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기자

희로애락의 건축-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딸기21 2021. 8. 5. 15:37

[Chat&책] 송윤경 방송작가·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

 

2015.06.05

 

몇 년 전 나도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별 생각 없이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생활-물론 보이기 위해 적당히 데커레이션을 한 일상이겠지만-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여전히 익숙지 않아 계정만 만들어 놓고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가끔 지인들의 소식을 슬쩍 엿보다 ‘좋아요’ 정도 누르는 게 다였으니까. 그런 내가 페이스북에 직접 글을 올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용실 아나운서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장난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름도 어찌나 곰살맞은지… 한참을 입 속에서 굴려보았던 ‘책장난’이라는 이름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놀이였다.

한동안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본 딴 ‘북버킷‘이라는 게 유행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 생애의 책 열 권 정도를 꼽아 선정 이유에 대한 설명과 함께 SNS에 올린 뒤 다음 사람을 지정하는 방식의 놀이였다. ’난 과연 무슨 책을 고를까?‘ 그냥 혼자 생각만 하다 말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내가 SNS를 잘 하지 않았을 때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목을 받지는 못했으니까.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을 자주 들락거리다가 ’책장난‘에 딱 걸린 것이다. ’책장난‘은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골라서 자기 나이만큼의 페이지를 편 뒤 한 눈에 확 꽂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버킷처럼 세 명의 다음 주자를 콕 집어내는 것이 규칙이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서해문집


그나마 열 권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책상 주변에 널려있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그 때 망설임도 없이 손에 잡은 책이 바로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이었다. ‘책장난’ 의 규칙대로 내 나이의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단박에 눈에 들어 온 문장은 바로 ‘공간은 크지 않아도 많은 표정들이 다양하게 들어있다’. 흠... 건물에 표정이 들어있다는 그의 생각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꿈’, ‘밥’, ‘일’, ‘책’ 같은 한 글자 단어를 유난히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집’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해 건축 전문 기자가 됐다는 저자, 구본준. 집이라고 하면 ‘부동산’을 대입해 온 내게 ‘집은 문화’이자 ‘건축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다. 그런 그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이 이 ‘마음을 담은 집-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다.

관심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다른 풍경이 보인다고 했던가. 이 책 속에 담긴 집들은 때론 미소를 짓게 하고, 때론 분노로 찡그리게 하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도, 즐거움에 들썩이게도 한다. 집이라는 것이, 건축이라는 것이 벽돌과 흙과 나무를 엮어 벽을 둘러 만든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곳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책 속에 담긴 집들은 시대도 다르고 지어진 장소도 다르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다 다르다. 당연히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하나같이 다 내가 사는 집 이야기처럼 가깝다. 그래서 딸의 안타까운 죽음을 담은 ‘이진아 도서관’ 개관식 날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고, 집 짓는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이 사람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눈높이에서만 바라봤던 건물을 조금 더 멀리서,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되는 신선한 경험도 하게 되고, 이념과 독재로 사라질 뻔 했던 공간이 우연히 되살아나게 됐다는 이야기에 직접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적도 있다.

그만큼 그의 글은 얄미울 정도로 따뜻하고 귀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구본준이 들려주는 집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 취재 중이던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운명을 달리하기 직전까지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 그는 분명 행복한 웃음을 지었을 것 같다. 그의 책 ‘마음을 품은 집’ 에 실린 찡그린 듯, 웃는 듯한 그 모습처럼.

저 위에서도 이 집 저 집 찾아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구본준 기자의 명복을 빈다.

출처 : PD저널(http://www.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