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건축가들의 숨은 자식, 모형 2008/03/28

딸기21 2018. 8. 24. 18:14

건축도 전시회를 한다. 물론 아주 흔하지는 않다. 더더군다나 일반인들이 쉽고 편안히 볼 수 있는 건축 관련 전시회는 극히 드물다.


건축 전시회를 가봐도 별 재미는 없을 수밖에 없다. 설계 관련 도면이나 패널 시각물 등을 전시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게다가 주제나 내용이 확실하게 전공자들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건축만큼 이해하기 쉬운 것이 또 어디있는가. 우리가 매일 들아가 살고 일하고 잠자는 곳이 모두 건축물인데. 우리는 늘 건축속에서 사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건축 전시회도 당연히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됐다. 아직 그런 단계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서서히 ‘그나마 쉬운’ 건축 전시회들이 늘 고 있다.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올들어 건축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전시들을 보면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2월 영풍문고에서 열린 건축가 김석환씨의 전통건축 드로잉전이나, 3월 열린 고 김대벽 선생의 전통건축사진전시회 등은 모두 ‘한옥’이란 전통 건축을 대중들이 부담없이 만나도록 다리를 놓는 전시회였다.


그리고 최근 또다른 전통건축에 대한 전시회가 열린다. 건축가 조정구씨가 운영하는 구가건축사무소가 여는 ‘삶의 형상을 찾아서’ 전시다. 어지러운 설계 도면 같은 것은 일체 없고, 요즘 가장 활발하게 실험이 이뤄지는 현대 한옥 건축의 현장을 모형으로 엿볼 수 있는 ‘보기 쉬운’ 전시회다. 그냥 시간나면 가서 휘휘 둘러보면서 요즘 건축가들 이런 생각하고, 이런 디자인으로 한옥을 지으려 하는구나, 라고 보면 된다. 실제 전시회 취지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전시회 장소는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바로 옆 경향갤러리다. 4월2일까지.


주말에는 어린이와 부모를 위한 건축가의 공개 강좌도 있는데 모두 예약이 완료됐다고 한다. 그만큼 한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데, 전문적 설명을 들을 기회는 적어 목말라 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이라고 하겠다.


전시 품목은 모두 모형이다. 모형 전시회는 아주 적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많이 열리지도 않는다. 특히 이번 전시같은 한옥 모형 전시회는 뜻밖에도 거의 없었다.


건축에서 모형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형을 만드는 과정이 워낙 사람의 수고와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 탓에 요즘에는 모형을 안만들고 3차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건물을 미리 입체적으로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건축 아이디어를 실제로 점검하고 이해해보는 작업으로 모형 이상의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만큼 모형은 건축가들에겐 숙명적인 동반자다. 작품 그 자체는 아니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장 소중한 부산물이 모형이다.


건물 하나를 짓는다고 모형도 하나만 만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아이디어가 바뀔 때마다 모형을 새로 만들기 때문에 한 건물 만드는 과정에 수십개씩 만들기도 한다. 인사동 ‘쌈지길’로 유명한 건축가 최문규 연세대 교수의 경우도 모형전시회를 연 적이 있는데, 최 교수 같은 1급 건축가들도 작품 하나 만들 때마다 모형을 직접 30~40개씩 만든다는 것을 모형에 질려하는 제자들에게 무언으로 가르치려는 것도 전시회의 취지 가운데 하나였다. 



모형이 모형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건축가들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건축가 중 한 명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를 설계한 프랭크 게리의 경우는 모형으로 건물 모양을 미리 만들고, 그 모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읽어 수치화, 계수화할만큼 모형이 창작에서 고갱이에 가까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건축가들에게 모형의 소중함, 중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만큼 큰 것이다.


성공해서 계약을 따낸 건축 아이디어는 작품으로 지어져 남지만, 채택이 안된 아이디어는 모형만으로 남기 마련이다. 현실에선 이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접 지어지진 않았어도 건축가 스스로 맘에 들어하는 아이디어를 담은 모형은 건축가에게 정신적 자식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형을 그렇다고 공간 때문에 평생 끼고 살 수도 없다. 결국 밟아 부숴버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건축가 이일훈씨의 경우 모형을 버리는 그 순간 자기 아이디어를 모습으로 갖춰준 모형을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사진기러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남기기로 했다. 하나를 찍고 밟아 부수고, 또 하나를 찍고 부숴 떠나보내고...그렇게 찍은 사진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특히 한옥 건축 모형이란 점이 중요하다. 한옥 건축은 그 특성상 모형이 훨씬 더 필요하다. 만들기도 더 어렵다. 지금 국내 건축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분명 한옥인데, 그렇다고 한옥을 하는 건축가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한옥 모형은 전공자들도 자주 접할 기회가 없다. 이렇게 한옥 모형을 보여주는 전시는 그동안 없었던 전시라고 건축계에서도 말할 정도다.


이번 전시를 마련한 건축가 조정구씨는 현대 건축을 전통 한옥 건축으로 짓는 건축가다. 요즘 한옥건축문화를 가장 앞장서서 이끄는 대표적 젊은 건축가로 건축계에서 꼽히고 있다. 인정은 많이 받는데, 그렇다고 다른 현대건축가들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시회는 오히려 자기 돈을 쓰는 일이다. 그런 점 때문에 인정을 받는 측면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정구 건축가의 대표작들 모형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이다. 한옥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모형으로 보면 실감이 안나지만 일단 보시라.



이 조정구 작가의 현재까지 대표작은 국내 최초의 한옥호텔인 경주의 ‘라궁’ 이다. 앞서 ‘이런 호텔 보셨나요?'란 글로 소개한 바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호텔 같은 현대인들의 공간도 한옥으로 가능하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 목조건축대상을 받은 스타 건물이기도 하다.



이 라궁을 만든 모델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길이는 양쪽 3미터가 넘는 대형 모델인데, 구가건축 직원들이 직접 몇달을 밤새가며 만든 역작이다. 

 


대중들에게는 라궁이 가장 유명하고 또 중요한 작품이지만, 실제 건축 담당 기자로서 더 눈길이 갔던 모형은 바로 이것이다. 뱀처럼 길고 긴 이 건물 모형이 오히려 더 관심거리였다.


저 건물은 서울 홍대 옆 기차길 가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건축가 조정구씨는 서울 시내를 조각조각 내어 하나하나 답사하는 일을 몇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오늘은 창신동, 내일은 그 옆 보문동 하는 식으로 서울 시내 서민 거주지역을 훑고 다니는데, 이런 답사를 통해 건축가들 같은 전문가들이 한 건물은 아니지만 자생적으로 건축적 아이디어를 풀어낸 건물들을 찾고 그 속에 담긴 아이디어를 공부하는 작업이다.


이런 답사를 통해서 찾아낸 자생건축의 사례, 또는 흥미로운 건물로 꼽아 모형을 만든 것이 이 서교동 365번지 기다란 건물군이다. 학생들과 합동 스터디 대상이기도 한데 실측 수련을 위해 하나하나 건물을 측량하고 그걸 모형으로 다시 만들면서 그 속에 담긴 서민건축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전시회에선 저 모형과 함께 돈의동 쪽방을 서민건축 사례로 꼽아 모형으로 다시 만들어 분석한 작업도 소개한다.



역시 호텔 라궁 건물 설계과정에서 구조 이해를 위해 만든 모형. 실제 건축주에게 설계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 아니라 설계팀이 작업을 위해 따로 만든 모형이다. 한옥이어서 파생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정구 건축가는 어떻게 생긴 이냐고? 아래와 같다. 옆에서 조 소장의 설명을 듣는 분은 중진 건축가 김원 선생. 국립국악당과 러시아대사관 등을 설계한 김원씨는 현대건축가이면서도 환경 건축을 역설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건축계의 이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