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청와대 옆 여관에 도대체 무슨 일이? 2009/09/27

딸기21 2021. 8. 5. 15:10

도대체 이 이상하게 칠한 건물은 뭐냐
 
서울에서 가장 꽃으로 아름답게 꾸민 길이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청와대로 올라가는 효자동길이다. 청와대 가는 길이니 연중 꽃들로 아름답게 치장해놓는다.

 

괜찮은 커피집, 작은 쌈지공원, 미술관 등이 나오는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경복궁의 서쪽문 영추문이 나온다.
통의동에 살았던 시인 이상이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한다'고 읊었던 그 동네, <오감도>의 `마지막 골목'이라고 했던 그 골목쯤이다.
 
바로 그 영추문 맞은편 골목에 도대체 뭔가 싶은 건물이 등장한다.
 


뭐지? 저 요란뻑쩍지근한 건물은? 간판을 보니, 여관?
 
뜻밖의 역사를 지닌 80년 된 보안여관
 
정부 기관들, 교육기관들, 그리고 고급 주택가가 섞여있는 통의동에 여관이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기 쉽다. 그리고 여관이 저런 모습이란 점도 의아한 노릇이다.
좀 더 다가가 보자.
 


뭐냐, 이건. 여관을 이렇게 총천연색으로 칠하다니...하고 보니, 칠이 아니다. 테이프였다.
그리고 앞 벽에는 안내포스터가 붙어있다. 전시회 포스터다. `휘경, 사라지는 풍경'.
장소는? 바로 이 곳. `통의동 보안여관'. 여관은 전시장으로 변해있었다.

여관에서 전시회라니, 그리고 여관꼴은 이게 뭐람? 재미는 있구만. 그럼 들어가보자.
 


자, 이제 통의동 보안여관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여관 내부가...좀?
 


좁고 긴 방들이 이어진다. 거의 교도소의 독방들처럼 좁고 촘촘하다.
예전 여관들이 이리도 좁았던가, 그러면 이 여관은 언제 지은 걸까, 아니 저 천장이랑 벽은 다 뜯어낸 것이잖아, 그럼 수리중인 건물?
 
도대체 이 여관은 뭘까.
통의동 2-1번지에 자리잡은 이 보안여관은 80년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일제시대 건물이었으니 이른바 `적산 가옥'이다. 그러나 이 여관의 의미는 단순히 80년 역사에 있지 않다. 이 여관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다.
 
이 여관은 옛날 시인들의 아지트였다. 서울에 올라온 문인들은 언론사와 출판사들이 가까운 이 곳에 몇 달씩 장기투숙, 또는 하숙을 하며 작품 원고를 넘기고, 또 잡지를 만들고, 모여서 수다를 떨고, 문화 활동을 했다.
그 유명한 시인 서정주가 1930년대의 문화적 상징이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부락>을  이 여관에 머물면서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만들었다.
 
수리 공사중인 여관이 전시회장으로 변한 이유는?
 
그 뒤로도 오랜 세월 문화인, 나그네들이 머물렀던 이 곳은 이제 주인이 바뀌고 운명도 바뀌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그래서 지금은 내부를 뜯어내고 공사중이다.
그런 중간에 잠시 전시회가 여기서 열리게 됐다. 그 전시가 바로 `휘경, 사라지는 풍경'이다.
 


첫 작품? 아니다. 이건 이 여관이 영업하던 시절 쓰던 간판이란다. 작품은 그 다음부터...
 


여관 1호실에서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작품은 신은경씨의 <가정식 드로잉-가훈>이다.
신씨는 재개발로 폐허가 된 휘경동 한 부서진 가정집에서 이 가훈을 줏었다. 그래서 다시 이를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왜 휘경동이냐고? 잠깐 다시 생각해보면 전시 이름도 `휘경, 사라지는 풍경들'이다.
이 전시회는 모두 휘경동에 살거나 작업실이 있는 미술가 강지호 권용주 김주리 김태균 김형관 신은경 6명의 합동전시회다. 
휘경동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집장수 집들이 밀집되어 있던 동네. 단독주택이 싹 헐린 다음에는 다시 엇비슷하게 생긴 다세대 공동주택 밀집촌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또다시 아파트촌으로 바뀌려한다. 이런 변화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을 달고 한 동네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작가들의 작업실도 재개발로 헐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작가들은 문득 의문과 상념에 빠졌다. 한 동네에 스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과 흔적이 싹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됐다. 과연 사람들이 꿈꾸는 집이 무엇인지.
그래서 휘경동 주민들에게 각자 꿈꾸는 집을 그려달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나섰다. 그러면서 부서지는 재개발 현장에 대한 고민을 더욱 하게 됐고, 그런 고민을 미술작품에 담아 이번 전시회를 마련한 것이다.
휘경동에서 휘경동에 대한 전시를 해도 좋았겠지만,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마침 건물 자체가 재개발되는 이 묘한 여관이 전시장으로 안성맞춤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묘하고 이상한 공사중인 여관건물 전시회가 탄생했다.
 


이 폐허같은 전시장 속에 작품은 어떻게 놓일 것인가, 폐허와 어울릴 것인가, 그 속에서 홀로 도드라질 것인가... 그런 점들을 생각하고 보면 더 재미있는 전시회다.
 


이 묘한 프린트 무늬는 재개발로 헐리는 휘경동 가정집 유리에 붙이는 테이프나 벽지들의 문양을 스캐닝해서 다시 만들어낸 김태균씨의 작품이다.
작품 못잖게 그 아래 내장을 드러낸 여관 벽 모습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80여년 동안 벽지는 몇차례나 붙였을까. 덕지덕지 두꺼워진 벽지의 흔적이 여관의 나이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여관 방은 정말 좁다.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나, 서민들 옛날집은 상상 이상으로 좁고 단순하다. 서민들이 머물던 여관도 그랬을텐데, 접할 수 없던 시절의 것이라 그래도 낯설고 그 좁음에 놀라게 된다.
 


깔끔하고 화려한 색감이 폐허가 된 방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
김형관 작가의 <모어 댄 디스 #1>.
 
자세히 보면 작품 재료가 뜻밖이다. 색색 테이프를 오려붙여 만든 그림이다. 테이프를 여러겹 붙이면 중첩되어 음영효과를 내는 원리를 잘 활용했다. 만드는데 얼마나 수고스러웠을까. 큐레이터에게 물어보니 한 작품에 꼬박 한 달 걸렸다고 한다. 한 작가의 한달치 에너지와 영혼이 물질화된 것이다.
들여다보면 일본 만화캐릭터같은 등장인물들에, 불타는 남대문도 있다.
 


다음 방에도 김형관씨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작품도 좋지만 전시장 꼬락서니가 죽인다. 이 폐허 속에 작품들이 걸린 느낌도 죽인다. 폐허라는 공간이 지니는 강한 시각적 위력, 그 속 작품들이 들어가 생기는 이미지의 충돌 혹은 퓨전.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점에서 좋은 전시다. 이런 재미있는 전시가 게다가 무료다.
 


이건 또 뭔가. 저 액자들이 작품? 그런데 여기만 공사를 하나, 시멘트를 개어놓는 모양인데?
아니다, 저 시멘트도 작품이다. 권용주씨의 <누구의 산>이란 작품이다. 그 뒤로는 산 사진 등을 담은 액자들을 걸었다. 휘경동 재개발 현장에서 줏은 것들도 있다. 자세히 보니 시멘트 더미가 영락없는 백두산 모양이다.
 


바로 옆 방에는 휘경동 주민들이 그려준 각자 꿈꾸는 집 그림들을 붙였다. 그 옆 텔레비전 화면에선 휘경동에서 채집한 소리들, 대화들, 화면들이 나온다. 주민들의 이야기, 공사장 모습들... 휘경동이란 이름의 동네에서 벌어지는 공감각적인 것들이 이 곳에서 재현된다는 것, 그게 참 묘하지 않은가.
 
권용주 작가의 작품은 이 옆방으로 나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로 하나 더 이어진다.
 


계단이 좁고 가파른 것이 예술이다.
 


저 계단을 올라갔더니 정말 기념비가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타이르는 듯한 기념비.
 


그래, 당신 말이 맞소, 라고 속으로 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다시 가파른 계단 아래를 본다.
다시 봐도 예술이다. 이 계단도 작품이다. 내려오다 말고 사진을 찍었다. 좁디 좁은 공간에 시멘트 발라 만든 어느 인부의 작품이렸다.
 


이제,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니 펼쳐지는 2층 역시 폐허가 가관이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계단에 직접 손글씨로 쓴 지시문을 보며, 문득 저 계단을 서정주 시인이 뛰어내려가다 주인에게 핀잔 듣지는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깨진 유리 모양의 작품이 먼저 등장한다.


그리고 이 현장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의 그림.


강지호씨의 <초토화>.
그런데 초토화의 한자가 超吐花다. 토를 뛰어넘어 피는 꽃? 오바이트 너머에도 꽃은 핀다는 것일까? 삶의 현장을 초토화시키는 재개발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라고 한다. 과연 초토화는 전쟁에서만 일어나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큐레이터 창파 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계속해주었다.
이 작품은 휘경동에 무지하게 많은 건물 모양을 정교하게 흙으로 말려 만든 김주리씨의 작품이다. 초등학교 시절 진흙공작 시간이 떠올랐다. 진흙으로 만든 것은 그늘에 말려야지 양지에서 말리면 갈라지는 법. 그러니 저렇게 정교하게 만드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느냔 말이다. 작가는 인내심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 아래가 이상하다.


작가는 이 공들인 작품 아래에 물을 부어놓았다. 물에 젖은 진흙집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성껏 지은 집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재개발에 헐리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있는 전시구경, 파헤친 집구경, 옛날 여관 꼬락서니 구경을 모두 마치고 나선다.
나서는 길에 손전등들이 보인다.


"혹시 이것도 작품인가요?"
"아, 이거요? 지난 주말에는 야간에도 전시장을 열었거든요. 그런데 불을 끄고 이 플래시 들고 직접 비추면서 작품을 감상하게 했어요."
이런, 그거 재미있었겠군. 그 때 올걸.


나와서 발길을 돌리기 전, 다시 외벽 테이프 작품을 감상한다.
작가 김형관씨의 작품 설명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은 사라진, 혹은 사라질 휘경동 풍경을 색색의 포장테이프로 재현한다. 그 색과 형태를 수백년 간 지속할 플라스틱 테이프는 한 세대 만큼도 이어지지 못하는 풍경을 담는다."
한 세대 만큼도 이어지지 못하는 풍경, 그 말에 공감하면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작가들이란 언제나 기록자들이다. 그들의 시각과 발상엔 탄복할 때가 많다.
 
여관은 잠깐만 머물다 지나가는 곳이다. 이 휘경동의 기억들도 이 여관에 잠시 머물뿐이다.
그 잠깐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한, 우리 모두는 휘경동 주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