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건물의 용도, 무엇일까요?
여기는 바일 암 라인이란 동네입니다. 동네 이름에서 예상하셨겠듯 독일입니다. 독일의 남쪽, 스위스와 접경지대인 작은 도시입니다. 이곳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하얗고 독특한 건물들이 풍기는 포스가 남다른 공장입니다. 주변은 허허벌판.
공장입구로 들어가면 넓은 중앙 큰 길이 나오고, 그 양 옆으로 건물들입니다.
저 아치 모양 구조물을 지나 쭉 가면 오늘 이야기할 건물이 등장합니다.
두 건물 사이로 이제 목적지가 보입니다.
바로 이 건물입니다.
이 건물이 무슨 용도로 지은 건물인지 한번 추리해보시죠.
정면에서 보면 이런데, 실은 무척 가늘고 긴 건물입니다.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면 그 모양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합니다.
건물 옆에 장식으로 댄 날카로운 모양의 지붕 구조물이 조금씩 자태를 바꿉니다. 더 옆으로 가면 건물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변합니다.
바로 요 각도가 이 건물의 얼짱각도입니다. 저 칼날같은 지붕 날개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럼 옆면으로 한바퀴 돌아보겠습니다.
옆으로 돌아가면 이 건물은 실은 제법 깁니다. 반대편 끝쪽으로 다가가니 이런 모양입니다. 시멘트로 만든 군함이랄까요?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오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완전히 끝에서 본 각도입니다. 그럼 더 왼쪽으로 가서 반대편 옆면을 보겠습니다.
정면에서 보면 뭉툭한 네모꼴이었던 모서리가 실은 날카로운 예각이었습니다.
조금 더 옆으로 가서 뒷마당 풍경을 봅니다.
아주 긴 유리창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마당이 정말 단순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 건물, 뭘까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힌트가 있을까요? 입구로 들어갑니다.
# 바깥 못잖게 이상한 내부
아까 들어올 때 봤던 날카로운 지붕 장식 아래쪽이 입구입니다.
들어가면 날카로운 건물이어서 내부도 무척 좁고 깁니다.
1층은 긴 복도뿐입니다. 2층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안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가 보입니다.
구조가 묘합니다. 중간에 쇠판으로 만든 기둥벽이 공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 구획벽 왼쪽으로는 화장실과 수납실이 있습니다. 그 오른쪽으로는 아까 본 긴 유리창이 있는 길입니다.
더 다가가보니 하나인 줄 알았던 금속 구획벽이 실은 두개였습니다.
이 건물은 이미 느끼셨겠지만 모든 것이 예각입니다. 실내 구조 장식 처리도 모두 예각으로 해서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끝까지 쭈욱 걸어가봅니다. 긴 창이 예상 이상으로 깁니다.
이 긴 유리창의 길이는 무려 29미터.
그런데 앞에서 볼 때는 이 복도가 이리 긴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앞에서 봤을 때 모습입니다.
왜 이 각도에서 볼 때는 창문이 그렇게 긴 것인지 몰랐을까요?
건축가가 장난을 쳤던 겁니다. 눈의 착시를 이용해서 원근감을 없앴습니다. 앞에 돌출되어 있는 구획벽 때문에 복도 앞쪽이 더 좁고 뒤쪽은 넓은데, 멀리서 보니 그 넓이가 앞이나 뒤나 비슷해보여 원근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자, 이게 1층의 전부입니다. 근무하는 사람? 여기는 없습니다.
그럼 2층은 어떨까요? 그런데 계단도 좀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하냐구요? 발판이 한쪽 옆으로만 붙어있습니다. 오른쪽 난간과는 이어지지 않고 떨어져있습니다. 불안해보이죠? 걸어보면 약간씩 꿀렁거리기도 합니다만, 물론 안전하죠.
계단 난간이 장식적이군요. 올라오면 역시 가늘고 긴 공간이 맞이합니다.
계단은 2층 중간으로 나옵니다. 올라와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반대쪽은 이런 모양입니다. 디자인이 독특한 싱크대가 있고, 더 안쪽으로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역시 반대쪽처럼 2층 야외 테라스로 나가는 문이 있군요.
저 테이블쪽으로 가서 2층을 바라보면, 역시나 깁니다. 그것으로 끝.
그러면 도대체 이 건물은 뭐냐, 정답은 `소방서'입니다. 정확히는 `소방서였습니다'입니다. 원래는 소방서였으나 지금은 소방서로 쓰지 않는 건물입니다. 그리고, 현대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물이 된 스타 건물입니다.
이 소방서는 지금은 이 가구회사 공장의 전시장 겸 창고로 쓰입니다. 이 동네에서 더 큰 소방서를 새로 지으면서 소방서 기능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방서였을 때는 1층은 차고와 화장실 등이 있었고, 2층은 소방대원들의 대기실 겸 숙소였답니다.
원래 소방차가 들어가던 차고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창고로 쓰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론 아라드의 히트상품인 의자가 잔뜩있네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소방서가 나온 걸까요?
# 건축 거장들의 작품 경연장 비트라, 거기서도 가장 독특한 건물
이 소방서가 있는 공장은 스위스의 유명 디자인가구 업체 `비트라'입니다. 비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명품 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20세기 디자인 역사에 이름을 올린 스타들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가구들은 물론 지금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을 맡겨 그 이름을 내걸고 팔고 있습니다.
이 비트라는 그런데 건축계에서 그 이름이 더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건물들을 공장 단지에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가 이 비트라 공장 단지에 디자인박물관과 가구 공장을 을 지었고,
우리나라 안양에 `알바로 시자 홀'이란 건물을 남긴 포르투갈의 건축 거장 알바로 시자도 해외에 수출하는 가구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회의동 건물을 지었습니다.
건축사에 그 이름을 올린 니콜라스 그림쇼와 장 프루베의 건물도 공장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비트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건물을 맡겨 공장 전체를 건축 박물관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 건축가들과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명소이자 문화 관광 코스로 수많은 이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이 유명한 스타 건축가들에게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재량을 주어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물들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바로 저 소방서처럼 말입니다. 저 소방서는 희한하게 생긴 건물들만 있는 비트라 공장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물로 손꼽힙니다.
# 남자들이 장악한 건축계를 뚫은 첫 여성 슈퍼스타 건축가
저 소방서는 남성 건축가들이 꽉 잡고 있는 건축판에서 유일하게 슈퍼스타급 건축가로 올라선 자하 하디드의 작품입니다. 이라크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리잡은 여성 건축가입니다.
바로 이 분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너무 분위기있게 잘나왔습니다. 그래서 자하 하디드는 늘 이사진을 언론에 뿌리는데, 실제 이미지는 이 사진을 보시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이라크 여성스럽게 생겼죠?
다시 비트라 소방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비트라를 현대 건축 최고의 명소로 만든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지닌 비트라의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본 베제삭은 비트라 공장에 아주 새롭고 파격적인 건물을 지어줄만한 젊은 건축가를 찾았습니다. 그 때 운명적으로 맺어진 건축가가 바로 자하 하디드였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변방 중의 변방 이라크 출신입니다. 게다가 여성이란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습니다. 원래 전공도 건축이 아니었으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건축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영국 건축사무소 피터 쿡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재능은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실제 건물은 지어지지 않지만 새로운 구상을 도면상으로 시도하는 작업으로 그녀는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많은 건축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유명 건축학교에서 미래의 건축가를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작업을 실제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초짜 건축가의 첫 작품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게다가 아무 실적도 없고, 인맥도 따로 없는 이론만 강한 여성 건축가. 그녀에게 데뷔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트라가 그녀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소방서 건물을 짓는데, 한번 마음껏 지어보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벼르고 또 벼르며 기회를 기다렸던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건축가지만 말레비치 등 절대주의 미술가들을 공부하는 등 독창적인 조형 아이디어를 다듬어온 내공을 이 건물에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저 독특하기 짝이 없는 소방서가 그녀의 데뷔작으로 비트라의 공장 안에서 탄생했습니다. 1994년, 그녀의 나이 마흔네살 때였습니다. 실로 늦은 데뷔였습니다.
모든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저 건물은 단숨에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하 하디드는 바로 스타급 건축가로 올라섭니다. 인생에서 기회는 늘 찾아오게 되며,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철저하게 준비하며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자하 하디드는 보여주었습니다.
#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세계 각국에서 일감이 쏟아지다
한번 능력을 입증하자 그 뒤로는 일감이 줄줄 몰려왔습니다.
2002년 완공된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에 있는 베르그이젤 스키점프대입니다. 저 점프대도 현대 건축의 주요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 스키점프대 보다는 다른 작품들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더 잘보여줍니다. 저 비트라 소방서처럼 뾰족하고,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길게 이어지며 여러 겹이 이어지고 중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타일말입니다.
스코틀랜드 한 병원에 있는 커칼디 매기스 센터라는 건물입니다. 예의 날카로운 예각처리가 두드러집니다.
세비야대 도서관입니다. 길고 각진 처리가 하디드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정말 도서관 맞긴 한가요? 모양만 봐선 도무지 알아맞히기 어렵군요. 저도 가보지 못해서...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BMW 공장의 중앙 빌딩입니다.
안은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명해지면서 이런 소품 등도 디자인하게 됩니다. 작은 파빌리온이 개성적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작업도 했나보군요.
스포츠 의류 라코스테와 한 작업입니다. 악어 무늬를 독특하게 바꿔 프린트했네요.
몽펠리에 빌딩이라고 합니다. 다른 각도 사진 하나 더.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자하 하디드는 그 어떤 건축가들보다도 많은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건축가가 되었는데도 작품 수가 한둘이 아니고, 추진중인 프로젝트가 수두룩합니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바로 이 것
그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작품이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고 짓고 있는 건물입니다. 미리 그려본 그림은 이렇습니다.
조금 더 위쪽에서 본 그림으로 보시겠습니다.
바로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그 자리에 짓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입니다. 서울에 들어설 자하 하디드의 새 작품입니다.
자하 하디드는 지중 캠퍼스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이화여대 새 캠퍼스 설계를 경쟁 공모했을때 응모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자하 하디드를 누르고 당선된 이는 파리 국립도서관으로 유명한 도미니크 페로였죠. 한국 건축에서 세계적 스타들이 경쟁했던 거의 첫번째 경기였습니다.
그 때 떨어진 대신 자하 하디드는 더 큰 프로젝트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로 서울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저 작품은 대지와 건물, 조경과 건축이 하나로 연결되는 요즘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저 작품이 좋든 싫든 이미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어찌됐든 서울에 그녀의 작품이 지어지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말 건축계가 인정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 뿐입니다.
# 자하 하디드, 왜 유명해졌는지 실감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작품 중에서 여전히 자하 하디드라고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작품은 데뷔작인 저 비트라 소방서일겁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지금 봐도 파격적인 디자인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보니 분명 그 힘이 대단한 건물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자하 하디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선 너무 과해 보이는 디자인이 싫습니다. 건물은 조각작품은 아닙니다. 사람이 들어가 살거나 일하는 일종의 기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술을 하려면 집이 아니라 조형물로 하면 되지요.
그런데 자하 하디드는 너무 꼴을 강조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보였습니다.
저 비트라 소방서를 사진으로 볼 때도 그랬습니다. 너무 예술을 지향해서 건물이 아니라 조형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디드를 좋아하지 않는 한 건축가는 저 비트라 소방서를 보고 너무 싫어서 짜증이 났다고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모양을 강조해 뾰족하게 달아놓은 저 지붕이며 날카로운 면처리가 비인간적이어서 참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일하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이 진짜 좋은 건축이지 한번 보기에 폼 나지만 볼수록 정떨어지는 저런 과한 건물이 무슨 걸작이냐는 신랄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트라를 볼 기회가 더 기다려졌습니다. 과연 어떤 건물인지 보고 판단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분명 쓸모는 떨어지는 건물이지만 자하 하디드의 감각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정하고 예술을 해보라고 해서 누구나 저렇게 뽑아내긴 어렵습니다. 자하 하디드, 그녀는 분명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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