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한옥의 얼굴 창호의 매력 2008/06/16

딸기21 2018. 9. 10. 15:54

집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얼굴이 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전통 한옥이라면 ‘창호’, 그러니까 ‘문’이 바로 사람의 얼굴 같은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엇비슷해보이는 한옥들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으로 창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옥의 매력 포인트 ‘창호’ 제대로 볼 수 있는 곳 생겼다


흔히 문이라고 말해도 되는 창호는 ‘窓 + 戶’가 되어 나온 말입니다.

창(窓)은 빛과 바람이 들어오라고 만드는 통로입니다.

호(戶)는 방과 방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이 두가지 기능을 합한 창호는 사람이 드나들 때는 문이 되고 가만 있을 때는 통풍과 채광을 하는 창이 됩니다.


이 창호를 온갖 다양한 무늬로 만드는 것이 우리 한옥의 특징입니다. 바로 옆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봐도 전혀 그 디자인 감각이 달라 우리 한옥만의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좌우로 밀어서 닫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동시에 위로 열어 올려놓기도 하고, 모양과 기능도 다양한 것이 우리 창호입니다.


이 창호를 제대로 구경할만한 곳이 생겼습니다. 아니, 잘 지은 요즘 한옥을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실 한옥 구경하기는 무척 힘듭니다. 누구나 한옥에 관심을 갖지만 막상 그 겉모습만 볼 수 있을뿐 그 내부는 들어갈 만한 곳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서울 한옥 1번지 북촌 한옥마을에 문을 연 ‘청원산방’(02-715-3302)은 누구나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만든 한옥입니다.


이 청원산방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창호입니다. 창호를 전문으로 하는 무형문화재 심용식(56)가 칭호 전시장 겸 한옥 구경하는 집으로 청원산방을 마련한 것이거든요.




청원산방은 서울 가회동 동사무소 맞은편 재동초등학교 옆 골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윗 사진 왼쪽이 재동 초등학교 담장입니다. 이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오른쪽 사진의 청원산방이 나옵니다. 따로 표지판이 없으므로 대문에 붙인 현판을 잘 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사진을 보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재동초등학교는 담장이 무척이나 예쁜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서울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초등학교 중 한 곳이죠. 유진오 박사 같은 유명한 이들이 이 학교를 졸업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그 건물은 아주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담장에 이렇게 와편(기왓장)으로 모양을 내서 전통 ‘꽃담’ 분위기를 더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담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청원산방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청원산방은 크지 않은 아담한 한옥입니다. 원래 집주인이 오래 전에 내놨지만 잘 팔리지 않던 낡은 한옥이었는데 심용식 소목장이 완전히 새 집처럼 변신시켰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한옥보다 훨씬 화려한 느낌입니다. 일반 가정집이었다면 좀더 차분하게 했겠지만, 이 집은 창호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온갖 다양한 창호들로 꾸몄기에 당연한 노릇이라 하겠습니다.


사진 위는 입구에서 본 본채쪽, 그리고 아래는 본채에서 본 입구쪽 모습입니다. 사진이 작아 좀 뭣합니다만 자세히 보시면 문짝 디자인이 모두 다른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선 내부 창호들부터 보시겠습니다.


[위 왼쪽]

달문입니다. 달처럼 동그란 문입니다. 이 집에서는 부엌문입니다. 정확히 이름을 붙이자면 ‘달아자살문’입니다. 무슨 뜻이냐구요? 달문이긴 한데 아(亞)자 모양으로 살대를 꾸민 문이란 뜻입니다. 꼭 아자 모양은 아니고 변형된 아자라고 해야겠네요.


[위 오른쪽]

부엌에서 사랑채로 이어지는 미닫이 문인데 글씨와 그림을 나무 부조처럼 깎아 근사하게 해서 아예 문에 붙였습니다. ‘서각장지문’입니다. 장지문은 안방이나 사랑방 같은 큰 방을 둘로 나눌 때, 아니면 방과 마루를 구분할 때 주로 쓰는 문입니다. 풍류를 줄기는 양반집에서는 사군자 등을 그려 장지문에 넣어 방 안에서 예술을 즐기곤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아예 서각을 붙였습니다.


[아래 왼쪽]

‘꽃완자문’입니다. 이 집에서도 가장 화려한 축에 드는 창호입니다. 화려한 살 사이로 보이는 마당이 더욱 예뻐 보입니다.


[아래 오른쪽]

살 모양이 가장 큼직하게 직사각형인 저 문을 용(用)자살이라고 합니다. ‘쓸 용’자 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입니다. 저 창호 위로 가늘고 길게 옆으로 낸 창호도 인상적이죠? ‘빗완자교창’입니다. 卍자를 비스듬히 뉘운 무늬여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럼 이제 사랑채 쪽으로 건너갑니다. 위 왼쪽은 사랑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모습입니다.


위 오른쪽은 사랑방 중간에 설치한 ‘사각불발기문’입니다. 불발기는 문 중간쯤에 채광이 되게 살 모양을 달리하거나 종이 붙이기를 달리해 넣은 부분을 말하는데, 그 불발기창 모양이 네모나서 이름이 사각불발기문이 된 것입니다.


그 아래는 집주인 심씨가 집을 꾸민 부분이 재미있고 장난기 넘쳐서 찍어온 것인데 집안 구석에 잘 보이지 않게 거북(아래 왼쪽)이며 풍요를 상징하는 모란(아래 오른쪽) 나무 조각을 만들어 붙인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당으로 나가 바깥 창호들을 볼 차례입니다.


[위 왼쪽]

문 전체가 아주 독특합니다. 아래 휜 나무를 쓰면서 거기에 맞게 문짝을 만들었습니다.


[위 오른쪽]

문 아래-중간-위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특히 가운데 팔각형 부분만 따로 열립니다. 이런 식으로 문 전체를 열 필요 없이 살짝 바깥을 내다보게 여는 창을  ‘눈곱재기창’이라고 합니다. 요즘 현대건축물로 말하면 ‘인터폰’ 역할이라고 하겠지요.


[아래 왼쪽]

단순한 모양이지만 패턴이 반복되면서 무척 화려한 느낌을 주는 창입니다. ‘숫대살문’입니다. 숫대란 셈을 할 때 쓰는 산가지로, 이 산가지를 늘어놓은 모양같은 무늬입니다.




청원산방 집에서 가장 멋을 낸 부분입니다. 저 난간은 우리나라 난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창덕궁 낙선재의 난간을 그대로 본뜬 것입니다.


[위 왼쪽]

가장 화려한 창호인 꽃살문입니다. 가장자리는 우물 井자 모양의 매화꽃 문양이고, 가운데는 오얏꽃 문양입니다.

꽃살문은 절과 살림집 양쪽에서 다 썼습니다. 살림집은 꽃살이 잘고 절은 큼직합니다. 또한 절은 꽃살에 단청을 넣지만 살림집은 그냥 칠안하고 쓰는 것도 차이입니다.


[아래 왼쪽]

박쥐 장식이 재미있습니다.


[아래 오른쪽]

이 난간은 그 결구방식이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박쥐 옆 쪽으로 나무 중간에 아래 나무를 끼운 네모 부분이 보입니다. 못 하나 안쓰고 저렇게 정교하게 끼워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쉬울리 없겠지요.


[위 왼쪽]

마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 화려한 꽃담입니다. 경복궁 자경전에 있는 십장생 꽃담(보물 지정)을 역시 본뜬 것인데 가정 집에 저렇게 만든 것은 대단한 호사라고 하겠습니다.


[위 오른쪽]

저 물 나오는 나무 조각은 나무 기둥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궁궐 기둥이고, 가정집 기둥은 저렇게 십자로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습니다. 전통 디자인을 응용한 아이디어라 하겠습니다.


[아래 왼쪽]

나무 기둥으로 만든 편지함이 인상적입니다.


[아래 오른쪽]

소나무 지지대에 역시 거북이 조각을 파서 붙여 놓았군요. 역시 재미난 장면입니다.




이 청원산방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볼거리가 또 있습니다. 소목장 심용식씨가 각조 목공 기구들을 전시해놓은 방입니다. 사진 위 왼쪽을 보시면 그 숫자가 놀랄 정도로 많고 다양합니다. 실제 심씨가 작업에 쓰는 공구만 500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직접 공구를 만들어 쓰는데 점점 그 기술이 전수가 안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합니다.


[위 오른쪽]

홈을 파는 도구입니다. 섬세한 대패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래 왼쪽]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저게 바로 먹줄통입니다. 먹줄을 당겨 퉁기면 먹줄이 목재에 부딪치면서 선이 그어지는 것입니다. 목수가 된다고 해서 아무나 저 먹줄을 잡지 못합니다. 몇년 이상 해야 간신이 잡아본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도구입니다. 저 사진속 먹줄은 도편수 급들이 쓰는 커다란 먹줄입니다. [아래 오른쪽]에 보이는 먹줄은 그보다 급 낮은 목수들이 쓰는 것이고요. 그 모양도 급이 낮아서 좀 작고 왜소하지요?


이 청원산방을 만든 심용식씨는 열일곱살에 나무일을 시작해 올해로 40년 가까이 목수일을 해왔습니다. 왠만한 궁궐 보수공사 때나 큰 절 지을 때, 그리고 재벌 회장 집 한식 방에 그의 창호가 으레 들어갔습니다. 불타 새로 지은 낙산사 원통보전도 그가 참여했습니다.


이 창호의 달인이 청원산방을 낸 것은 오랜 꿈이었다고 합니다. 한옥으로 먹고 살아온 보답으로 한옥을 알리는 공간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심씨는 이곳을 누구나 찾아와 한옥을 느끼고 가도록 공개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을 가시게 되면 한번 들러서 요즘 한옥들이 어떤지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