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네덜란드의 별난 정자-한국은? 2009/09/22

딸기21 2021. 3. 9. 22:42

# 노아의 방주 말고 프리슬란의 방주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프리슬란. 네덜란드 땅을 혈관처럼 잇는 운하들이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동네입니다. 지난해 이 프리슬란에 새로운 것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강물 위에 둥실 떠있는 저 하얀 것, 도대체 무엇일까요?
잠수함 같기도 하고, 길쭉한 얼음집 이글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고 이상한 저 구조물은, 그래도 `세계 유일의 건축물'입니다.

 

 

자, 이 건물은 방주입니다. 그러니까 배인 것입니다. 저렇게 땅에 붙어 있어도 연결을 풀고 배에 매달면 여기저기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구조는 실로 간단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큰 통이라고 하겠습니다. 설계도도 참고하시지요.

 

 

저 건물의 이름은 프리슬란 방주입니다. 어디에 쓰는 건물일지 처음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마을 프리슬란이 저 독특하고 이상한 건물을 구상한 것은 11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지역건축위원회에서 1998년 마을에 필요한 건축과 조경문제를 논의할 공간, 그리고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전시할 공간, 동시에 주민들이 모여서 토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출발이었습니다.
 
프리슬란 마을은 공모에 들어갔습니다.
마을의 새로운 소통공간이자 문화공간이 될 건물이니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모은 공모안 중에서 뽑은 당선작이 바로 저 방주 전시관 겸 커뮤니티센터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저 방주가 완성되었습니다.
 
왜 하필 방주였을까요? 프리슬란과 옆 동네들은 대부분 운하로 연결됩니다. 배처럼 둥실 떠다니며 주변 마을을 연결할 수 있는 건물이란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저 프리슬란의 방주는 우리로 치면 시골 면 단위에서 만든 마을 회관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도 세계적 화제가 되었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고 단순한 건물이 돋보이는 까닭은 시골 마을에서 지역주민들이 토론할 공간을 독창적 아이디어를 채택해 지었다는 점, 그리고 작은 지역 단위에서도 건축과 조경 그리고 환경을 이야기할 공간을 짓기로 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오랜 지방 자치의 전통을 이어가는 네덜란드다운 건축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마을에서 건축을 논한다는 점은 네덜란드가 왜 지금 세계적인 건축강국으로 세계 건축을 선도하는지 그 이유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 한국은 원래 커뮤니티센터 건축의 나라였다
 
프리슬란 방주같은 저런 공동체 건축은 주민들의 소통, 어울림, 그리고 문화의 장이 되는 중요한 건축의 장르입니다.
이런 건물들은 아쉽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부족한 건물들이라 하겠습니다. 면사무소, 노인정, 부녀회관 등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직접 만드는 공동체 건물, 문화 중심이 되는 공동체 건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커뮤니티 센터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쌀농사를 짓는 사회경제적 특성 탓에 한 마을에 가족처럼 이웃하며 강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살았고, 당연히 건축에 있어서도 공동체용 건물들이 아주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독 발달한 건축물이 바로 누와 정,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정자'였습니다.
 
정자라고 하면 보통 경치 좋은데 세워 풍류를 즐기는 건물로만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같이 모여서 쉬면서 대화하는 정자도 있었습니다. 주로 농민 주민들을 위한 정자들입니다.
양반용 정자들이 시쓰고 술마시기 좋은 기와집 정자로 산과 계곡에 들어선다면,
농민용 정자들은 일하다 잠시 쉬기 좋은 초가집 정자로 마을과 논밭의 경계에 지었습니다.
이런 정자를 `모정'이라 불렀습니다. 주민들은 여기 모여 쉬고, 때로는 마을전체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잘 아시듯 이런 주민 자치센터형 정자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저런 정자를 살리는, 그리니까 프리슬란의 방주처럼 우리식 지역 커뮤니티센터 건축의 새로운 시도는 없을까요?
문화재단 `아름지기'에서 펼치고 있는 `정자나무 가꾸기' 사업이 그런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정나나무 가꾸기. 사진=오종은 작가

 

전통마을 어귀나 마을 중심마다 있기 마련인 커다란 나무, 그러니까 `정자나무'들이 바로 한국 정자들의 진수입니다.

 

정자 기능을 하는 이 나무들은 커다란 나무 자체를 건물처럼 활용한다는 점에서 정말 극도로 단순화한 건축물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나무가 그냥 바로 커뮤니티 센터가 된다는 점에서 최고의 친환경 건축, 경제적 건축이기도 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정나나무 가꾸기. 사진=오종은 작가

 

정자나무 가꾸기 사업은 한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터이자 쉼터였지만 이젠 황폐해진 시골 마을 노거수들 주변을 가꿔 다시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동네 미관을 개선하는 지원사업입니다. 주민들이 직접 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니 지원을 해주는 것인데, 이제는 신청을 받고 있는데 그 인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 지난해 선정된 곳이 바로 저 사진 속 간파리 느티나무였습니다.
또 다른 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바로 두물머리의 느티나두 두 그루였다고 합니다.

 

양평군 양수리 느티나무 가꾸기. 사진=오종은 작가.

 

정자와 정자나무들은 사라졌지만 그 기능들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 지역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건축물들, 또는 정나나무들이 등장할 때입니다. 물길 많은 네덜란드에 어울리는 프리슬란 방주가 등장한 것처럼, 물좋고 산좋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양수리의 멋진 느티나무 정자나무 사진 하나 더. 역시 오종은 작가 작품입니다.
동네마다 저런 멋진 나무를 잘 가꿔 그 밑에서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