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비좁음을 판다-골목의 경쟁력이 문화자산이다 2009/08/18

딸기21 2020. 9. 17. 22:48

관광코스가 된 도쿄 부근 하모니카 골목
 
도쿄 외곽 기치조지 역 앞 상가 거리 안에 또다른 거리가 있다. 아주 좁은 골목길 ‘하모니카 요코초’다. 작은 상점들이 하모니카의 구멍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붙은 이름이다.
 

  
큰 길가 중간에 하모니카 요코초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사진을 보면 입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상점 중간에 난 노란 간판으로 입구임을 써붙여 놓은 곳이 입구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런 입구들이 여럿인데, 대부분 좁고 어둑해 입구가 맞나 싶다. 안으로는 어둑하고 좁은 골목들이 꼬불꼬불 펼쳐진다.
 

 
이제 골목 안으로 들어가보자. 사람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이 좁은 길안에 온갖 업종들이 모여있다. 점집, 국수집, 꽃집, 맥주집, 분식집, 장식품집...


골목안 풍경은 가지가지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어둑한 쪽은 한산하고 쓸쓸하다. 등 굽은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할머니와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까. 앙상한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국 할머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당들은 손님 의자가 2~3개 수준이다. 우리나라 테이크아웃 커피점들보다도 훨씬 작다. 대신 꾸민 모양이 재미있다. 좁은 공간을 참 구석구석 어떻게든 활용하는 모습이 비행기 수납공간 활용 저리가라다.
 


카페풍 가게들이 모인 골목은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훨씬 깔끔하다. 
 


골목 안에도 메인 스트리트와 샛길이 있다.
 


나름 이름을 붙여놓은 모양이 그럴 듯하다. 꾸미려 들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적어 붙인 저 이름판이 이 골목과 잘 어울린다.
 


이 하모니카 요코초는 예상 이상으로 도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 코스다.

이 비좁고 열악해보이는 재래 시장 골목길은 예전 암시장 거리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때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여기에 이 골목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가 더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좁은 시장 골목 장면이 바로 이 골목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진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찾지는 못했다. 대만의 야시장을 모델로 했다고도 하고, 이 하모니카 요코초가 모델이란 이야기도 나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은 지브리미술관이 이 곳에서 아주 가까운 것을 감안하면 하야오가 이 동네를 몰랐을리는 없어보인다. 좌우지간 이런 입소문이 퍼졌고, 좁고 복잡하지만 이젠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옛날 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한 곳으로 유명해지면서 이 골목 하나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은 이 시장 골목의 비좁음과 부대낌, 그리고 옛 분위기를 즐긴다. 알맞게 더럽고 알맞게 복잡하고 알맞게 낡은 이런 공간에서 평소 느끼지 못할 정취를 느껴보려는 것이다. 바로 옆에 크고 활기찬 시장 골목이 이어지지만 이 골목은 개발되지 않고 옛모습대로 남아 오히려 옆시장보다 더 큰 유명세를 누린다.
 
꼬치구이만 파는 비좁은 골목, 야키도리 요코초
 
거대 도시 도쿄에서도 가장 중심 중 하나인 신주쿠 부근은 첨단 고층 건물과 낡고 오래된 허름한 건물들이 공존한다. 신주쿠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는 철길 바로 옆, 보기만해도 허름한 골목이 하나 나온다.
 


입구에는 골목 이름이 크게 붙어있다. ‘야키도리 요코초’. 닭꼬치 골목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꼬치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역시 차도 못들어가는 좁은 골목 안에 꼬치구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꼬치를 구워대고 있다.


구조도 메뉴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꼬치류들에 맥주나 사케를 곁들여 판다. 뜨끈한 국물도 물론 있다.
 


꼬치 골목 이야기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꼬치 사진도 한 컷.


무척  더운 날이기도 했고, 목도 마른데 꼬치 안주에 맥주 한 잔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맛? 뭐 특별하진 않았다. 무난한 닭꼬치였다.

그럼에도 이 골목은 특별하다. 물건 나르기도 비좁을 정도로 열악하고 그늘진 골목이 특색있는 아이템으로 명물이 된 것이다.
넓고 쾌적한 거리에 현대식 꼬치집들이 있었다면 아마 오히려 더 장사가 안될 것이다. 비좁고 어두운 대신 특별한 분위기를 내는 이 골목길의 골목다운 느낌이 좋아서 사람들은 찾아온다. 일본 특유의 골목, 요코초는 이렇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골목은?
 
일본의 저 두 유명 골목을 보신 소감들은 다들 비슷하시리라 생각한다. ‘뭐 우리나라에도 많은 골목과 특별히 더 다를 것도 없네’ 정도가 아닐까?

맞다. 정말 별것 아니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것들이 대단한 문화자산처럼 활용되고 받아들여진다. 그게 참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골목이란 공간의 묘한 힘을 잘 보여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도심속 골목은 가장 중요한 문화관광 자산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역사도시 도심의 어둡고 비좁은 골목을 좋아한다. 역사적 의미가 없어도 아기자기한 쇼핑 골목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쇼핑센터를 갔다면 반드시 그나라 사람들이 복작대는 좁은 도심 골목을 쏘다니고 싶어한다. 왜? 비좁으니까!
 
사람들은 부대끼고 비좁은 골목길의 느낌이 좋아 골목길을 찾아다닌다. 넓고 편안한 길보다 좁고 복작거리는 길이 돌아다니기에는 더 매력적이어서다.
생각해보라. 서울의 넓고 세련된 강남의 그 큰길보다 왜 요리조리 사람이며 각종 간판 피해다녀야 하는 강북 도심의 골목길들에 사람들이 더 많이 걸어다니는 것일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알맞은 ‘부대낌’과 ‘비좁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큰 길과 네모 반듯한 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맞춘 거리다. 그래서 넓고 깨끗하고 인도 포장도 잘되어 있어도 걸어다니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이런 좁은 골목이 하모니카 요코초처럼 사랑받으려면 에는 그러나 또다른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바로 문화적, 사회적 특별한 이야기다. 똑같은 곳이라도 사연이 있는 곳이면 달라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사연의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것 자체로 골목에 가는 재미를 추구한다. 실제 그 골목의 풍경이 특별히 대단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그런 골목이 없을까?
600년 역사 도시 서울에 그런 골목이 없을 리 없다.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곳이 피맛길이다. 종로 큰 길에 하도 고관대작 나으리들이 지나다녀, 그 행차에 예절 갖추기 귀찮은 서민들이 아예 안보이게 피해다녔던 좁은 뒷길, 마차 행렬 피하는 길이라고 피마길이란 이름이 붙은 길이다. 교보문고 입구에서 시작해 종로3가까지 이어지는 좁은 이면도로 골목이다.
 


매운 낙지로 유명한 맛집들, 그리고 다양한 서민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도쿄의 골목길이나 서울이나 비슷하다. 저 골목의 빈대떡집 떠올리는 분들 많을 것이다.
 


첫 직장이 교보빌딩에 있었던 관계로 나는 저 골목에 대한 추억이 많다. 입사 동기들과 막거리 마시며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처음으로 돼지기름 빈대떡을 먹었고, 무교동 낙지를 먹고 이렇게 매운 음식을 왜 먹나 놀라기도 했다. 복날이면 쫄따구였던 관계로 11시20분에 먼저 달려나가 보신탕집에서 자리를 잡고 동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종로 큰길의 현란한 가게들은 늘 바뀌어도 저 골목안 풍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 늘 반갑고 좋았다.
 
그러나, 이제 이 골목은 이렇게 변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종로 큰길쪽 건물들이 모두 헐려 지금 피맛길은 공사판 옆 인적 뜸한 공간으로 변했다.
 


이 골목의 간판스타이자 터줏대감인 열차집이 버티고 남아 영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맞은편 골목 전체가 공사로 사라져 애처로울 지경이다. 사람들 역시 이 황량한 골목을 잘 다니지 않는다.
 
지금은 종로 1가 피맛길이 공사중인데, 이 골목길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미 재개발로 골목의 맥이 바뀐 종로2가 르 메이에르 건물쪽 피맛길이다.
 


피맛길 중간에 큰 건물이 들어선 다음 이 골목이 잠시 사라졌다가 이렇게 따로 낸 입구로 다시 이어진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예전 길의 맥을 이어주려 한 것 자체는 욕할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 정취와 느낌은 단절되고 바뀐다. 이렇게 변한 골목이 다시 세월이 지나 독특한 분위기를 갖게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것 투성이다. 저 입구에 설치한 홍살문만해도 그렇다. 정확한 모양을 따른 것이 아니라 대충 우리 전통 홍살문 느낌대로 만든 모사품이란 것은 그렇다고 치자. 홍살문이란 원래 신성한 곳,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곳에다가 놓는 아주 중요한 조선시대 공공디자인 아이템이었다. 왕릉, 성균관, 향교 등의 앞에다만 저 홍살문을 놓는다. 전통 느낌 나는 것이라고 무조건 세워놓는다는 것은 그 의미에 맞지 않는다.
 
다행히 저 르메이에르 앞에서 한번 맥이 끊긴 피맛길은 종로 2가 구간에선 그래도 큰 변화없이 버티고 있다.
 


잠시 빌딩 숲을 피해 좁은 저 길을 다니는 맛이 좋아 종종 다니곤 한다. 이런 골목들이 많아야 도시에 다양한 표정들이 살아있게 된다.
 
문제는 이런 골목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
교보 뒷쪽말고 광화문에도 좁은 골목들이 여럿이다. 다른 골목들처럼 샐러리맨들이 술잔을 기울이곤 하는 좁은 음식점 골목들이다.

 

사람들은 피맛골을 좋아도 하지만 그만큼 싫어하기도 한다. 여성들의 경우 결코 걷고 싶지 않은 곳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 이유는 더럽기 때문이다. 
커서를 위로 올료 일본 하모니카 요코초 골목 풍경과 한국 피맛골 풍경을 다시 한번 비교해보라.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쓰레기’의 차이다. 
피맛골은 곳곳이 쓰레기다. 상점들이 내다놓은 것들이다. 물론 상인들은 강변할 것이다. 좁고 낙후된 골목이어서 이렇게 해왔다고, 그리고 상점 안에 쓰레기 봉투를 놔둘 수는 없지 않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마인드로는 안된다. 골목은 깔끔한 지저분함이 허용되는 곳이어야하지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놔둬도 되는 곳은 아니다. 골목을 자기 공간으로 삼고 있는 가게 주인들 스스로 골목으로 사람들이 오고 싶게 만들어도 부족한 판에 골목을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으로 놔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은 오히려 저런 지저분한 골목을 빨리 없애는 것에 더 동의하게 된다. 

 

 


이 사진속 골목들은 지금 대부분 그 모습이 사라졌거나 공사중이다. 서울 광화문 구 도심 일대 재개발로 가늘게 이어지던 옛 골목길들이 사라지고, 크게 바뀌고 있다. 낡고 더러운 지역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은 좋지만 골목의 가치들이 평가 못받고 사라지는 것은 도시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없애는 일이다. 성형한 얼굴에 한계가 있듯 골목을 인위적으로 없애버린 도시의 매력에는 한계가 있다. 골목이 갖고 있는 비좁음의 매력이 불편하고 더러운 도시의 어두운 일면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그런 매력을 살려 키워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서울 도심에선 개성적인 골목들이 사라져간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그건우리 대부분이 서울이란 큰 도시에 대해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어두운 골목을 없애자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은 또 재개발 하나보다 심드렁하게 지나치게 된다. 그럼 골목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인 상인들도 그리 애정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골목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자산이다. 이미 많은 골목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너무나 널렸던 이런 골목들이 사라지는 바람에 지금 남아 있는 골목들은 더욱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됐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특별한 곳으로 골목을 찾는다. 그래서 남아있는 골목들은 소중하다
.
일본의 저 하모니카 요코초나 야키도리 요코초를 보면 우리 골목들보다 더 나을 것 없는 비슷한 골목들일뿐이다. 별 대단치도 않은 저 골목들에 외국인들이 찾아간다. 그리고 그 이전에 시민들이 사랑하며 상인들고 골목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 차이는 사소한 듯해도 엄청나다.
사라져가는 서울 골목에 진정한 햇살이 드리워지려면 골목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비좁음도 소중한 가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