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한국은 굴뚝의 나라-한옥 내맘대로 보기 2008/02/21

딸기21 2018. 8. 16. 16:09

사진을 보면서 순간 행복했다. 20일부터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백안 김대벽 선생 추모사진전’ <한옥의 향기> 보도자료 메일을 받아보며 잠시 혼자 흐뭇해했다.


보도자료 메일을 열자 한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 사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야트막한 굴뚝에서 뽀얀 연기가 흘러나와 땅거죽을 따라 퍼지는 모습을 내가 기둥쪽에 앉아 직접 바라보는 듯했다. 잠시나마 내가 환벽당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사진을 만난 것 만으로도 그 날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느낌을 이어가고 싶어서 포스터 사진으로 컴퓨터 바탕화면을 바꿨다. 적어도 당분간은 컴퓨터를 켤 때마다 즐거울 것 같다.


광주 환벽당.



개인적으로 전통건축물을 가게 될 때마다 꼭 눈여겨 보는 것이 있다. 한옥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부분이다. 하나가 주초, 다른 하나가 굴뚝이다. 김대벽 선생의 사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두가지가 모두 들어있었다.


주초, 그 묘한 매력 덩어리


주초(柱礎)는 초석(礎石)이라고도 한다. 나무 기둥 밑에 대는 돌이다.


왜 돌을 댈까?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땅바닥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만 살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를 잠시 잊게 된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서다. 기둥이 지탱하는 건물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는 공학적 기능도 함께 한다. 인간이 땅위에 집을 지으면서 그냥 땅에 기둥을 박아보니 쉽게 썩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생긴 기술로, 거의 선사시대로 올라가는 오랜 기술이다.


외국에는 주춧돌 대신 나무로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본의 옛 사원건축물에도 이런 나무 초석이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돌로 만든다.


우리 돌 초석은 두가지다. 돌을 다듬어 모양을 낸 것, 그리고 안다듬은 것. 궁궐같은 공적이고 멋진 건물은 당연히 모양에 각을 주어 다듬은 돌로 멋을 낸다. 반면 일반 가정집들은 그냥 자연석을 가져다 쓴다. 그런데 이 모양을 안 낸 자연석 주초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모양새에 난 늘 사로잡히고 만다.


포스터 사진에 있는 저 기둥 밑 주초도 그렇다. 일부러 모양을 안내고 그냥 돌을 가져다 썼다. 그 안에는 이미 자연적인 형태를 높이 치는 미학관이 들어있다. 그런 미감이 질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훨씬 세련된 미학이 아닐까. 돌 자체의 아름다움을 죽이지 않는 데에는 대범함과 치밀함이 모두 필요하다. 기둥을 저리 매끈하게 다듬으면서도 돌은 그대로 쓴 게 그런 치열한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었음을 암시한다.


질박한 미감, 공학적 안전성 두 토끼를 잡은 덤벙주초


저렇게 자연석으로 한 주초를 부르는 멋진 우리 말이 있다. ‘덤벙 주초’란 말이다. 


이 덤벙 주초는 모양은 대충 한것 처럼 보여도 공법면에서는 다듬은 각돌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다. 돌의 불규치한 거친 표면에 꼭 맞게 닿는 나무 부분을 다듬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돌 표면에 맞춰 나무를 다듬는 작업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우리 고유의 건축용어다. 이렇게 그렝이질을 해 덤벙주초로 만들면 기둥과 주춧돌의 일체감이 훨씬 더 커지고 이음새가 꼭 맞아 더 만듦새가 훨신 더 보기 좋아진다.


‘덤벙’이란 말이 가지는 말맛 역시 일품이다. 우리 미술 문화재 분야에서 덤벙이란 말은 이 덤벙주초말고 도자기 중에서 분청자기를 말할 때, 덤벙이란 말을 쓴다. 자기를 유약에 덤벙 담갔다가 꺼낼 때 생기는 자연스런 흐름무늬를 내는 기법을 말한다. 달리 말 안하고 우리말 그대로 덤벙이라고 하는 그 표현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이 덤벙주초도 마찬가지다. 우리 식의 쿨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덤벙주초를 만드는 자연석은 어떤 돌로 했을까?


산에 있는 돌로 썼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하느냐, 고 하실텐데 정확히 말하면 ‘강에 있는 돌’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강가에 있는 돌을 쓰지 않은 이유는 우선 매끈매끈해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기능적 측면이 첫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강돌에는 강가의 냉기가 서려 음기운이 강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굴뚝도 보물이 된다


좌우지간, 저 사진이 맘에 들었던 것은 그렇게 좋아하는 덤벙주초와 낮은 굴뚝을 동시에 한 프레임 안에 배치한 사진작가 김대벽 선생의 시각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제 초석 못잖게 우리 전통 가옥의 빼어난 매력포인트가 되는 굴뚝을 보자.


흔히 우리 나라 건축은 굴뚝조차 예술이 되는 건축이라 말한다. 그 사례로 경복궁의 예쁜 굴뚝들이 꼽힌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세히 보아야 굴뚝인 줄 알만큼 예술적이다. 자경전이 보물 809호이고 이 굴뚝이 따로 보물 810호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굴뚝이다.



저런 굴뚝을 다른 나라 어느 궁전에서 보겠느냐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자금성에 가보았지만 굴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봐도 현대적인 저 무늬들은 특히 일품이다. 미감이란 세월을 초월하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 보물 811호. 아미산은 조선 태종이 경회루를 세운 연못을 파고 난 뒤 그 흙으로 교태전 뒤에 세운 인공 동산이다. 이 굴뚝은 왕비가 사는 곳인 교태전의 네 굴뚝이다. 6각형으로 한껏 멋을 냈고, 소나무 매화 불로초 학 박쥐 같은 것을 무늬로 넣었다.



그러나 굴뚝 역시 저런 폼나는 궁궐 굴뚝보다도 평범한 사대부집이나 민가의 질박한 굴뚝들이 더욱 정감이 간다. 저 환벽당의 굴뚝도 마찬가지다. 키작은 흙기둥에 기와 몇장 턱턱 얹은 품새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언뜻 꼬마 병정처럼 귀여우면서도 저렇게 연기를 내는 중요한 기능을 해내는 모습은 마치 장군처럼 의젓하지 않은가.


한국은 굴뚝의 나라


굴뚝은 구조적으로 보면 온돌의 연장선이자 종착역이다. 난방 기관의 항문이랄까. 아궁이에서 피운 연기와 온기는 구들장을 데우고 연기길인 연도를 거쳐 굴뚝으로 나온다.


그러나 단순히 연기를 빼내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굴뚝이 있어 아궁이 불길이 더 깊숙히 안쪽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온돌이 발달할수록 굴뚝도 발달한다. 온돌하면 한국 아닌가. 굴뚝도 당연히 한국이 으뜸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으로 굴뚝만 봐도 그 집이 어느 동네인지 알 수도 있다. 추운 곳일수록 불길을 잘 빨아들이도록 굴뚝을 높이 세운다. 북쪽 지방일수록 굴뚝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굴뚝이 낮아진다. 환벽당은 남부지방 건물 답게 굴뚝이 아기처럼 작다. 남부지방에선 굴뚝을 구조물로 따로 세우지 않고 돌기단에 구멍을 뚫어놓는 기단굴뚝을 설치한 집도 많다.


이 굴뚝을 중요한 꾸밈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 한옥의 특징이다. 경복궁의 보물 굴뚝들이 잘 보여준다. 저런 굴뚝들은 벽돌로 쌓아 전축굴뚝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벽돌이 아니라 흙을 다져 쌓았다. 당연히 명칭은 토축굴뚝이 된다. 환벽당의 저 키작은 굴뚝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궁궐굴뚝처럼 한껏 모양낸 굴뚝이 최고다. 그러나, 저 키작은 흙굴뚝은 으리으리한 궁궐에선 만들 수 없는 서민의 멋이 있다. 작은 굴뚝에 기와 지붕을 얹어 꾸미는 집주인의 마음을 한번 상상해본다.


연기가 폴폴나는 저 굴뚝이 만들어주는 분위기는 또 어떤가. 아직 차가운 2월, 겨울산에 올랐던 중국 시인 두목은 비탈길을 질러가며 접한 풍경에서 시정을 얻어 “흰 구름 생겨나는 곳에 사람사는 집들이 있더라”고  읊었다. 추운 겨울 민가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깔리는 모습을 보고 쓴 시다. “서리 맞은 이파리가 이월의 꽃보다 붉더라”는 바로 그 시다.


김대벽 선생 추모사진전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련한 우리 한옥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평생 한옥만 찍어온 사진가가 후대에 전해주는 귀한 볼거리들이다. 앞서 지면에 소개한 기사로 김대벽 선생과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3월5일까지라니 서둘러 가봐야겠다.


살짝 소개하는 김대벽 선생의 사진들


구례 운조루.



보도자료로 나온 사진들을 몇장 소개한다. 평범하다고? 선생같은 고수가 사진을 평범하게 찍었던 것은 한옥의 향기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평범할 때 은근한 향기는 더 빛난다. 한옥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다.


안동 병산서원


논산 윤증 고택.


윤증 고택 하나 더.


부안 내소사.


 

한옥에는 고래가 산다?


한옥이 사라지다보니, 우리 건축 용어도 덩달아 사라지거나 낯설게 되는 것 같다. 온돌에 쓰는 말로 ‘고래’가 있다.


고래는 구들장 아래로 불과 연기가 지나가는 길이다. 그 길 모양을 도면으로 보면 미로찾기하는 길처럼 보인다. 이 고래를 만든 모양에 따라 줄고래, 부채고래, 굽은 고래, 되돈고래 등으로 나눈다. 보통 때에는 ‘방고래’라는 말로 쓰는데, “방고래가 꺼지도록 한숨을 쉰다”고 할 때의 바로 그 고래다. 고래로 이어진 불과 연기의 길 끝에 굴뚝이 있는 것이다.


한옥에 사는 것은, 그러니까 고래 등에 사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