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파리에 가면 꼭 보게되는 너, '고귀한 표준' 2013/08/06

딸기21 2024. 3. 1. 14:26

특정 도시에 가면 반드시 찾아가게 되는 건물이 있다. 그 도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물 또는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파리라는 도시는 어떨까? 건축의 백화점처럼 수많은 유명 스타 건축물이 즐비한 파리에서 단 하나의 건물을 꼽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일 것이다. 에펠탑, 루브르, 개선문 같은 스타 건물들이 즐비하고, 현대 건축의 주요작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찾아가게 될 때마다 새로운 건물을 보러 다니기도 바쁜 도시가 바로 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건물만 꼽으라면?
정말 파리에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건물, 그리고 갈 때마다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물을 꼽으라면 어쩔 수 업이 이 건물을 고르겠다. 바로 노트르담 성당이다. 프랑스에 노트르담이란 성당이 수두룩하니 정확하게 `노트르담 파리' 성당이다.

 

오랜 보수를 통해 표면의 때를 벗고 깨끗해진 노트르담 성당. 너무 깨끗해져서 좀 아쉬울 정도다.

 

파리의 역사가 시작된 시테섬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곳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건축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실로 중요한 건물이다. 서양하면 떠오르는 건축 양식, '고딕'을 대표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건축학자도 아닌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 건, 이 건물은 매번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파리에 가면(실은 몇번 가지도 않았지만) 성지 순례하듯(진짜 성지이니) 이 건물을 꼭 찾아가게 된다(감사하게도 입장 무료다).

 

6층이 넘는 건물이 거의 전혀 없는 파리 구도심에서 노트르담 성당의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다.

 

노트르담에 왜 매번 찾아가게 되는 걸까.

그건 이 건물의 '묵직한 내재적인 힘' 때문일 듯하다. 노트르담은 화려한듯하면서도 정제되어 있고, 둔중한 듯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고양시킨다. 1000년 가까운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아우라는 건물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눈과 가슴을 휘감아버린다.


고딕은 19세기 이전까지 피라미드보다 더 높이 솟았던 유일한 초고층 건축 양식이었다. 그리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러나 노트르담은 어마어마하게 높지는 않다(탑 높이 69m). 그럼에도 압도적이다. 묵직하고 단단한 모습은 세월의 흐름을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버텨온 이 건물의 뚝심을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가 이 건물에게 "돌의 거대한 교향악"이라고 했던 것은 실로 적확한 표현이다.
 
고딕에서 노트르담보다 외관이 화려한 건물은 많았다. 눈을 어디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정성껏 꾸민 고딕 성당들은 인간이 돌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극한을 보여줬다. 밀라노의 대성당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밀라노 대성당. 정교한 장식으로 짓는 데 수백년이 걸린 건물이다.

 

저 높은 하늘을 위해 치솟은 고딕은 점점 더 높아지고 점점 더 화려하고 섬세해졌다.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도 진화했다. 아니, 성당에서 내부는 외부보다 더욱 중요했기에 중세의 장인들은 그들이 가진 기술의 절정을 뽑아내 내부 공간을 꾸몄다. 고딕식 끝이 뾰족한 아치가 만들어낸 새로운 구조는 천장을 최고의 볼거리로 바꿔놨다. 영국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예배당은 고딕 건축의 실내가 얼마나 황홀한지 잘 보여준다. 

 

 

거대한 나무처럼 솟아오른 기둥이 천장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가지 하나하나는 잎맥처럼 정교하게 퍼져 장관을 이룬다. 천장은 높아지는데 벽은 더 얇아지고 기둥은 더 가늘어졌다. 그래서 유리창은 훨씬 더 커졌고, 화사한 스테인드글래스는 성당 내부에서 빛의 축제를 벌일 수 있게 됐다. 고딕이 빚어낸 예술이다.
 
그러나 노트르담 파리 대성당은 고딕 최고는 아니다. 외부는 밀라노 대성당보다, 내부는 킹스 칼리지보다 검소하다.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

 

정교한 장식은 거의 없이 아치 그 자체의 구조미뿐이다. 어두운 공간에 뿌려지는 빛은 훨씬 적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이 성당은 어디에도 가벼움이 없다. 돌과 신앙심과 시간이 만들어낸 힘이 충만하다. 그 느낌은 찾아갈 때마다 더욱 강렬해진다.

 

모든 건축물을 감상하는 과정이 다 똑같겠지만, 이 놀라운 성당은 먼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전체의 덩어리감을 먼저 느끼고, 정면으로 다가가 압도적인 위용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

 

 

거대한 돌 건물의 위엄을 시야 전체로 받아들이고 나면,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전면의 돌 조각들은 물론 그 자체로 예술이다.

 

 

저들이 어떤 성인인지 하나하나 알 수는 없지만 돌에 새긴 정신과 신념은 보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전해진다.

그리고, 거대한 전면에 견주면 아담한 문을 만나자.

 

 

섬세한 금속 장식이 뒤덮은 문은 보기만 해도 정성과 아름다움에 즐거워진다. 쇠를 구부리고 자르고 파냈을 장인들의 수고로움이, 신에게 자기 재능으로 보답하려한 그 마음씨를 상상해보게 된다.

 

 

문을 지나면 잠시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눈이 어느 정도 맞춰지면 웅장하고 담백한 실내가 펼쳐진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탑 자체는 높지 않아도 내부는 결코 낮지 않다. 장식없이 치솟은 기둥들을 따라 눈을 올리면 절로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실내 높이는 무려 35미터. 12층 높이를 하나로 튼 거대한 실내는 고딕 성당말고 다른 곳에서는 만나보기 어렵다.

 

정중앙에서 중심축을 어느 정도 바라보고 나면 중앙 공간 오른쪽 옆 복도로 서서히 걸어간다. 노트르담 성당의 옆 길이는 무려 130미터. 제단이 있는 쪽으로 가는 중간, 이 성당 최고의 자랑거리가 등장한다.

 

 

고딕 성당의 상징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의 간판스타 장미창이다.

밖에서 보면 과연 빛이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어두운 창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그 화려한 빛의 향연에 감탄하게 된다.

돌로 만든 정교한 창살들이 꽃처럼 피어나 번져나가며 성경의 내용을 빛으로 가르쳐준다. 장미창 부분만 확대해보자.

 

 

성당 건축에서 머리쪽은 성지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을 향하고, 남북으로 교차하는 두 팔 부분에는 장미창을 낸다.

이 장미창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이 노트르담 파리 성당의 것이다. 1250년부터 20년에 걸쳐 만든 걸작이다.

 

 

맨 끝 제단이 있는 부분은 아쉽게도 일반 관광객들은 보기 어렵다. 그래서 자료 사진으로 대체한다.

동그란 머리 부분 가장자리로 난 복도를 유턴하듯 둥글게 돌아 다시 북쪽 장미창을 감상한 뒤 100여미터의 긴 복도를 걸어 입구로 나아간다. 다시 밝은 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오면 잠시나마 또다른 세상으로 떠났던 짧은 여행이 끝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시 보이듯 되돌아온다.

 

그렇다고 성당 감상이 벌써 끝난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내부와 만나고 싶어 지나쳤던 겉모습을 찬찬히 맛볼 차례다. 딕의 또다른 진수, 반드시 밖에서 봐야만 하는 중요한 부분이 남아있다. '플라잉 버트리스'다.

돌이나 벽돌로 건물을 짓던 옛날에는 건물이 높아지면 그 무게를 더 잘 지탱하도록 버팀벽(버트리스)를 댔다.

그런데 고딕은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버팀벽인 버트리스도 진화했다. 훨씬 더 멀고 높게 튀어나와야 했다.  그러나 단순히 높고 두꺼운 벽 형태로만 뽑아낼 수는 없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이었다.

성당에서 빛은 가장 중요하다. 어두운 성당 내부에서 신비롭게 비치는 빛은 곧 초월적인 존재인 신을 상징하는 것이어서다. 그래서 안전하게 벽을 지지해주면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가리지 않도록 버팀벽에 아치를 활용해 가느다란 팔 형태로 만들었다. 이게 플라잉 버트리스다.

 

노트르담 성당 옆의 플라잉 버트리스.

 

플라잉 버트리스로 진화한 데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무겁기 짝이 없는 석재를 줄이고, 긴장감 넘치는 모습을 장식적으로 표현할 필요도 있었다. 플라잉 버트리스들은 곧 건물 구조와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능적 장치인 동시에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렇게 가는데도 저 무거운 돌벽을 지탱하는 모습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친다.

 

이 플라잉 버트리스가 고딕에서 시작된 건물이 바로 노트르담 파리 성당이다(학자에 따라 이견도 있다). 그래서 노트르담은 고딕 건축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후 유럽 전역에 지어지게 되는 거대한 고딕 성당들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최초의 고딕 성당은 생드니 성당이었지만, 고딕 건축의 원형이 된 것은 노트르담이었다.

 

노트르담이 킹스 칼리지처럼 내부가 화려하지 않고, 밀라노 대성당처럼 외부가 휘황찬란하지 않은 것은 이들보다 앞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덜 화려하고 덜 높지만 대신 `원조'가 지니는 아우라가 있다.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수많은 평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고귀한 표준'이란 말이다.

 

 

또 하나 외부에서 봐야 할 중요한 볼거리는 `가고일'이다.

가고일은 유럽 성당을 외벽에 붙이는 괴물 모양의 돌조각들이다. 때로는 물홈통을 이 가고일로 꾸미기도 한다. 노트르담의 가고일은 특히나 유명하다. 수많은 영화 장면에 나오기도 했다.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괴물 돌조각들은 실은 대부분 18세기 대보수 공사 때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노트르담 성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홈통 형식인 것들도 보자.

 

 

시간이 허락하는만큼 천천히 건물 전체를 한바퀴 돌며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양 건축을 넘어 인류 문화의 보물이 된 건축물과  대화하게 된다. 시간과의 대화이자 물질과의 대화, 그리고 인간과 종교라는 심오한 주제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리에 가면 늘 이 성당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또 다시 두번째 관람을 즐겨야 직성이 풀린다. 파리의 상징인 센 강 유람선을 타고 땅보다 낮은 수면의 높이에서, 그리고 알맞게 떨어진 거리에서 올려다보는 것이다. 관광객들 대부분이 타기 마련인 센강 유람선은 파리의 역사 지구를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재미가 일품이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가 단연 노트르담이다. 에펠탑에서 출발해 시테섬으로 향하면서 성당은 조금씩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가온다.

 

 

배에서 보는 성당은 또하나의 배와도 같다. 긴 모습 자체가 배처럼 보이고, 혼란스럽고 힘든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원의 세계로 태우고 떠나는 정신적인 배이기도 하니까.

 

 

유람선이 성당을 지나가면서 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전체 모습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개의 높은 탑, 그리고 긴 몸체, 그 옆으로 난 플라잉버트리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뾰족탑까지 한 눈에 보인다.

 

 

천천히 가는 듯했던 배의 속도는 제법 빨라 성당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파리의 다른 풍경들이 나타나지만 성당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 느낌 때문에 파리에선 늘 노트르담에 가게 되고, 배에 올라 이 풍경으로 성당의 아름다움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다.

 

두 번의 구경으로도 성이 안찼다면 세 번째 이 성당을 만나는 방법이 있다. 밤에 만나는 것. 조명 속에서 성당은 낮과는 다른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이 놀라운 건축, 노트르담은 분명 고딕의 원조이자 고귀한 표준이며 건축의 명작이다.

이 곳에서 잔다르크가 재판을 받았고,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성당은 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