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밴쿠버의 보석 그랜빌로 가는 길 2009/10/03

딸기21 2023. 1. 3. 15:12

캐나다에 이번에 가보기 전까지 사실 캐나다에 대한 제 인상의 90%는 <빨강머리 앤>의 이미지였습니다. 아름다운 전원 농촌 그린 게이블스의 나라 정도?
나머지 10%는 단풍시럽과 나무, 아름다운 호수가 나오는 엽서같은 사진 정도겠지요.

 

그랜빌 아일랜드로 떠나는 선착장. 요트타고 바다에서 맥주를 마시면 정말 기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밴쿠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민들의 쉼터 그랜빌 아일랜드로 가면서 문득 나는 캐나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만큼 우리와 캐나다는 연결고리가 없는 탓이었겠지요. 그리고 미국에 대한 우리의 접점이 너무 많다보니까 우리는 미국의 조용한 이웃나라 캐나다를 마치 미국의 변방 주 하나 쯤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처녀 뱃사공?'하고 보니 젊은 양반은 아닙니다. 자연스레 우리 뱃사공을 돌아보게 됩니다.
`처녀 뱃사공?'하고 보니 젊은 양반은 아닙니다. 자연스레 우리 뱃사공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캐나다의 역사를 `대충 미국하고 비슷하겠지 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영국, 프랑스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이 그 불쌍한 원주민들을 말살시켜 세운 나라들이란 점에서 그나라가 그나라처럼 보이긴합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궁금한 점이 금세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두 나라가 건국과정이 그렇게 비슷하다면 왜 한 나라가 아니고 두 나라로 서로 다른 길을 갔을까요? 그리고 두 나라는 왜 전쟁까지 벌일뻔 했던 걸까요? 아니, 캐나다는 정말 미국의 아류 정도되는 미국풍의 나라일까요?

 

 

아름다운 밴쿠버 바닷가 풍경을 시원하게 바라보면서 작은 배는 순식간에 그랜빌 아일랜드에 우리를 내려줍니다. 문득 캐나다에 대한 궁금증에 빠진 것은 그랜빌 아일랜드로 가기로 정하면서 이 섬의 운명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들면서 어울리지도 않게 역사, 인종, 환경 등에 대해 생각해보기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랜빌섬은 원래 섬이었지만 지금은 섬이 아닙니다. 옆 더 큰 땅에 이어져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천으로 치면 월미도 같은 곳인 셈입니다.
비록 작고 지금은 섬도 아니지만 섬의 역사는 다른 곳보다 더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곡절이 많았던 땅입니다.
 
그랜빌 섬은 밴쿠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원주민이 살았던 전통의 땅입니다. 하지만 백인 이주민들은 최후의 안식처 그 작은 땅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원주민들을 몰아냈습니다.
20세기초까지 이땅의 주인들이 살았던 이 작은 섬은 이주민들의 땅이 되었고, 섬의 풍경도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커다란 굴뚝들이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지대로 변합니다.
 
인간의 탐욕이란 얼마나 허망한가요? 수천년 살았던 원주민들을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내고 지은 공장지대는 불과 반세기도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공장은 탐욕에 비례해 오염을 일으켰고, 아름다웠던 섬은 개판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공장지대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맙니다. 무엇을 위한 공장이었는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지만 어디 그런 곳이 이곳 뿐이었겠습니까. 그런 뻔하고 반복되는 어리석음에 희생당하고 밀려나는 땅의 주인들만 불쌍하고 말 노릇일뿐입니다.

 

그랜빌 선착장에서 바라본 밴쿠버 도심.

 

아름다운 작은섬을 초토화한 공장을 옮긴 뒤 1973년부터 이 곳은 재개발됩니다. 반성과 정성으로 섬은 검은 산업의 때를 거의 벗어버리고 제색깔을 어느 정도 찾아갔습니다.
바다 건너 섬이라는 경관과 위치 덕분에 섬은 쾌적한 시민들의 쉼터이자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잡습니다. 유명한 식당들, 화랑들, 극장이 들어서 문화의 향기를 풍기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랜빌 퍼블릭 마켓이 특색있는 재래시장으로 섬을 대표하는 명소로 사랑받으며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반찬거리부터 최고급 관광기념품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파는 그랜빌 시장은 밴쿠버에서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곳으로 꼽힙니다.
 
이 작은 섬에 이제는 공장의 흔적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랜빌 섬은 그런 기구한 운명 그리고 재생의 영광을 동시에 간직한 곳입니다.
밴쿠버는 우리에게 세계적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밴쿠버의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을 보면 처음부터 생활공간을 잘 가꾸고 아낄 줄 아는 캐나다와 밴쿠버의 특성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단체들이 나온 환경도시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쾌적하고 환경 중시하는 밴쿠버도 처음부터 그렇게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랜빌 섬과 같은 오류와 상처를 경험한 그런 어두운 과거가 이곳에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밴쿠버와 그랜빌 아일랜드는 그런 과거를 잘 극복하고 다시 가꾼 덕분에 받은 훈장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럼 체질에 안맞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고 섬 구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대한 다리 그랜빌 빌리지 아래로는 캐나다 최초의 양조장이라는 그랜빌 섬 양조장이 있고, 그 옆으로는 해산물과 음식이 탐스러운 퍼블릭마켓이 있습니다.

 

 

이곳 시장은 건물 외벽 길쪽으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예쁜 가게들이 있고, 안쪽으로는 우리 시장과 똑같은 시장통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건물 안과 밖으로는 저렇게 배관 파이프가 이어지는데, 조형물처럼 예쁘게 꾸며 특색있는 거리가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 안 시장은 여행전문가들의 표현에 따르면 `노량진 시장과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아담하고 예쁘게 합쳐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음직스런 과일가게들이 특히 많고,

푸드코트도 있습니다.

 

초콜릿 가게는 자부심이 강해서 아주 센 광고 문안을 붙여놓았습니다.
역시 외국은 외국입니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저렇게 못붙였겠죠. 뭐 어른들이야 웃고 넘어가지만 아이들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있을테니 욕먹고 떼어야겠죠?

 

 

식료품쪽과 달리 기념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 건물은 내부를 나무로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물건들은 아주 좋았습니다. 준 명품 수준인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격도 상당히 비쌌습니다.
 
그랜빌 섬에는 저 시장 말고도 여러 볼거리들이 유명합니다. 캐나다 역사를 알 수 있는 밴쿠버 박물관, 다양한 해양과 선박 자료를 모아놓은 해양박물관 등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저는 잠깐 짬을 내 들르는 바람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정이 잘 안가는 밴쿠버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저 곳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점입니다. 출장이란 늘 수박 겉핥기조차 정신없이 해치우게 됩니다. 다음엔 밴쿠버 출장이 아니라 캐나다 여행이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그 때는 정말 여유럽게 그랜빌 일대 전체를 돌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