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에 가다 2009/10/01

딸기21 2021. 8. 5. 15:33

캐나다가 야심작을 선보였습니다.
내년 2010년 겨울올림픽을 여는 캐나다 밴쿠버에 새로 들어선 빙상 경기장입니다.
올림픽은 경기장 건축의 새로운 실험장이자 성대한 파티입니다. 그동안 현대건축에서 그닥 두드러지지 않았던 캐나다도 뭔가 보여줘야 체면이 서는 법이겠죠.

그래서 세계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경기장입니다. 최근 완공해 올림픽 사전 준비중인 이 건물을 국내 언론에겐 처음으로 <한겨레>에 공개했습니다.

 

밴쿠버의 인근 소도시 리치먼드에 들어선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경기장입니다.
캐나다의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파란 폴리카보네이트 표면처리가 인상적입니다. 벽면의 파란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것이 폴리카보네이트인데, 유리보다 세 배 이상 비싸고 자체 단열이 잘되는 고급 소재입니다.


그리고 저 폴리카보네이트 벽이 햇빛에 따라 조금씩 색조가 달라지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냅니다. 우리와 디자인 취향이 좀 다른데, 캐나다는 이런 처리를 좋아하더군요.
옆면 모습도 보시겠습니다.


이번에 캐나다로 목조건축 취재를 가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물이 바로 이 경기장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 건물이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실현한 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건물의 핵심은 바로 나무 지붕입니다.
 
철 구조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로 패널 시스템을 만들어 얹어 거대한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지붕 넓이는 무려 24000평방미터. 축구장 4.5배의 크기입니다. 세계 최대의 규격재 나무지붕, 세계 최대의 경골 목구조 지붕이 탄생했습니다.
쉽게 말해 일반 집지을 때 쓰는 가장 간단한 자투리 나무들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구조 지붕을 만든 겁니다. 나무 나라 캐나다다운 건축이라 하겠습니다.

지붕 일부가 더 튀어나온 경기장 입구.


그런데,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 지붕을 만든 나무가 어떤 나무냐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이니 가장 좋은 나무, 비싼 나무로 지은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목재로 쓰지 않는 버리는 나무, 폐목들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만든걸까? 그런 궁금증을 잔뜩 안고 경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 지붕의 규모가 서서히 실감나기 시작합니다. 가장 흔한 규격재인 2X4인치, 흔히 `투바이포'라고 부르는 규격재들을 조립해서 단면이 V자 모양으로 나오는 부드럽게 휜 삼각 패널들을 만들고, 이 패널들을 줄줄이 이어 다시 지붕 기본판을 만듭니다. 그 기본판들이 이어지며 전체 지붕이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저 지붕 나무들이 다 못쓰는 폐목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너무 말끔해서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캐나다산 소나무들인데, 딱정벌레 병충해를 입은 것들이랍니다. 땅정벌레들 때문에 나무 색깔이 퍼렇게 되는 청변현상을 일으킨 나무들로, 집 짓는데 안쓰고 버리는 나무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 자체의 강도에는 아무 문제는 없답니다.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퍼렇게 된 곳들이 있는데, 천장이 하도 높아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 빙상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거대 지붕이 일찌감치 위용을 드러냅니다. 시야 가득 나무지붕이 부드러운 나무색으로 시야를 압도해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무로 만든 하늘이 펼쳐진것 같습니다.


넓습니다. 정말 넓습니다.

지붕 크기가 축구장 4배반이라던 설명이 이제서야 실감이 납니다.
 
잠깐! 그런데 빙상경기장이라더니 왜 농구장이냐고요?
빙상경기장이지만 다목적 경기장이어서 농부, 하키, 배드민턴, 러닝 트랙 등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가지 경기를 치를 수도 있구요. 물론 얼음코스도 지금 당연히 가동중입니다. 저 바깥으로 훨신 더 넓게 빙상 트랙이 펼쳐져 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 빙상대표팀이 열심히 연습중이었습니다.
캐나다는 겨울스포츠의 강국이고, 겨울올림픽을 여러번 개최했습니다만, 캐나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캐나다 빙상팀이 금메달을 딴 적은 아직 없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반드시 따겠다며 더욱 열심히 연습한다고 하더군요.
 
씽씽 바람처럼 지나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밴쿠버는 올림픽 개최지 투표에서 1차에선 한국의 평창에 이은 2위였지만 2차 결선투표에서 평창을 3표 차이로 누르는 대역전극을 펼치고 유치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경기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장을 지을 때 가장 큰 이슈는 건물의 핵심인 이 지붕을 어떤 소재로 하느냐였다고 합니다. 철로 만드는 것과 나무로 만드는 것, 두가지 안을 놓고 최공 논의한 결과 선택은 나무였습니다.
 
왜 나무로 했을까요?
나무의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유일한 재생 가능 건축자재입니다. 그리고 저탄소 자재입니다. 특히 못쓰게된 청변현상 나무들은 놔두면 결국 불타서 탄소를 배출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목재로 쓰면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나무가 방음효과가 뛰어난 점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저 경기장 주변은 공항 근처입니다. 그래서 특히 더 방음을 중시했고, 그래서 소리를 흡수하는 능력이 좋은 나무로 결정되었습니다. 규격 목재들로 삼각형 모양 패널 시스템을 만들면 그 삼각형 안은 비어있게 됩니다. 이 공간이 소리를 흡수하고, 또 그 속에 배선 등을 보이지 않게 넣을 수 있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잇점을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목재가 철재보다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덜 소모한다는 점입니다. 목조 건물들이 보다 친환경적인 이유이죠. 최대 목재수출국이자 주택 강국인 캐나다로서는 목재의 이런 장점을 더욱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세계 최대의 나무 지붕 경기장을 만든 것입니다.
 
이 건물은 올림픽 경기 중에는 12개 금메달이 걸린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한편 도핑센터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올림픽 이후에는 리치먼드 시민들을 위한 체육 시설로 쓰이게 됩니다. 그래서 갖가지 부대 시설들이 많이 설치됐습니다.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3층 난간 가에는 트레드밀을 배치해 주민들이 열심히 체력 단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재활 연습실입니다. 줄을 잡아당기는 운동을 하는데, 재활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경기 전후 몸을 풀고 정리하는 데에도 쓴다고 합니다.


이건 무엇 같으십니까? 유리창 밖에서 찍어 바깥 모습이 좀 비쳤습니다.


실내 조정 연습장입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립대 조정팀이 겨울 등 물위에서 배타고 직접 연습할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 건물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구석구석 보겠습니다.


입구의 튀어나온 지붕을 지탱하는 저 기둥도 거대한 나무입니다.
저 나무는 `옐로 시더'란 캐나다의 명물 나무입니다.

시더는 `썩지 않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나무 자체에 기름기가 많아 부패가 안되고 벌레가 안먹습니다. 그리고 아주 단단합니다. 당연히 값도 비싸서 최고급 목재입니다. 레드 시더와 옐로 시더가 특히 많이 쓰는데, 저 기둥에 쓴 옐로 시더는 오래 되면 노랗던 무색깔이 점점 은색으로 변합니다. 지금은 노란 저 기둥도 나중에는 은빛으로 변할 겁니다.


건물 뒷편 개방공간입니다. 이 넓은 공간은 시민단체 등에게 빌려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취재 하러 간 날에는 바자회 자선 공연이 열릴 예정이어서 밴드가 연습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건물의 유리창에는 리치먼드 경기장 옆을 흐르는 프레이저 강물이 비치고 있군요. 밴쿠버시와 리치먼드 시가 있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에서 가장 큰 강입니다.
이 리치먼드시 프레이저 강 일대에는 왜가리가 많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건물을 지을 때 디자인 컨셉이 인근 지역의 자연 풍경을 `3F'란 키워드로 뽑아낸 것었다고 합니다. 프레이저 강의 흐르는 모습(flow)와 왜가리의 날아가는 형상(flight) 등을 융합(fusion)해서 디자인을 했다는 겁니다. 


캐나다 건축물들은 아래로 저렇게 사선 지지 기둥을 세우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건물은 구조적으로도 저 기둥이 무척 중요했을테고, 디자인면에서도 저 기둥들이 줄지어서 만들어내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저 기둥 사이사이로 설치한 지붕에서 빗물 내려오는 길이 아주 독특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빗물 내려오는 홈에 캐나다의 상징인 연어들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배수 시설에도 예술을 더한 것이지요. 이 지역 출신 미술가 수전 포인트의 작품입니다.

이 경기장에는 공공미술 작품이 여럿 들어 있습니다.
 
저 예술품 빗물통로로 내려온 빗물들은 경기장 옆 연못에 모입니다.


여기 모인 빗물은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데 쓴 뒤 정화처리를 거쳐 버려지게 됩니다. 참 알뜰살뜰합니다.
 
이 연못에는 공공미술품을 설치했습니다. 바로 이것.


이 망태기 같은 작품은 미국 작가 재닛 애슐린이 만든 것으로, 캐나다 원주민들의 어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아래 구불구불한 빨간 나무 다리는 중국의 용춤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밴쿠버에 워낙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인듯 했습니다.


이 줄지어선 동그라미들은 캐나다에선 무지하게 열심히 설치하는 자전거 거치대입니다.


경기장 출입문은 따로 없고 여덟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문처럼 들어섰습니다. 이것 역시 공공미술 작품으로, 버스터 심슨의 작품입니다. 기둥에 달린 유리판은 스케이트 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기둥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는 실제 스케이트 지치는 날 자국까지 만들었습니다.


리치먼드 빙상경기장은 분명 아릅답습니다. 많은 경기장을 가보지 못했지만 제가 가본 경기장 가운데에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보다도 저 경기장은 나무라는 소재로 발상의 전환을 꾀한 점, 나무의 아름다운 미감을 잘 살린 점, 그리고 친환경적인 건물이란 점에서 더욱 멋져 보였습니다.
 
특히 버리는 나무로 가장 흔하고 값싼 규격재를 만들어 그 잘디잔 목재들에 첨단 기법을 더해 세계 최대의 지붕을 만든 점, 그 점이 가장 이 경기장이 돋보이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무는 친환경적이면서 쌉니다. 이 싼 소재로 아름다움까지 건졌으니 1석 삼조의 성과를 거둔 목재 활용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실제 지금 캐나다 올림픽용으로 짓고 있는 여러 경기장들은 예산을 초과해서 캐나다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리치먼드 경기장은 애초 예산보다 적은 1800억원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전체 공사비에서 나무 재료비가 차지한 비중은 160억원. 10%에도 못미칩니다. 그만큼 경제적인 면에서 돋보입니다.
그리고 경기장 주변의 벤치 등도 모두 나무들인데, 여기 쓴 목재들은 원래 이 경기장이 있던 곳에 자라던 나무들로, 베어낸 뒤 버리지 않고 경기장 짓는데 최대한 활용했다고 합니다.
 
멋진 모습, 커다란 덩치 만큼이나 그 속에 들어있는 절약정신과 실험정신이 두드러지는 이 건물에서 내년 우리 대표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