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디자인 마법사-론 아라드를 소개합니다 2008/04/04

딸기21 2018. 8. 24. 18:23

도쿄 롯폰기에 있는 론 아라드의 조경 접목형 의자. 사진=구본준.

처음 보면 그냥 거리에 설치한 조경 구조물로 착각하기 쉽다. 화단에서 나온 묘한 것이 거리까지 이어지고 풀들이 그 모양을 따라 자라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의자다. 화단과 거리, 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의자, 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독특하고 새로운 의자임에는 분명하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 있는 저 의자는 작품 의자다. 제목은 <에버그린>. 다만 의자로서의 운명은 조금 불행하다. 일단 의자인줄 몰라 많이 앉아주지 않고, 또 놓인 동네 자체가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곳이다. 허나, 의자의 운명이아 넘어가도록 하고 여기서는 저렇게 자유로운 발상과 모양으로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에만 주목하자. 바로 론 아라드다.

 

아라드는, 지금 우리 시대 디자이너들 중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몇 안되는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다.  디자인에 만약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이름이 론 아라드다. 그는 현재 최고의 스타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스타급인 디자이너로는 병따개부터 오토바이까지, 오렌지 즙짜개부터 호텔까지 설계하는 필립 스타크가 대표적이다. 디자인 강국으로 우리가 알지만 정작 패션 디자인, 그것도 이브 생 로랑 이후에는 디자인 스타가 없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카림 라시드는 어떤가? 대단해보이면서도 다시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사이버틱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포장해 비싸게 팔아먹는 것이 재주인 스타다. 


이 필립 스타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카림 라시드도 우리에게 현대 엠카드 디자인 등으로 알게 모르게 전해지고 있다. 반면 이들과 동급, 또는 그 이상 스타인 아라드는 국내에 아직 덜 알려진 편이다. 그는 팔방미인이 본질인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팔방미인으로 유명하다. 앞서 의자 <에버그린>에서 눈치 채셨겠듯 조경에도 관심이 많아 조경 디자인 작품도 많이 남겼고, 무대 디자인도 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은 책장이다. 그 모양이 역시 처음 보면 책장인줄 알기 어렵다. 바로 요것. 제목은 ‘북웜’이니 ‘책벌레 책장’이다. 책벌레들이 좋아하는 책장이 아니라 진짜 벌레처럼 생긴 책장이다.




사람들은 ‘곡면에도 책을 꽂아도 되네?’, ‘책장이 곡선이어도 되네?’란 아주 간단하지만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에 반하고 동시에 단순 경쾌한 저 모양에 반했다. 이 책장은 이후 그의 대표상품이자 그의 ‘돈줄’이 되어주었다. 지금까지 팔린 이 책장 총 길이를 합치면 무려 100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변형도 얼마든지 가능해 시리즈로 나온다.




아라드의 또다른 출세작은 바로 이 의자다. 제목은 ‘웰-템퍼드 체어’.


맘씨좋은 의자 또는 온화한 의자 정도의 뜻인가 본데 역시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료 특성을 그대로 강조한다. 그래서 고수다. 이렇게 간단 명료하며 기운 생동하는 작품에 디자인계는 천재의 등장이라며 놀랐다. 1980년대의 일이었다.




일반인들에겐 아마 이 의자가 더 와닿을지 모르겠다. 아주 유명하고 친숙한 의자로, 역시 디자인사에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름은 <리플 체어>.




디자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가 의자임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늘 반복할 수밖에 없다. 중요하니까. 디자이너의 실험성, 도전정신은 의자라는 소재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 단순한 형태여서 가장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 의자인 탓이다. 아라드의 디자인도 이런 의자들을 통해 알려졌다.


의자만 있냐고? 당연히 수많은 디자인들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뒤통수를 철썩 때려준 기발한 제품이 있다. 아라드가 초절정 고수임을 보여준 디자인이다. 이름하여 ‘피자-코브라 전등’.




왜 이름이 피자-코브라 전등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아라드의 디자인 작품들 중에서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은 것 중 하나다. 디자이너들이 왜 대단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는 또한 스테인레스 등 첨단 느낌을 주는 독특한 모양의 제품들을 자기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로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저 의자 이름은 ‘보디 가드’. 그의 꾸준한 시리즈 이름이다.


개인적으로 이 론 아라드가 한 말 중에 너무 멋져보이는 말이 있다. 


“현재를 잘 들여다보라. 미래가 뚜렷이 보일 것이다. 현재란 너무 환상적이라 멈출 수없고, 미래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다.”


저 말을 듣는 순간, 아라드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우선 즐거운 일인데, 그 창조할 거리들이 지금 우리 속에서 늘 보이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그가 저 ‘현재 속 미래론’을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는 물건을 만들 때는 다음 방식 들 중 한가지 이상을 취하게 된다고 말했다.


첫째, waste. 절삭이나 대패질이다.

둘째, mould. 압축이다.

세째, form. 벤딩이나 프레싱 등의 기계가공이다.

네째, assemble. 용접 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그는 이 네 가지 방법에 ‘제5의 방식’을 추가로 덧붙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grow’다. 컴퓨터 제어 레이저 광선으로 물건을 한 켜씩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떤 것도 그리고 만들 수 있다. 가상실현은 이제 그 한계가 없”고 앞으로 만들 것들이 이 매혹적인 현재 속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아라드이 작품을 좀 더 보자. 요즘 스타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요청 받는 장르가 실내 디자인이다. 구겐하임 빌바오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의 경우 가장 잘 나가는 카페 인테리어 디자이너기도 하다. 론 아라드의 실내 작품들은 어떨까.



 

위는 이탈리아 두오모 호텔, 야래는 롯폰기힐스에 있는 일본의 대표적 디자이너 요지 아마모토의 매장 ‘Y’s Store‘ 실내 디자인이다.


아라드는 이스라엘 텔 아비브 출신으로 세계적인 건축명문 학교인 런던 AA스쿨을 나왔다. 베르나르 추미에게 배웠고, 자하 하디드가 동창이다. 이후 영국에 자기 회사를 차리고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 디자인으로 세계적 스타가 됐다. 현재 수많은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현대디자인 주요작으로 소장 중이다.


이번에 국내에서도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4월2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전시중인데, 주로 의자들을 선보인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브론즈 의자인 바로 이 작품 같은 것들이다. 의자스럽지 않은 의자인데, 제목이 더 웃긴다. ’At Your Own Risk‘. 겁나서 앉기 무서운 이름이지만 그럼에도 앉아보면 편하다고 한다. 




그럼, 이 아라드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렇게 생겼다.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모습인데 모자가 인상적이다. 나이는? 어느새 57살.




우리는 디자이너 라고 하면 패션 디자이너를 먼저 떠올린다. 무지하게 한국적 현상이다. 왜 그런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앙아무개 선생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앙 선생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앙선생과 연예인들과의 독특한 관계가-온국민이 알아둘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줄기차게 방송에서 하도 우려먹으며 억지로 보여주는 바람에 그가 대한민국 모든 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인식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디자인 전공하시는 분들이 가장 어처구니 없어 하고, 문제로 보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야 그렇게 심각하게 본다지만 우리들로선 그저 앙선생도 있고 또 다른 중요한 디자이너들도 제법 있다는 것을 알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중에도 론 아라드 같은 최고 스타들이 있으니 아라드 정도는 접해보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