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스위스, 부자나라임을 실감하다 2010/02/06

딸기21 2025. 1. 3. 17:34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입니다.

 

그러나 스위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베른이 아니라 취리히나 제네바일겁니다.
취리히는 스위스 최대 도시이고, 제네바는 2위입니다. 베른은 3위냐고요? 3위는 바젤입니다.
규모나 인지도면에서 실제 스위스를 대표하는 도시는 취리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취리히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입니다. 국민소득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 스위스에서도 제일 큰 도시 취리히의 대표 미술관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외관만 보면 좀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작고 차분합니다.

 



저 돌로 만든 3층짜리 건물, 그리고 그 옆으로 길게 나와있는 부속건물이 취리히쿤스트하우스의 전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에 견줘보면 외관의 독특함과 규모면에서 모두 비교가 안됩니다. 세계 유명 사립미술관들도 건물 면에서는 이 취리히쿤스트하우스보다 큰 곳들이 수두룩할겁니다.
저도 처음보곤 뭐 이리 아담해, 라고 지레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건물 사진을 찍으려고 반대쪽으로 가는 순간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로 건물 바깥에 나란히 세워놓은 조각 작품 3점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른쪽 크게 보이는 것부터 보면 헨리 무어, 자크 립시츠, 그리고 오귀스트 로댕의 순입니다. 미술사에 길이 남은 조각가 셋의 작품이 아주 사이좋게 티도 안내며 그냥 일반 조형물마냥 저리 모여 있습니다. 그 이름의 무게와 작품의 가격을 떠올리면 정말 대단한 장면입니다.
무어와 립시츠는 그렇다고 칩시다. 로댕의 모든 것을 담은 작품 <지옥의 문>이 건물 옆에 사알짝 서있는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작품은 로댕의 모든 것을 담은 인생 최후의 걸작이라고 하겠습니다. 가장 인기좋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도 이 작품속의 일부일 뿐입니다. 문 위 가운데에 생각하고 있는 모습 보이시죠?
 


 
조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이 <지옥의 문>입니다.

삼성이 이 <지옥의 문>을 사고 얼마나 기뻤던지 한 작가의 작품을 위해 그 비싼 태평로 땅에다 로댕갤러리를 지었습니다.
그런 작품을 이 취리히쿤스트하우스는 그냥 저흰 뭐 별로 내세우지 않아요, 라는 식으로 입구 옆에 별다른 표식도 없이 상설 설치해놓았습니다. 

미술관 건물 껍데기에 속아 미술관의 내공을 잘못 봤음을 바로 실감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놀랐습니다.
 
첫번째는 부자나라 스위스의 대표도시 취리히의 최고 미술관이 너무 소박해보여서 놀랐고,
두번째는 건물 바깥에 로댕과 무어, 립시츠의 작품을 툭툭 던져놓듯 설치한데 놀랐습니다.
세번째는 이 미술관의 입장권 때문에 놀랐습니다.

 



정말 귀여운 입장권이었습니다. 저 동그라미 입장권 위로 튀어나온 부분을 접어 옷에 집게처럼 부착하면 됩니다. 디자인 강국 스위스다운 티켓이군요.

 


 
건물 안도 담백 소박한 디자인입니다. 스위스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너무 심심할 정도로 깔끔합니다. 줄지어 세운 기둥이 포인트. 그 안으로 미술관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 유리창 바깥으로는 미술관 안뜰이 보입니다. 벽화 작품이 당장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상설전이 열리는 주 공간입니다. 내부는 시멘트 질감을 그대로 드러냈음에도 무척 아늑합니다. 계단과 바닥에서 편안한 나무빛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부드럽게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중앙 계단의 처리였습니다. 건축물을 살펴볼 때마다 계단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늘 눈이 갑니다. 사람들의 동선을 어떻게 배치하는 지, 그러면서도 시각적 즐거움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항상 관전포인트로 짚어보게 됩니다.
이 미술관의 중앙계단은 계단 난간 부분을 막지 않고 터놓아서 시각적으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했습니다. 다른 건물 계단들과 비슷하면서도 탁월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자마자 이 분이 관객을 맞는군요. 인생은 허망하다는 것일까요? 우르스 피셔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해골 한 번 봐주고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계단 옆으로 여유 공간을 두어 계단에서 보이는 건물 내부를 또하나의 볼거리로 만들어줍니다.



계단이 건물 중앙에 자리잡았지만 통로 기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람을 방해하는 건물 필수요소가 아니라 건물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계단 기둥은 액자 기능을 하고, 계단 전체는 빛우물처럼 실내에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제가 계단을 좋아하다보니 너무 계단이야기로 빠졌는데, 진짜 중요한 점은 이 상설전에 전시하는 작품들이겠지요. 한마디로 놀랐습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들은 거의 모두 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오히려 누가 빠졌나 찾는게 빠를 듯합니다.



누구 누구의 작품이 있는지를 나열하는 것이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피카소와 마티스, 싸이 톰블리며 프랜시스 베이컨을 취리히 시민들은 언제나 이 쿤스트하우스에 찾아오기만하면 만날 수가 있습니다. 너무 유명한 작가들이 많아 따로 작품 사진을 찍기를 포기했습니다. 특별전이 아닌 상설전에서 이렇게 유명 작가들을 늘 보고 즐긴다니 스위스의 미술팬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클레가 스위스 화가를 대표한다면 스위스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는 단연 자코메티입니다. 사람을 철사처럼 가늘게 만들어 표현했던 그 작가입니다. 자코메티는 단순히 스위스 대표작가를 넘어 로댕 이후 가장 유명하고 인기높은 현대 조각 최고의 스타라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이 자코메티의 공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자코메티 전시관이 무척 넓어 자코메티에 대한 스위스 사람들의 애정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네와 뭉크 등의 유명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기획전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모네입니다. 뭉개지는 빛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형태를 표현하는 모네의 기법은 언제봐도 매력적입니다.



북유럽의 스타 화가 뭉크입니다. 그의 작품은 참 분위기있게 우울합니다. 동글동글 말리는 표현법은 역시 재미있습니다.
 
미술관의 다른 부분들도 보시지요.

 

사진=서영빈 사진가
서영빈 사진가



그리고 나오면서 본 풍경 하나.



자전거 거치대에 견공 하나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건물 외관을 찍고 있을 때 개를 데리고 왔던 관객의 개였습니다. 자전거 타고와 미술관을 즐기고, 개와 산책하다 작품을 보고 가는 모습이 왜그리 인상적일까요.

취리히미술관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은 두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미술관이 참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 시립미술관을 가보면 건물이 처음부터 너무 웅장함과 권위를 내세워서인지 그리 편안하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넓어도 걷기 힘들고 부담스럽죠. 하지만 저 미술관은 아주 작은데도 뭔가 가득 들어있고 사람이 돌아다니기 편했습니다. 미술관을 지을 때 건물의 크기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그리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아담해도 소장품에 더 신경쓰는 것이 당연히 정답일텐데, 우리 미술관들은 건물에는 수천억을 아낌없이 쓰면서도 소장품에는 연간 수백억도 쓰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스위스가 정말 부자나라로구나'란 것이었습니다. 소득이 많은 재산 부자가 아니라 문화를 아끼고 문화에 돈을 쓸 줄 아는 문화 부자 나라라는 생각입니다.
 
저 미술관은 건물만으로 보면 작고 아담하고 귀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직접 소장하고 있는 미술작품들의 수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수많은 스위스 재벌들이 기증해줬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미술품을 열심히 확보해 취리히 시민들이 좋은 작품을 늘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입니다.
 
우리 미술관은 어떻습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작품 구입 예산은 말하기도 창피할 정도로 적습니다. 박수근 그림 한 점이 30억~40억원 하는 세상입니다. 그림 몇점 사기에도 빠듯한 예산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런데 다른 미술관들은 오죽할까요.
 
우리나라가 스위스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미술품 사는데 막대한 돈을 쓰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런가 의문하게 됩니다.



석달쯤 전인가요, 강남구청은 도곡동에 855억원을 들여 뮤지컬 극장과 헬스클럽을 갖춘 명품 주민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민센터라고 하니 속으실 수 있습니다. 동사무소의 바뀐 이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미술품 구입예산의 10배가 넘는 돈이 한쪽에선 저렇게 쉽게 쓰입니다. 게다가 명품이라면서 제시하는 건물 디자인은 눈뜨고 못볼 지경입니다. 저렇게 지어질리는 없겠지만 일단 이미지라고 공무원들이 가져온 안목이 저렇습니다. 한국에서 미적 감각이 가장 처져있는 공무원이 가장 중요한 미적 결정을 내리니 저런 건물들만 양산됩니다.
당연히 저 명품 주민센터라는 돈지랄은 여론에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게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의 수준입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촌스럽고, 무식하고, 용감하고, 뻔뻔하며, 낭비를 일삼는지 더 도곡동 주민센터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어보입니다.
아, 수정합니다. 광화문 세종로 광장을 코미디로 만든 서울시를 빼먹었네요. 죄송합니다.
 
과연 어느 나라가 부자나라일까요? 세계적 미술품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나라, 분명 부자나라일겁니다. 그런데 세계적 미술품을 몇개씩 사고도 남을 돈을 동사무소에 뮤지컬 극장을 얹어야 한다고 아낌없이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우리가 부자인지, 스위스가 부자인지 헷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