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20

마초, 페미니즘 미술가에 반하다 2008/05/22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났지만 경상도 집안에서 경상도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자란 나는 꼴 마초에 가깝다. 그러니, 페미니즘 미술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는 지지해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전혀 친하고 싶지 않았다.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모를 바가 아니나 그런 미술을 즐기고 싶진 않은 탓이다. 윤석남 화백 작품만은 예외였지만. 주디 시카고? 신디 셔먼? 유명하고 중요하다고 하니 작품을 보기는 봤는데, 속으로는 ‘너무 윽박지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그런 센 미술보다는 보기 편한 미술이 더 좋았다. 프리다 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출산현장을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싶은가? 마돈나는 그런 모양이다. 칼로의 그림을 사갔다니.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계 최고의 스타이자 대모격..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사진가 2008/05/12

개를 찍는 사진가가 있었다. 그가 찍은 개 사진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다시 보면 그의 사진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바로 ‘눈높이’였다. 그는 개의 눈 높이에서 개를 바라봤다.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개처럼 낮은 곳에서 개를 바라보며 찍었다. 우리는 자기 눈높이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나 십몇센티미터만 눈높이가 달라져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계단 한 칸 위에서 본 세상은 한 칸 아래와는 전혀 다르다.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키 작은 사람의 시야와 괴로움을 키 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작은 눈 높이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안다. 조금 몸을 낮춰 아이..

디자인 마법사-론 아라드를 소개합니다 2008/04/04

처음 보면 그냥 거리에 설치한 조경 구조물로 착각하기 쉽다. 화단에서 나온 묘한 것이 거리까지 이어지고 풀들이 그 모양을 따라 자라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의자다. 화단과 거리, 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의자, 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독특하고 새로운 의자임에는 분명하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 있는 저 의자는 작품 의자다. 제목은 . 다만 의자로서의 운명은 조금 불행하다. 일단 의자인줄 몰라 많이 앉아주지 않고, 또 놓인 동네 자체가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곳이다. 허나, 의자의 운명이아 넘어가도록 하고 여기서는 저렇게 자유로운 발상과 모양으로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에만 주목하자. 바로 론 아라드다. 아라드는, 지금 우리 시대 디자이너들 중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몇 안되는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

이 도자기가 100억원인 이유 2008/03/19

공식 도록에 써있기를 "편병/청화자기/하회 장식/중국 징더전/원(元), 1300~1368".무슨 소리인지 감이 오시나요? 바로 이 도자기입니다. 100억원 짜리 도자기가. 6월13일까지 서울 중구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세계명품도자전'에서 전시중인 도자기입니다.영국 국립박물관인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이 소장한 도자기 가운데 100여점이 한국으로 나들이를 왔는데, 이 중에서 가장 비싼 도자기가 바로 이 용무늬 납작병이라고 합니다. 문화재나 미술품 가격이 비싼 것은 알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도대체 왜 비싼거야?'란 의문이 들 법 합니다. 저 도자기만해도 높이 37센티미터 짜리에 술병 크기 정도이고 금테도 안둘렀는데 무려 100억원이랍니다. 저 허연 바탕에 퍼렁 그림..

무당, 플로리스트가 되다 2007/12/13

“제가 전시회를 하게 됐어요. 도록을 보낼게요.” 이번 주 초, 좋게 말하면 ‘만신’, 쉽게 말하면 ‘무당’ 인 이해경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통화라 반가웠고, 또 놀라웠다.“전시회요?”“꽃 전시회인데, 진짜 꽃이 아니고 종이꽃이에요. 굿할 때 쓰는 지화(紙花)로 하는 전시회에요. 쑥스럽지만 한번 놀러 오세요.” 이씨는 무당이지만 예인으로도 유명하다. 몸짓 춤꾼으로 여러 대형 무대에 초청받아 올랐다. 2001년에는 가야금 대가 황병기 선생의 창작활동 40주년 기념 공연에 올랐고,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프랑스 공연 등에도 참가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것도 주연으로. 2006년 개봉해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던 영화 의 주인공이 그다. 이 다큐영화는 무속인..

미친 작가, 현대미술의 여왕이 되다 2007/11/13

“안양이 엄청 바뀌었어. 공공미술 작품들이 아주 볼 만해.” 지난달 말, 미술 담당 임종업 선임기자께서 찍어오신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5743.html ) 작품 사진을 함께 보면서 신문에 나갈 것을 고르는 중이었습니다. 땅에 처박힌 UFO, 안양의 하늘을 응시하는 돈키호테, 울긋불긋 예쁜 거리 의자…, 임 선임기자 말씀처럼 재미난 작품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안양에 들어선 여러 공공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낯익은, 그래서 반가운 작품을 하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유치해 보일 정도로 강한 원색, 점박이 강아지들이 역시 점박이 꽃을 바라보는 조형물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작품 같기도 하고..

예술이 된 음반 재킷-줄리안 오피가 온다! 2007/09/20

영국 모던록 그룹 블러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2000년 나온 블러의 베스트음반에는 눈길이 꽂혔다. 음반 노래보다도 독특한 음반 재킷 디자인이 눈을 잡아끈 것이다. 네 명의 멤버 얼굴을 검은 선으로 단순화해 그렸는데 재미있는 것은 눈 모양새였다. 비교적 사실적인 나머지 얼굴 부분과 달리 얼굴속 눈은 모두 까만 점으로만 처리되어 있었다. 사람 얼굴에서 가장 특징이 두드러지는 눈을 일부러 몰개성화한 것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네 명의 얼굴이 모두 비슷해보이기도 하면서 달라보이기도 하는게 묘했다. 어라, 이거 되게 경쾌한데?란 생각이 들었다. 유럽만화를 대표하는 에르제의 시리즈 주인공 땡땡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표지를 디자인한 사람이 줄리안 오피(Julian Opie)란 것은 훨씬 나중이었다. 그 이름..

데이트하기 좋은 전시회? 스누피를 만나보세요 2007/8/20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날이 더워 어딘가 한번 더 다녀오고 싶으시죠? 그럼 미술관 구경 어떠실까요. 아마 누가 뭐래도 요즘 미술관 나들이 1순위는 역시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오르세미술관전’일겁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림 구경보다도 사람구경을 더 많이 해야한다고들 하네요. 아직 초등학교 방학이 1주일이 더 남아서, 당분간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바글바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처럼 서초동까지 갔는데 오르세 전시회 긴 줄에 놀라셨다면, 또는 다른 전시회는 뭐가 있는지 자신이 없으시다면, 바로 오르세미술관전시회 맞은편 건물에서 하는 ‘스누피라이프디자인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체험하는 가족 미술관 나들이에도 좋고, 연인끼리 미술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미술품도 보기에 괜찮을 듯한 전시회입니..

스피커를 조각하는 화가 이김천 2007/02/09

어른 키만한 시커먼 소리통이 세 구멍으로 가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장중한 선율이 작업실 전체를 휘감고 돌아와 귓전을 울려댄다. 장단이 바뀔 때마다 유닛은 제 몸을 떨며 소리를 뿜고, 그 가락따라 귓속 달팽이관도 함께 떨린다. 이윽고 집박이 ‘짝’하는 소리. “이번에는 퉁소 한번 들어보시죠.” 이김천(42) 화백은 연변의 퉁소명인 신용춘의 음반에서 를 골랐다. 경쾌한 북도 음악이 은근히 심박수를 올린다. 화실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음악으로 귀를 씻고 나니 스피커가 다시 보였다. 처음 본 순간에는 신사처럼 근사해보였던 소리통이 유심히 들여다보니 츄리닝 입은 동네 아저씨처럼 ‘널널한’ 모습이었다. 유닛에 달린 나팔같은 혼(horn)은 종이로 만든 것인데, 뜯어져 너덜너덜하기까지 했..

한국인의 원초적 조형성-목조각가 이상배를 아시나요 2006/04/19

충북 음성.저는 그곳을 이번에야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음성이 다른 지역보다 명승지가 적은 탓인지 가볼 기회가 없었었지요.지금까지 `고추'를 떠올리곤 하던 음성을 찾아가본 것은 인터뷰 때문이었습니다. 화가 이김천 선생을 만나러 간 겁니다. 이김천 선생은 동양화를 새롭게 그리시는 분입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탱화도 많이 그리십니다. 그리고 전시회도 여남은 차례나 연 중견 화가지요.일단 이김천 선생 그림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쾌하고 힘이 넘칩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초기 화풍인데, 화사한 꽃밭을 무대로 개와 사람이 누워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지하철 신촌역의 시청방면 플랫폼 맨 뒷쪽에 가면 이김천 선생 그림을 크게 복사해 기둥에 프린트한 것이 있습니다)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