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한국만화와 일본만화의 차이는? 2007/12/22

딸기21 2018. 7. 11. 19:42

해마다 5월이 오면, 따사로운 봄볕 아래 뜻밖에도 화형식이 열렸다.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불량만화’들을 모아 불사르는 행사였다. 만화가들은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다같이 불량만화를 퇴치하자는 선서를 했다. 


불과 20여년 전까지 이런 화형식이 열렸다. 하이네는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될 것”이라 경고했는데, 한국에선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만화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화형식이 벌어지는 와중에서 한국 만화는 핍박을 참아가며 성장했다. 한편에서는 만화를 스스럼없이 불태웠고, 다른 한편에서는 만화가 산업이자 장르로 자리잡아 갔다. 70년대가 되기 1년 전인 1969년 등장한 최초의 스포츠신문이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도 만화 덕분이었고, 각종 주간지들이 빠뜨려서는 안되는 무기가 만화였다. 고우영, 강철수, 박수동 같은  작가들이 대중을 울리고 웃겼던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5월이면 다시 만화 화형식이 열렸다.


70년대 최고 인기만화 <고우영 삼국지>.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이 됐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안될 일이다. 당시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수많은 만화 가운데 ‘불량만화’는 없었다. 암거래되는 포르노만화는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만화방’이라고 부르는 대본소 만화에도, 기사보다도 만화가 주를 이뤘던 소년잡지에도 불량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건전한 내용들, 교육적인 내용들을 앞세워 짜증날 정도였다. 대본소용 만화도 똘똘하고 우수한 한국 어린이가 시건방진 일본 어린이들을 똑부러지게 혼내주는 식의 만화들이 더 많았다.


70년대 명랑만화 대표작인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이보다 더 건전할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한 어린이용 만화다.


아마도 가장 처참했던 이들은 화형식을 바라보며 선서해야 하는 만화가들이었을 것이다. 진정 잔인한 짓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한 직업의 정체성을 짓밟는 사회적 폭력이다. 한번도 불량한 만화를 그린 적이 없는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길들여져야 했다.


아버지가 만화가게를 운영했던 만화가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책에는 당시 그의 아버지가 만화를 불태우는 세태에 괴로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 실제 만화를 그리던 만화가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이처럼 만화를 ‘해로운 것’으로 여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을 옭아매는 교육탓이었다. 만화를 보면 공부할 시간을 잡아막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화를 보는 것 자체를 문제로, 심지어 탈선으로 봤던 것이다. 그리고 만만한 희생양도 필요했다. 이른바 배운 사람, 있는 사람들은 전공하지 않는 비엘리트 장르, 누구나 쉽게 보면서도 전혀 예술이라고 생각않는 장르인 만화만큼 만만한 샌드백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만화란 장르는 점점 커져갔다. 이는 너무나 당연했다. 실제 만화란 것은 본질적으로 매력적이었고, 불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0년대는 한국 만화가 당시 놀랍게 성장한 일본만화의 직접적인 자극을 받아 그 뒤를 좇으며 산업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이미 당시에도 한국과 일본은, 만화산업의 측면에선 동일 시장이었다. 일본만화들이 일본에서 나온 뒤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한국에서도 선보였다. 소년잡지들이 일본만화를 그대로 전재했고, 때로는 지은이를 우리 이름으로 바꾸거나 아예 우리작가에게 일본만화를 그대로 베끼게 해 사실상 동시 연재했다.


당시 한국으로 수출된 일본 만화는 다른 나라 만화들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용 역시 불량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국에서 검증받은 인기작이었고, 모두 일본 소년잡지에 연재한 것들이었으므로 해로운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쟁력있는 세련된 일본 만화와, 투박하지만 정서에 맞는 한국 만화를 동시에 보고 자라기 시작한 세대가 지금의 30~40대들이다. 불량만화 화형식이 있던 그 시기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다.


70년대는 이렇게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모두 만화가 장르로, 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 만화의 위상은 극과 극이었다. 한국에서는 백해무익한 소일거리로 불량이란 낙인이 찍혔지만, 일본에서 만화는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어 일본을 ‘만화왕국’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도 지하철 안에서 만화잡지를 보는 나라, 가장 큰 출판사들이 모두 만화로 먹고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 형식이나 내용에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일본만화는 왜 그렇게 산업과 대중문화의 주류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한국 만화는 왜 구박덩어리로 찬밥 신세를 당했을까? 도대체 일본만화는 한국만화와 무엇이 다르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장르가 되었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나라 만화의 운명을 가른 요인은 바로 코드, 또는 이데올로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만화에는 없고 일본만화에는 있는 코드, 그래서 일본만화를 대표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코드가 일본만화를 키웠다고 본다. 바로 ‘열혈’(熱血)이란 코드다.


끓는 피로 한없이 도전하는 것, 한국 만화팬들에겐 극단적인 몰입이나 집착으로 느껴지기 쉬운 이 ‘열혈’이란 코드는 일본에서는 거의 하나의 장르나 마찬가지다. ‘열혈’은 일본에서 만화가 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어린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됐다.


일본만화에서 열혈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실제 목숨을 잃을 수 있어도 도전하는 캐릭터들이 열혈이란 코드를 변주하고 반복한다. 주인공이 도전하는 분야만 바뀔 뿐, 내용는 철저한 도전정신으로-심지어 적들까지도 감동시켜 자기편으로 만들어가며-전진하는 내용의 만화가 지겹도록 쏟아져나온다.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거인의 별>의 유명 장면. 오로지 야구에 미친, 야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혈 집안 이야기다.


이 열혈을 낳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스포츠 만화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응원가를 낳은 만화 <거인의 별>이 일반적으로 열혈의 효시로 꼽힌다.


이 만화는 오로지 야구, 구체적으로는 거인팀 입단과 승리만을 위해 결코 지름길이나 우회로를 찾는 법 없이 직선으로만 질주하는 야구선수를 그렸다. 이렇게 한가지에만 목숨을 거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는 열혈만화는 일본인들이 숭상하는 가치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일본 만화는 이처럼 주류 지배정서를 만화에 담았고,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만화가 아이들의 꿈을 좀먹는 불량한 것으로 취급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방법론이 바로 열혈인 것이다. 


일본의 청소년 만화를 대표하는 잡지인 슈에이사의 <소년 점프>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년 점프>는 1968년 창간돼 일본만화의 성장과 함께 자라며 일본,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잡지가 되었을 만큼 성공을 거뒀다. 일본에서 만화출판이 최고조에 올랐던 94년에는 이 주간지 만화잡지 발행부수가 무려 600만부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일본 최대의 만화잡지 <소년점프>. 우려먹기의 지존격인 잡지다.

<소년 점프>가 성공한 비결은 다른 잡지들과는 달랐던 편집정책이었다. 이 잡지에 연재하는 만화는 예외없이 ‘노력’, ‘우정’, ‘승리’ 세 가지를 그린다. 만화가 다루는 분야가 어떤 것이든지 주인공은 꿈을 실현하려고 훈련하고 또 노력한다. 주기적으로 부딪치는 어려움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겨낸다. 그리고 한 팀이 되어 승리를 쟁취하고 만다. 이런 내용으로 어떤 만화든지 독자들에게 노력하고 협동해 이기라는 메시지를 불어넣었다. 정확하게 일본 사회 전반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부응한 것이다. 


어떤 것 한가지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일생을 거는 ‘잇쇼켄메이’가 만화에 현신한 ‘열혈’은 그래서 모든 만화에 다 들어갈 수 있다. 주인공은 야구든, 축구든, 아니면 요리든 모든 자기 분야에서 열혈의 자세로 일로매진할 뿐이다. 이 열혈 코드는 모든 일본 만화 전반에 퍼졌다. 일본 만화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장르인 ‘슈퍼로봇물’ 같은 장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열혈과 맞서는 만화도 있었다. 로봇을 모는 주인공이 자기 임무와 정체성에 고민을 하는 <신세기 에반겔리온> 같은 경우도 있었고, 일본 내에서 “열혈을 끝장냈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미쓰로 아다치의 <터치> 같은 만화가 새로운 감수성으로 한 때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늘 잠시만의 현상이었을뿐이다. 일본만화에서 ‘열혈’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확실하게 전승되고 있다.


일본 특유의 열혈 코드에서 벗어난 만화로 평가받는 미쓰루 아다치의 대표작 <터치>.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는 오로지 열혈로만 살아가는 캐릭터다. <나루토>의 나루토만 봐도 열혈의 코드와 공식이 늘 되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열혈’ 해적 이야기, <원피스>

이런 열혈이 거의 극한으로 승화된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자이언트 로보>가 있다. 모든 등장인물의 말투는 정의와 승리를 위한 집념과 확신으로 가득차있고, 위기가 닥치면 모두 장렬하게 목숨을 던지는 오로지 열혈로만 이뤄진, 열혈의 로망만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궁극의 열혈을 보여주는 <자이언트 로보>. 그림 왼쪽 위의 로봇이 고유성 화백의 <로봇킹>이 표절한 것이 아니냐고 두고두고 논란이 된 로봇이다. 이 <자이언트 로보>는 열혈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고통스러울 정도로 짜증나는 이상한 만화일뿐이다.

그러면 여자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만화들도 ‘열혈’이 지배했을까?


소년만화와 축을 이루는 여학생용 소녀만화들은 이 ‘열혈’ 대신 ‘귀여움’(가와이) 코드를 선택했다. 70년대 만화가 빠르게 거대 산업이 되면서 새로운 주요 시장으로 떠오른 어린 여학생용 만화시장인 ‘쇼조(소녀) 만화’는 다양한 주제를 들고 차별화를 시도했는데, 가장 성공한 코드가 바로 일본만의 독특한 사회현상으로까지 자리잡은 ‘귀여움’의 문화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는 만화와 맞물린 팬시산업이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서 이 ‘귀여움’이 고도로 상품화되어 전파됐고 소비를 부추기면서 하나의 문화로 깊이 일본 사회에 뿌리박았다.


어린 남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열혈’, 어린 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귀여움’은 모두 일본 사회가 신세대를 길들이는 코드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전통의 일본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사회를 위해, 전문화를 위해 목숨거는 인간형으로 다가가게 한다. 반면 여자 아이들에게 강조되는 ‘귀여움’은 결국 남성의 시각을 위해 종속되는 존재를 넘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남성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것인데, 만화가 그런 가능성의 싹을 잘라 사회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 최근에는 심지어 이런 열혈과 귀여움을 합쳐 비트는 듯한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도대체 일본에서만 가능할 듯한 만화 <손끝의 밀크티>의 경우 ‘열혈로리콘’으로까지 장르를 구분하기도 한다. 정말 일본만화에서만 있을 수 있는 분류이자 신조어가 아닐까.)


이런 열혈 코드는 한국만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열혈강호>는 있지만 그 안에 열혈은 없다. 그건 당연했다. 한국에서 만화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 장르 가운데 가장 힘이 약했고,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부의 적’으로 몰린 한국 만화의 운명은 한국 만화의 코드를 ‘열혈’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그 코드는 뜻밖에도 ‘쿨’이었다. ‘쿨’이란 문화현상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널리 쓰이기 시작한 2000년대 이전에 이미 한국만화는 가장 ‘쿨’을 코드로 발효시켰다.


때론 신파조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만화의 주인공들은 ‘쿨’한 캐릭터가 주를 이뤘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 만화가 불타는 수난속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패자의 정서’, 그리고 ‘비주류의 정서’ 때문이었다.


쿨이란 것이 최근 들어 대중문화의 주류 코드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쿨의 본질은 아니다. 상업자본들이 대중들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쿨을 새로운 판매 코드로 뽑아내고 팔기 좋게 포장한 것일뿐, 쿨의 시작은 지금 우리가 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쿨은 원래부터 패자들의 독특한 정신세계였고, 소외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쿨은 저 검은 아프리카 대륙이 겪은 비극이 낳은 자식이다. 어느날 갑자기 쳐들어온 백인 인간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 신대륙으로 끌려간 흑인들의 피와 땀이 빚어낸 문화현상이 바로 쿨이다. 채찍질이 쏟아지는 지옥같은 노동이 시달리던 흑인들이 미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낸 정신적 방어기제에서 쿨이 나왔다.


일상이 그토록 힘들지만 괴롭다고 찡그리는 대신 씨익 웃어버리는 모습, 현실을 잠시 비웃는 듯한 삶의 태도, 그런 감정으로 흑인 노예들은 괴로움을 잊고자 했다. 그런 태도의 스타일이 이어져 흑인들의 문화에 접목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이 문화이니, 그 문화는 당연히 더욱 현실을 씩 웃어버리며 넘기는 독특한 태도를 담아내야 했다. ‘쿨’이란 개념이나 명칭이 문화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이 흑인들이 만들어낸 음악인 재즈였던 것에는 이런 슬픈 역사가 들어있다.


주류 영웅이 아닌 반영웅이 많은 한국 만화가 이런 ‘쿨’의 정서를 가진 것은 한국 만화가 그렇게 비주류로 밀리고 패자로서 살라고 강요당한 결과 낳은 기묘한 결과다. 만화 화형식을 보며 선서하던 70년대 이후 한국 만화가들은 그런 패자 정서에 시달렸고, 역설적으로 ‘쿨’한 주인공들을 그렸다.


80년대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쿨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 까치는 패자정서, 비주류 정서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만화가 낳은 영웅들인 허영만의 이강토도, 이현세의 까치도, 고행석의 구영탄도 결코 주류는 아니었다. 만화속 주인공인 이들은 언제나 비주류 출신에 엘리트 승자에게 패배하는 데 익숙한 캐릭터들이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혈과는 다른 코드로 그들은 주류에 도전했다. 열혈의 정서는 처음부터 없었다. 열혈의 정신으로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엘리트 라이벌을 압도하지만 까치도 이강토도 결국 지거나 죽고마는 주인공들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패배나 죽음을 택하면서도 씨익 웃어버리는 쿨한 반영웅에 가까웠다. 이상무의 독고탁도, 김철호의 스콜피오도 마찬가지였다.


박봉성의 출세작 <신의 아들>. 주인공 최강타 역시 패자, 비주류 정서로 가득차 있다.

한국만화는 쿨이란 코드가 새로운 서구의 세련된 코드로 포장되어 우리 대중문화에 등장하기 한 세대 전에 이미 쿨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은 코드가 달랐던 70~80년대 최고 인기만화가 강철수가 낳은 두 캐릭터 팔불출과 달호도 모두 보고 있으면 웃음 속에 씁쓸함이 끈끈하게 남는다.


다른 만화도 마찬가지다. 명랑 코미디인 김수정의 <오달자의 봄>이나 <소금자 블루스>도 겉으로는 비록 너무나 웃기지만 그 웃음속에는 슬픔이 깔려 있다. 그들은 모두 ‘쿨’했다.


허영만 최고의 만화이자, 한국 만화사상 가장 쿨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걸작 <비트>. 90년대 주요작으로, 영화로도 성공을 거뒀다.

반면 일본 만화에서는 이런 쿨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패자의 아픔을 돌아보기 보다는 승자만을 좇는 만화에서는 태생적으로 쿨은 자리잡기 힘들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형님’의 모습에는 열혈만이 어울린다. 일본만화가 가지지 못한 이 쿨은 한국만화의 특징이자 가장 큰 자산, 그리고 매력의 하나다. 비록 그 속에는 70년대 이후 수십년 동안 작가들이 겪어야했던 마음고생과 자괴감이 녹아있지만, 만화가들이 그런 속상함을 삮이며 그린 만화에는 한국만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쿨’의 코드가 생겨날 수 있었다.


이 쿨 코드는 한국 만화가 주류 담론을 담아내지 못했고 결국 한국 대중문화에서 인정받는 주류가 되지 못한 대가로 얻은 예술적 결과물이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만화는 천덕꾸러기에서 이제 촉망받는 유망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 만화가 꼭 지배 이데올로기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예전의 황당한 수모를 떨치고 떳떳한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만화가 열혈 코드로 무장했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회의 보편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코드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게 한국만화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이자, 퍼즐이다.