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또 못찍은 서울산업대의 숨은 보물 2010/01/05

딸기21 2023. 10. 18. 21:21

평생 종로구와 서대문구에서 살다가 결혼 이후 노원구로 이사오면서 동네 주민으로써 친숙해진 대학이 삼육대와 서울산업대다.
 
삼육대는 우리 가족에게 숨겨놓은 보물 같은 산책 코스다. 
삼육대는 다른 어떤 대학보다도 교정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캠퍼스 전체가 금연 구역이어서 꽁초 따위의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잘 생긴 소나무길이 일품이다. 그러나 역시 삼육대 최고의 매력은 불암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숲길 산책코스. 잘 가꾼 숲 속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제법 넓은 아름다운 호수 제명호가 나온다. 거북이와 물고기가 노니는 이 호숫가를 거니는 즐거움은 왠만한 공원이나 숲 산책코스 저리가라다.
 
서울산업대는 삼육대처럼 자연이 아름다운 교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대학들 못잖게 교정이 운치있다. 그리고 캠퍼스 안에 진짜 보물이 들어있다. 나라의 보물, 건축문화의 보물인 등록문화재 건물 두 곳이다.
 
이번 폭설 정도는 아니었어도 제법 눈이 많이 내렸던 연초 연휴에 심심하기도 하고 문화재 건물 두 곳 사진도 찍을 겸해서 눈 덮인 산업대 교정을 어슬렁거리며 돌았다. 

 

 

이 고색창연한 건물이 산업대 안에 있는 등록문화재 중 하나인 대륙관이다. 타일을 붙인 키작고 낡은 건물이지만 오래된 건물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풍겨나온다.
 
이 건물은 2년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원래 서울대 공과대학의 전신인 옛 경성제대 공대가 이 곳에 있던 시절 광산학과 건물이다. 철저한 좌우 대칭에 중앙에는 현관이 돌출되어 있고 건물 가운데가 탑처럼 솟은 모습이 전형적인 이 시기 권위적인 학교 건물 건축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가 됐다.

 

 

건물은 아담하고 자세히 보면 제법 낡았다.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고 단정한 디자인이 나름 매력적이다.

 

 

서울산업대에 있는 이 시기 오래된 건물들은 모두 건물 앞에 대칭적으로 권위를 강조하는 조경을 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대륙관도 앞에 나무들이 짝을 이루며 건물 입구를 근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산업대의 간판스타 건물은 아무래도 이 아담 사이즈의 대륙관보다는 등록문화재로 훨씬 먼저 지정되었고 건물 덩치도 훨씬 큰 다산관이라고 해야겠다. 바로 이 건물.

 

 

다산관은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로 지어져 광복 이후 서울대 공과대학 건물로 쓰였다.  그리고 서울대가 이사가면서 이젠 산업대의 주축 건물이 되었다. 아주 오래되진 않았어도 당시 학교 건축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로 일찌감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역시 일본식 건축물스럽게 건물 앞에 현관 부분이 튀어나와있다. 권위와 웅장미를 강조하는 전형적이고 오래된 기법이다. 타일을 붙인 외벽도 이 건물의 시기를 짐작케한다. 단순하면서도 나름 제법 멋을 낸 스타일이다. 당시 최고 교육기관 건물이었으니 당연한 그렇게 지어야 했겠지만.

 

다산관을 설명하는 문화재청 푯말. 건축적 의미를 쉽게 알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하기는커녕 관청 내부 문서에 써도 지루하기 짝이없을 투로 건물이 도대체 왜 중요한지는 구체적 설명 없이 추상적으로 적었다. 일반인들에겐 큰 관심이 없을 지정 번호와 면적 등을 먼저 표기한 점 등도 전형적인 관리자 관점을 보여준다.

 

 

건물 내부는 많이 고쳤어도 중앙 계단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학교 계단의 모범과도 같은 디자인 그대로 남았다. 창문이 작은 옛날 학교답게 복도 쪽은 상당히 어둡다.
 
건물은 ㅁ자 모양으로, 중간 정원인 중정이 있다.

 

 

때 묻은 유리창 위로 찍어 좀 칙칙한데, 원래 분위기도 좀 칙칙하다. 그레도 싱싱한 새 건물에 없는 포스랄까, 아우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 화단 처리 등을 보면 일제 시절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런데, 이 건물을 볼 때마다 난 혼자서 너무 아쉬워 가슴을 친다. 진작에 사진을 미리 찍었어야 하는데 계속 놓쳐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 건물 가운데 솟아있는 저 탑처럼 높은 부분 위에 원래 시계가 있었는데, 미처 사진으로 못찍은 탓이다. 아주 깔끔한 디자인의 시계가 건물 전체의 디자인과 잘 어울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근사한 시계탑 건물이었다. 바로 위 사진 속 오렌지색 홍보천막을 붙여놓은 위에 시계가 있었다. 그러나 2년 쯤 전인가 시계를 철거해 이젠 이름만 시계탑 건물로 남았다.

 

다산관 옆에서 썰매를 타는 동네 어린이들.

 

시계가 있을 때 진작 찍지 못했더니 어느날 갑자기 시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가까이 살고 있어 항상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게으름을 핀 것이 잘못이었다. 뭐든지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인데, 자료 사진 찍는 것이 꼭 그렇다.
 
시계가 있던 시절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함부로 퍼올 수도 없고 해서 잘 찍은 사진 한장을 링크걸어 둔다. http://photo.naver.com/view/2008071522415843276
 
그 뒤로 그래도 사진 찍어 두자고 오거나 우연히 산업대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또한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은 저 탑 부분에 늘 학교를 홍보하는 무언가가 붙어 있어서 그런 장식 없이 건물 표면이 모두 드러난 순간을 매번 놓쳤다. 모처럼 간 이 날 역시 학교 알림판이 붙어 있었다.

 

중정쪽에서 바라본 탑 부분.

 

눈길에 굳이 이날 다산관에 찾아갔던 것은 최근 나온 근대건축물에 대한 책 <모던 스케이프>에서 이 다산관을 찍은 사진을 보았는데 눈 덮인 겨울날 사진이었다. 눈과 건물이 어우러진 멋진 사진에 나도 한번 그렇게 찍어보자고 갔는데, 눈은 녹기 시작했고 탑에는 홍보물이 걸려 또 이 건물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번 놓치니까 계속 놓친다.

( <모던 스케이프>는 근대건축물을 집중 조명한 좋은 길잡이책이니 관심있는 분들 읽어보시길. 건축전문 사진가들의 사진 보는 재미도 풍성하다.)
 
아쉬웠지만 대신 산업대 교정을 거닐며 이 학교만의 매력을 즐기고 왔다. 널찍하고 잘 가꾼 교정이 눈에 덮인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산업대 교정의 명물인 호수.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고 위에 눈이 내려 하얀 벌판이 됐다.

 

눈 덮이 얼음 위로 용감한 누군가가 걸어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저러다 큰일 나는데... 그래도 대학생들을 누가 말리랴.

 

 

다산관과 건축 세트를 이루는 창학관도 여전히 근사했다. 저 건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더 밝고 잘 지은 새 건물들을 바라겠지만, 구경꾼의 눈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더 좋아보이는 법.

 

 

앙상해진 나무들도 눈 덕분에 멋지게 변신했다.

 

 

슬슬 구경을 마치고 건물 바깥으로 나섰다.
산업대의 보물인 다산관과 탑 부분을 이번에도 제대로 찍는데 실패했지만 뭐 어쩌랴. 좋은 교정 구경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할만한 산업대의 또다른 특별한 담장. 나무로 만든 생울이다. 콘크리트 담으로 학교 교정을 가리고 막지 않고 키 낮춘 나무 울타리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학교 안을 시원하게 구경할 수 있게 한 저 담, 이 또한 훌륭한 건축이 아닌가.
 
서울 동북쪽 끝자락에 들렀다면,

아직 삼육대와 산업대 교정을 보지 못했다면,
잠깐 두 학교를 구경해보시길 바란다. 삼육대의 숲길, 산업대의 문화재 건물들이 비록 화려하고 대단하진 않아도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맞아줄 것만은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