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에 가다 2008/04/30

딸기21 2018. 9. 2. 20:18


 

어느새 10년전 영화가 되어버린 <약속>에서 깡패 박신양과 여의사 전도연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대였지만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성당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명장면으로 꼽힌다. 결혼식 장면을 찍은 그 아름다운 성당이 바로 전주 전동성당이다. 


슬픔어린 장소에 들어선 아름다운 성당

 

전주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건물이 있다면 전동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한옥마을 입구, 전주를 대표하는 전통 건축물인 경기전 앞에 있는 전동성당은 영화 <약속>으로 더욱 유명해진 전주의 랜드마크다. 서울대 건축과 전봉희 교수는 이 성당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전동성당은 보기만해도 다른 성당들과 다르다. 고딕식 첨탑에 대한 집착이 심한 우리나라 대부분 기독교 건물들과 달리 전동성당은 끝이 뾰족하지 않다. 교회 탑은 알맞게 위로 솟아오르다 동그란 지붕을 얹은 귀여운 모습으로 변한다. 굳이 건축적 표현으로 바꾸면, ‘로마네스크 주조에 비잔틴 풍을 가미한’ 양식이라고 달아놓은 설명들이 있다. 전혀 이해 안해도 상관없는 설명이다. 꼭대기가 동그래서 색다르고 보기좋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성당의 매력포인트는 차곡차곡 정성껏 쌓은 벽돌의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벽돌 쌓은 방식 자체가 예쁘다. 전동성당을 보면 자연스럽게 성당의 간판스타 서울 명동성당이 떠오른다. 이 성당도 우리 가톨릭 성당 중에서는 한 역사 하는 성당이다. 1908년생, 올해로 꼭 100살 된 성당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100살짜리 성당보다 더 오래된 성당은 몇 안된다. 우선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그리고 명동성당이 있다. 약현성당은 1892년 지은 성당인데, 무척 새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1998년 한 광신도가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명동성당은 1898년 지었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보다 그 크기는 훨씬 작은 편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전혀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이 치는 이들이 많다.  

 


 

전동성당은 내부를 꼭 들어가서 봐야 하는 건물이다. 겉만 보고 지나가면 이 성당의 진면목을 놓치게 된다. 성당 안에선 벽돌로 만든 아기자기한 아치들이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알맞게 많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넉넉하게 빛잔치를 벌인다. 

 

입구에서 제단쪽을 바라본 모습.

 



제단쪽에서 반대로 본 입구쪽 모습이다.

 


 

깔끔한 제단은 천을 부드럽게 드리워 분위기가 더욱 아늑하다. 동그란 창들이 하나 하나 빛그림을 만든다.

 



내부를 즐겼다면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한바퀴 돌아보자. 전동성당은 보통 십자가형 성당들과 달리 1자형이다. 건물 맨 뒤쪽에는 토끼 꼬리처럼 짧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다른 성당들과 뒷모습이 조금 다르다. 

 


 

이 곳에 성당이 세워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곳 전주시 전동은 한국 천주교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표현으로는 순교한, 일반적 용어로는 처형당한 곳이 이곳이었다.

 


 

천주교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르게 이 서양 종교와 만났다. 

보통 유럽 이외 지역에서 기독교는 서양 전도사들에 의해 전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배계급이었던 학자들이 중국에 가서 학문 차원에서 이 종교를 접하고 스스로 신자가 되어 식구들에게, 주민들에게, 하인들에게 전도했다. 

그렇게 퍼져나가던 천주교가 처음 철퇴를 맞은 것은 1791년이었다. 윤지충과 권상연이란 이가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가 이곳에서 목이 잘렸다. 엄청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기나긴 박해의 시작이었다.

 

이 곳은 한국 천주교사의 중요한 성지이고, 전동성당은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초기 성당들은 대부분 이런 박해의 현장에 들어섰다. 고난을 이겨내고 얻은 신앙의 자유를 더욱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전동성당보다 더 오래된 약현성당 역시 처참했던 순교의 터에 세워진 믿음의 집이다. 약현성당이 있는 서소문밖은 조선 후기 천주교 처형장소였다. 100명 넘는 신도들이 이곳에서 참수됐다. 그 순교성지를 내려다 보는 ‘약초밭 언덕’ 약현에 지은 것이 약현성당, 그러니까 중림동성당이다. 명동성당은 초기 신자로 박해받아 귀양을 간 김범우의 집터에 들어섰다.

 

이 중림동 성당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이 성당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종이다. 이 종은 세례명이 있다. 요셉 구스타프 잔느. 이름까지 있는 이 종은 하루 세번씩 울리는 임무를 100년 넘게 수행중이다.

 

다시 전동성당으로 돌아가자. 이 개성적인 성당은 주변이 한옥마을이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한 경기전과 마주보고 있어 전통건물들과 서로 더욱 대비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수평 미학인 한옥 지붕선 위로 수직 미학으로 솟아오른 성당 모습이 인상적이다. 

 


 

경기전 내부에서 보면 기와지붕들 사이로 솟은 성당의 모습이 더욱 묘하게 비친다. 전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 하겠다. 밤에는 조명을 해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성당을 구경할 때 빼먹으면 안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한바퀴 돌아보면 절로 만나게 되어있는 옆건물인 사제관이다. 사제관은 네모 반듯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디자인이 돋보인다. 과감하면서도 경쾌한 디자인 솜씨가 고수의 작품임을 절로 느끼게 한다. 1926년에 지은 것으로 전북문화재자료 178호로 지정된 문화재 건물이다.  

 

사진=이용재 건축평론가

 

전동성당은 작지만 아름다운 볼거리이자, 슬픈 순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천주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종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것을, 그래서 한국이 천주교 성인을 103명이나 배출하게 된 것을 알아는두자. 

 

천주교인들에게 우리나라는 곳곳이 성지다. 이제는 성지란 이름을 달았지만 슬픈 살육의 현장이다. 공주의 황새바위까지가 아니더라도 서울에만 서소문밖 처형장과 이름만으로도 끔찍한 절두산이 있다. 겨우 백몇십년전 이야기다. 


만약 전동성당에서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역사란 것이 배인 장소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상념의 주파수에 당신의 마음이 조응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