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내가 ‘허걱’한 인도 2009/02/04

딸기21 2018. 9. 28. 15:27

덜컥 떠나다

 

살면서 중요한 이벤트-실은 돈 드는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할 때가 있다. 아니, 고백하자면 그럴 때가 더 많다. 

어느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말했다. “이번 설에 인도 가자.”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그냥, 당신하고 아들녀석만 갔다와. 난 휴가를 내야 하잖아.”

아내는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내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기왕 가는 거 다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맞는 말 같았다. 그래서 1주일 뒤 같이 떠났다. 인도로.

 

드디어 이룬 로망

 

생각해보니 난 늘 인도를 좋아했다. 카레라이스도 좋아했고, 라씨도 좋고, 사모사도 좋고, 달도 좋고, 탄두리 치킨도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인도 음식만 좋아했다는 건 아니다. 

내 학생시절 여행에 관한 로망은 단연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가보는 것이었다. 서남아시아에 뭐 환장한 거 있냐고 말하겠지만 내 마음이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어린 시절 유독 열심히 읽었던 <실크로드 컬러 화보집> 탓이다.

아프카니스탄의 ‘알라의 눈물’ 호수, 카라코람 하이웨이, 바라나시와 인도 스투파를 무지하게 보고 싶었다. 또다른 로망 지역은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라는 사마르칸드를 가보는 것이 2순위 로망이었다.

 

어릴 적에 어른이 되면 당장 가야지, 늘 생각했는데 왠걸. 나이 마흔까지 인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완전 젠장할 노릇 아닌가. 

다행히 사마르칸드는 다녀왔는데 인도는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인도를 가자니 ‘그럼 가자’고 조건반사했던 것이다. 

 

길 위에서 받은 인도의 충격

 

좌우지간 그래서 인도에 갔다. 가보니 인도는 인도다. 저녁에 도착해 잠자고, 이튿날 길을 나서자마자 이 풍경을 보았을 때 내가 인도에 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오토바이와 올드카, 승합차 그리고 코끼리가 함께 차도를 누비는 나라라, 흠.

인도로 떠나기 전, 회사에서 옆자리에 앉는 권아무개 기자에게 물었다. 

“인도 가보시니 어떠셨어요?”

권기자는 놀라며 나를 봤다. 

왜 그럴까 궁금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발전된 조국에 감사하게 만드는 나라에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한 18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나라, 그리고 위생과 청결 이런 가치들이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는 나라,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들려준 또 한마디. 


“인도는 길이 가장 충격적이에요.” 

“네? 길이요?”

“네, 길이요. 길 위에 한 10여가지의 생물종이 사람들하고 함께 다녀요.”

인간과 공생하는 동물 여남은 가지면 꼽기도 어렵다. “소, 말, 개, 돼지, 염소, 고양이, 쥐... , 이거 어려운데요?”

“인도하면 코끼리잖아요. 그리고 낙타도 있고, 원숭이도 있어요.”

 

그 때는 그 말을 실감 못했다. 그러나 이튿날 길을 나서자마자 저 광경을 보곤 알 수있었다.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은 그냥 일상일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뉴델리같은 큰 도시의 차도 안으로 코끼리가 다닌단 말인가. 소야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 궁금증을 인도에 5년째 살고 있는 우리 식구 중 한 명(실은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너무나 간단히 인도가자고 결심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 숙소가 해결이 되는데 안 갈 수가 있었겠는가)이 설명해줬다. 

“여기선 애들 생일 같은 날이면 코끼리를 불러서 동네 한바퀴 태워줘.” 

흠, 그랬던 것이군.

 

자이푸르 가는 고속도로(샛길이 아니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낙타수레.



인간과 동물의 공존, 최고처럼 보이는 개팔자

 

좌우지간, 인도에서 저렇게 뭇 짐승들과 같이 길을 다니게 되면서 실감한 것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 컨셉이었다. 인간이란 종자는 다른 동물들과 자신을 격리시키는 삶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극단화된 곳이 바로 도시다. 그나마 농촌에선 인간과 동물이 조금이라도 어울리며 한다. 그런데 인도에선 도시에서도 동물과 함께 공생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동물종은 단연 다람쥐. 다람쥐가 쥐처럼 나무 아래에서 신나게 돌아다니고, 그 수는 왜이리 많은지.  



 

다람쥐보다 더 많은 것은 새였다. 

비둘기는 종자는 우리 것보다 작은데 번식력은 두배는 되는 모양이었다. 까마귀며 앵무새도 지천이었다. 여기가 분명 도시가 맞느냔 말이다.




흔치 않은 동물이지만 그 이미지는 이미 질릴 정도로 익숙한 이런 동물도 정말 있었다.




그런데, 저 부자를 보는 순간 나는 코브라에는 눈길이 안가고 이상하게 저 옆에 앉아있는 아들녀석의 얼굴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될 법한 나이인데, 저 표정을 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체념이랄지, 관조랄지, 도대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저 얼굴...


덥고 습한 인도 날씨 탓인지 몇몇 동물들은-특히 고등동물일수록-느리고 여유로웠다. 

가장 여유로운 경향이 두드러진 동물은 개였다. 뛰어다니는 개를 찾기 힘들다. 느릿느릿 영감처럼 다니고, 절대 다수의 개들은 그렇게 걷지조차 않았다. 대부분 이런 상태였다. 



 

한국으로 치면 이태원이나 한남동쯤 되는 칸마켓에서 저렇게 자빠져 자는 개들 천지였고,




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랄 킬라’(붉은 성) 입구에도,




뉴델리의 명물 ‘인디아 게이트’ 앞에도 개들은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에나 개들이 자고 있다는 이야기다. 개를 보면 입맛부터 다시는 내게 인도는 개들의 천국처럼 보였다.

 

그러나 더 놀랐던 것은 개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저렇게 그냥 해가 내리쬐는 길 위에서 잔다는 점이다. 개와 사람이 지척간에서 자는 경우라도 보면 대략 난감+재미+뭥미+... 의 복합적인 느낌이 든다. 가장 인상적인 길거리 수면객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쓰러져 주무시는 분이었다.


후마윤황제묘 옆 이샤칸 무덤 잔디밭에서 함께 주무시는 아저씨 듀엣.

돌아가는 도로 분기점 가운데 잔디밭에서 주무시는 아저씨.



인도 사람들이 소만큼 사랑하는 생물은?

 

좌우지간 이렇게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도 도시의 매력이자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혐오 포인트 둘 중 하나가 될텐데, 무조건 박수치고 싶은 자연과의 공존 사례가 있다. 바로 식물(=나무)와의 풍성한 공존이다.

 

인도 하면 날씨 덥고 거의 밀림이 떠오르는 나라 아닌가. 도시 역시 나무 천지였다. 그 울창함이란 정말 탐나는 수준이었다. 개, 돼지, 원숭이, 낙타, 염소 들하고 같이 살기는 싫은 사람들도 델리의 나무에 대해서만은 만족할 듯 싶다. 

 

델리의 주요 도로들은 가로수들이 터널을 만들 듯 울울창창하다.




여행 막바지, 아그라로 가는 도중 묘한 것을 봤다.




아직 키작은 묘목들이 행여 다치지 않고 잘 자라도록 나무마다 둘레에 벽돌로 보호단을 쌓아놓은 것이다. 

나무가 저렇게 널렸는데 저렇게 사랑하다니. 새삼 놀랐다. 내가 너무 쉽게 감동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