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야하고 웃겨서 더 슬픈 고발 사진들 2008/06/03

딸기21 2018. 9. 7. 15:02

이번 글에선 미성년자 관람불가 사진을 올리게 됐다.

예술이라 생각하시고 노출에 대해선 잠깐만 눈감아 주시길 바란다.


포르노냐, 예술이냐-한 사진가의 색다른 시도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아무리 봐도 사진 자체로는 독해가 쉽지 않다. 일단 보도록하자.

얼핏 보면 포르노같기도 하고, 무언가 강하게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포르노라고 보기엔 너무 진지한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굴까? 저 남자들은?




노출이 세지만 틀림없이 웃기는 사진이다. 그 웃음 뒤에 묘한 무언가가 작품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슬픔일까? 사람마다 다를테니 통과하고 다음 사진으로.




역시 묘하다. 더욱 웃기는 모습이다.

여자는 아까 그여자 맞다. 남자들도. 그런데 이번에 저 포즈는 또 뭐란 말인가? 

등장하는 이들이 동양사람들인데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인가? 아니면 일본? 중국?


일단은 사진을 한 장만 더 보도록 하자. 




앞선 사진들보다 무언인지는 모르겠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드러나는 사진이다. 좌우지간 저 여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세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진에선 그 공통점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혼자뿐인 여자가 주인처럼 시공간을 지배하고, 남자들은 마네킹처럼 피동적이다. 저 여자만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있고, 등장하는 남자들은 거의 아무 생각없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그런 모습 속에서 무언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이 어렴풋이 느껴지긴 하는데,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까지는 알기 힘들다.

그리고 그 이전에, 도대체 이 사진들은 무엇이며 누가 이런 희한한 사진을 찍는 것인가?


저 사진들은 한 사진가의 시리즈 작품이다. 작품 이름은 <해결방안>.

작가는 누군가. 쉬용(徐勇)이란 중국의 사진작가다. 


저 이상하고 웃기는 사진 시리즈는 이 쉬용이란 작가에 대한 사전 자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젊은 작가의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이거나 치기어린 해프닝성 작품으로 오해하기 쉽다. 쉬용은 젊은 작가가 아니라 올해 쉰네살의 중견 작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제법 알려진 스타급 중국 현대사진가다.


쉬용의 사진 세계가 원래부터 저런 도발적이고 이상야릇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국의 옛 도심 전통가옥 밀집 지역의 꼬불꼬불하고 오래된 골목길인 ‘후통’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가였다. 그의 사진들을 보자.




쉬용의 80~90년대 작품들이다. 쉬용의 후통 사진들은 단순하면서도 정갈하고 빛의 처리가 탁월해 무척 서정적이다.

후통은 중국의 서민문화와 전통건축을 상징하는 문화적 유물이지만 개발 바람속에서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쉬용이 찍은 후통 사진들은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후통을 전하는 역사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다.


쉬용은 원래부터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통 관광 사업을 하면서 관광상품에 쓸 사진을 찍은 것이 시작이었다. 오랫 동안 사진을 찍으며 그의 실력은 늘어갔다. 한번도 사진을 정규 교육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그는 타고난 감각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찍었고 점점 유명해졌다. 그의 직업도 전업 사진작가로 바뀌었다. 이제 그의 작품은 해외 미술관들에 소장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사진을 평생 찍어온 그가, 그리고 유명한 작가인 그가 2006년 발표한 사진 연작이 바로 저 <해결방안> 시리즈였다. 왜 그는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진을 찍은 것일까? 


저 사진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남성들을 가지고 노는 여자는 위나(兪娜)란 성매매 여성이다.

광부네 집에서 태어난 위나는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꿈많은 소녀였다. 그러나 대학에 떨어진 뒤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도우러 직업을 구하려 돌아다니다가 인생이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술집에서 일하다가 결국 성매매여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졌으면서도 위나는 일기를 썼다. 주변 성매매 여성들의 슬픈 사연, 마약으로 찌든 그 바닥의 문제점을을 혼자서 기록했다. 


쉬용은 이 위나의 사연을 통해 중국 사회의 문제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그는 빠르게 자본주의화, 물질화 되어가는 중국 사회에서 암세포처럼 번져나가는 성매매 문제를 사진으로 다루기로 결심한다.


실제로는 성매매가 만연하는데도 중국 정부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쉬용은 실제 성매매 여성인 위나를 모델로 저 <해결방안> 연작을 찍었다. 이 시리즈는 2006년 4월 중국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위나의 일기와 함께 선보였다. 


사진 속 위나와 극도로 대비되어 코믹한 모습들인 남자들은 모두 전문 배우들이다. 쉬용은 남자 배우들이 철저하게 익명성을 띄도록 연출했다. 그리고 위나는 벌거벗은 채지만 사진속에서 홀로 자기 의식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쉬용은 한 인터뷰에서 “(벌거벗은 위나와 무표정한 남자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성매매 현실과 이를 덮어두려는 사회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사회의 치부이자 당면 과제인 성매매 현실을 사회에 알린 쉬용의 전시회는 당연히 중국 사회에서 커다란 화제가 됐다. 쉬용은 사진판매 수익금으로 위나에게 술집을 그만두고 새출발하는 지원금으로 건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다시 사진을 보면 코믹 포르노처럼 보였던 내용이 달리 보인다. 당당하게 볼테면 보라는 식으로 알몸을 드러내며 중국 남성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꼬집는 위나의 모습은 에로틱한 여성 모델이 아니라 슬프고 처절한 투사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웃음부터 자아내는 독특한 설정이 그 속에 담긴 현실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쉬용은 한 소녀가 창녀가 되게 된 사회를 가벼워보이는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다뤘다. 먼저 호기심으로 사람을 잡아당겨 보게 만들고 그 속에 담긴 현실에 대해 인식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쉬용의 저 <해결방안> 사진은 가장 처절한 슬픔을 가장 웃기는 방식으로 다룬다. 슬픔은 웃음속에서 느껴질 때 더욱 애절하고 또 그 슬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 사진 자체 대해서는 보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이 엇갈릴 법하다. 하지만 그냥 단순한 볼거리 사진은 분명 아니다. 포토저널리즘만이 사진의 고발 정신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통로가 아님을 저 사진은 보여준다. 쉬용의 연출 사진은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인만큼,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겐 불편한만큼 그 속에 담긴 문제를 강변한다. 


이 <해결방안> 사진들이 서울에 온다. 사진전문 전시장 갤러리룩스(02-720-8488)에서 열리는 ‘중국현대사진전-용호상박’이란 전시회다. 이 전시회는 쉬용만이 아니라 치우쩐, 양루이, 창신, 미아오샤오춘 등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사진가 5명의 작품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자리다. 그 1부로 6월10일까지 이 쉬용-위나 전시회를 연다.


저 사진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볼 노릇이다. 우리 사회엔 얼마나 많은 위나가 있는가? 


쉬용을 보며 떠오르는 작가-웃음으로 역사를 고발하는 조습 


쉬용의 사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연상된 사진은 한국의 젊은 작가 조습의 연작들이었다. 쉬용과 조습은 분명 작품 세계가 다르다. 하지만 비슷해보이는 점도 많다. 연출 사진으로 먼저 웃음을 주고, 그 뒤 풍자로 뒤통수를 친다는 점이다.


조습이란 작가를 처음 대중들에게 알린 것은 바로 이 작품이었다. 굳이 몇년에 만든 작품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저 두 등장인물의 포즈는 너무나 낯익은 이미지다. 전두환 정권을 몰아낸 6월항쟁의 도화선이었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패러디했다. 민중미술가 최병수씨의 유명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이 저 패러디의 원본이다.


제목 <습이를 살려내라>에서 알 수 있듯 저 피흘리는 서포터가 작가 조습 본인이다. 이 사진은 역사와 민중을 소재로 하지만 부담없는 웃음 그 자체로 가볍게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마치 개그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럼 저 작품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80년대의 냉혹한 독재나 2002년 당시의 맹목적 애국주의나 국민을 옥죄긴 마찬가지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 방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소재는 좀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파고들었고 웃음 역시 더욱 날카로워졌다.




어떤 장면 같은가?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처음엔 이사람들 되게 웃기게 하고 찍었네, 하고 보게 되다가 테이블 건너편 남자가 총을 꺼내 선글라스를 낀 맞은편 남자를 겨누는 장면을 깨닫게 된다. 제목은 예상대로 <10.26>.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바로 그 궁정동 사건을 희화화했다.

저 웃기는 사진은 웃음 속에서 역설적인 역사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저 장면 자체가 웃기는 노릇이라고 비꼬고 있다. 


다음 작품 역시 비슷하다. 




조금 들여다보면 제목을 유추할 수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저 군인이 암시하듯 제목은 <5.16>이다. 역시 이 역사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조롱한다.  


웃음의 강도면에서 가장 강한 그의 대표작 하나 더 소개한다. 제목은 <물고문>.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그 잔인한 물고문 사건을 가져와 조롱하고 깔아뭉개며 우리에게도 여러가지를 생각해보라고 슬쩍 권한다.




한쪽에선 물고문을 하는데, 그 뒤에선 때를 밀고 있다. 그 부조리함에 우리는 웃는다. 작가는 국가가 저지른 저 만행이 그만큼 부조리하다고 고발한다.


실은 개인적으로는 저런 주제의식 이전에 요즘 세상에 어디서 저런 고전적인 목욕탕을 찾아 장소를 섭외했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고 실토해야겠다. 


이렇게 웃기는 사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비단 쉬용과 조습만의 방식은 아니다. 요즘에는 정말 웃기면서도 주제의식의 날이 서 있는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웃음으로 고발하겠다는 시도는 가장 어려운 도전 분야라고 본다. 고발 자체도 어려운데 그걸 웃기기처럼 어려운 방식으로 하겠다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 쉬용과 조습의 작품이 100% 맘에 안들지라도 박수치고 싶다. 저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전에 일단 웃게라도 되지 않는가. 


쇠고기니 대운하니 고발할 법한 이슈가 많은 요즘, 고발하면서 쓴 웃음이나마 잠시 웃음 지어보게 하는 작가들이라도 많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