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만만건축 11회] 꽃보다 절터 2009/08/10

딸기21 2020. 6. 16. 21:44

나는 폐허에 탐닉한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를 꼽으라면 두말 않고 폐허를 꼽는다. 건물들이 무너진 곳, 그 흔적만 남은 곳, 그런 곳들만 보면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헤매고, 그냥 퍼질러 앉아 몇시간이고 앉아있고 싶다.
 

페르세폴리스, 이란 


그래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페르세폴리스다. 정복자 알렉산더가 술김에 파괴를 명령했다가 다음날 그토록 후회했다는 그 곳. 페르세폴리스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파괴되었기에 더욱 가보고 싶어진다.
 
나라안에서는 당연히 가장 좋아하는 행선지가 폐사지, 그러니까 허물어진 절터다. 그 어떤 웅장하고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절보다도, 잡초가 우거지고 부서진 돌조각들이 굴러다니는 폐사지가 좋다. 제 모습을 잃은 모습이 하염없이 쓸쓸해도, 온전한 것 하나 없어도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부서지고 망가진 잔재에서 역사와 인간, 자연에 대해 오히려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고, 훨씬 더 진한 운치와 호젓함을 맛볼 수 있다.

 

원주 거돈사지. 사적 168호 

 

폐허나 절터에선 혼자 최소 한 두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구태여 무엇을 생각하려 말고, 그 장소가 전하는 말없는 울림에 마음을 맡겨야 한다. 망가지고 일그러져 제모습을 잃어버린 모양이 제모습이 된 곳이 뿜어내는 묘한 느낌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그 느낌이란.


그래서 폐허나 절터는 해질녘에 가야 제맛이다. 땅위에 널부러진 것들이 변해가는 날빛에 함께 물들며 어두워져 가는 모습은 쇠락하고 무너진 것들이 보여주는 상념을 극대화한다.
 
미륵사지말고, 미륵리사지
 
건조한 중동의 페르세폴리스가 오로지 흙과 돌만으로 이뤄진 네크로폴리스라면, 우리나라 폐절터들은 풀과 돌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시간의 블랙홀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절터로는 국내에서 가장 멋있는 석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림사지 석탑이 있는 정림사지를 꼽을 수 있다. 넓은 터 가운데 크지 않지만 결코 작지 않은, 그리고 어느 방향에서 봐도 그 비례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탑이 포스를 뽐내며 남아서 절이 사라진 옛터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저 정림사지는 절터 특유의 느낌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지만 새 건물에다 주변을 너무 관광지로 많이 꾸며 폐허의 황량한 상실감은 느끼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자연속에 방치된 옛절터 특유의 느낌을 그나마 더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원주 거돈사터와 익산 미륵사터다. 너른 풀밭속에 축대와 돌탑과 부서진 석물들이 구르는 거돈사터, 거대한 석탑이 광활한 초원속에 솟아있는 미륵사지는 언제가도 좋은 옛절터들이다.

확 트인 옛터 속 드문드문 남은 유적들이 역사의 흔적을 더욱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국보11호 미륵사지 석탑으로 더욱 유명하다. 옛 돌탑과 마주보고 서 있는 새 석탑이 너무 새것 느낌이어서 생뚱맞은 대비를 이룬다. 지금은 석탑을 보수중이어서 아쉽게도 볼 수는 없고 저 새 석탑만 버티고 있다.
 
그래도 미륵사지는 누가 뭐래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절터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 미륵사지와 이름이 아주 비슷한 또다른 절터가 있다. 충북 충주 수안보 온천 근처에 있는 ‘미륵리사지’, 정확하게는 ‘중원미륵리사지’다. 역시 미륵사지처럼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유명하고 중요한 절터지만, 미륵사지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은 편이다.
 
미륵리사지는 월악산 부근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 옛날 사람들이 걸어 오르던 고갯길 하늘재와 지릅재(계립재)가 만나는 분지에 지은 옛절터다. 수안보온천에서 10~20분 거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3분만 걸어가면 미륵리사지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선 절터가 보이지 않아 그 모습이 어떨지 짐작하기도 어려운데, 안내간판을 지나 방향을 틀면 완만한 경사지 위쪽으로 절터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 찾아간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순간. 절터를 즐기기에 최고인 시간대여서 더욱 반갑고 즐거웠다. 땅거미가 조금씩 내리는 어스름한 풍경 저 안쪽에 이 절터의 주인공인 커다란 미륵불과 삼층석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가지 모두 보물로 지정된 으뜸 문화재들이다.
 
조금씩 다가갈수록 불상과 불탑이 점점 커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하며 소박한 우리 특유의 석조문화재 느낌 그대로다.
 


모양을 일부러 아주 반듯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양을 최대한 살려 쌓은 석벽이 인상적이다. 그 자연스런 돌모습과 잘 어울리는 석탑, 그리고 석불이 모두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낌이 편안하다. 나무집들은 사라진 공간에 돌로 만든 것들만이 남아 이 곳이 한때 절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불상에 한발 더 다가간다. 석탑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소박한 석등이 수줍은듯 나타난다.
 


용화세상에 내려오는 미륵부처님들은 대부분 서있는 모습들이다. 수직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다른 어떤 부처님들보다도 크게 만든다. 미륵불을 모시는 절집들도 그래서 대부분 크고 높다. 거대한 목탑 같은 금산사 미륵전이 대표적이다.
 
미륵리사지 돌 미륵불은 거대한 정도는 아니나 알맞게 웅장하다. 말발굽 모양의 석벽 가운데에 우뚝 선 모습이 의젓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저 미륵불, 자세히 보면 얼굴 부분이 더 하얗다.
 


손 모양이 마치 닭발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순하고 비기교적으로 처리한 모양과 달리 석상의 얼굴부분은 모양낸 기술과 품새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무척이나 소박한 부처님이다.
 
오히려 더 웅장한 것은 불상을 둘러싼 돌 축대다. 저 정도 규모면 제법 큰 공과 노력을 들인 것임을 절로 알 수 있다.
 


가운데 불상이 있고 그 가장자리를 둥글게 쌓은 석벽이 둘러싼 모습은 경주의 석굴암을 연상시킨다. 실제 이 불상을 둘러싼 저 석벽은 위에 나무로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석굴암 양식을 이어가면서 석조와 목조를 조합한 유일한 고려시대 유적이다.
 
1070년대 본격적으로 발굴된 이 미륵리사지는 고려 초기 충청 지역 사원과 불상 모습을 대표할만한 유적들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확한 절의 이름도, 창건 시기도, 절을 세운 내력도, 그 원래 모양도 모두 밝혀지지 않은 비밀투성이의 절터다.

이 절터가 특히 독특한 것은 특이하게도 북향이란 점이다. 이렇게 북쪽을 바라보는 절은 현재까지는 이 미륵리사지가 유일하다.
전설은 남아있다. 비운의 신라 왕자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다.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짓고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었고, 마의태자는 덕주사를 바라보도록 북쪽을 향한 석불과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없고, 그저 절터와 불상만 남아 이 곳을 지켜왔다. 계단식 절터에는 비록 몇가지 유물들만 남았지만 모두 보물들이다. 불상과 석탑이 보물로 지정됐고, 석등과 돌 당간 지주도 모두 중요한 문화재들이다.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유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돌거북이 비석받침이 있다.
 


저 돌거북은 크기가 6미터가 넘고 높이도 2미터에 가깝다. 돌 덩어리 원래 모습을 남겨두면서 머리와 발 정도를 좀더 사실적으로 조각했다.
그런데 등판 가운데 비석을 꽂는 자리가 있긴 있지만 비석을 꽂을 정도는 아니어서 과연 비석이 있었는지 의문인 상태로 남아있다. 여러번 발굴했지만 비석 몸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부터 비석이 없었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그러면 저 돌거북이는 왜? 그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길게 수직선으로 펼쳐진 절터 옆쪽에는 또다른 절터가 남아있다. 다른 절터들과 달리 이 곳은 접근을 막아놓았다. 들어갈 수 없어 그 자취와 정취를 접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절터 중간에 있는 돌 유물들.
그리고 화려한 장식이 남아있는 당간 지주석.
 


중요한 것은 저런 유물 하나하나들이 아니다. 이것들이 어우러지는 저 공간 특유의 분위기와 매력이다. 건물이 없어도, 화려한 장식이 없어도 군데 군데 유물들이 뒹굴듯 남아있는 절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어느새 날이 거의 저물어 해질녘. 휘휘 절터를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남은 차는 우리가 마지막.
멀리 보이는 월악산 산세가 그림같은데, 주차장 끝에 왠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잘 생긴 듬직한 모양새가 보기 좋아 돌을 보러 갔다. 앞에 비석이 있는데 정확한 내력은 알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남아있으니 범상치 않은 돌이요, 운명과 역사를 지닌 돌일게다.
 


미륵리사지는 유명하면서도 아주 유명하지 않은 유적지다. 미륵사지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다르다. 유적들은 웅장하지 않아도 소박하고 정겹고, 그런데도 다들 귀한 보물들이다. 절터의 모양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귀하고, 독특한 북향 계단식 구조는 황량하면서도 근사한 묘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비록 대단치 않고, 조락한 역사 흔적 특유의 쓸쓸함도 가득하지만 바로 그런 맛에 가볼만한 곳이 미륵리사지다. 역사의 느낌을 만나보고 싶을 때, 폐허가 주는 상념을 느껴보고 싶을 때 절터로 가자. 거돈사지도 좋고 미륵사지도 좋다. 다보았다면 미륵리사지도 있다. 그 어디든 해질녘이면 더욱 좋다.
 
그리고, 언젠가는 페르세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