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기자

<한국의 글쟁이들> 왜 썼나 2010/01/17

딸기21 2023. 3. 15. 13:57

사람 관심이란 게 늘 새로운 것, 다가올 것에 가있는 법이어서 내가 한 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걸 했었나 싶다. 책 <한국의 글쟁이들>이 나온 지 1년 반 쯤 지났는데 벌써 아득한 예전의 일 같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쓰긴 썼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생긴다. 처음 만난 분이 이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해주실 때, 그리고 이 책과 관련한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을 때다.
 
얼마전 <라이브러리&리브로>란 책 전문 잡지에서 `내가 지은 책'이라는 코너에 <한국의 글쟁이들>에 대해 써달라고 요청이 왔다. 제목 처럼 작가가 자기가 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꼭지였다. 별다르게 의미 부여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솔직하고 짧게 끄적거렸다. 건조체인 내 문체 속성상 멋대가리 없는 글이 되어버렸는데, 뭐 어쩌랴. 그게 깜냥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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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직업’이란 것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 인생과 직업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사회에 나온 한심한 사례로 가장 적합할 경우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일단 붙고 보자는 식으로 대학에 들어가 나사가 풀려 빈둥거리다보니 코앞에 졸업이 와 있었다. 또다시 붙고 보자며 취업에 나섰는데 다행히 호황이었던 시절이어서 운 좋게 취직은 했다. 문제는 직장이 글을 써야 월급을 주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글 쓰며 살게 되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해놓고도 정신을 못 차린 덕분에 내 글쓰기 인생은 ‘좌충우돌+시행착오’ 여덟 글자로 점철되고 말았다. 세월은 또 어찌나 잘 가는지. 순식간에 10여년이 흘러 이젠 적성을 탓하며 직업을 바꾸기도 쉽지 않게 됐다. 경력은 쌓이는데 글쓰기는 늘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심하게도 기자질 1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놈의 글쓰기란 것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그나마 더 늦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일단 좋은 글이 뭔지 한번 따져봤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글은 아주 간단했다. 한마디로 ‘쉽고 재미있는 글’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려운 것을 쉽게 가르쳐주는 글 △누구에게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글 △서로 다른 분야와 소재들을 이어주고 비교해주는 글들이다. 바로 내가 가장 쓰고 싶어 하는 글이자 안타깝고 화나게도 내가 쓰지 못하는 글이었다.

 

그러면 누가 이런 글을 쓸까. 글의 모범이 될 만한 이들을 찾아봤다. 우리 출판계의 주역들인 국문학자 정민, 역사학자 이덕일, 미술저술가 이주헌, 도올 김용옥과 한비야, 교양만화가 이원복, 경영저술가 구본형 같은 이들이었다. 이들 18명의 국가대표급 글쟁이들을 만나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들어봤다. 그 이야기를 <한겨레> 지면에 연재했다가 나중에 양을 두 배로 늘려 쓴 책이 <한국의 글쟁이>(한겨레출판 펴냄)이다.

 

분야는 서로 달라도 글쟁이들은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엄청난 자료 조사와 모든 것을 독자 위주로 생각하는 자세를 기본으로 하면서 전공 분야의 최신 정보와 담론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알기 쉽게 쓰는 것이 이들의 성공비결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전문가 집단과 독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며 책에 인생을 걸었다는 소명의식으로 몇 년 몇 십 년 고독하게 글을 써온 덕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쓰기 족집게 과외를 기대했던 엉터리 필자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물론 복음이었다. 그러나 몇 수 배운 대신 일생 동안 풀어야할 엄청난 숙제를 받고 말았다. 글은 기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정과 치열한 고민으로 써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직업 교육이란 게 뒤늦게 받으니 부작용이 이렇게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