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눈썹 달린 건물 보셨어요? 2008/04/27

딸기21 2018. 9. 2. 20:15

전국 대부분 도시에는 ‘교동’이란 동네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가 있는 동네란 뜻이다. 어떤 학교가 있었던 곳일까? ‘향교’다.


향교는 지금으로 따지면 중고등학교쯤 된다. 전국에 얼마나 많았겠는가. 2백몇십곳이나 됐다. 전국 각지의 ‘교동’들이 그 증거다. 조선시대 향교를 설치할 때 원칙이 ‘1읍1교’였다. 향교 모양은 서울 성균관을 본땄다. 


영화 <YMCA 야구단>의 그곳 


대부분 이들에게 향교는 국사 시간에 ‘조선시대 공립학교’라는 정말 딱딱하기 짝이 없는 개념으로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어야 했던 단어일 것이다. 향교를 가본 이도 적을 듯하다. 물론 향교가 많이 사라진 탓도 있다.


전주향교는 지금 남아있는 향교들 중에서 가장 가볼만한 곳 중 하나다. 역사적 의미 때문이 아니다. 하염없이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있기 좋은 곳, 우리 한옥이 만들어내는 그윽하고 묘한 분위기를 흠뻑 느끼기에 좋기 때문이다. 암기대상이었던 향교가 아니라 진짜 향교, 몸으로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향교를 전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주향교는 당연히 전주시 교동에 있다. 한옥마을의 가장자리, 하천변을 바라보며 산을 등지고 있다. 조선 전기 널리 퍼진 공립학교인 향교, 조선 후기 퍼진 사립학교 서원은 둘 다 학교인만큼 생긴 것과 구성원리가 비슷하다.


향교와 서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홍살문이다. 전주향교도 골목 어귀 홍살문부터 시작한다. 홍살문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호다. 학교인데 왜 신성한 곳이냐고? 향교나 서원이나 공부도 하지만 성현을 모시는 곳이란 점을 잊지 말자. 그러니 신성한 곳이다. 그리고 홍살문 다음은 누각이 나온다. 저 전주향교의 만화루처럼.


 


누각이라면 높은 데서 경치 좋은 곳을 내려다보는 조망용 건물이다. 맞다.


그런데 향교나 서원 앞에 있는 누각은 보통 2층 다락 건물로, 확실한 용도와 목적이 있다. 물론 보통 향교나 서원을 경치 좋은 곳에 짓기에 풍경을 보는 전망대 역할은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넓은 누각 2층에서 각종 모임과 잔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유림과 원생들이 모여서 단합대회도 하고, 풍류도 즐기던 곳이 바로 누각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개강파티 종강파티를 하는 넓은 공간인 것이다. 간혹 후배 원생들이 ‘헬렐레’할 경우 선배들이 2층에 모아놓고 단체 기합도 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원이나 향교에 가면 이런 누각에 꼭 올라가봐야 한다. 앞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대부분이어서 건물 구경을 한 뒤 나올 때 올라가 잠시 쉬면서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 옆 병산서원에 있는 만대루는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누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교나 서원을 돌아봤다면 나올 때에 꼭 누각  2층에 올라가라.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눈앞 경치를 편안히 바라보면서 시원한 바람으로 몸을 식혀보라. 일찍 일어날 생각말고 낮잠 한숨 자듯 퍼져서 일행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라. 올라가 보라고 지어놓은 것이 누각이다. 서원과 향교를 진짜 즐기는 법이 누각에서 쉬는 것이다.




이 향교의 첫번째 건물인 누각을 지나면 그 다음이 문이다. 전주향교는 일월문이 나온다. 


조선시대 학교들의 문은 보통 문이 3개짜리인 삼문이다. 바깥에 외삼문이 있고  다음 신삼문이 나오곤 한다. 일월문은 문 3개짜리 문이다. 향교와 서원은 물론 종묘, 문묘 등 성현을 모시는 곳에는 으레 삼문이 있다.


그런데, 가운데 문은 닫혀있고, 양 옆 문은 열려 있다. 오른쪽 문에는 들어가는 문, 왼쪽 문에는 나오는 문이라고 적혀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이런 삼문에서 가운데 문은 신이 다니는 신문, 양쪽 문은 사람이 다니는 인문이다. 신문은 늘 닫아 둔다. 종묘나 성균관 삼문을 보면 가운데 신문은 제사 때 열어 헌관만 출입하고, 일반 제사지내는 제관들은 동문(오른쪽)으로 들어가 서문(왼쪽)으로 나오도록 정해져있다. 이곳 향교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 것이다.


저 문을 들어서면, 드디어 진정 향교의 공간이다.  


향교는 두개 공간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배향, 그러니까 성현과 선비들에게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다. 또 다른 하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인 명륜당이다. 이 두가지가 공존하는 곳이 향교다. 전주향교는 제사 지내는 대성전이 앞쪽에 있다.




일월문을 지나 대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열린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너른 마당, 마당을 가로지르는 세 돌바닥 길, 그리고 한 가운데 버티고 서서 공간을 거느리는 대성전. 마당 가운데 버티고 선 수백년 먹은 은행나무 두 그루. 그리고 양쪽에 있는 동무와 서무 두 건물...


향교를 이루는 기본 건물이 네 방향마다 자기 역할에 따라 들어서 있다. 많으면서도 넘치지 않고 적으면서도 부족함이 없는 배치만으로 공간은 꽉 채워진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압박하지 않는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넉넉하고, 모든 것은 최소한의 꾸밈뿐이다. 적은 것이 아름답고, 비움으로써 꽉 찬다는 것을 한옥 공간들은 보여준다.


대성전에서 바라본 앞마당 모습. 가운데 주 건물이 있고 양쪽에 보조 건물이 들어서는 가장 흔하고 기본적인 배치인데도 이 곳을 신성하고 경건한 공간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런 묘한 배치속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의 공식과 분위기는 경건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죽은 자의 공간, 성인의 공간, 그리고 제사의 공간임을 그 분위기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런 분위기의 파동을 들어서며 잠깐 느끼는 동안에는 절로 발길이 잠시 멈춰진다. 그 파동을 부드럽게 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 공간을 즐길 차례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기묘하게 생긴 커다란 은행나무다. 밑둥이 커지면서 벌어지고 터져 그 안을 메워놓았지만 오히려 생명력을 과시라도 하듯 푸른 잎을 한껏 피우고 있다.


은행나무는 유교의 아이콘이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고, 그래서 이후 행단이란 단어는 학교를 뜻하게 됐고, 향교를 비롯한 유교의 공간, 배움의 공간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것이 전통이 됐다.




색깔 대비가 명징한 대성전. 대성전은 공자를 모시는 건물을 부르는 이름이다. 성균관과 전국 모든 향교에는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가운데 놓고 안자와 자사는 공자의 왼쪽, 그러니까 동쪽에 모시며 증자와 맹자는 서쪽에 모신다. 전주향교도 마찬가지. 대성전 안에는 공자와 공자의 제자인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중국 학자 일곱사람 위패와 우리나라 현인 18명의 위패가 있다. 건물은 조선 선조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 향교의 또다른 정체성인 학교 공간으로 넘어갈 차례다. 대성전 왼편으로 명륜당 가는 입구가 나온다.




작은 문 뒤로 거대한 은행나무와 명륜당 건물이 보인다. 저 커다란 은행나무는 나이가 4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작고 낮은 쪽문을 지나 굽혔던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드는 순간, 이번에는 대성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눈 앞에 등장한다. 대성전이 망자와 성자의 공간이었다면 이제 산자와 학생의 공간인 명륜당이다. 역사 똑같이 가운데 명륜당, 양쪽에 건물을 배치했는데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놀라운 연출이다.


밝은 청록색과 붉은 색이 명징한 대비를 이룬 대성전과 달리 명륜당은 검게 변색한 나무색 그대로일 뿐이다. 자라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 답게 화려한 꾸밈을 피하고 명쾌하고 질박하게 건물을 지었다. 옛날 강의실이다.


그런데, 사진속 명륜당은 자세히 보면 다른 한옥 건물들과 무척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어디가 다를까? 바로 지붕이 다르다.




앞에서 보면 지붕 생김새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세 칸짜리 집에 양쪽 한칸씩 늘려 붙인 모양새다. 그리고 날개를 편 것처럼 양쪽에 비스듬히 지붕이 나와있다. 원래 앞뒤로 너른 지붕을 맞대는 맞배지붕 건물인데 양쪽에 저 튀어나온 지붕들이 있어 팔작지붕처럼 보인다.


저렇게 건물 옆에 덧대는 지붕을 눈썹지붕이라고 한다. 눈썹지붕이 드문 것은 아니나 저렇게 향교나 서원같은 건물에 화끈하게 양쪽으로 대칭형으로 크게 달아 아예 지붕 양식이 달라보이는 건물은 여기서 처음 봤다.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우리 건축에는 ‘눈썹’이란 이름이 붙는 것들이 있다. 저 눈썹지붕이 있고 또 다른 것으로 눈썹천장이 있다. 


눈썹천장은 팔작지붕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팔작지붕 서까래 끄트머리 모이는 곳에 구조물들이 보이는 것을 막아주려고 살짝 더 대는 천장이다. 설명이 어려울뿐 실제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옛날 학교는 배우기 위해서 신성함과 아늑함을 함께 추구했다. 지금 우리 중고등학교에선 사라진 것들이다. 굳이 설명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우리 전통건축과 공간미학의 힘이다. 전주향교에선 그런 힘을 가장 손쉽고 확실하게 맛볼 수 있다.


봄이 오면 전주는 온 도시가 영화에 빠진다. 올해도 5월1일부터 9일까지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해마다 수만명이 이 도시와 찾아와 인연을 맺는다. 만약 전주에서 영화도 보고, 비빔밥도 먹었다면 그럼 건축물과 만나보면 어떨까.


전주에서 건축과 문화에 대해 말하면 누구나 한옥마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한옥마을도 좋지만 한옥마을보다 더 봐야할 건축물이 한옥마을 안에 있는 전주향교다.


향교와 서원은 다른 한옥들보다도 거닐기 좋고, 쉬기 좋고, 보기가 좋다. 보통 경치 좋은 곳에 세우니 주위 풍광이 좋고, 입구에는 전망 좋은 누각이 있어 올라 쉬기 제격이며, 마당도 넓어 거니는 맛이 좋다.


영화 <YMCA 야구단>의 태화관, 송강호가 절구방망이처럼 생긴 야구 배트를 휘두르던 곳, 김혜수와 송강호가 만난 곳이 바로 이곳 전주향교였다. 지금도 주말에는 전통혼례식장으로 애용되는 살아있는 전통건축물이다.


전주에 갔다면, 한옥마을에 들렀다면 보나마나 다똑같은 옛날 건물이겠지, 라고 지레 짐작해 지나치지 말고 전주향교에도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