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강남역 ‘땡땡이 빌딩’의 숨은 비밀 2008/05/05

딸기21 2018. 9. 3. 11:39

강남 논현동, 흔히 말하는 제일생명 네거리에 짓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아직 짓고있는 중인데도 인터넷에선 이 건물이 화제로 떠올랐다. 완공도 되기 전에 ‘빵빵이 빌딩’(구멍이 빵빵 뚫렸다고 해서) 또는 ‘땡땡이 빌딩’이란 애칭까지 붙었다.


예상을 깬 것은 독특한 생김새가 아니었다


땡땡이 빌딩은 무척이나 ‘화끈한’ 디자인이어서 오히려 강하고 과잉된 디자인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모습이다. 비슷비슷한 건물들만 있는 한국 현실에선 조금 디자인이 강해보이긴 해도 보는 재미를 주는 점은 분명해보였다. 


아르키움 제공



저 건물이 완공되면 이렇게 생길 것이라고 한다. 미리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조감도다.

이름하여 ‘어번 하이브 빌딩’. 하이브는 벌집이란 뜻이다. 도시의 벌집, 그럴듯한 이름이다.


아르키움 제공


그런데, 이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김인철(61) 중앙대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인철 디자인?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질 것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김인철 교수가 누군가? 현재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중진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서울 연세대 후문쪽 <김옥길 기념관>이다. 김옥길 박사의 동생인 김동길 교수가 건축주로,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전권을 맡겨준 덕분에 나온 수작이다. 90년대 한국 건축계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덩치는 작아도 당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빠짐없이 꼽혔다. 특히 김교수의 장기인 맨살콘크리트(노출콘크리트)의 미학을 잘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바로 이건물이다.


김인철 교수의 대표작 <김옥길기념관>. 사진=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김 교수는 이밖에도 <휘어지는 집> <펼쳐지는 집> <낮아지는 집> 등에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디자인이 본업인 건축가들 중에서도 디자인 좋다는 평을 들어왔다.


지난해에는 그가 디자인한 파주 출판단지 웅진씽크빅 사옥이 건축문화대상을 받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국 대표 건축가 전시회에도 그의 작품이 출품됐다. 그야말로 무르익은 솜씨로 계속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김인철 교수의 또다른 대표작 파주 웅진씽크빅 사옥. 사진=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그런데 이번 작품은 평소 김교수 작품을 봤던 이들에겐 김인철표 디자인임을 알아채기 힘들어보였다. 김교수는 왜 저렇게 과감한 디자인을 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눈길을 끄는 지점이 있었다.


저 땡땡이 건물은 단순히 저 디자인 자체로만 볼 건물은 아니란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 건물이 위치한 곳이 제일생명 4거리, 요즘에는 교보빌딩 4거리로 불리는 곳이란 점이었다.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교보강남타워가 주변을 압도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서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교보타워란 강적의 위용에 버티며 살아남아야 하는 디자인으로 보였다.


강남교보타워가 생소할 분들을 위해 교보타워 생김새를 소개한다.




이 교보타워는 실은 높이는 25층 밖에 안된다. 그러나 실제 이 곳에 가보면 이 네거리 전체를 이 건물이 지배하고 있다. 빨간 벽돌로 외벽을 장식한 모습이 강렬하고, 워낙 밑동 자체가 커서 그 덩어리가 대단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빌딩이다.


설계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축가중 한 명인 마리오 보타. 교보생명의 전속 건축가이자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중 한 건물을 설계한 세계적 거장이다.


저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어번하이브 빌딩은 이 교보타워 바로 대각선에 있다. 어떤 건축가라도 저 교보에 눌리지 않을 독특한 디자인을 시도할 법한 곳이다. 땡땡이 건물은 김인철이란 한국의 중진 건축가가 마리오 보타란 작가가 만든 교보타워란 거대공룡에 맞서기 위해 강하고 튀는 디자인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김교수를 찾아갔다. 중앙대 김 교수 사무실은 하얀 색조와 하얀 책상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우선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 독특하고 강한 구멍 디자인은 마리오 보타에게 맞서기 위한 강력한 선택처럼 보인다”고.


뜻밖에도 김교수의 대답은 “전혀 아니다”였다. 전혀 예상못했던 답변이었다.


“거꾸로예요. 저 빌딩은 구조가 먼저였고, 디자인은 나중이었어요. 구조를 먼저 고민해서 나온 것이 저 디자인이었어요.”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김 교수는 설명을 들으니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어번하이브 빌딩은 원래부터 저 독특한 구멍 디자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애초 김교수는 가로로 켜가 쌓이는 디자인으로 당국 심의까지 통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만족스럽지 못한 생각이 강하게 치밀었다고 한다.


김교수는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잘 하는 것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의 장기는 당연히 콘크리트였다.


그런데 막상 노출콘크리트로 지으려니 순간 막막했다. 보통 낮은 층의 건물에 쓰는 노출콘크리트로 17층을 올린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교수는 시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건물은 독특한 기록을 가지게 됐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국내 최고층 노출콘크리트 건물로 추정된다.



또한 이 건물은 거의 ‘멸종’됐던 벽구조 건물로 지은 사무실 빌딩이다. 벽구조는 벽이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다. 대부분의 옛날식 건물들이 이런 구조다.


반면 현대식 빌딩들은 기둥 구조다. 철골 기둥이 건물을 지탱한다. 겉을 씌우는 것은 유리 같은 가벼운 소재들이다. 이런 방식을 커튼월이라고 한다. 고층빌딩들은 예외없이 이런 방식인데 어번하이브 빌딩은 거꾸로 간 것이다.


“구조가 있고 표피를 입히는 일반 빌딩과 달리 구조가 그대로 마감되어 껍데기가 되어버리는 방법으로 간 것입니다. 벽으로 가자, 오피스 빌딩의 전형적 형태를 벗어나자, 구조가 안에 있고 스킨이 바깥인 공식을 뒤집어보자는 거였죠. 구조를 바깥으로 하면 형태가 달라질 것으로 본 거예요.”


구조가 디자인보다 먼저였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40센티 두께의 거대한 네모 벽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 벽에는 동그란 구멍을 넣었다. 원을 넣은 것은 원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란 점에서 고른 것이었다.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전망이 빼어난 곳이 아니므로 구멍 정도로 알맞게 가려져도 큰 상관이 없을 것이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뚫은 구멍의 지름은 105센티미터, 갯수는 3371개!


그렇다면 그 구멍은 도대체 어떻게 뚫었을까? 뚫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푸집으로 구멍을 만들고 벽체를 콘크리트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벽은 보통 철근이 가로 세로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사선으로 교차하는 마름모 형태로 갔다. 철근 사이 공간에 원 구멍을 뚫었다. 거푸집을 붙이기 전 철근 사이로 원형 구멍 부분을 내는 공사 모습이다.


아르키움 제공


“그러면 처음부터 거대한 강남 교보타워의 강한 디자인에 선생님도 강한 디자인으로 맞서려던 것이 아니었네요?‘


”구조를 먼저 하고 디자인이 나온 거죠.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안하는 게 제 철칙이에요. 물론 보타를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설계를 맡고 건물 자리에 가보니 교보타워가 서 있어요. 우리 한국 건축가들이 울화통 치미는 게 대기업들이 무턱대고 외국 건축가를 선호하는 행태에요. 좌우지간 마리오 보타와 정면으로 붙게 된 것이니 보타에게 한국 건축가를 알려주자고 마음 먹었죠.“


그렇게 구조에서 나온 결과가 디자인측면에서 더욱 강력해진 지금 모습이 된 것이다.


김교수와 함께 가본 현장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 교수는 건물의 원형 구멍이 유리 벽에 비치고 동그라미 그림자가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빛의 풍경이 이 건물을 즐기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공사중인 내부에서 그런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아르키움 제공



”건축가 김인철이라고 하면 대부분 김옥길기념관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건물이 김 선생님 디자인이라는 데 놀랄 것 같습니다.“


”저는 자기 작품 표절을 가장 싫어해요. 늘 새롭게 하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제가 늘 해온 디자인과 아주 동떨어지거나 완전히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안그런가요?“


”이 작품이 선생님의 대표작이 될 것으로 보세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해야죠.(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한 작품중에서는 제 작품을 대표할 정도 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고 봐요.“

 



건물은 6월 완공된다. 이 독특한 모양새를 살리기 위해 건축주는 건물에 간판을 달지 않을 작정이라고 한다.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임대 문의가 많다고 한다. 주로 패션이나 디자인 업체들이 물어본다는 것이다. 독특한 외관의 효과가 일찌감치 나타나는 셈이다.


건축 전문가들로부터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예상컨대 양극을 달릴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어떨지 완공 뒤 나올 반응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