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인도 왕궁을 보며 문득 경부고속도로를 떠올리다 2009/05/09

딸기21 2019. 6. 26. 14:26

인도의 서울은 델리,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적은 랄 킬라, 
랄 킬라는 델리의 대표적 왕궁,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경복궁이다.

이름 랄 라는 ‘붉은 성’이란 뜻. 그래서 영어 ‘레드 포트’로 더 유명하다.
이 성을 지은 이는 인도 무굴왕조가 남긴 주요 건축물들에 왠만하면 다 관여한 이름 ‘샤 자한’이다. 죽은 마누라 무덤 타지마할 만드느라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하는 바람에 아들 아우랑제브가 왕위에서 쫓아내 가둬버렸던 황제다. 건축광 황제가 타지마할과 함께 남긴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이 붉은 성 랄 낄라 되겠다. 
1648년 지었으니 우리로 치면 조선 중기 때다. 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대도시 델리는 옛 도심인 올드 델리와 뉴 델리로 나뉜다. 올드 델리는 그야말로 옛날 동네에 복작복작대고 지저분한 맛이 확실한 곳이다. 그 중심에 이 랄 낄라가 있다. 정문으로 가기 전, 그 웅장한 성벽이 먼저 등장한다. 정말 붉은 색이다. 
그런데, 사실 인도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 붉은 색이다. 짓는 돌이 붉은 사암이기 때문이다. 타지마할 빼곤 다 벌겋다. 그러니 실제로는 붉지 않은 건물이 더 독특한 것인 셈이다.
 



자, 이제 정문 앞 광장이다. 역시 인도는 넓은 나라여서 이런 곳을 화끈하게 넓게 해놓는다.
저 넓은 광장 중심에서 개 한마리가 자빠져 자고 계신다. 인도의 개들은 뛰어다는 법이 없다. 늘 저렇게 아무 곳에서나 취침하며 뻗어있다. 물론 사람들도 자주 저런다. 더운 나라에선 개도 달라진다. 문득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강유미의 말투가 떠오른다.
“하긴 니들이 언제 내리는 눈송이 밟으며 뛰어봤겠니?”
어쩌겠나, 인도에서 태어난 개들인데.
 
이제 궁쪽으로 향한다. 궁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건물 주변은 커다란 해자를 둘렀다. 사람을 막기 보다는 인도 특유의 코끼리 부대의 공격을 막는 장치다. 델리는 무지하게 안개가 많이 낀다. 날이 이미 밝았음에도 공기속 입자들 때문에 역광으로 보는 성 모습이 아직도 흐릿흐릿하다.
 


성벽 모습. 엄청나게 높다. 저걸 짓는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샤자한은 평생 건물만 짓는 바람에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근사한 건물들을 여럿 남겼지만 목숨을 잃어가며 그걸 지어야 했던 당대의 사람들에겐 원망의 대상이었을 거다.
시키니 무조건 끌려가 지어야 했던 백성들이 불쌍할 뿐이다. 큰 나라일수록 백성들이 고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라가 크니 싸움이 잦고, 그 싸움 끌려가 죽어 나가고, 싸움 안할 때는 싸움 대비해 성 짓다가 죽고. 샤자한 처럼 마누라 묘 지으라고 20년씩 공사해서 또 죽고.
 
공사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니 중국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13릉 등 중국의 주요 건축물은 벽돌에 사람 이름이 써있다. 
철저한 기록문화? 맞긴 맞다. 만약 성벽이 부실공사로 무너지면 그 무너진 부분 벽돌에 이름 써있는 놈들 다 잡아죽였다. 
 
어차피 잠깐 공사짓다 죽는 이야기로 빠졌으니 하나만 더.
우리나라에서 공사하다 사람 많이 죽은 것으로는 경부고속도로를 들 수 있겠다. 현대에도 공사는 늘 사람을 잡는 현장이다. 
 
지금 우리가 성묘다니고 놀러 다니느라 잘 쓰고 있는 이 경부고속도로 짓느라고 무려 77명이나 죽었다. 한국이 아직 모든 상황 열악할 때다보니 안전 사고도 많았던 탓이겠지만, 더 짜증나는 이유도 있다. 원래 공사예정일보다 1년이나 빨리 지으라고 갑자기 명령이 떨어졌던 탓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777 이다. 무슨 손톱깎이 상표가 아니라 70년 7월7일 개통했다. 그럼 공사는 언제부터 했을까? 68년 2월1일날 했다. 그러니까 3년5개월6일만에 완공한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건설 장비조차 부족하던 시절, 서울부터 부산까지 길을 놓는데 3년만에 해낸거다.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 원래 경부고속도로 개통 예정일은 1971년 6월30일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년 가까이 앞당겨진 것이다. 
그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였다. 박정희가 공사기간을 4분의 1이나 줄이라고 한 것은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다. 1971년 선거에 자기 업적으로 홍보하게 공사를 당긴 것이다. 그래서 선거 전해 완공 됐고 박정희는 위대한 국토개발의 화신 이미지를 더해 당선됐다.

그러나 뭐든지 무리하면 화가 생기는 법. 777에 개통하려다 77명이나 죽었다. 엄청난 인명이다. 그 아까운 목숨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든 결정은 분명 훌륭했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있는 어둠도 있다. 그 훌륭한 결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과정에서 그리고 목표 제일주의 부실 건설 관행 속에 77명이 희생됐다. 웬만한 참사 이상의 사망자다. 

그리고, 이런 희생속에 경부고속도로는 기록을 남겼다.
첫번째 기록은 완공하자마자 보수공사 시작한 기록이다. 
두번째는 그 보수공사비가 원래 건설비보다 무려 4배나 들어간 기록이다. 77명이 저세상에서 통곡할 일이다. 
 
좌우지간 저 랄 낄라 붉은 성 역시 여러 사람 잡았을텐데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지 못한 관계로 일단 패스. 성 안으로 이제 들아가볼 차례다. 



일단 해자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성 안으로 진입한다. 첫번째 문이 나온다. 
인도의 성은 늘 성문이 여러개다. 겹겹 구조로 무지하게 방어 목적에 치중한다. 뭐 모든 성들이 다 그렇지만, 인도는 더욱 성벽이 중층인 구조다. 원래 무굴 왕조는 인도 사람들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쪽에서 온 이민족 왕조였다. 남의 나라 정복해 패권 잡아봤으니 자기네도 그렇게 정복 당하지 않으려면 성을 확실하게 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셌을 것이다. 


 
앞의 경비실 문 성격의 작은 문을 지나니 오히려 더 크고 웅장한 문이다. 
저 문 안으로 들어가면 또 문이 나오겠지? 그런데 문이 물론 있기는 한데 그게 아니라 시장이 나온다. 우리로 따지면 경복궁 광화문 지났더니 장터가 있는 셈이다. 이 뭥미?
 


이 시장의 이름은 찻타 촉. 각종 보석이며 장신구 및 기념품을 파는 상가다. 원래 성 안 주민들이 살던 동네인데 요즘에는 고급 쇼핑몰이 된 셈이다. 



전통 깊은 가게 거리지만 바가지의 전통도 확실하다고 하니 마누라 눈치보며 패스, 하려는데 이거 왜 이리 긴거야...



제법 긴 상가를 지나 이제 드디어 성 안쪽다운 곳으로 나온다.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잘 꾸민 문이 눈앞에 등장. 



그런데 이 성 안에도 역시 자빠져 주무시는 개 한 마리. 잡아 먹힐 일이 없으니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뒤에서 안내책자 파는 아저씨, 아무도 안사주니까 화가 나는 듯 저 개를 쫓아버렸다. 개는 어디가나 개 취급을 받는 법임을 깨닫다.
 



전형적인 인도 무굴식 중간 문 건축양식이다.
저 붉은 문을 지나면 진짜 붉은 성의 내부다. 아따 문이 많기도 하다.
 



문을 들어서니 정원, 그리고 인도 모든 왕궁 건물에서 항상 제일 먼저 등장하는 왕의 접견실 건물, 디와니암이다. 

디와니암은 왕이 그 안에서 외국 사신이며 신하를 만나니 원래는 무지하게 화려하게 꾸민다고 한다. 실제 다른 성의 디와니암은 그 안에 온갖 보석과 거울로 치장해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저 디와니암은 그 안이 썰렁하기 짝이 없다. 세포이 항쟁 터지면서 파괴되고, 장식품을 다 떼어갔기 때문. 그래서 뼈대 그대로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안에 남아 있는 왕의 권좌.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건축적 연출.
 


 
인도 건물은 그 귀엽고 독특한 아치 기둥으로 건물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 꽃모양 아치들이 중첩되는 장면이 매력적이다. 한옥 건물들이 중첩 되고 변형되는 장면을 잘 연출하는데 인도 건물들은 반복되며 원근의 미를 드러내는 식이랄까.


 
이 디와니암을 지나면 본격적인 왕궁 정원이 나온다. 앞뒤로 긴 정원이 아니라 좌우로 긴 정원이다. 한눈에 다 안들어 올 정도로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붉은 성 안에 줄지어선 하얀 건물들. 
 



가운데에 앞서 본 디와니암과 비슷한 디와니카스가 나온다. 역시 왕의 접견장 건물이다.
앞서 본 디와니암은 그 내부가 다 파괴되어 썰렁한데, 이 디와니카스는 그래도 약간은 화려함이 남아 있다. 자세히 보자.



원래 이 디와니카스 안에는 공작좌라 불리는 유명한 옥좌가 있었다는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옥좌로 꼽혔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은 없다는 이야기. 
의자 등받이는 다이아몬드와 보석들로 꾸몄고, 의자 다리는 금, 의자로 올라가는 계단은 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없어졌지. 이란 테헤란 박물관에 그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뭐 볼 수 없으니 이정도 하고 패스.



그럼 그 옆에 있는 저 양파머리 건물로. 건물 크기는 크지 않다. 화려하지만 심하게 요란하지도 않다. 비교적 차분한 편. 그 이유는 이 건물이 이 붉은 성 만든 황제 샤자한을 쫓아내고 황제가 된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의 기도실이었기 때문.

쉬엄쉬엄 곳곳을 구경해본다.


저 수경 공간에 물이 들어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아직 물 넣을 계절이 아니어서 아쉽게도 텅 비어있다.  



푸른 풀밭에 가끔 큼직한 나무를 남겨놓는 인도식 정원. 지나치게 꾸미지 않아 좋다. 



저 멀리 또다른 붉은 건물. 그 앞에 물을 채우면 저 건물이 거울처럼 반사될텐데... 



휘휘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이제 이 거대한 요새를 떠난다. 다시 궁앞 광장.



성문 탑위의 장식이 역시 독특하다.  인도 특유의 저 망루를 보면 마치 병사들의 헬멧을 늘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외계인 비행접시가 사뿐하게 내려 앉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