크로드!’  


    부하라의 골목길. 사진=구정은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 대한 좀더 전문적인 설명은 듣고 싶다면?

    2006년 문명교류사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가 <한겨레>에 연재한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 제22회를 참고하시길.


    중앙아시아 역사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알고 싶다면?


    아쉽게도 이 지역의 역사를 쉽고 깊이있게 잘 정리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01년 출간된 이산출판사의 <실크로드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다.


    <실크로드 이야기> 중에서


    이 책은 수잔 휫필드란 돈황학 연구자가 쓴 책인데,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크로드 역사에 대한 책으로는 가장 괜찮다는 평을 듣는다. 바닷길로는 갈 수 없는 곳,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사막과 고원지대의 틈바구니에 있는 중앙아시아란 지역이 어떤 역사를 일궈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중앙아시아라고 하면 대부분 역사적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 나름의 문명도 문화도 없는 유목민의 땅으로만 여기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 역사인물들을 활용해 소설처럼 서술해 들려준다.


    책의 앞머리에서 8세기 이전 이 지역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술술 풀어주는 서문이 특히 매력적이다. 수세기 동안 명멸했던 많은 왕조들과 문명의 흥망사, 그리고 이 지역을 통해 전해진 불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등 수많은 종교의 발전사를 단 30쪽 분량 속에 잘 압축한 지은이의 글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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