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문, 인도 대통령궁 2009/05/04

딸기21 2019. 5. 27. 16:50

# 일본이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영국이다. 
근대 국가를 맹렬히 세우던 19세기, 일본은 영국을 흠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다. 일본이 가야할 길, 얻어야할 것, 올라야할 경지를 모두 영국에서 찾은 것은 당연했다. 같은 섬나라인데 세계를 호령하는 최강국이니 영국말고 또 어떤 나라를 역할모델로 삼겠느냔 말이다. 
 
당연히 일본은 영국을 사랑했다. 일본의 영국 짝사랑은 지금껏 이어진다. 만화 <마스터 키튼>에서 주인공 키튼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SAS 특공대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가 영국인 여성과 결혼한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주인공 야나기자와 교수는 일본에 살 뿐 거의 영국인이다. 영국 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다. 만화 <홍차왕자>는 또 어떤가? 영국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동경과 호감은 그들의 의식 아래에 깊이 박혀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뭐 해석은 자유니 넘어가주시길.
 
그러니 일본은 영국이 하는 것은 다 따라 했다. 문제는 가장 확실하게 따라 한 짓이 다른 나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침략행위였다는 점이다. 영국처럼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가 또 있을까? 영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저지른 잔악한 범죄의 결과는 지금껏 두 대륙 수십억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있는 왜곡된 사회경제구조로 잔존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벌인 짓은 굳이 길게 언급 않겠다.
 
일본의 대책없는 흠모를 받았던 영국은 일본에게 확실한 보상으로 팬 관리를 하기도 했다. 영국은 자기네 털끝 하나라도 이롭게 하겠다며 국경도 맞대고 있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극동 지역 파트너로 활용했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일본의 이득으로 환원되어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다. 일본이 조선을 집어먹게 된 먼 영향 요소에 영국이 있었고, 한반도의 분할로 이어진 2차대전 이후 협상의 테이블에도 영국이 앉았음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 역사에 남을 나쁜 이웃나라들인 두 섬나라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다보니 잠깐 옆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좌우지간 일본이 영국을 무지하게 짝사랑하다보니 많은 두 섬나라에게는 이상한 공통점이 생각 이상으로 많으며, 아주 지엽적인 것으로 식민지배한 나라들에 엇비슷한 건물들을 남겼다는 점이 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일본과 영국이 강점했더 나라들에 남아있는 총독부 건물도 비슷해 보이는 공통점을 지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올해초 인도의 서울 델리에서 옛 영국 인도총독궁을 보면서였다. 지금은 대통령궁으로 쓰이는 옛 영국 총독관저는 놀랍도록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그러나 또한 중앙청을 떠올리며 식민지배를 겪어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점에서 결코 마음 편하게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는 건축물이었다. 그토록 영국을 닮고 싶어했던 일본은 총독부 건물마저 닮게 지었던 것일까.  

힘과 아름다움 모두 대단한 인도 대통령궁
 

 

인도 대통령궁이 있는 길, 우리로 따지면 세종로 쯤 되는 대로다. 이름은 ‘라즈 파트’. ‘왕의 길’이란 뜻이라고 한다. 인도의 행정 중심지인 이 도로는 길이가 엄청나다. 단순한 큰 길이 아니라 델리란 도시의 중심 축을 이루는 등뼈같은 길이다. 이 길의 끝에 대통령궁이 있다.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길은 라즈파트가 아니라 그 옆쪽으로 난 도로였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인도 특유의 붉은 돌빛 대통령궁 건물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권위를 중시하는 국가적 건물들은 대부분 돔 형식을 선호한다. 멀리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떠올리면 된다. 저 대통령궁, 옛 영국의 인도총독궁도 마찬가지다. 서양식 돔 같기도 하고, 인도식 돔 같기도 한, 그런 건물이다. 식민지주의 또는 이른바 절충주의랄까. 멀리서 보면 서양식인데 가까이 가면 인도식으로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 옆에 또다른 돔 건물이 있다. 더 전형적인 서양식 돔이다. 대통령궁 앞에 있는 인도 중앙부처 건물이다. 이 건물 옆을 따라 대통령궁 앞길로 좌회전한다.   



방향을 돌리면 건물들과 같은 디자인 컨셉으로 만든 근사한 분수가 등장한다. 그리고 대통령궁 앞의 좌우 대칭형 행정부 거리로 들어선다. 양쪽으로 관청이 펼쳐지고 그 끝에 대통령궁이 있다. 
  


  
대통령궁을 뒤로 하고 바라본 앞길 모습이다. 진짜 넓은 길은 이 다음에 펼쳐지는 인디아게이트로 향하는 대로지만 그 전에 만나는 이 길 역시 넓다. 권위주의 공간이 주는 힘이다.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불편한 거리를 강요한다. 불편해야 힘을 느끼게 되니까. 그래도 시각적으론 매혹되게 한다. 건축의 연출 효과다. 권력은 늘 건축으로 시각을 지배하려 한다. 

저 대칭 거리에서 왼쪽은 재무부와 내무부, 오른쪽은 외교부와 국방부가 자리한다. 
반대편에서 본 사진 한 장 더. 
  



그럼 대통령궁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문이다. 
  


궁 자체 못잖게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철문이다. 
  


  
특별한 곳을 위한 특별한 디자인. 저 자체가 또다른 작품이다. 
  


  
철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본다.  
  


  
붉은 맨바닥 마당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에 역시 붉은 빛 대통령궁이다. 
  


  
대통령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건물 자체의 멋 못잖게 저 철문이며 담 같은 주변 ‘액세사리’ 성 구조물들의 만듦새였다. 지금 것들과는 다른 사람 손으로 정성껏 만들던 시대의 멋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디자인도 탁월했다. 대통령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담장을 보자. 
  



인도의 상징 코끼리 조각으로 꾸몄다. 맨 가장자리에는 더욱 크고 화려한 코끼리 조각을 세웠다. 20세기 초반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찰스 사전트 재거가 디자인한 조각이다. 역시 저것 자체가 작품이다.  
  



뿐만 아니다. 주변 가로등 같은 거리 가구들도 같은 디자인 컨셉으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이 공간에 맞게 만들었다. 중요한 공간인만큼 디자인에 세심하게 신경쓴 것이다. 요즘 건물들에선 추구하기 어려운 완성도다. 옛 건물들이 지닌 힘들 중 하나다. 아낌없이 돈을 쓰는, 오로지 폼 하나를 위해 짓는 그런 건물만이 가지는 힘은 시각적으로는 실로 강력하다. 
  



대통령궁은 일반 공개는 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무굴식 전통 정원이 있는데 이 정원은 2~3월초에 한해 개방하는데 방문한 때가 개방 시즌 전이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궁을 떠난다. 정부 부처들이 나열한 대로의 모습들. 
  


  
이 대통령궁 앞 대로는 시야의 끝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도로축이다. 오스망이 만든 거대한 직선, 파리의 대로축이 절로 떠오르는 장관이다. 이 길이 바로 ‘라즈 파트’, 곧 ‘왕의 길’이다. 그 끝에 뉴델리의 또다른 상징 ‘인디아 게이트’가 보인다.  
  


  
넓다. 실로 넓다. 인도이기에, 그리고 식민지 시대 지배국가의 오만으로나 가능할 법한 공간 구성이다. 저 끝에 거대한 탑과 같은 인디아게이트를 세운 배치 역시 과장스럽고 극단적이다. 

인디아게이트는 제1차대전 당시 영국과 함께-라고는 하지만 식민지배하던 영국 때문에 끌려나가- 전사한 인도 군인 9만명의 넋을 기리는 거대한 추모탑이다.  
  



대로의 끝, 드디어 인디아게이트다. 


저 대통령궁과 인다아게이트는 인도인들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 저 건물이 지어진 것은 1929년. 인도를 지배한 영국 총독의 관저였다. 인도가 독립한 이후 대통령궁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저 건물을 설계한 이는 뉴델리 도시계획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건축가 에드워드 루티엔스였다. 영국과 인도에 많은 작품을 남기는 그의 대표작이 바로 이 거대한 도로, 그리고 그 양끝에 자리잡은 대통령궁과 인디아게이트다.  

20년 동안 매년 인도와 영국 각지를 돌아다닐 정도로 건축에 열정적이었던 루티엔스는 많은 인도 디자인 요소를 도입해 저 건물을 설계했다. 그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무척 아름답다. 서구 정복자의 미감과 정복당한 피지배 국가의 미감이 처절한 정복 관계를 가려버리듯 아름다운 절충 디자인으로 승화된 것은 무척이나 역설적이다. 



저 건물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나마 외국 관광객의 시선으로 대통령궁을 낭만적으로 바라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건축의 힘을 실감한다. 건축은 무엇인지, 건축은 식민의 역사를 어떻게 담고 있으며 그 미감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픈 역사의 기억이 이방인에겐 그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는 것이 묘하다. 철거전 중앙청 건물을 바라본 외국 관광객들의 느낌은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